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호에서는 세 편의 책과 한 편의 뮤지컬을 소개합니다.
『미래의 손』
차도하, 봄날의책, 2024.
이다빈 기자 qlsekdl11@snu.ac.kr

차도하 시인의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인 『미래의 손』이 출간됐다. 시집을 펼치면 시인은 계속 노래하고 있고 시집을 덮으면 시인의 노래가 계속 맴돌고 만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의 귓가에 시인의 노래가 들리고 그리하여 기억되기를 바란다. 시로 발현된 시인의 생명력은 그가 천국에 가서도, 자신의 모든 시를 잊어버린 뒤에도 영영 유효할 것이므로. 그리하여 시인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시작(詩作)하게 된다. 언제까지고 유효할 생명의 시를.
“그러나 그것이 세계라서 나는 굳이 책을 쓸 필요가 없었고 다만 살면서 너의 책을 읽는 것으로도 충분했다(「너를 인용하기」)” 나 역시 그대의 시를 읽으며 거듭 그리 생각했다. 지면만이 허락한다면, 당신의 책을 전부 인용하고 싶다.
『친구의 표정』
안담, 위즈덤하우스, 2024.
천세민 기자 chunsemin011@snu.ac.kr

윤리가 그저 매끈하고 간결한 것이라면 좋겠다. 그러나 누군가의 삶 속에 들어온 올바름은 매번 정확하고 아름다운 형태로 구현되지 않는다. 계급과 욕망과 신념이 교차하는 매일의 땅 위에서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이는 가끔 바삭거리는 돈가스를 떠올리고, 페미니즘을 외치는 이는 자신의 통통한 뱃살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현재의 소수자 정치에서 이런 이야기는 대개 갈 곳을 잃는다. 그곳은 지난함과 애씀의 시간으로만 채우기도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 오돌토돌한 윤리를 데리고 그래도 가야만 하는 곳이 있다고 말하다가 우리는 가끔 알기도 한다. 용기와 정의가 가득한 세계로 가는 건 언제까지나 결과가 아닌 과정임을. 우리가 서로를 구하는 방식이 때로는 우정이나 사랑 위에 지어질 수도 있음을. 이건 다만 아주 길고 복잡한 이야기일 뿐이라고.
『책을 읽다가 잠이 들면 좋은 일이 일어남』
박솔뫼, 위즈덤하우스, 2024.
홍인표 기자 han0727@snu.ac.kr

소설가 박솔뫼가 처음으로 에세이를 선보인다. 박솔뫼는 자신의 소설과 비슷하게 에세이에서도 부지런히 걷고, 먹고, 책을 읽는다. 로베르토 볼라뇨, 다카하시 겐이치로, 하라 료 등 외국 작가들부터 동시대 한국 작가들의 이름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작가들에 대해 떠드는 것을 “언덕에라도 올라가서 외치는” 행위라고 작가는 말한다. 박솔뫼의 “언덕에 올라가 외치기”는 그 외침을 듣는 이를 전혀 지루하게 만들지 않는다. 박솔뫼의 문장과 감각은 언제나 이 지구의 중력에서 살짝 벗어나있어 어딘가 모를 둥실거림과 허전함이 공존하게 만든다. 그 기분이 묘하고 좋아서 언덕 위에 선 박솔뫼에게 계속 외치라고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는 이 책을 읽다 잠이 들고 좋은 일이 일어났다. 개운하게 잠을 자고 맛있는 쌀국수 한 그릇을 먹었다.
뮤지컬 「박열」
링크아트센터드림 드림3관, 2024.07.16.~09.29.
정유림 기자 jul2001@snu.ac.kr
“잘못된 세상 한 조각이라도 터트릴 수 있다면 그게 나의 길.”
1923년, 동지이자 연인인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도쿄에서 아나키즘의 대중화를 목적으로 하는 불령사를 설립한다. 도쿄재판소 검사국장 류지는 조선인 대학살을 덮기 위한 화젯거리로 박열을 이용하려 하고, 그가 입수한 폭탄을 빌미로 덜미를 잡는다. 황실을 저격하려 한 대역죄인으로서 재판을 받게 된 둘. 그들은 이를 역이용해 자유와 평등에 대한 염원을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
“민중이 눈뜨면 권력이 이기는 세상은 끝나리라.” 선언문을 낭독한 채 사형 선고를 받고 만세를 외치는 그들을 보면, 굴복하지 않겠다는 외침에 만세로 함께 답하고픈 마음이 절로 든다. 권력의 구속을 넘어서 진정한 ‘나’로 존재하겠다는, 그 굳건한 신념을 마주하며 당장 자신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느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