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그냥 살아만 있어 주라

‘상-여자의 착지술’ 팀을 만나다
▲상여자의 착지술 팀. 왼쪽 위부터 반시계방향으로 김하람 심리치료사, 이선화 작가, 천샘 안무가, 마민지 감독, 탁수정 작가, 서경선 무용가 ©김수환 사진기자
▲상여자의 착지술 팀. 왼쪽 위부터 반시계방향으로 김하람 심리치료사, 이선화 작가, 천샘 안무가, 마민지 감독, 탁수정 작가, 서경선 무용가 ©김수환 사진기자

  2018년 한국에서 미투(#MeToo) 운동이 시작됐다. 2016년 ‘#00계_내_성폭력’이란 해시태그를 타고 문화예술계 성폭력 고발이 봇물 터지듯 나왔다. 권력과 명성을 쥔 이들의 이름이 줄줄이 불렸다. 미술·무용·영화·출판·공연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나온 피해자에 불이 붙은 미투 운동은 사회 전역으로 확대됐다.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한국 사회의 여성 인권은 얼마나 진보했나. 2024년 5월, 서울대 딥페이크 성착취 사건이 알려졌다. 61명의 피해자와 2천여 개에 달하는 허위 영상물이 나왔다. 지난 8월엔 무려 22만여 명이 가담한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착취 사태가 드러났다. 이처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젠더폭력은 형태와 방식을 달리하며 계속 발생하고 있다. 누구를 믿어야 할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안전할지 도무지 모르겠다며, SNS에 올렸던 사진을 내리는 이들이 늘었다. 

  이 우울과 분노의 시대를 살아갈 방법을 찾고 싶었다. 먼저 살아본 이들의 지혜가 필요했다. ‘상-여자의 착지술(상여자)’ 팀은 예술계 성폭력 피해 생존자와 연대자들이 미투 이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과정에서 2020년에 만들어졌다. 가해자의 처벌만큼이나 중요한 건 언제나 피해자의 일상 회복이지만, 미투 이후 충분히 개선되지 못한 법과 제도는 피해자의 삶을 재건할 수 있는 든든한 토대가 돼주지 못했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선,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안전한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다. 

  ‘상여자’의 ‘착지술’이란 이름엔 생존자가 가진 자기 치유의 힘을 긍정하고, ‘그라운딩(grounding)’이란 트라우마 치료 기법을 통해 현실에 발을 디딜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가 담겨있다. 상여자 팀은 생존자와 연대자를 대상으로 한 치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지난 8월엔 『폭력 너머의 시선』 전시를 통해 워크숍과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무용 동작 심리치료사 김하람(김), 영화감독 마민지(마), 무용가 서경선(서), 미술 작가 이선화(이), 안무가 천샘(천), 작가 탁수정(탁)으로 구성된 상여자 팀 전원을 만나 외상 이후의 삶에 관해 물었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떻게 ‘그라운딩’이라는 트라우마 치료 기법과 예술을 엮을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김  생존자들은 트라우마 탓에 신경계의 변화를 수월히 조정하기 힘들다. 이를 신체적으로 안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움직임을 통한 접근을 모색했고, 그라운딩을 찾았다.

천  그라운딩은 땅으로 안착한다는 뜻이다. 생존자들의 시점은 현재가 아닌 과거에 묶인 경우가 많다. 이해할 수 없던 고통을 해석하는 과정이 끝나기 전엔 현재에 발을 붙이기 힘들다. 피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해야 할 때, 예술가 정체성을 가진 생존자들에게 예술은 그라운딩을 위한 강력한 수단이다. 적어도 내가 춤을 추고 움직이는 그 순간만큼은 현실로 돌아올 수 있다. 그래서 예술과 그라운딩을 잇고자 했다.

탁  모두 각자의 그라운딩이 있다. 나는 문단 내 성폭력 싸움을 끝낸 후 다시 앉아서 글을 쓰는 게 힘들었고, 깜빡이는 커서를 보는 게 두려웠다. 치료를 받는 지금도 가해자와 비슷한 목소리를 가진 남성을 보면 몸이 굳는다. 이런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무용하는 친구들은 신체를 움직이고, 미술하는 친구는 몸 지도를 그린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시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이 등과 등을 맞대는 등 움직임을 통해 몸의 경계를 다시 세우고 치유와 회복의 감각을 느끼는 걸 목표로 한다. 몸을 움직이는 행위가 어떻게 감각과 감정의 영역을 재조정할 수 있는가. 

▲『폭력 너머의 시선』 전시 포스터 ©상여자의 착지술

천  감각은 몸의 영역이다. 가해자의 체취에 트라우마가 있는 이가 특정한 냄새를 맡을 때 몸이 굳는 것처럼, 인지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즉 트라우마의 영역에서는 감각이 굉장히 빨리 작용한다. 이 자체를 조정하긴 힘들지만, 조금이라도 거리를 두고 편안히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건 가능하다. 안전한 공간에서 다시 한번 그 감각에 접근한다면, 우리는 그에 대해 해석할 힘을 얻을 수 있다.

  일례로 연습실 근처인 홍대에서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 프로그램 진행 당시 참가자 분께서 본인이 근처에서 안 좋은 경험을 겪었는데, 이 공간에 오니 이 지역 전체를 나쁘게만 기억하진 않게 됐다고 말씀하셨다. 트라우마를 유발한 트리거(trigger)가 온전한 감각이 되기 전에 예술을 통한 완충지대를 확보하는 거다.

▲김하람 심리치료사 ©김수환 사진기자

김  감정을 돌보는 거다. 프로그램 중 어떤 감각이 촉발될지 얼추 예상해 어떻게 안전망을 만들지 고민하는 과정을 거쳤다. 특정한 감각이 촉발됐을 때 다시 여유를 찾기까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트라우마가 생긴 최초의 사건에선 내가 판단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누군가의 위협을 받았기에, 이 상황을 뒤집어 안전한 공간과 사람 속에서 ‘너를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네가 그런 상황으로 힘들단 걸 알아. 나는 너와 같아.” 이 메시지를 수용할 수 있게 되면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순간의 힘듦을 버틸 힘이 생기는 거다. 그런 경험을 반복하면 발이 조금씩 땅에 닿는다.

모든 생존자의 삶이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그럼에도 치유와 회복을 외친다면, 이때 생존자들의 삶은 어디로 향할 수 있나.

▲탁수정 작가 ©김수환 사진기자

탁  외상 후 성장해야 한다는 건 자본주의 사회를 둘러싼 성장과 발전에 대한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외상이 있는 100명 중 성장까지 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냥 외상 후 생존만 해도 잘하는 거다. 외상 이후에 이전과 같은 일상으로의 ‘돌아감’은 없는 것 같다. 외상이 없는 나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외상을 가진 채 이후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회복이란 말보단 그라운딩이란 표현을 좋아한다.

  나는 다시 이전과 같은 상태가 될 수 없는데,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탐구해야 한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동안엔 나를 밖으로 꺼내주는 이들이 있었고, 나의 슬픔이나 아픔에 귀 기울여 결국 이것이 몸의 일이라는 걸 깨닫게 해 준 친구들이 있었다. 같이 활동하며 어떻게 착지할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얻었다.

김  트라우마를 인지적으로만 해결하긴 힘들기에, 자신의 감각을 조절할 수 있도록 몸의 움직임이나 신체적인 부분에 주안점을 둬 치유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했다.

생존자의 노동과 자립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상여자 팀이 작년에 발간한 『여자를 일으키는 여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에 생존자는 ‘리트머스지’이자 ‘실험쥐’로 참여했다. 이런 생존자 정체성을 갖고 노동에 참여하는 경험이 왜 필요한지, 이 정체성을 갖고 새롭게 뛰어든 창작의 영토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여자를 일으키는 여자들』(2023) ©상여자의 착지술 홈페이지

마  처음엔 생존자의 정체성을 갖고 영화를 기획 중이었다. 주위에 영화 내용 관련 자문을 구했는데, 생존자들이 다시 노동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문제가 크다는 걸 알게 됐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들에겐 원상태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다. 생존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한다면 규칙적으로 집 밖에 나올 계기도 제공하며 새로운 노동을 시작할 수 있다고 믿었다.

  처음엔 친구들이 주도하면 생존자 정체성을 가진 내가 손님으로 잠시 참여하는 느낌이었다. 초기엔 리트머스 종이처럼 프로그램에 대해 피드백을 제공하는 역할이었다면, 점차 의견을 내는 빈도를 늘리다 지난 8월엔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고 전시를 기획했다. 

  친구들 덕분에 한 사람이 피해에서 회복까지 오는 데 엄청난 자원이 필요하단 걸 여실히 느꼈다. 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님이나 심리상담 선생님, 병원비나 각종 치유 프로그램까지, 한 명이 일어서는 데 많은 시간과 금전 자원, 정서적 지원이 필요하다. 더 많은 이들이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프로그램을 제작 중이다.

신체주권, 신체영토, 감각영토, 감정영토와 같은 새로운 단어를 만들고 프로그램을 ‘몸을 되찾는 여정’으로 명명했다. 이 단어들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신체주권과 신체영토가 왜 중요한지 궁금하다. 

  내 몸을 영토로 볼 때 내가 스스로 몸에 대해 행할 수 있는 권력으로서의 의미로 주권을 썼다. 성폭력은 자율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내 몸에 대한 권리가 실제적·물리적으로 침해당한 경우다. ‘당신이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는 걸 명확히 말할 권리가 있다는 것. 이를 강조하고자 주권과 영토를 사용해 새로운 어휘를 만들었다. 

서  신체영토와 신체주권에 대해 꾸준히 공부했지만, 몸에 와닿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을 영토화·시각화한 점에서 혼란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언어를 통해 호소하고 싶은 간절함에 이 표현을 택했다.

상여자 팀은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 복합예술 프로그램을 만든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업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전문성이 어떻게 발휘되는지, 시너지가 나는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한 분야에 계속 종사했다면 몰랐을 것들을 알게 됐다. 다양한 직업을 옆에서 보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고민할 수 있었다.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살면서 영화를 찍거나 전시를 해볼 일이 있었을까. 

  각자 다른 분야다 보니 협업할 수 있는 게 재밌었다. 프로그램도 매회 다른 활동으로 구성해 참가자들이 복합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또 나는 영상을 오랫동안 만들다 보니 영상을 만드는 행위가 어떤 경험으로 다가올 수 있는지 몰랐다. 동료들의 피드백이 색다르게 느껴졌고 프로그램 개발에 큰 도움을 받았다. 

지역과 수도권의 반성폭력 운동이 갖는 차이와 지역 반성폭력 운동의 어려움도 궁금하다. 적은 수의 활동가들이 충분히 쉬지 못하고 계속 운동의 최전선으로 나와야 하는 로테이션 문제도 있겠고, 견고한 지역 생태계를 고려할 때 지역 반성폭력 운동의 소진이 더욱 클 듯한데, 부산이나 전주에서 워크숍을 진행하며 이를 느꼈나.

이  미투가 한 차례 지나간 후에 활동을 시작했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감이 있었고 특히 예술계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소수인 지역의 특성상 가해자가 너무 쉽게 돌아올 수 있는 구조여서 대응이 더 힘들었다. 부산은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전주에선 성폭력 예방치료센터와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많은 환대를 받았다. 아무래도 반성폭력 운동 시위나 집회가 서울을 중심으로 이뤄져 지역 활동가들이 참여하기 힘들다. 또 지역 내 예술 생태계가 좁다 보니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라 그걸 우려해 프로그램 신청을 망설인 분들도 많았다.

  전주나 부산에서 피해 생존자만큼 연대자들을 많이 만났다. 연대자를 위한 프로그램도 필요한 것 같다.

  피해자가 일정 기간 연대자에게 도움을 받고 본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과 달리, 연대자는 계속 새로운 피해자를 마주한다. 하지만 연대자 중에도 본인이 피해자였기에 연대자의 길을 택한 경우도 많을 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치유의 시간이 필요한 이가 많다. 지친 연대자들이 프로그램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느꼈다.

  지난 『폭력 너머의 시선』 전시에서 조한진희 선생님의 ‘언제든지 그만둬도 된다’는 말씀이 큰 위안이 됐다. ‘누군가 계속 이어줄 것이기에 그만두는 것에 죄책감 느끼지 말라’고 해주셨다. 그간 그만해도 된다는 말을 서로에게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내 뒤에 나를 백업할 사람이 없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항시 레이더를 켜두기에 바빴는데, 그제야 고꾸라져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지역은 이런 불안이 더할 거다.

우스갯소리로 페미니즘이랑 비건 하는 애 10명씩 모으면 합쳐서 10명이라고, 걔네가 걔네라는 말이 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빠지면 이 의제에 대해 더 이상 말하는 사람이 없거나 공동체가 무너질까 싶은 불안감에 사회운동의 최전선에서 물러날 수 없다는 이들이 많다. 이 절실함이 이해 가는 한편, 지속 가능한 방식일지 의문이 든다. 지쳐서 그만두더라도 그 자리를 채워줄 다음 사람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연대의 연대’나 ‘연대를 백업하는 연대’가 팀 내에서 어떻게 실현 가능했는지 궁금하다.

  법정 싸움의 한가운데 있을 때 민지를 만났다. 그 한복판에서 가해자와 붙다 보니 물러설 수가 없었다. 에너지가 고갈되고 회복할 시간이 없었는데, 사람이 없으니 싸움판에 계속 나가야 했다. 나는 무너졌다. 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지 못하면 결국 무너진다.

  단순한 법정 공방을 넘어 정말 땅을 넓혀 전방위적 연대를 모색하려면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세워 그를 모방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연대라고 하면 자주 집회를 떠올리고, 집회에 나가지 않으면 일을 다 하지 못했다고 여긴다. 집회에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속한 자리에서 무엇을 실천해서 이 공동체에 어떤 변화를 만들지, 어떻게 그걸 보여줄지 고민하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공유하는 가치를 믿는 공동체가 늘어난다면 어느 순간 전체가 바뀌지 않을까 하는 소망이 있다.

▲마민지 감독 ©김수환 사진기자

  우리 안에 있던 돌봄의 과정을 말하고 싶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밥을 먹거나 일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약을 먹으면 늦게 일어나거나 몸이 안 움직이기도 하는데 와서 각자의 삶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는 시간을 갖고 시작하면 좀 낫다. 또 쉬지 않고 책임감 때문에 꾹 참으면 언젠가는 터진다. 그런 일들을 방지하고자 꾸준히 서로의 상태를 확인했다. 

  힘들면 시위나 집회에 꼭 안 나가도 되는데 미안하다는 부채감 때문에 같이 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하면 누구도 뭐라고 하면 안 된다. 나도 중간에 일이 생겨서 몇 개월간 못 참여했다. 처음엔 불안하고 미안했는데 나 없이도 다들 잘하길래 부담을 덜었다. 각자 자신의 삶을 정비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무리해서 업무를 가져가지 않도록 서로를 돌보는 구체적인 방안 마련이 중요한 것 같다. 

지난 5월 서울대 딥페이크 사태로 학내에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했고, 9월엔 약 22만 명이 가담한 딥페이크 성착취 텔레그램방 사태가 알려졌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젠더폭력이 만연한 오늘날 동시대 여성들에게, 그리고 연대자들에게 해줄 말이 있을까. 

  이 절망의 한가운데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희망이고 뭐고 일단 생존해 있어야 한다. 물론 살아있으면 자꾸 사라지는 것들을 봐야 한다. 우리를 지켜줄 거라 믿었던 집단들이 자꾸 사라지고, 이럴 때마다 무섭고 충격인 게 당연하다. 이젠 어디서 연대하고 힘을 모아야 할지 고민이 들 것이다. 2017년, 2018년에 미투 하던 친구들은 이제 끝이라고, 한물갔다는 목소리들이 있다. 근데 나는 그렇게만 느끼진 않는다. 다 없어지지 않았다. 걔네는 또 다른 사회에서 그걸 흡수한 채로 살고 있다. 없어진 것 같지만 어디 흡수돼서 잘 있다. 그 힘을 믿으면 좋겠다. 

  과학이 발달하고 기술이 발명될 때마다 새로이 등장하는 범죄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변하는 현실을 따라가기도 벅차고, ‘네가 피해자도 아닌데 왜 수치심을 느껴’와 같이 어떤 말이 나올지 뻔히 알겠으니 더 그렇다. 그저 혼자가 아니라고,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도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하루 이틀 싸워서 될 일이 아니다. 백발의 할머니가 시위에서 ‘내가 이 나이 되도록 페미니즘을 하고 있을 줄 몰랐다’는 피켓을 든 사진이 있다. 안 끝난다. 그냥 사는 거다. 살다 보면 재밌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러니 일단 살아야 한다. 고등학생 때는 입시가 전부라고 느꼈겠지만, 대학에 오니 그게 시작에 불과하단 걸 알지 않았나. 살아있어 보니까 무슨 일이라도 생기더라. 병원을 가든 입원을 하든 생명줄을 붙잡고 버티고만 있어라. 같이 버티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나도 같다. 잘 서 있으라고. 그라운딩 잘하고 잘 서 있으라고.

탁  자꾸 도와달라고 말해라. 분명히 누군가 손을 잡을 것이다.

  뛸 용기가 없으면 뛰지 않아도 괜찮다. 그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거다. 그저 호흡을 가다듬고 바로 설 수 있도록, 생각할 여유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서 있는데 다리가 후들거리면 앉아 있어도, 누워 있어도 되니까 자리를 지키기만 한다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혹은 하고 싶지 않은지가 보일 거다. 그걸 놓치지 않으면 좋겠다. 사람은 일어난다. 그 한 사람의 곁에 두 사람이, 세 사람이 함께할 수도 있으니 그저 기다리는 거다.

  어쩌겠냐? 붙어 있어야지, 서로.

  내가 학생일 땐 해시태그 운동이 활발해서 학교에 포스트잇이 막 붙었다. 요즘도 간혹 학교에 가 보면 학생들이 딥페이크 집회를 하고 포스트잇을 붙이더라. 누군가 배턴을 받아줬다고 느꼈다. 한 줌인 것 같아도 이를 이을 또 다른 이들이 나타난다. 

  지난 『폭력 너머의 시선』 전시 연계 강연 때 디지털성폭력 초기 대응과 관련해 오매 님(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소장)에게 비슷한 걸 물었다. 그때 오매 님도 확실한 답변을 주시진 못했다. 그 질문을 한 후에 미안했다. 오래 반성폭력 운동의 최전선에 있으니 당연히 답을 아실 거라고 전제하고 물은 게 미안했다.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이건 누구도 답을 알지 못하는 문제라는 걸, 그만큼 모두가 고민해야 한다는 걸.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릴 거다. 그럼에도 계속 모여 이야기하며 하나씩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답이 없는 걸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방끈이 더 길거나 더 오래 활동한 이에게 다른 답이 있을 거라 믿어 물어보면, 그저 나와 같은 고민을 나보다 몇 년 더 한 사람이더라. 예전엔 완전한 해결책을 기대하다 보니 그런 답변을 들으면 실망했다. 하지만 나 역시 같은 상황을 경험하며 이건 답이 없는 문제란 걸 알았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었다. 그냥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함께 붙어 있자는 말밖엔. 모두가 딥페이크 성범죄 앞에선 처음이니까. 결국 같이 밥을 잘 챙겨 먹자고 얘기하게 된다. 우리 잠을 잘 자고 밥을 잘 먹자.

  일단 밥을 먹어라.

  그리고 붙어 있어라.

  잠을 자라.

탁  붙어 있어라. 자꾸만 손을 내밀어라. 도와달라고. 그리고 도움을 받아본 사람들은 반드시 도움을 줄 줄 아는 사람으로 변한다. 그렇게 되더라. 내리 돌봄, 어쩌면 내리 연대.

  이번에 혜화역에서 있던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에 갔는데 아주 많은 이들이 왔다. 그걸 조직한 이들도 (기자들과) 비슷한 세대인 걸로 알고 있다. 그런 걸 계속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모였을 때 갖는 힘이 있다. 집회에 가는 이유 중엔 나와 비슷한 사람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인 것도 있다. 생각해 보면 혜화에서 처음 시위를 했을 때는 ‘몰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계속 단어를 바꿔가며 행동을 지속하지 않았나. 그 변화의 과정에서 당신이 분명 해내는 일이 있고, 수많은 생존자가 역사에 엄연히 존재해 이뤄낸 것들이 있다. 그러니 잘 살아있으면 좋겠다.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2018년 혜화역에선 몰카, 즉 불법 촬영에 대한 편파적인 수사를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다. 홍익대 누드모델 불법 촬영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해당 시위는 여성 단체 ‘불편한 용기’의 주도로 총 5번에 걸쳐 진행됐으며, 당시 정부가 ‘몰카와의 전쟁’을 선언해 디지털 성범죄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는 결과를 이끌었다. 

  미학자 목정원은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2021)에서 성폭력 고발자들의 발화가 그 자체로 세계를 파열시키고, 온몸을 던져 변혁의 씨앗을 심는 행위라 말한다. 이들의 말은 필연적으로 듣는 이들에게 불편함을 준다. 왜 자신이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당해야 하느냐고, 네가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닌데도 왜 분노하고 슬퍼하느냐고. 그런 말들이 지치지도 않고 따라오는 세상에서 서로를 일으키는 여자들이 여기 있다. 성장이고 희망이고 ‘외상 후 생존’만으로 충분하다는 말에 겨우 고개를 드는 이도 있다. 

  세상은 계속해서 변할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고 듣도 보도 못한 범죄가 끝없이 생길 것이다. 도래할 미래를 살아갈 방법을 알지 못한다. 답이 없는 문제 앞에선, 그저 밥을 잘 먹고 잠을 잘 자려고 애쓰며 오늘을 보내는 것으로 충분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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