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정민 (사회 21)
연극을 합니다. 예술을 좋아하지만 교양은 없습니다.
작년 겨울에 대학로에서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라는 이탈리아 희곡을 연극으로 공연했다. 배우들은 모두 한국 국적이었지만, 이탈리아 이름을 갖고 이탈리아식 감탄사를 구사하는 이탈리아인을 연기했다. 손 제스처를 많이 사용한다든지, “맘마미아!”를 연발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연극이 끝나고 난 후 필자는 자연스럽게 다음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을 연기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배우에게 한국어 이름을 지어주고, 한국어를 구사하는 연기를 시키면 될까? 질문의 층위를 바꿔보자면, 어떤 사람을 처음 봤을 때 그를 한국인이라고 식별할 수 있을까? 단순히 한국에서 발견되면 한국인일까? 혹은 부모님의 국적이 한국인 것으로 충분할까?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할까? 그렇지만 이 질문들은 ‘한국인’을 연기하기 위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다른 국적의 사람이 한국 국적을 인정받기 위해 응시하는 시험에서 출제되는 문제들을 보면 무엇이 한국인으로 보이기 위한 조건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한국이민재단에서 시행하는 사회통합프로그램(KIIP)의 평가는 사전평가, 중간평가, 그리고 종합 평가의 3단계를 통해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와 한국어 활용 능력을 평가하고 있다. 이 시험을 통과하면 한국 국적을 부여받을 수 있기에, 응시자들은 한국인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지만 시험에 합격해 한국 문화에 대한 능통함이나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인정받더라도, 이들은 끊임없이 ‘한국인’임을 증명하기 위한 연극 무대에 올라가야 한다. 시험 결과에 따라 한국 국적이 부여되더라도, 충분히 한국인처럼 보이지 않는다면 언제고 시험대에 올려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진정한 한국인’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과연 저 (외국인처럼 보이는) 사람을 ‘진짜 한국인’이라 부를 수 있는지 여부를 지속해서 재고 따진다는 뜻이다.
이 ‘한국인’ 무대는 계속돼도 괜찮을까?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수는 날이 갈수록 늘어간다. 이들은 단지 국적을 취득할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우리’와 ‘그들’의 구분에서 ‘그들’ 내지는 ‘외국인들’이라고 부르는 집단의 크기가 상당히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평가하고, ‘그들’의 국가적 정체성을 지워내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무조건적으로 수행하도록 하는 것은 인간적인 존중의 차원에서도 문제가 되지만, 국가의 지속 차원에서도 재고해야 할 부분이 있다.
필자는 지난 5월 학과행사에 참여하며 충북 음성군 외국인지원센터에 방문했다. 여기서 지역의 많은 대학들은 이제 외국인이 없으면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유학 비자를 발급받은 후, 대학에 다니며 일을 하러 오는 사람이 상당히 많아 그들이 없어지면 곧바로 대학의 존폐를 논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 인구소멸 문제의 심각성과 함께, 지방 도시들이 이민자 유치에 실패할 경우 문자 그대로의 소멸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도 전해 들었다. 지방 소멸은 분명 고질적인 문제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 문제 또한 마주하고 있다. 중첩된 세 문제들은 갈수록 서로 얽히고설켜 각 문제의 악화를 초래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모색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민 정책이다. 정부는 2024년을 기점으로 이민청을 신설해 체계적인 이민 정책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이민자들을 단순히 인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보지 않고 지역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서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이 한국인인지 아닌지를 섣불리 가르거나, 그들이 머물러야 하는 지위를 정해놓은 채로 이민자들을 유치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 자체로도 존재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시험하지 않을수록 지방 소멸이라는 문제는 다른 돌파구를 찾아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한창 이민청 논의가 이뤄졌던 2024년도 초반과 달리, 지금은 이민청 설립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민자 수용과 정체성에 관한 문제들이 완전히 논의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듯하다. 그리고 지방 소멸의 원인을 겨누는 화살은 끊임없이 다른 과녁을 향한다. 이번에는 저출생으로, 이번에는 MZ세대로, 이번에는 과거의 정치인들로, 이번에는 외국인들로. 그렇지만 소멸 위험을 앞둔 지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민으로 인해 늘어나는 거주 인구는 소멸의 반대편으로 달려나갈 수 있는 마지막 동아줄일지도 모른다. 한국에 사는 모든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존중하며, 결국은 우리가 어떻게 같이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더 이상 ‘그들’을 ‘한국인’ 무대에 세우지 않고, 무대와 객석과 극장의 경계를 전부 허물고 우리 모두의 집 앞에서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 프로그램인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 출연한 에드워드 리의 비빔밥 요리가 큰 화제였다. 그는
‘인생을 요리하라’라는 미션에서 현대식 참치 캐비아 비빔밥을 자신의 인생 요리로 소개했다. 이 비빔밥은 포크와 칼로 잘라서 먹어야 하는 비빔밥으로, 일반적인 비빔밥의 모양새를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자른 단면에서 비빔밥이 속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이 요리를 소개할 때, “제 삶과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반영하죠”라고 설명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혼란스러운 이민 2세대로서의 인생을 ‘비빔 인간’이라고 칭한 것이 대중의 공감을 얻었다. 한편 비벼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 요리를 진정한 비빔밥이 아니라고 평가한 심사위원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진정한 정체성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정의하기 나름이라는 걸 다들 은연중에 깨달은 걸까. 누가 ‘진짜 비빔밥’인지 캐묻기 전에, 어떻게 우리 모두 같이 비빔밥을 비벼 먹을 건지를 이야기하는 시대가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