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0일, 한강 작가가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문학이 이렇게 모두의 입에 오르내린 적이 있던가. 작가 개인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뜨거웠던 적이 있던가. 각자의 이유에서 한 작가의 수상 소식은 우리를 설레게, 두근거리게, 무엇보다 놀라게 만들었다.
한강 작가를 호명하는 큰 목소리들은 작가를 익숙하고도 멀게 만든다. 그러니 작은 마음에서부터 다시 마주해보자. 〈서울대저널〉은 특집 미련(美練)을 통해 네 기자들이 읽어본 한강의 여덟 작품을 소개한다. 이미 시끄러운 잔치판에 목소리를 하나 더 얹는 게 아닐까 걱정하면서. 그러나 혹여 우리의 작은 마음에 동한다면, 부디 동참해 주기를 바라면서.
『여수의 사랑』
한강, 문학과지성사, 1995.
홍인표 기자(han0727@snu.ac.kr)

『여수의 사랑』은 한강 작가의 등단작 「붉은 닻」을 포함해, 1993년 10월부터 1994년 10월까지 1년 동안 집필한 소설을 묶은 초기작이다. 소설가로서 첫 발걸음을 뗄 무렵의 수록작들이지만, 한강은 이때부터 후속작들에서도 꾸준히 어루만질 주제들을 등허리에 한 아름 걸머지고 있다. 고통을 남모르게 기억 속에 묻어두고 삶의 한복판을 헤엄치던 주인공들은, 한편에 버려뒀던 그 모든 괴로움을 일깨우는 다른 존재와 만난다. 그런 타인이 너무 괴로워 그를 밀쳐내기도 하지만, 결국 한사코 고개를 돌렸던 자신과 타인에게 예외 없이 무너지듯 몸을 돌린다.
한강은 노을을 지그시 바라본다. 예외 없이 내리는 붉은 닻 같은 낙조(落照) 아래로, 해안 모래밭에는 쇠 닻들이 ‘잔뜩 녹이 슨 채 두 조각으로 분해된’ 채로 처박혀 있고, 이들은 ‘비스듬히 서로에게 기대어 지탱되고 있었다.’ 정박하는 것은 늘 밤의 징조와 고통뿐. 그 한가운데 어디로도 정박하지 못하고 끝없이 흔들릴 누군가가 닻 내릴 곳 없이 버려질 때, 매한가지로 버려진 것이 떠내려와 그를 부둥켜안을 것이다.
『검은 사슴』
한강, 문학동네, 1998.
홍인표 기자(han0727@snu.ac.kr)

단 한 사람을 찾아 나선 여정이었다. 홀연히 사라진 ‘의선’을 찾기 위해, 잡지사 기자인 ‘인영’과 그의 후배 ‘명윤’은 강원도의 옛 탄광 도시였던 ‘황곡’과 ‘월천’을 맴돈다. 의선은 월천의 화전민 마을 ‘연골’ 출신이었다. 연골.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띄운 연들이 마지막으로 추락하는 곳. 의선 역시 인영과 명윤의 삶에 연처럼 불시착해, 그들 각자가 삶 속에서 서서히 쌓아왔던 그늘의 심도를 펼쳐내도록 만든다.
검은 사슴. 갱도의 광부들처럼, 지하의 좁은 균열 사이에서 살아가는 짐승들이 있다. 평생 각자의 틈에 갇혀 제 종족이 있는 줄도 모르는 외톨이들. 이 짐승들은 평생 햇빛을 보길 갈망해서, 안내해 주겠다는 속임수에 제 뿔도 이빨도 바친다. 그러나 마침내 빛을 본다 해도, 검은 사슴은 그 강렬한 빛에 녹아내리고야 만다. 이 소설은 검은 사슴이 빛을 뒤쫓는 여정을, 또다시 뒤쫓는다. 탄광의 어둠에 직접 들어가 광부들의 빛을 카메라에 담았던 소설 속 ‘장’처럼. 이 여정의 끝, 빛을 만난 검은 사슴은 햇빛에 사라질지 모르지만, 그들이 녹아내린 자리에는 붉은애기풀이 필 것이다. 품어둔 고통에 끝내 미쳐버린 이들을 달래는 한 줄기의 약초가.
『채식주의자』
한강, 창비, 2007.
이다빈 기자(qlsekdl11@snu.ac.kr)

『채식주의자』는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된 ‘영혜’를 바라보는 세 인물, 그 각각의 시선 속에서의 영혜를 그린 작품들을 엮은 연작소설집이다. 어느 날부터 영혜는 온몸이 지워지지 않는 피로 뒤덮인 꿈을 꾸지만 ‘죽인 사람이 난지, 아니면 살해된 쪽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이 끔찍한 꿈의 연쇄 속에서 영혜는 채식을 시작하게 되고, 그의 채식은 주변인들의 삶에 숨겨진 갖가지 피 웅덩이를 펌프질하는 마중물이 된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세 소설을 집필하는 동안 한강 작가는 너무 아파 컴퓨터 대신 손으로 원고를 썼다. 그마저도 어려워졌을 땐 2년 가까이 ‘자포자기의 시간’을 보냈다. 그 아픔은 고스란히 그의 소설이 됐다. 극복도 완결도 없는 만연한 폭력의 세상 속에서, 결백할 수 없는 인간 존재에게 죽지 말고 살란 요청은 결코 따듯할 수 없다. 그럼에도 한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무서울 만큼 서늘한 생명의 말’을 건넨다. 주고받은 고통을 소멸 없이 안은 채로 소설을 쓰면서, ‘그녀는 계속해서 살아갔다’.
『바람이 분다, 가라』
한강, 문학과지성사, 2010.
천세민 기자(chunsemin011@snu.ac.kr)

『바람이 분다, 가라』는 2010년 출간된 한강 작가의 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폭설이 내리던 날 미시령 고개에서, 누구보다 삶을 사랑하던 친구 ‘인주’가 죽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의문의 남자 ‘강석원’은 인주의 죽음을 자살로 결론지은 채 평전을 쓰겠다고 한다. ‘정희’는 인주의 죽음이 자살이 아님을 밝히고자 그날의 진실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인주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 공방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자꾸만 뻗어나간다. 거짓과 참, 삶과 죽음, 이해와 모멸, 이 모든 것이 얽히고설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인물들의 걸음걸음마다 묻어 나온다.
이런 이야기를 넌 이해하지 못하지. 나약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강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 본연의 나약함을 마주한다. 인간이란 얼마나 약하고 위태로운 존재인지.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문을 두드리는 이의 심정을 헤아려야 하는 이유는, ‘서로의 존재감마저 견딜 수 없어 했던 때’에도 우리가 서로를 살릴 수밖에 없던 이유는.
그러니까, 생명이 우리한테 있었던 게 예외적인 일, 드문 기적이었던 거지.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강, 문학과지성사, 2013.
천세민 기자(chunsemin011@snu.ac.kr)

1993년 시인으로 등단한 한강 작가의 첫 시집이자 유일한 시집이다. 이듬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기 전, 한 작가는 다섯 편의 시를 발표한 시인이었다. 그의 소설이 고통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나아감을 말한다면, 시 속엔 부서지고 찢겨 끝내 피 흘리는 영혼들의 비명이 난무한다.
‘나쁜 꿈에서 깨어나면 또 한 겹 나쁜 꿈이 기다리던 시절(「겨울 저편의 겨울 2」)’에, 인생엔 어떤 의미도 없다며 죽음과 마주 서 인사하는 이의 몸은 물항아리가 돼 눈물만을 기다리며 출렁거리고. 고통에 찬 말들이 기어이 그를 따라갈 때면 시인의 귀는 고요히 열린다.
알 수 없음과 알고 싶음 사이에서 휘청이다 끝내 피를 뚝뚝 흘리며 걸어가는 영혼이 여기 있다. ‘사는 일이 거대한 장례식일 뿐이라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회상」)’며, 어떤 모양인지도 모르는 빛을 던지고, 신을 믿지 않으면서도 살려달란 말만은 가슴에 지고 사는 부서진 영혼. 끝내 삼켜지지도 파괴되지도 않을 이 나약한 영혼이 부르는 길고 긴 노랫말 속에서 비로소 죽음은 잠에 든다.
『소년이 온다』
한강, 창작과비평사, 2014.
손원민 기자(dnjsals1203@snu.ac.kr)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할 수 있으면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용기를 보일 수도 있는 그런 인간은 무엇이냐 물으며 당신은 1980년 5월의 광주를 마주한다. 당신은 『소년이 온다』의 각 장에서 5·18민주화운동을 통과하고, 또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돌려준다.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아있었던 16살 소년 동호가 소설 한가운데 있다. 그리고 먼저 죽은 동호의 친구 정대가, 동호와 함께 일하던 은숙과 진수, 선주가, 동호의 죽음을 생각하는 어머니가 있다.
우리를 희생자라고 부르도록 놔둬선 안 돼.
당신의 글에서는 한 명의 희생자가 아닌 한 명의 소년이 걸어나온다. 그 사람들이 걸어나온다. 이 글을 쓰기까지 당신이 마주했을 고통을 생각한다. 당신이 만났을 수많은 이야기를 생각한다. 이 글을 끝까지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그 마주침을 생각한다. 매일 울며 글을 썼다는 당신의 마음을 생각한다. 계속해서 새롭게 슬퍼해야 한다고 말하는 당신의 글을 우리는 오래도록 읽을 것이다.
『흰』
한강, 문학동네, 2016.
이다빈 기자(qlsekdl11@snu.ac.kr)

무엇이 흰가. 무엇을 희다고 할 수 있는가. 색의 삼원색을 모두 덜어냈을 때, 혹은 빛의 삼원색을 모두 합쳤을 때 비로소 나타나는 흰색은 모든 의미와 마음과 연결될 수 있다. 더럽게·깨끗하게·지독하게·순수하게·따스하게·차갑게 혹은 그 어떤 방식으로도.
『흰』은 한강 작가가 2014년 바르샤바에 체류하던 시기와 맞물려 집필된 자전적 소설이다. 바르샤바는 1944년 독일의 공습으로 모든 게 무너져 내려 한 번 백색의 폐허가 된 적이 있는 도시로, 이곳에서 ‘나’는 조산으로 태어난 지 2시간 만에 죽어야 했던 언니를 끊임없이 떠올린다. 배내옷도 수의도 동일한 색으로 직조되는 세상에서, ‘솜사탕처럼 깨끗하기만 한’ ‘하얀’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함께 배어 있’는 ‘흰’을 통해 산 ‘나’는 죽은 언니와 맞닿고 세상의 약하고 단단한 것들을 마주한다.
한강 작가의 흰을 더듬을 수 있도록, 부디 이 책만큼은 흰 종이의 질감을 쓰다듬으며 읽기를 권한다. ‘흰 가제 수건으로 그녀의 옷을 짓고, 그녀에게 쓴 말들을 흰 깃털들로’ 덮는 한 작가의 퍼포먼스를 담은 짙은 흰색의 사진들이 현재는 전자책이 아닌 종이책에만 실려있다.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문학동네, 2021.
이다빈 기자(qlsekdl11@snu.ac.kr)

처음부터 다시 써. 진짜 작별인사를, 제대로.
한 국가폭력을 마주하는 글을 쓴 뒤로 ‘악몽과 생시가 불분명하게 뒤섞인 시기’를 보내던 ‘경하’는 어느 시점에서부터 검은 나무들에 대한 꿈을 꾼다. 그는 죽음이 너무 가까워 삶을 사적인 작별 인사를 적는 시간으로 할애하지만, 목공 사고로 갑작스레 서울에 온 친구 ‘인선’의 요청에 따라 인선의 집이 있는 제주로 향한다. 자신의 꿈이, 그러니까 매일 밤 검은 나무들이 보여주던 죽음이, 파도에 휩쓸리는 모래성과도 같이 위태롭던 봉분들이 그곳에서 기인하고 있었음을 꿈에도 알지 못한 채.
『작별하지 않는다』는 오늘의 한강 작가와 가장 가까이 위치한 장편소설이다. 그러나 아직도 살고, 아직도 글을 쓰는 한 작가에겐 이 소설이 ‘정말 마지막 인사일 순 없다’. 죽음과 삶, 꿈과 직면, 폭력과 고통, 소복이 흰 것들과 미어지는 사랑은 이 소설에서도 여전히 이어진다. 절단난 손가락의 신경이 죽지 않도록 3분에 한 번씩 환부를 찔리는 인선처럼, 살아있음의 감각을 환기하기 위해 여전히 한 작가는 고통에 소스라치는 글을 쓴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말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한 작가는 그것과 쉬이 작별하지 않는다, 아마도 앞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