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 이미현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는 유가족과 함께 참사의 진상과 책임 규명을 위해 활동합니다.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해 행동하겠습니다. 시민들과 함께 희생자를 기억하고 애도하겠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발생 2년이 되도록 진상규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유가족들이 그렇게 궁금해하던 참사의 원인에 대한 의혹과 질문들도 해소된 것이 없다. 물론 진전이 없는 것은 아니다. 1년 전만 해도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특별법)’은 국회에 발이 묶여 본회의 통과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지난 1월 여야 합의가 불발된 가운데, 유가족들이 추운 겨울 오체투지와 삭발, 1만 5,900배를 이어갔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끝내 거부권을 행사했다. 유가족들의 염원을 내팽개쳐 버린 것이다. 다행히 야당의 압승으로 4월 총선이 끝나고 극적인 여야 합의가 이뤄졌고, 재발의된 특별법이 하루 만에 국회를 통과해 지난 5월 21일 최종 공포됐다. 참사가 발생한 지 1년 7개월 만이었다.
특별법 통과, 그 후
특별법이 공포되고도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4개월 만인 지난 9월 13일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조사위원회(특별조사위)’ 위원들이 임명됐다. 여야 그리고 국회의장이 특별조사위 위원 후보 9인을 순탄하게 추천했고, 공직 적격 심사도 진작 마무리됐는데도 대통령실은 위원 임명에 늑장을 부렸다. 유가족들이 조속한 임명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추석 연휴 이후 다시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호소를 대통령실에 전달한 이후에야 특별법 공포 4개월 만에 임명이 이뤄졌다. 진상규명 과정을 첫 단추부터 지연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고서야 납득하기 어려운 과정이었다.
2주기를 앞두고 특별조사위가 드디어 첫발을 뗐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지만, 실제 조사에 착수하기까지는 앞으로도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시행령과 예산 등의 고비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경우 세월호 특별법이 시행된 2015년 1월 1일부터 5월 11일 시행령 공포, 8월 4일 예산안 국무회의 통과와 같이 실제 특조위 조사 활동이 준비되기까지 8개월이 소요됐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를 위해 만들어진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역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사참위법)’ 시행일이었던 지난 2017년 12월 12일로부터 2018년 7월 24일 시행령이 공포되기까지 8개월이 걸렸다. 이처럼 법이 통과되고도 실제 조사가 시작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은 유가족과 시민사회의 우려를 낳았다. 벌써 2년이나 지연된 진상조사가 한없이 늦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참사의 책임자들에 대한 1심 선고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30일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용산구청과 용산경찰서 책임자들에 대한 1심 선고가 있었다. 이 전 서장과 송병주 전 용산경찰서 112상황실장은 핼러윈 기간에 경찰 인력을 더 투입해야 한다는 보고에도 사전 예방을 하지 않았고, 참사 이후에도 적절한 구호 조치를 취하지 않아 인명피해를 키웠음에도 무죄를 주장해 왔다. 또한 박 구청장 등 용산구청 피고인들은 이태원 핼러윈 데이가 주최자 없는 행사인 관계로 자신들에게 안전관리 책임이라는 주의 의무가 없다고 주장해 왔다. 재판부는 끝내 당시 용산구청 책임자들에게 전원 무죄를 선고했는데, 참사 당일 이들의 무능한 행정과 무책임한 조치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재판부의 판결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판결 직후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운영위원장은 검찰이 죄를 입증하는 데에 실패했고 재판부 역시 국민 생명 안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협소하게 판단했다고 비판하며 특별조사위의 진상조사가 왜 필요한지 다시 한번 일깨워준 것이라고 재차 언급했다. 진작에 철저한 진상조사가 이뤄졌더라면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이 자신들에게 부여된 책임을 어떻게 외면했고 방기했는지 드러나 제대로 된 처벌이 나올 수 있었을 거라는 뜻이다.
아직 시행령을 준비하는 단계에 있어 본격 조사를 개시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10월 2일 유가족들은 특별조사위에 진상조사 1호 진정을 제출했다. 해당 진상조사 신청서에서 유가족들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의혹과 질문을 9가지로 정리해 진상규명 과제를 제출했다.
▲희생자들이 그날 어떤 과정을 거쳐서 가족들에게 돌아오게 된 것인지? ▲각 정부 기관이 2022년 핼러윈 데이 인파 밀집에 대해 어떤 예견을 하고, 어떤 대책을 세웠는지?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은 이태원 참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기 전날과 당일에 위험 신고를 어떻게 전파하고 대응했는지? ▲이태원 참사 당일 경찰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이태원 참사 당일 구급활동은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참사 당일 현장에 배치된 각 기관은 무엇을 했는지?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의 권리는 어떻게 침해됐는지? 이러한 질문들을 특별조사위에 제출함으로써 진상규명의 첫걸음을 이제 막 뗐다.
우리가 해야 할 일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등 사회적 참사가 발생하고 그 어렵다는 진상규명 과정이 반복될수록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것은 진실을 밝힐 때까지 함께하겠다는 시민들의 연대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다. 참사가 왜 발생했는지 명백히 밝혀내자고 외치는 시민들의 요구와 행동은 많은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데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태원 참사처럼 많은 생존자들이 존재함에도 목소리 내는 것조차 너무나 조심스러운 사례에서는 피해자들과 함께하겠다는 시민들의 지지와 응원이 중요하다.
참사 2년이 됐지만 사건의 목격자이기도 한 생존자와 구조자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드러난 적이 없다. 정부 공식 부상자 통계에 따르면 내국인 284명, 외국인 53명, 총 337명이 10·29 이태원 참사로 부상을 당했지만, 이 중 언론 인터뷰를 하고 목소리를 낸 적 있는 생존자는 많아 봐야 열 명 안팎이다. 당시 혼란한 상황에서 통계에 집계되지 않은 사람들까지 다수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사의 기억을 가지고도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참사 초기부터 마약의 연루 가능성을 제기하거나 생존자를 가해자 취급하는 언론 보도 등이 이어지면서 생존자들이 자신을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특별조사위가 시작되고 이제 다 끝난 것 아니냐는 반응들이 종종 들려온다. 특별법이 통과됐고, 분향소도 정리했으니 다 해결된 줄 알았다는 식이다. 뉴스에도 잘 나오지 않아 다 끝났으려니 짐작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서울시청 앞에 설치됐던 분향소를 정리하고 기억소통공간 ‘별들의 집’으로 분향소를 옮겨간 지 4개월이 되면서 자연스레 뒤따르던 반응이다. 기억소통공간으로 분향소를 이전하기로 한 것은 특별조사위 설립과 이후 진상조사 과정에 집중하겠다는 취지로 유가족들이 내린 결정이었다. 그럼에도 발걸음하는 시민들의 수가 준 것에 이태원 참사가 잊히는 것은 아닌지, 진상조사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멀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진상규명은 아직 시작도 못 했고, 유가족들과 피해자들은 다시 출발점에 서 있다. 앞서 진상규명의 길을 걸었던 다른 재난 참사 유가족들은 특별조사위 조사 과정이야말로 또 다른 싸움의 시작이라고 이야기한다. 특별조사위가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하기 위해서 필요한 시행령과 예산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부터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진상조사를 방해하는 정부 기관과 공직자들의 비협조적 태도에 맞서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이끌어내는 일이야말로 본격적인 싸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길고 험한 싸움을 버텨내기 위해서는 여전히 시민들의 힘이 필요하다.
이태원 참사 2주기의 슬로건은 ‘진실을 향한 걸음’, ‘함께 하겠다는 약속’이다. 앞으로 펼쳐질 길고도 험한 진상규명의 길에 함께 하겠다는 다짐을 모으는 계기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재난피해자들의 정당한 요구가 실현되도록 시민들이 나서서 함께 목소리에 힘을 싣고 발걸음을 같이해달라는 취지를 담았다.
최근 은평 지역의 한 시민모임에 유가족과 함께 초대돼 2주기를 즈음해 어떤 과제들이 남아있는지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한 참가자는 자신이 생존자도 목격자도 아니지만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참사 당일 희생자들이 사투를 벌이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이태원 참사 이야기만 하면 여전히 눈물을 멈추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 참사를 기억하고 계속해서 진상규명 과정에도 관심을 가지겠다는 다짐을 나눴다.
이미 지난 2년간 10·29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겠다고 약속하고 함께 행동하겠다고 다짐했던 시민들이 보여준 연대의 힘을 몸소 체감해 왔다. 이분들 덕에 참사를 둘러싼 폄훼와 부정,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도 지금까지 유가족들과 생존자들이 버텨올 수 있었다. 참사가 반복되는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고, 우리는 이제 생명과 존엄의 사회로 가야 한다고 믿는 수많은 시민들이 있기에 앞으로의 진상규명 과정도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2주기, 나아가 그 이후의 지난한 진상규명과 책임규명 과정에도 시민들의 약속과 연대의 힘을 기대한다.
“기억하겠습니다,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