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4일, 오후 7시부터 2시간가량 이태원 노노샵에서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축제 기획단·이태원을 기억하는 ‘호박랜턴’·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의 공동주최로 이태원 참사 2주기 간담회 ‘우리가 참사를 경험하는 방식’이 열렸다. 간담회는 이태원 참사 2주기 축제 ‘멈추지 않는 노래를 해’의 일환으로, 임기 중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한 장혜영 전 국회의원과 참사 생존자 이주현 씨, 용산 주민이자 호박랜턴에서 활동 중인 이상민 씨가 패널로 참가해 이태원 참사에 대한 기억을 공유했다.
‘고통과 피해로만 설명하기에 주현 씨의 경험은 훨씬 거대하다’와 ‘생존자로서만 주목하기에 주현 씨의 삶은 훨씬 거대하다’는 기획 노트의 문구처럼 참사 생존자는 이주현 씨를 설명하는 유일한 정체성이 될 수 없다. 주현 씨는 “얼마 되지 않는 생존자로서 공개된 자리에 나설 때 전형적인 피해자의 이미지가 부여되는 게 부담스러웠다”며, 생존자만은 아닌 그의 삶에 대해 말하겠다고 밝혔다. 장혜영 전 의원은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특별법)’ 제정과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출범으로 다 설명될 수 없는 한 명 한 명의 삶에 대해 얘기하고자” 행사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사회를 맡은 장 전 의원은 참사 전후로 각자의 삶과 이태원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얘기할 것을 제안했다.
2022년 10월 29일

주현 씨는 스스로를 “참사 이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이 하루하루 즐거운 일에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이자 “일생의 모든 이벤트를 챙기려는 사람”으로 소개했다. 그날 이태원에 간 것 역시 그 일환이었다. 스무 살부터 고등학교 친구들과 핼러윈 축제에 간 주현 씨는 그날도 친구들과 함께 분장한 후 이태원을 찾았다. 길을 걷는데 어느 순간 사람이 많아졌고, 고민하던 주현 씨와 친구들은 결국 귀가를 결정하고 역으로 내려가는 골목으로 향했다. 해밀톤 호텔 옆 골목이었다. 벽에 붙어 내려가던 주현 씨는 어느 순간 사람들 틈에 깔려 정신을 잃었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해밀톤 호텔 옆 골목에서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다. 당일 18시 34분부터 압사를 우려하는 11건의 신고가 이어졌음에도 소방 당국은 이를 최초 신고로부터 약 3시간 30분이 지난 다음에야 접수했으며, 출동 현장에서조차 제대로 된 통제 및 구조가 이뤄지지 않았다. 기절한 주현 씨는 누군가 얼굴에 뿌린 물을 맞고 정신을 차렸다. 그는 이후 정신을 잃지 않고 숨을 쉬려고 노력하다 구조됐다.
주현 씨가 생사를 오가던 그 시간, 당시 용산구에 살지 않던 상민 씨는 SNS를 통해 참사 소식을 접했다. 무엇이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알 수 없어서 상민 씨는 그 밤 내내 휴대폰을 붙들고 있었다. 그사이 주현 씨는 길가에 누운 채 행인들에게 동의한 적 없는 사진을 찍히고 구급차에 실려 중앙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참사가 아닌 인재(人災)입니다

장혜영 전 의원은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참사 당일 각종 SNS에 사고 현장과 희생자들의 모습을 모자이크 없이 담은 사진과 영상이 올라왔다. 무분별하게 유포된 이미지들은 생존자와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이를 통해 참사를 접한 이들에게 심리적 트라우마를 안겼다. 〈뉴스1〉의 보도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희생자인 그레이스 래치드 씨의 친구인 네이선 타베르니티 씨는 ‘친구가 죽어가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촬영하고 노래하며 웃는 모습을 봤다’며 오열했다.
미스라벨링(mislabeling) 역시 통제되지 않은 현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구급대원은 주현 씨의 심장이 멎은 줄 알고 제세동기 스티커를 붙였으나 한 여성이 주현 씨가 살아있단 걸 알고 해당 스티커를 떼어냈다. 주현 씨는 “난 살아있어서 이거(제세동기) 하면 큰일 날 것 같은데 말할 기운도 없었다”고 밝혔다.
참사 이후 지원을 위해 요구된 과도한 행정절차는 참사 피해자 스스로가 이를 포기하는 상황으로 몰아넣기까지 했다. 2023년 4월, 정부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정한 지원 기간인 6개월이 끝났다며 추가 치료를 원할 경우 참사와 부상 간 인과성을 밝힌 의사소견서 제출을 요구했다. 그러나 신청 마감 기간까지 약 2주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이를 통보했으며, 주현 씨는 구출 후 몇 달간 휠체어 생활을 할 정도로 큰 부상을 당했음에도 부상과 참사 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며 소견서 발급을 여러 차례 거부당했다.
생존자들이 처한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여러 논의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지 못한 채 전개됐다. 분향소의 위치나 생존자 간 만남에 대해 있던 논쟁에 대해 장혜영 전 의원이 질문하자, 주현 씨는 “그런 논의가 당사자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장 전 의원은 “사건 당시 현장에서의 조치만큼이나 중요한 건 이후 사회에서 어떻게 참사를 다루느냐”인데,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움직이다 보니 정작 고통받는 이들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는 점을 비판했다. 특히 “정부의 책임을 최소화하는 정치적 말하기 과정”이 당사자들의 의견을 존중하지 못했음을 꼬집었다.
지인을 비롯해 참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함부로 말하는 것 또한 상처가 됐다. 주현 씨는 “마약 하러 간 거냐, 왜 놀러 갔냐” 식의 말에 황당했다며, 이와 같은 반응이 무지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해 현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리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상민 씨는 SNS상에서 일어난 2차 가해에 대해 “사건이 발생했을 때만 빠르게 반응하고 이 문제를 끝까지 보지 않으려 한다고 느꼈다”고 고백했다. 이에 주현 씨 역시 “너무 큰 사건이다 보니 빨리 누군가를 비난하고 책임을 묻기 급급했고,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며 타자화하고 그로부터 유리되려는 마음”이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이에 장혜영 전 의원은 “사회적 참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 구성원은 없는데 각종 음모론이나 유언비어 확장이 이야기의 본질에 가닿는데 어려움을 만든 것” 같다며 우려했다. 동시에 이 역시 참사를 둘러싼 이야기의 파편으로 들어야 할 부분인 것 같다며 이것이 결국 참사 이후 무엇을 어떻게 들을지에 대한 고민과 이어진다고 말했다.
특별법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기

지난 5월, 국회 본회의에서 특별법이 통과됐다. 곧 있으면 이태원 참사 2주기가 된다. 다가올 2주기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주현 씨는 “1주기 때보다 덜 혼란스럽기도 하고 각자가 가진 의문을 공유하며 내 말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고 답했다. 참사 직후 특별법 제정이 중심이던 상황에선 모든 시간과 자원이 법 제정으로 흘러갔다. 그렇기에 주현 씨는 법과 자신의 삶 사이의 연결고리를 충분히 따져보지 못한 채 특별법 제정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기 바빴다. 특별법이 통과된 지금에야 주현 씨는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여러 질문을 입 밖으로 낼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장혜영 전 의원 역시 국회에서 적응하기 힘들었던 점 중 하나로 “제도 투쟁을 제외한 나머지 맥락이 사라진다는 느낌”을 들며, “투쟁을 이어나가는 수많은 이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중요한데 (법 제정만큼) 그것이 가치 있게 평가되거나 주목받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아쉬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특별법이 통과되고 특조위가 출범했다고 이태원 참사가 끝난 건 아니다. 모두가 참사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참사 이후를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갈 것인지, 끊임없이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장혜영 전 의원은 “특조위에 들어간 몇몇에 외주 주는 것이 아닌, 우리가 이후의 시간에서 어떤 경험을 겪고 이것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계속 얘기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장혜영 전 의원은 입법 과정에서의 아쉬움 또한 말했다. 장 전 의원은 특별법 제정이 아닌 보편적인 법안을 만들어 예측하지 못한 재난이 곳곳에서 발생하는 복합위기 시대에 대응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안타까운 참사가 발생하면 바로 조사위원회를 꾸릴 수 있도록 하는 게 초기 목표였던 것이다.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생존자나 유가족이 매번 투쟁해 특별법을 만드는 게 아니라 다른 대응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장 전 의원의 말처럼, 특별법이 참사 이후 지난한 투쟁을 통해 쟁취되는 대상이 아닌, 당연한 권리로서 생존자와 유가족들의 삶을 지탱하는 역할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모두의 참사, 각자의 이야기
상민 씨는 “많은 이들이 자기 서사로서 이태원 참사를 다뤘으면” 하는 소망을 밝혔다. 각자의 위치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경험했을 참사의 이야기가 그의 입을 통해서만 나올 수 있기에 모두가 생존자로서의 정체성을 공유해 다양한 상상을 하자는 얘기다. 주현 씨는 생존자들이 나서기 힘든 이유에 대해 “죄책감이나 트라우마가 있는 걸 당연시하듯이 피해자 정체성을 씌운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러한 프레임 씌우기는 생존자 스스로가 피해자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지 의심하고 재단하게 만든다.
‘순수한’ 피해자상을 전면으로 내세워야만 성립되는 ‘이태원스러움’에 대한 고민 역시 나왔다. 예컨대 마약을 둘러싼 논란이나 참사 직후 다른 장소로 놀러 간 이들을 이태원이라는 장소에서 아예 소거하고, ‘선량한 피해자’의 서사에만 주목해 이태원 참사를 논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대다수 사람들이 ‘애도 받을 자격이 있는’ 피해자상을 만들고, 그에서 벗어나는 희생자와 참사 생존자들을 비난하고 혐오하는 것으로 이어지기에 문제가 있다. 상민 씨는 지난해 기록단 활동을 할 때 같은 고민을 했다며, 이태원을 마냥 낭만화하고 현장에 있던 이들을 건실하게만 묘사하며 희생자의 도덕적 올바름 내지는 무고한 희생을 계속해서 증명의 영역에 두려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상민 씨는 “무언가 이해한다는 건 결국 맥락을 쌓는 일인데, 맥락을 쌓을수록 진입장벽이 높아”지는 점에서 참사에 관한 이야기를 중층적으로 구성하는 과정이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최대한 많은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현 씨 역시 각자 어떤 이야기를 가질지 모르니 많은 이가 마이크를 잡길 바라는 동시에, 지금 마이크를 잡지 못하는 이들이 왜 그럴지 함께 고민하길 요청했다. 또한 자신의 이야기가 결코 생존자 전체의 얘기를 대변할 수 없음을 강조하며, 계속 이태원과 핼러윈을 매개로 더 많은 이들과 연결되길 소망했다.
2024년 10월 29일은 이태원 참사 2주기다. 159개의 별이 더는 길을 잃지 않도록, 진실이 밝혀지고 잘못한 이가 합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그리하여 또다시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