‘잼얘’라는 말을 아는가. 의미를 알면 코웃음이 나올 정도로 무척 직관적인 줄임말이다. 그냥 ‘재밌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최근 기자가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입에 올리는 말이기도 하다. 대화를 하다 정적이 흐르거나 분위기가 침체될 때 “잼얘 없어? 잼얘 좀 해봐”와 같이 요구하는 식이다. 단편적이고 자극적인 가십이나 이야기를 내놓으라는 주문에 가깝다. 고작 두 어절의 어구를 단 두 글자로 줄여 시도 때도 없이 입에 올리는 모습이라니. 한시의 무료함도 허용할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 혹은 참을성 부족이 엿보인다.
그렇게 ‘잼얘’를 주고받으며 한바탕 웃고 떠들고 나면 마냥 행복한가. 즐거움은 잠시뿐, 이내 찾아오는 공허함과 피로감은 왜일까. 많은 이들이 도파민을 좇지만 동시에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 같다. 10년째 인기리에 개최되고 있는 ‘한강 멍때리기 대회’, 전자기기 없이 시간을 보내는 ‘디지털 디톡스’ 등의 활황이 이를 방증한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자극의 유해함에 경각심이 생겨 거리를 두려 해도 이미 길들여진 몸과 마음을 바꾸긴 쉽지 않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으로 〈서울대저널〉 4명의 기자가 5일 동안 도파민 디톡스 챌린지에 참여했다. 쾌락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한 기자들의 고군분투를 소개한다. 과연 기자들은 도파민과 거리 두기에 성공했을까?
각자의 도파민 정의하기
도파민은 뇌신경세포의 흥분을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의 일종이다. 분비량에 따라 그 효과가 다르다. 적당한 분비는 행복감을 선사한다. 도파민의 분비로 생겨나는 쾌감은 인간에게 다음 행동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도한 도파민 분비는 다양한 병리적 증상을 야기한다. 글로벌사이버대 장래혁 교수(뇌교육학과)는 뇌교육 전문지 〈브레인매거진〉에 기고한 칼럼에서 ‘도파민은 흥분성 전달물질이기에 분비량의 많고 적음에 따라 인체 상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뇌에 도파민이 너무 과도하거나 부족하면 ADHD, 조현병, 우울장애 증상을 유발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엄밀히 따지면 도파민은 신경전달물질 그 자체만을 뜻하지만, 오늘날 도파민을 이야기할 땐 그 분비를 촉진하는 자극물까지 통칭하기도 한다. 이에 챌린지 시작 전, 기자들은 각자의 도파민을 정의하고 공유했다. 정확히는 각자 ‘좋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끊고 싶으면서도 끊어내지 못하는 무언가’를 정했다. 인스타그램(인스타)과 유튜브, 그리고 음료에 포함된 액상과당이 꼽혔다. 챌린지 기간은 8월 21일 수요일부터 25일 일요일까지 5일. 매일 저녁 10시에 하루 동안의 느낌이나 특기할 만한 에피소드 등을 단체 대화방을 통해 공유하기로 했다. 규칙은 단 하나, 진지한 마음으로 성공을 위해 노력하되 실패했다면 솔직하게 털어놓기!

Day 1-2: 참을 수 없는 관성의 무서움
호기롭게 거드럭거리며 시작한 탓이었을까. 기자는 첫날부터 몸살이 나 하루 종일 몸져누웠다. 전날 학회 사람들과의 엠티, 학교 근로, 그리고 〈서울대저널〉 기획회의까지 연이은 강행군이 원인이었던 듯 싶었다. 기자의 도파민은 인스타였는데, 인스타는커녕 스마트폰을 집어 들어 액정에 시선을 두는 것조차 버거운 하루였다. 때때로 원래 인스타가 있던 위치에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을 옮기는 자신이 우스운 때도 있었지만, 디톡스 챌린지고 뭐고 일상 자체가 힘겨워 하루를 보내는 것 자체가 챌린지였다.
다른 기자들의 첫날은 비교적 평온했다. 인스타를 끊어보니 지인들의 일상을 수시로 확인하는 일이 꽤나 피로했음을 알게 됐다. 유튜브 없는 귀갓길엔 짧은 책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었다. 주스를 물로, 액상과당을 대체당으로 바꿔 마셔도 일상에 큰 지장은 없었다. 시시때때로 도파민이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그런대로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지나 보낼 수 있는 하루였다.
둘째 날도 마찬가지로 평이했다. 80% 정도 기력을 회복한 기자는 오래전부터 예정됐던 친구들과의 약속에 나갔고, 다음 학기 근로 장학생을 뽑는 비대면 면접을 치렀으며, 저녁엔 역시 오래전부터 잡혀있던 학과 친구들과의 약속을 소화했다. 자연히 스마트폰보다는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들로 하루가 채워졌다.
딱 한 번, 인스타의 필요성을 체감했던 건 친구가 곧 중요한 행사를 주최한다며 본인의 계정을 통해 정보를 확인하라고 했을 때였다. 평상시 타인의 일상을 최대한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 탓에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음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다른 기자는 근래의 팝업 행사나 식당 예약, 해시태그 이벤트 등이 인스타 없인 진행할 수 없도록 설계돼있어 인스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어쩌면 SNS는 단지 세상과 우리를 손쉽게 연결해주는 도구만은 아닐지 모른다. 우린 그 자체를 탐닉하고, 목을 맨다. 수단과 목적이 전치됐다.
하루가 일정으로 가득 찰수록 도파민을 향한 유혹이 줄어든 건 기자 본인만이 아니었다. 학원 교습 아르바이트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낸 한 기자는 액상과당이 필요치 않은 하루였다고 말했다. 또 기자들은 기존의 도파민을 대체할 무언가를 충실히 찾아냈다. 첫날부터 애용했던 대체당은 오늘도 여전히 놓을 수 없었고, 유튜브를 대신해 왓챠를 보게 됐다. 다만 유튜브와 달리 서사가 있는 영상들이라 집중을 요하기 때문에 금방 피로해진다는 점에서 완전한 대체재가 될 순 없었다.
둘째 날부터 챌린지에 실패한 기자도 있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유튜브를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스마트폰을 집어던졌다는 기자는 ‘손가락이 멋대로 움직였다’고 회고했다. ‘의식을 거치지 않고 타성으로 구성된 행동이 문제적이고 무섭다고 생각했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참을 수 없는 관성의 무서움이었다.

Day 3-4: 무너졌지만 그래도 행복해
셋째 날이 밝았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근로 장학을 하고, 밤엔 친구 자취방에서 늦은 시간까지 놀았다. 역시 무료할 틈 없는 하루였기 때문이었을까. 챌린지 중반이 됐는데도 인스타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지 않았다. 이날 기자는 도파민 설정을 잘못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원래라면 인스타를 했을 빈 시간은 틈틈이 유튜브를 보거나 무언가 검색을 하며 보냈다. 인스타만 하지 않을 뿐, 삶 전반이 유의미하게 나아지거나 정신이 맑아지는 등의 변화는 없었다. 어쩌면 진정한 챌린지를 위해선 스마트폰 사용 자체를 도파민으로 정의했어야 하나 싶기도 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챌린지에 실패한 기자들이 있었다. 한 기자는 식후 유혹을 참지 못하고 기어이 아이스티에 에스프레소 샷을 추가한 음료, 일명 ‘아샷추’를 한잔 마셔버렸다. 강제력이 없어 그런지 너무 빨리 해이해진 것 같다는 말을 들으니 벌칙을 미리 설정하지 않은 게 아쉬웠다. 사촌들과 야구장에 놀러간 또 다른 기자는 술 대신 콜라를 마실 수밖에 없어, 액상과당을 멀리하지 못했다고 했다. ‘아, 이거지’ 하며 엄청난 행복감이 밀려든 한편, 핑계 한 번에 쉽게 무너진 자신의 모습에 허탈감도 못지않게 밀려왔다고 털어놨다. 무참히 무너졌지만, 그 순간만큼은 행복해했을 동료 기자들을 생각하니 귀엽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했다.
넷째 날, 이날까지도 인스타는 떠오르지 않았다. 인스타 없이도 일상이 이렇게나 잘 흘러간다면, 하루에 몇 시간씩이나 할애하던 게 실상 쓸데없는 것에 불과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면 아낀 눈 건강과 에너지를 다른 곳에 쏟아봐도 좋겠다고 생각하니 자발적으로 챌린지 기간을 연장하고 싶단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지금껏 챌린지를 잘 이어오던 한 명의 기자마저 이날 실패했다. 유튜브를 끊어낸 뒤 수면에 어려움을 겪던 기자는 다시금 유튜브를 이용하니 챌린지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숙면을 취했다고 말했다. 편안한 밤을 보냈으니 후회는 없지만, 한편으로는 유튜브 없인 잠들 수 없는 몸이 돼버린 현재의 상태가 심각한 것 같다며 걱정을 표하기도 했다.

이날은 액상과당의 대체재로 제로 음료, 물, 카페인에 이어 발포비타민이 등장하기도 했다. 온갖 다채로운 대체재의 향연이 웃긴 한편, 진정성 있게 챌린지에 임해주는 기자들이 정말 고마웠다. 막상 챌린지 제안자는 크게 힘들지 않게 나흘을 지나 보낸 터라 다른 기자들이 고통받는 모습에 죄책감까지 들기도 했다.

챌린지 마무리: 없으니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
챌린지 마지막 날이 돼서야 아무런 외부 일정 없는 날이 도래했다. 그리고 비로소 인스타를 도파민으로 설정했던 제안 당시의 심정을 떠올렸다. 기사 마감에 각종 서류 작업으로 혼자 노트북과 씨름하는 게 전부인 하루였는데, 동시에 인스타에 대한 욕구가 가장 크게 사무치는 하루였다. 태산같이 할 일이 쌓여있지만 당장 착수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시간을 들여 곰곰이 생각해야 하는 종류의 것들이었고, 사유와 고민을 회피하려 자꾸만 스마트폰에 손이 갔다. 인스타에 접속하진 않았지만, 인스타 빼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한 것 같다.
챌린지 기간 동안의 휴대폰 및 애플리케이션 사용 시간을 확인해보니, 아프거나 바깥 약속이 많았던 때를 제외하고는 챌린지 전과 비교해 전체 휴대폰 이용 시간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3일 차에 회고했듯, 인스타만 안 했을 뿐 남는 시간에도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었던 셈이다. 다시금 도파민을 단지 인스타로만 한정한 게 실수였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는 어차피 뭘 도파민으로 지정했든 무료하거나 진득하게 사유해야 하는 시간엔 어떻게든 이를 직면하지 않으려 단편적이고 자극적인 무언가를 찾아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또 다른 기자 역시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했다면 양질의 챌린지가 가능했을 거라 후회하기도 했다. 어떤 식으로든 기존의 도파민을 대체할 것이었다면 대체재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먼저 갖는 게 나았을 것 같다는 자조였다.
기자들은 5일 동안의 챌린지를 통해 뭘 깨달았을까. 사실 챌린지를 제안한 본인을 제외한 나머지 기자들은 도파민을 완전히 근절하진 못했다. 또 설령 본래의 도파민은 참았을지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유튜브 대신 왓챠나 블로그에 더 자주 접속했고, 액상과당 대신 온갖 대체재를 찾아 헤맸다. 5일 내내 도파민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진 못한 셈이다.
한편 챌린지가 각자의 도파민이 전적으로 해롭다기보다는 어느 정도 필요한 요소임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참고 참던 콜라를 마신 그 순간만큼은 진실되게 행복했다. 그 기자는 이후로도 도파민을 접하는 기간과 방식을 통제해 잠깐씩 행복을 충전한다고 생각하면 괜찮을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유튜브 없인 잠들기 어려웠던 기자도 지금의 상태가 문제인지와는 별개로 어느 정도는 유튜브가 생활에 정말 필요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무엇보다도 챌린지를 통해 기존에 우리를 사로잡던 도파민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앗아갔는지 깨닫게 됐다. 밥을 먹거나 대중교통에서 시간을 보낼 때 책을 읽거나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 보니 일상의 능률이 올랐다. 액상과당 없이도 큰일나지 않는 5일을 보내보니 그간 충분히 참을 수 있었는데도 자신을 속이며 입의 즐거움에 복종했단 걸 체감해 허허롭기도 했다. 자기 자신을 더 정확하고 세밀하게 알아가는 계기가 된 셈이다.
진단이 자세해지니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있게 됐다. 유튜브 자체보다는 생각 없이 알고리즘을 따르는 게 문제임을 깨달았기에 시청 기록을 삭제해 추천 영상이 뜨지 않게 만들 수 있었고, 어느 정도 통제가 겸해질 때 때때로 접하는 도파민은 진정한 행복감을 가져다준다는 것도 깨달았다. 한 기자는 지속 가능한 행복을 위해 스스로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된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평했다.
오늘날 도파민 디톡스 챌린지 열풍이 부는 데엔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자리하는 듯도 하다. 허비되는 시간을 줄여 가치 있게 운용하고, 몸에 좋지 않은 화학물질보다는 건강한 음식을 먹으면 내 가치도 높아질 거란 기대다. 더 잘 살아보려고 노력을 기울인다는데 누가 감히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다만 이렇게 권하고 싶다. 생산적이기보다는 주체적이기 위해 도파민으로부터 해방돼보자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노예처럼 종속되던 도파민을 근절하려는 건, 내 삶의 주인은 내가 되겠다는 다짐이라고. 삶은 뜻대로 되지 않기 마련이고 그 과정엔 자책과 후회가 있겠지만, 내가 행복해지는 길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면 그 또한 뜻깊을 수 있다고. 네 명의 기자는 여전히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완벽히 정의 내릴 순 없지만, 행복이란 게 있다면 이런 것이겠구나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아졌다. 챌린지를 통해 얻은 소중한 수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