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에는 말소리 하나 없지만 어디보다도 시끄러운 공간들이 있다. 중앙도서관 터널 통로(중도터널)의 벽, 학생회관 앞 게시판, 학내 곳곳 위치한 게시판이다. 이곳에 붙은 수십 건의 인쇄물이 저마다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낸다. 동아리 홍보부터 학내 실험 참가자 모집, 행사와 강좌 안내까지 형형색색의 인쇄물들은 행인들의 눈길을 빼앗는다. 그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글이 하나 있다. A1 크기의 하얀 종이에 손 글씨로, 혹은 컴퓨터 활자로 빼곡하게 채워진 놀랍도록 담백한 글. 흔히 벽보 혹은 대자보라 불리는 그 글은 다른 인쇄물과 사뭇 다른 분위기의 이야기를 담는다. 텔레그램 속에 파묻혀 있던 딥페이크 범죄, 교수에 의해 자행되는 성폭력,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살과 같은 무거운 상황에 대한 고발이나 특정 정책과 사건에 대한 작자의 의견 등이 지면 위에 떠오른다.
대자보에 담긴 이야기와 견해는 종종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모르고 살았으면 마음 편히 지나갈 수 있었을 현실을 알게 되는 데서 오는 불편함, 적힌 견해가 자신과 반대되거나 납득할 수 없을 때 생겨나는 반발감 등이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이 불편함은 현실로 튀어나와 대자보를 괴롭힌다. 글 위로 낙서가 뒤덮이는 것은 예삿일이고, 심지어는 대자보가 갈가리 찢겨나가거나 송두리째 사라지기도 한다.
대자보의 수난은 계속되고 있다. 자유로운 의견 표현을 존중하고 함께 귀 기울여 듣는 공간을 표방하는 서울대에서 발생한 대자보 훼손 사건은 무엇을 보여줄까. 서울대는 민주적 공동체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서울대의 대자보 문화를 톺아보고, 학내 민주적 공론장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서울대에서 대자보가 걸어온 길
대자보는 1957년 중국 공산당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다. 2008년 출판된 『중국시사문화사전』에서는 대자보를 벽보의 일종으로, ‘내용이 정치적 사건이나 문제에 관한 의견이나 그 관련자들에 대한 비방, 대중들을 선동·동원하기 위한 격문’으로 정의한다. 실제로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대자보는 강력한 정치 도구이자 선동의 수단이 됐다. 1966년 문화대혁명 광풍의 시발점은 마오쩌둥이 작성한 ‘사령부를 포격하라-나의 대자보’라는 제목의 당시 사령부를 저격한 대자보였고, 문화대혁명 내내 대자보는 농촌과 도시를 뒤덮으며 사람들을 휘둘렀다.
대한민국에 대자보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다. 한국에 들어온 대자보는 용어만 빌려왔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중국의 대자보와는 두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는 장소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하는 대자보는 ‘대학가에서 내붙이거나 걸어 두는 큰 글씨로 쓴 글’이다. 대자보가 위치하는 장소를 대학가로 한정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당시 대자보 문화가 대학가를 중심으로 번성했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한다. 둘째는 기능이다. 주로 정치적 선동의 수단으로 사용되던 중국의 대자보와는 달리, 한국의 대자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해오긴 했으나 주로 고발이나 의견 개진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대자보가 한국에 들어온 시기와 관련이 있는데 1974년부터 1979년 12월까지 이어진 민주주의와 언론 활동에 대한 억압이 1980년에 일시적으로 풀어지면서 학생운동이 번성하기 시작했고, 학생운동의 일환으로서 대자보가 정치계의 횡포를 알리고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서울대에 대자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마찬가지로 1980년대다. 1974년부터 선포된 긴급조치 1호로 인해 1979년 12월까지 대학가에서는 대자보는 고사하고 작은 홍보물조차 붙지 못했다. 학부생들 사이에서는 가리방*을 통해 은밀하게 소통하는 것이 최선이었고, 이때의 주요 의제는 노동야학과 민주화였다. 그리고 1980년, ‘서울의 봄’이라 불리는 일시적인 해방기에 서울대의 대자보 문화는 꽃을 피웠다. 당해 4월 2일에는 서울대 내 자유게시판이 세워졌고,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대북정책에 대한 의견을 담은 대자보가 범람했다. 1980년 4월 18일 자 〈동아일보〉에는 ‘4월 초부터 서울대 관악캠퍼스에 학생들의 주장을 담은 대자보가 넘치게 나붙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가리방: 등사 원고를 붙여 복사한 종이의 속어
그러나 대자보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자유게시판이 세워지고 정확히 한 달 후, 1980년 5월 17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쿠데타와 함께 대학가의 입은 틀어막혔다. 정부는 서울대에 총학생회 해체를 요구하며 대학가에 경찰과 정보기관을 주둔시켰다. 쿠데타가 일어난 뒤 거센 탄압 속에서 살아남은 몇몇 대자보는 전두환 정권의 퇴진과 민주화를 외쳤고, 여기에 특별정훈교육*과 같은 정책에 대한 거부의 목소리도 더해졌다.
*특별정훈교육: 본래 군대에서 군인에게 하는, 국가 및 국군의 이념과 대적관 등을 주입하는 정신교육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전두환 정권에서 소위 운동권 대학생들을 강제 징집해 저지른 가혹행위를 의미한다.
대자보가 다시 한번 부흥한 것은 1984년 캠퍼스 유화국면이 시행되면서부터였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는 지금까지 취했던 강경 대응으로는 학생운동을 막을 수 없음을 인식했다. 그렇게 잡혀갔던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왔고, 탄압당하던 학생운동은 재점화됐다. 이때부터 대자보는 정치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토론장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반미주의와 친미주의가 대자보 대 대자보로 대립하고, 정책에 대해서도 급진파와 온건파가 대자보를 통해 대립했다. 1986년 5월 10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대학가 대자보 공방 치열’과 같은 기사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정치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됐던 대자보의 내용은 1990년을 기점으로 변화를 맞이한다. 1990년부터 대학의 탈정치화 시도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1989년 1월 7일 자 〈조선일보〉 보도에서 ‘그간 사회 변혁 운동에만 몰두함에 따라 총학생회는 일반 학생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됐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데, 1987년 전두환 정권의 퇴진 이후로 약 15년간 지속된 학생운동에 지친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 탈정치화의 시초라 볼 수 있다. 이런 기조는 학내 대자보의 의제를 정치 이데올로기에서 환경, 노동과 같은 사회 문제와 학내 성희롱 고발과 같은 학내 이슈로 바꿔나갔다.
2000년대 이후 대자보 문화는 쇠락기를 걷는다. PC통신이 개발되면서, 사람들은 실물 대자보를 붙이는 대신 온라인 커뮤니티의 게시판으로 옮겨가 자신의 의견을 펼쳤다. 2010년까지 학내 대자보는 간혹가다 학내 이슈를 다루는 경우를 제외하고 점점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2010년과 2013년, 두 개의 대자보가 다시 한번 학내 대자보 문화에 불을 붙였다. 2010년에는 ‘김예슬 선언’으로 잘 알려진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대자보가, 2013년에는 ‘안녕들 운동’이라 불리는 대자보 열풍을 가져온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등장했다. 안녕들 운동이 진행된 1년간 서울 내 대학교에서 총 230건의 대자보가 붙었다. 서울대도 이 열풍에 동참했고, 이때 되살아난 대자보 문화는 2020년까지 이어진다. 2016년에는 시흥 캠퍼스 문제를, 2017년에는 인권센터와 관련된 학내 인권 문제를, 2018년에는 미투 운동을 알리며 학내 대자보 문화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2020년, 대자보 문화는 다시 시들어갔다. 코로나19 범유행이 약 2년간 사회를 강타하며 대학가에 대자보를 붙일 학생도, 붙은 글을 읽어볼 학생도 없었기 때문이다. 캠퍼스가 비어있던 기간에 온라인 커뮤니티가 득세했고, 점점 더 사람들의 소통을 장악해 갔다. 학생들이 돌아온 2022년 하반기부터 지금까지도 대자보 문화는 미미하게 맥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코로나 이전 시기의 학교를 기억하는 모 학부생은 “학내 게시판에서 대자보가 줄어든 것을 체감한다”며 학내 대자보 문화가 많이 침체됐다고 말했다.
자꾸만 훼손되는 대자보
코로나19 이전 시기에 비해 많이 침체됐다고는 하나, 학내 곳곳에서 여전히 대자보를 찾아볼 수 있다. 올해에도 중도터널에는 딥페이크 성범죄를 고발하는 대자보가, 학생회관 앞에는 LnL 사업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었다. 그러나 대자보 문화가 명맥을 잇는 것과 동시에, 대자보를 훼손하는 사건도 계속되고 있다.
서울대에서는 2010년대에 들어서 대자보 훼손 사건이 줄곧 발생해 왔다. 2013년에는 안녕들 운동에 참여한 대자보가 훼손됐고, 2019년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비판했던 대자보가 훼손됐으며, 2022년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했던 대자보가 아예 소실됐다. 작년 6월에는 서울대 학내 인권단위들이 붙인 故 양희동 씨 추모 대자보가 난도질됐고, 올해는 학내 팔레스타인 연대 동아리 ‘수박’에서 붙인 대자보가 훼손당했다.

지난 6월 19일부터 7월 1일까지 수박 측이 중도터널에 붙인 대자보가 다섯 차례나 훼손됐다. 사건의 발단은 6월 19일, 중도 통로에 붙었던 ‘서울대학교 유홍림 총장에게 보내는 서한’이라는 제목의 네 장짜리 대자보가 갈가리 찢겨나가 있는 것이었다. 수박 이시헌 공동의장(자유전공 15)은 “당시 수박은 중도터널의 신청 게시판을 빌려 전시 중이었다”며 초기 상황을 설명했다. 수박 측은 공식적인 허가하에 붙인 대자보가 훼손됐기에 곧장 학생지원과와 캠퍼스 안전반에 신고했다. 하지만 이틀 뒤, 같은 사건이 또 발생했다. 이미 신고했음에도 다시 발생한 훼손에 수박 측은 캠퍼스 안전반에 재차 신고했지만, “캠퍼스 안전반은 CCTV를 찾아보지도 않고 경찰에 신고하라는 식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다”고 이 공동의장은 토로했다.
결국 6월 28일에 세 번째 대자보 훼손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종이가 찢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대자보 위에 큰 글씨로 ‘학교에 이딴 거 붙이지 마라’는 낙서가 남아있었다. 다음 날인 6월 29일에도 또다시 대자보 훼손이 발생했다. 계속되는 대자보 훼손과 학교의 무대응에 수박 측은 결국 당사자에게 책임을 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음 날인 6월 30일 동일 위치에 대자보를 붙이고 인근에서 대기했고, 7월 1일 0시 25분경 대자보를 훼손하러 나타난 사람을 현장에서 붙들었다.
대치 끝에 0시 44분경 수박 측은 캠퍼스 안전반을 호출했고, 캠퍼스 안전반은 인적사항을 받아 갔다. 이시헌 공동의장은 “인권센터 측에 신고하면서 캠퍼스 안전반에서 인적사항을 넘겨받아 사실 조회를 해달라고 요청했다”며 상황 처리를 설명했다.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의 상담소장은 규정 제16조에 따라 신고 또는 직권으로 인권침해 등에 대한 조사를 실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조사에 착수했을 때 그 과정에서 사용 가능한 방법을 정해둔 규정 제23조의 ‘당사자, 관계인 또는 관계부서 등에 대하여 조사 사항과 관련이 있다고 인정되는 사실 또는 정보의 조회가 가능하다’는 항목을 믿은 것이다. 그러나 학교의 대처는 다시금 이들을 실망시켰다. 캠퍼스 안전관리과가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인적 사항 제공을 거부한 것이다. 이 공동의장은 “이렇게 대응할 줄 알았다면 캠퍼스 안전반을 부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탄식했다.

결과적으로 다섯 번의 대자보 훼손 건 가운데 단 한 건도 훼손범에 대한 학교 차원의 응당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수박 측은 이에 지난 8월 9일, ‘최근 잇달아 발생한 팔레스타인 지지 대자보 훼손에 부쳐 – A교수를 비호해 온 학교 당국에도 책임이 있다’는 대자보를 붙여 학교 본부에 책임을 물었다. 사실 수박 측에서 게시물 훼손 사건을 겪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사건 발생 4개월 전 2월, 이스라엘 국적의 교수 A씨가 수박 측에서 붙인 포스터를 페인트 스프레이로 훼손하는 일이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해 수박 측은 A교수에 대한 징계 요구 성명을 발표했지만, 본부는 징계는커녕 A교수에게 6월 18일 서울대학교 이스라엘 교육연구센터에서 진행된 행사의 축하 공연을 맡기거나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며 언론 보도를 하는 등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았다. 엄연한 표현의 자유 침해에도 불구하고 본부의 무관심한 태도가 이번 사건을 촉발했다고 보는 것이다.
글 한 장이 만드는 폭풍
대자보 훼손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르게 말하면, 대자보를 훼손하는 행위는 무엇을 목적으로 발생하는 것일까. 대자보가 갖는 의미가 무엇이기에, 어떤 기능을 수행해 왔기에 이런 수난을 겪어야만 하는 걸까.

대자보는 그 역사성과 물성으로 인해 특이한 기능을 가진다. 역사적으로 대자보는 중요한 사안들을 알려왔고, 물리적으로 열린 공간에 작자의 전언이 전시된다는 점에서 더욱 다양한 대상을 상대로 사안에 대한 이목을 끌어오기 쉽다. 이시헌 공동의장은 “온라인에서 글 하나를 볼 때보다 대자보가 붙었을 때 더 진지하고 중요한 사안으로 받아들이는 청중들이 있다”며 대자보가 가지는 힘을 논했다. 이러한 관심과 집중은 자연히 여론의 수명을 연장한다.
대자보는 사견을 공적 영역으로 내보내고 담론을 형성하는 기능도 수행한다. 대자보가 공적 의견 개진의 수단으로도 사용돼 왔기 때문이다. 2013년 대자보 열풍을 불러온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는 당시 고려대학교 재학생 주현우(경영 08) 씨가 국정원 대선 개입, 밀양 송전탑 사건,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등 당시 사회에서 발생한 온갖 문제들을 고발한 것이었다. 개인의 의견이 대자보라는 통로로 세상에 나오자, 청중의 관심이 더해지며 일련의 집합행동이 뒤따랐다. 2023년 3월 중도터널에 붙었던 ‘죄인이 한때의 형제에게 고함’이란 제목의 대자보는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이 가한 학교폭력을 비판한 글로, MBC를 비롯한 공영방송에 보도되며 학교폭력에 관한 사회 담론을 점화했다. 이렇듯 대자보는 단순히 어떤 사건을 고발하거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넘어 사회적 영역에서 담론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따라서 대자보 훼손은 이러한 대자보의 기능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나타난 것일 수 있다. 대자보에 적힌 의견이 학내에서 관심을 끌고,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키고, 끝내 무시할 수 없는 담론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을 목격하길 꺼리는 이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시헌 공동의장은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위축시키려는 것”을 대자보 훼손의 주된 동기로 지목했다. 대자보를 훼손하는 사람이 반대 의견에 대해 단순히 반발심을 품는 것을 넘어, 유형의 위협을 가함으로써 그 목소리를 가라앉히려고 했다는 것이다.
대자보의 지면을 뛰어넘는 공론장을 꿈꾸며
대자보가 가진 의견 개진 기능과 담론 형성 기능은 대자보가 대학에서 공론장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해왔다. 누구나 원한다면 대자보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내걸 수 있고, 대자보를 본 사람들은 게시된 의견에 공감하며 집합행동에 동참하거나 반박하며 다른 대자보를 걸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모든 토론 참여자들이 동등한 지위에서 토론한다’는 전제 역시 잘 지켜지는 듯하다. 대자보들은 모두 어떤 작자의 의견이라는 동등한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대자보는 ‘고급 대자보’, ‘저급 대자보’로 분류되지 않는다. 동의하는 대자보, 그렇지 않은 대자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정말로 대자보가 대학의 공론장이라고 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쉽게 그렇다고 하기는 어렵다. 우선 대자보는 글이기 때문에, 토론에 참여하는 인원이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개개인, 혹은 특정 단체가 의견을 게시하면 그 글과 독자들은 일대일로 소통하게 된다. 예컨대 현장에서 글을 읽는 독자들은 각자 그 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 의견들이 또 다른 글로 표현되지 않는 이상 토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물론 대자보에서 제시된 의제를 두고 다른 공간에서 토론하는 방법은 있다. 이 경우 대자보는 공론 소재를 제공하는 수단이 된다. 토론 공간은 크게 ‘에브리타임’과 같은 온라인 공간과 학내 소모임 같은 현실 공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두 경우 모두 이상적인 공론장이 되기는 어렵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익명성과 구성원의 편향으로 인해 모든 의견이 동등하게 존중받지 못하고, 오히려 혐오 표현이 만연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단적인 예로 에브리타임에 관해 2021년 〈서울대저널〉에서 재학생 1,195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이용자 구성의 편향성에 문제가 있다고 답한 측은 전체의 26%, 여론조작의 가능성이 있다고 답한 측은 33%에 육박했다. 온라인 공간은 의제에 관한 모든 의견이 존중받는 건전한 토론장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실 커뮤니티의 경우 시공간적 제약으로 참여 인원에 한계가 있고, 이로 인해 토론이 성사돼도 공적 담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는 문제가 있다.
현재 서울대 내에서 공론장이라고 정의할 만한 명백한 장소나 공간은 없다. 전직 교수 B씨는 “학문공동체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서울대에는 토론과 논쟁의 장소가 없다”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공론장으로서 한계가 명백한 대자보에 그 역할을 맡길 수밖에 없는 지금, 모두의 의견이 존중받는 민주적 공론장은 어떻게 형성될 수 있을까.
현재로서 공론장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지목되는 것은 대학 언론이다. 부산외국어대학교 윤희각 교수(국제학부)는 지난 8월 22일 진행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학 언론의 가장 큰 방향성은 대학 내에서 공식적인 공론장 기능을 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교육 전문 매체 〈오늘의 교육〉을 출간하는 ‘교육공동체 벗’의 강석남 편집위원 역시 지난해 5월 15일에 투고한 ‘대학 언론은 대학 민주주의를 위한 필수 요소’라는 글에서 ‘언론으로서 매체를 통해 학생 대중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대학 언론은 대학 내 다양한 의제와 담론을 다루는 공론장으로 기능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대학 언론이 공론장으로 작용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해외의 성공 사례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대학 언론 〈더 크림슨(The Crimson)〉은 편집권이 대학 본부와 총장으로부터 엄격히 독립된 학보다. 이 신문의 사설 코너에는 편집위원회가 투고한 글과 더불어 그에 반대하는 글이 함께 실린다. 예를 들면 ‘지적 활력은 필수적이다.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할 수 있는가?’란 제목의 편집위원회 사설이 실리면, ‘반대: 나를 위한 지적 활력, 그러나 너를 위하지는 않는다’라는 타 학생들이 쓴 사설이 함께 실리는 식이다. 이뿐만 아니라 논평과 칼럼 코너에는 학교 정책을 비판하거나 사회 문제를 꼬집는 내용이 가감 없이 실리고, 심지어는 한 페이지에 서로 정반대되는 의견이 실리기도 한다.
미국 언론의 사례로부터 반추했을 때, 대학 언론이 이상적인 공론장이 되기 위해서는 대학 언론과 학생들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대학 언론의 역할은 지면에 다양한 시각을 조화롭게 싣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시선이 담긴, 열린 공론장에 참여하는 건 학생들의 몫이다. 준비된 지면에 실릴 의견들은 학생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제시된 의견들을 읽고 또 다른 의견을 내고, 결국 담론으로 이어나가는 것 역시 학생들이 참여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서울대학교 내 대자보 문화는 1980년부터 약 45년간 학생들의 공론장이, 고발장이, 담론 형성장이 돼줬다. 그러나 대자보 문화가 명맥을 겨우 잇고 있는 지금 대자보를 훼손하는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한다면, 그리고 학교 당국과 학생들이 그에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학내에 다른 공론장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대자보 문화마저 잃게 될지도 모른다.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이를 존중하며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은 모두의 노력으로 일궈내야 한다. 나의 의견이, 당신의 의견이, 우리의 의견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