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서울이 저의 도피처이자 정착지가 되길 바랐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방황할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을 정말 오래 바라왔고, 그런 시간을 지나올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함께 꿈꿔왔습니다. 대입은 그런 저의 꿈을 이뤄줄 수 있는 좋은 명분이 돼줬는데, 그랬기 때문에 저의 암묵적인 도피처는 언제나 서울로 상정됐습니다.

  그러나 서울이란 공간에서도 도망가고 싶어지는 순간은 금세 찾아왔습니다. 그건 공간의 문제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제 마음가짐의 문제였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그럼에도 절망적이었습니다. 제가 갖고 있던 단 두 가지 선택지인 고향과 서울 모두 오답이었단 걸 확인해 버리고 만 기분이었습니다. 싸웠던 친구를 만나기 위해, 일 년에 한 번뿐인 영화제를 가기 위해, 눈 덮인 도서관을 찾아가기 위해 전국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지 않았더라면 제게 주어진 선택지가 그보다 훨씬 많을 수 있다는 걸 영영 몰랐을지도 모릅니다.

  전 더 많은 탈출구를 꿈꾸고 싶습니다. 평생을 살면서 앞으로도 몇 번이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을 마주할 수 있고, 그럴 때면 낯선 도피처를 갈망할 거란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순간이 찾아올 때,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도망칠 수 있는 공간을 마구 상상할 수 있길 바랍니다. 저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는 모두 역시 그러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런 마음으로 187호 커버를 고민하고 구상하고 적었습니다.

  커버를 쓰기 전, 정원 기자, 한결 기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각자가 가진 삶의 궤적에 따라, 각자가 살았던 공간의 모습에 따라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없는 말이 무척 달랐던 기억이 납니다. 지방, 지역, 비서울권, 비수도권 등의 단어들이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의 영역이 너무 달라서, 한두 가지로 묶을 수 없는 청년들의 마음을 멋대로 대변하는 것이 막막해서, 다양한 지역의 모습을 뭉뚱그릴까 겁이 나서 떠들었던 시간들 역시도 기억납니다.

  그 시간들의 끝에서 우리는, 최소한 무엇을 놓치면 안 되는가에 대해 오래 대화했습니다. 그럼에도 빠진 목소리는 너무 많겠죠. 소중한 동료 기자들이 같이 커버를 이끌어줬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전 어김없이 부족한 글을 내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마음은 부족한 말 속에서도 충분히 전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전달받길 바랍니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Previous Post

서울대 셔틀버스 외주화 8년, 셔틀버스의 현주소를 짚다

Next Post

187호의 미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