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울증을 두고 ‘마음의 감기’라고 한다. 그러나 며칠이면 낫는 감기와 달리 우울증은 간단히 치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울증을 주변에 드러내는 것도, 우울하다는 이유로 학교나 회사에 가지 않는 것도 쉽지 않다. 증상을 제거하거나 환부를 도려낼 수 없기에 불편을 견디며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 아픈 나를 환대하지 않는 사회에서 나의 아픔은 정신장애*가 된다.
아파도 삶은 계속되고, 계속돼야 한다. 아픈 채로 배우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신장애를 개인의 문제로 여기는 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은 교육과 노동의 사각지대로 내몰린다. 정신장애인이 배우고 일할 권리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다.
*정신장애: 정신질환이 증상이나 진단에 근거한 의학적 범주라면 정신장애는 그로 인한 사회적 제약을 가리킨다. 본 기사에서는 법적인 장애인 지위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해당 용어를 사용한다.

어디에도 내 자리는 없네
경민(가명) 씨에게 우울과 불안이 찾아온 것은 중학생 때였다. 양말을 챙겨 신는 일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예고 없이 공황 발작이 일어났다. 경민 씨의 ‘병’이 학교에 알려진 뒤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완전히 달라졌다. 바라던 방송부에 지원해 합격했지만 담당 교사는 경민 씨를 받아주지 않았다. 언제 공황 발작을 일으킬지 모르니 방송 장비를 맡길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상태가 괜찮을 땐 공부를 곧잘 해냈지만 우울 증상이 심해지면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 탓에 성적은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경민 씨는 결국 학교를 자퇴했다.
자퇴 후 경민 씨는 검정고시 준비와
작곡 공부를 병행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치이는 직장인이 되기보다는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해 프리랜서로 일하고 싶었다. 올해 초 원하던 작곡과에 입학했지만, 새내기 경민 씨에게 대학 생활은 살얼음판을 걷는 듯하다. 경민 씨는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 칸짜리 녹음실에서 수업을 듣는데,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뛰쳐나온 적도 있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다가 다시 학교를 관두게 될까 두렵다”는 마음을 털어놨다.
생활 공간이나 교육과정, 학사제도를 비롯한 모든 요소가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설계된 대학에서 정신장애를 가진 학생들은 경쟁에서 낙오되기 쉽다. 하지만 실패의 책임은 오롯이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ADHD가 있는 미대생 노을(가명) 씨에게 조별 과제는 피할 수 없는 악몽이다. 일정을 잊고 회의에 못 가는 것은 다반사고, 밤샘 작업 중 공황이 와 작업에 끝까지 참여하지 못한 적도 있다. 지난 학기 내내 모자란 자신을 자책하는 나날이 반복됐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것조차 힘겨웠다. 이번 학기 노을 씨는 휴학을 신청하고 건강을 챙기고 있지만, 다시 학교에 돌아가 제 몫을 해낼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일터의 경우엔 어떨까. 휴학 후 노을 씨는 카페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며 세운 목표 중 하나는 ‘ADHD 들키지 않기’였다. 전에 일하던 곳에서 문제 있는 사람으로 지목돼 일을 관둬야 했던 기억 때문이다. 하지만 매뉴얼을 외우지 못하고 실수가 잦은 노을 씨를 이상하게 여긴 관리자에게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놔야 했다. 정신장애인들은 많은 경우 사회적 편견을 의식해 구직 과정에서 장애를 숨긴다. 2020년에는 정신장애인 A씨가 공무원 최종면접에서 장애를 문제 삼는 차별적인 질문을 받고 탈락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신장애인들은 ‘건강한 사람’처럼 보이려 애쓰거나, 임금이 낮고 불안정한 일자리를 감내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상황에 놓인다.
장애를 숨기고 취업에 성공해도 정신장애인에게 부적합한 환경 탓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래원(가명) 씨가 일하는 사무실에는 칸막이가 없다. 소통과 협력을 촉진한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개방형 사무실이지만, 대인 불안이 심한 래원 씨에게는 감옥과 다름없다. 래원 씨는 자신의 모든 것이 노출된 사무실에서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은 불안감을 매일 느낀다”며 “불안이 심해지면 화장실 변기 칸에 들어가서 심호흡하며 진정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신장애인의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는 환경에서 당사자들은 교육권과 노동권을 일상적으로 침해당하고 있다. 정신질환 및 고립·은둔청년 지원단체 ‘펭귄의날갯짓’의 섬세한 펭귄 공동대표는 “학업 중단을 겪은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취업을 준비하는 것도 어렵지만 취업을 한다고 해도 좋은 일자리인 경우는 드물다”고 설명했다. 거듭된 실패로 위축된 정신장애인들은 사회참여를 단념하기도 한다. 학교와 일터에서 일어나는 배제가 정신장애인들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것이다.
도와달라 말하고 싶지만
교육권과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당사자가 나서서 학교와 기업, 국가에 필요한 조치를 요구할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정신장애인들은 증상이 심할 때 쉴 권리를 보장하고, 각자에게 적합한 수업과 평가 방식을 제공하며, 공간 배치에서 개인의 영역을 확보하는 것 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혜가 아닌,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정당한 편의 제공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낙인 앞에서 정신장애인들이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민재(가명) 씨는 “우울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밝히면 대등하지 않은 존재, 동정과 챙김을 받는 존재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특수한 존재로 지목되는 것에서 오는 부담도 있다. 노을 씨는 “나도 남들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작업을 하기 위해 대학에 온 것”이라며 “남들과 다르게 여겨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부담을 무릅쓰고 도움을 요청하더라도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하기도 한다. 래원 씨는 “대학원 재학 중 우울이 심해져 지도교수에게 사정을 이야기했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결국 대학원을 중퇴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취업 후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는 아예 도움을 요청하기를 단념했다며 “우울증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문제니까 얘기를 꺼낸들 회사에서 도와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도영 씨(가명) 또한 “정신질환의 경우 교수자에 따라 병결이 인정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며 정신장애가 의지 부족이나 나약함의 문제로 여겨지는 상황을 지적했다. 아픔을 드러내지도, 도움을 구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정신장애는 홀로 견뎌야 할 개인적인 문제가 된다.
제도적 지원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장애인복지법은 의무 고용, 취업 지원 등 장애인 복지의 근거가 되는 법률이다. 하지만 정신장애인의 경우 중증질환으로 분류되는 ▲조현병 ▲조현정동장애 ▲양극성 정동장애 ▲재발성 우울장애에 해당하지 않으면 장애 등록을 신청할 수 없다. 불안장애나 공황장애, ADHD 등으로 일상이 어려워도 법적인 장애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국가 지원뿐만 아니라 수업보조와 대필지원 등 대학에서 제공하는 장애학생지원 역시 대개 등록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탓에 정신장애 학생 상당수가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법적 정신장애 범주가 국제적인 기준에 비해 협소하다고 지적하며 지원 대상 확대를 제언해 왔다.
법제가 개편되더라도 실제로 정신장애인이 장애 등록을 신청해 필요한 지원을 받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신장애인으로 명문화되는 데 따르는 낙인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민 씨는 “당장 정신질환으로 대체복무 판정을 받아도 취업에서 불이익이 생기는 마당에 공문서에 정신장애인이라는 기록을 남기기 꺼려진다”고 말했다. 또 래원 씨는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지원이 취업 외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며 “이미 일자리와 소득이 있는 경우에는 장애 등록을 해도 이득이 없을 것”이라 지적했다. 고용의무제도 등에 따라 장애인의 취업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미 취업한 정신장애인의 적응과 직업 유지를 돕는 정책은 마련돼 있지 않다. 관점의 전환 없이 단순히 지원 대상을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남는 것이다.
치료 너머의 삶을 바라보기
한국 사회에서 정신장애는 사회적 개입이 필요한 장애라기보다는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여겨져 왔다. 이를 두고 한국장애인개발원 송승연 부연구위원은
“일단 치료를 받고 건강해지면 그다음에 학교와 회사에 나가라는 식”이라고 설명한다. 장애가 신체와 정신의 손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이라고 보는 의료모델에 따른 처방이다. 의료모델은 치료 또는 재활을 통해 손상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휠체어를 사용하는 지체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은 척추 손상 때문이므로 재활치료를 통해 다리의 기능을 ‘정상’으로 돌려놔야 한다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정신장애는 신경계의 이상 때문이므로 약물 치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과연 그럴까? 약물과 상담, 입원 등의 치료는 당장의 증상을 다소 완화할 수는 있다. 또 문제의 원인을 신체와 정신의 손상에 돌리면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는 자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치료가 도움이 됐다고 인정하면서도 치료 과정에서 마주한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올해 초 노을 씨는 기존에 먹던 항우울제 외에 ADHD 약을 추가로 처방받았는데, ADHD 약을 먹으면 우울 증상이 심해지는 부작용 탓에 한동안 약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민재 씨 또한 수년간 여러 병원을 거친 다음에야 겨우 자신에게 맞는 약을 찾을 수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치료 과정에서 당사자가 결정권을 잃는다는 데 있다. 정신장애인들은 자신이 복용하는 약이 무엇인지,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의사의 처방에 일방적으로 따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강제 입원과 같은 폭력적인 치료가 용인되기도 한다. 2016년 정신보건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가족 2인과 의사 1인의 결정만으로 당사자의 동의 없는 강제 입원이 가능했다. 2022년에는 정신병동에 입원한 정신장애인이 66시간째 침대에 묶여 있다가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정신병동에서 발생하는 신체적·정신적 학대는 퇴원 후에도 당사자를 괴롭히는 트라우마로 남는다.
의료모델에서 정신장애인은 치료와 통제의 대상일 수는 있어도 삶을 결정하는 주체가 되지는 못한다. 송승연 부연구위원은 “당사자가 겪는 어려움 중 치료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교육이나 일자리, 인간관계 등 생활에 관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건강해진 다음 일상으로 돌아오라는 말은 당장 학교와 일터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정신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 정신장애가 있어도 교육과 노동에 제약 없이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이유다.

문제의 초점을 정신장애인 개인이 아닌 사회로 돌린다면 어떨까. 장애 운동은 의료모델에 대한 대안으로 ‘장애의 사회적 모델’을 제안한다. 장애의 사회적 모델은 손상을 가진 개인이 아니라 사회참여를 가로막는 차별과 배제를 문제시하는 관점이다. 송승연 부연구위원은 “의료모델에서 장애는 부정적인 의미를 갖지만, 사회적 모델에서 장애는 곧 한 사람이 사회에 원활히 참여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고 설명한다. 휠체어를 쓰는 장애인이 계단을 오르지 못한다면, 장애인더러 두 발로 일어서라고 할 것이 아니라 계단 옆에 경사로를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 모델이 제시하는 해결책이다. 손상을 갖고 있더라도 일상에 제약이 없도록 사회적 장벽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모델에 따라 정신장애에 접근하면 새로운 시각이 열린다. 정신장애를 가진 개인이 장애를 숨기고 정상의 틀에 맞추려 애쓰는 대신, 사회가 정신장애인에 맞게 조정돼야 한다. 학교와 일터에서 정신장애인에게 필요한 ‘경사로’가 무엇일지는 개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가령 송승연 부연구위원은 “사회불안으로 발표를 두려워하는 학생이 있다면 발표 대신 영상 촬영으로 대체할 수 있다”며 당사자의 필요에 따른 개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친 우리가 바꾼다
정신장애인들은 당사자의 의사결정권을 부정하는 의료권력에 맞서 배우고 일하며 살아갈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정신건강복지법 일부개정안이 통과된 것은 정신장애 운동이 이뤄낸 소중한 성과다. 개정안은 불필요한 입원을 방지하고 지역사회 내 회복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전에는 정신장애인이 일시적인 위기에 처하는 경우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불가피했지만, 이제 지역사회 내에 있는 동료지원쉼터에 머물며 상담이나 휴식 등 회복에 필요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정신병원 입·퇴원 과정에서 정신장애인의 의사가 배제되지 않도록 치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의사 개진을 보조하는 절차조력인 제도도 마련됐다. 강제적 치료에 맞서 ‘자유가 치료’라 외치며 적극적인 행동에 나선 당사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변화였다.

정신장애인들은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차별과 낙인에도 도전하고 있다.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주도하는 ‘매드 프라이드(Mad Pride)’ 운동이 대표적인 예다.
‘미쳤다는 자긍심’으로 직역되는 매드 프라이드는 차별과 낙인의 대상이었던 광기와 정신병이 자신들의 정체성이자 자긍심이라고 선언한다. 매년 세계 곳곳에서 개최되는 매드 프라이드 행진에는 환청을 듣고 주의산만하고 변덕이 심한 온갖 미친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자신을 드러낸다. 지난 5월 서울에서도 세계 조현병의 날을 기념하는 매드 프라이드 행진이 개최됐다.
정신과의사로서 철학과 인류학을 연구한 모하메드 아부엘레일 라셰드는 저서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2023)에서 새롭게 부상한 정신장애 당사자 운동의 목표가 ‘당사자들의 정체성과 삶에 대한 존중과 가치를 복원하는 문화적·상징적 변혁’에 있다고 봤다. 정신장애를 인식하는 기존의 관점 자체를 완전히 뒤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관점에서 정신장애는 고치고 통제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고유한 가치를 갖는 문화이자 정체성이 된다. 예컨대 조현장애로 인한 환청은 고통을 주기도 하지만 새롭고 독특한 경험으로 재해석될 수도 있다.
정신장애라는 공통분모를 매개로 모인 당사자들은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를 지탱하며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바꿔가고 있다. 펭귄의날갯짓은 정신장애 및 고립·은둔 청년들이 마주하는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 위해 모인 단체다. 펭귄의날갯짓 광호 공동대표는 “증상이 있어도 살아가는 것, 자기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사회와 연결돼 있음을 느끼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라며 공동체를 찾는 정신장애인들이 병원 치료와는 다른 방식으로 ‘회복’되고 있다고 말한다. 하늘을 날 수는 없지만 바다를 힘차게 헤엄치는 펭귄의 날갯짓처럼, 정신장애 운동은 정신장애를 갖고도 자신답게 자립할 수 있는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배우고 일하며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를 요구하는 정신장애인들의 투쟁은 이 사회가 누구를 인간으로 인정하고 누구를 배제하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다. 그것은 인간됨을 부정당한 모든 존재들의 투쟁과 맞닿아 있다. 정신장애를 비인간화하는 권력은 여성의 분노를 히스테리라 명명하고 동성애를 치료하려 드는 권력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오랜 침묵을 뚫고 미친 우리의 괴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제 그 소리를 들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