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소수자를 개인적 주체로 다루기보다는 집단으로 환원하며,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과 난민, 여성 등 다양한 소수자 정체성과 다층적인 개인의 서사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소수자의 삶을 온전히 존중하고, 소수자와 연대하는 인식 또한 부재한 상황이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의 한계를 성찰하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전시에 주목해 봤다.

SeMA 옴니버스는 2024년 서울시립미술관의 의제인 ‘연결’을 주제로 본관과 북서울미술관, 남서울미술관, SeMA 창고에서 동시에 열리는 대규모 소장품 기획전이다.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의 전시명은 한국계 미국인 시인이자 작가인 캐시 박홍의 자전적 에세이 『마이너 필링스』(2020)의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지 몰라서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미국 사회 내 아시아인이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로 취급되며 손쉽게 비가시화되는 상황을 대변한다. 전시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소수자라는 정체성이 단일하고 평면적으로 반영되는 현실을 비판하며 이들의 공통적 경험과 더불어 개별적인 다양성을 드러내는 공간과 작품을 선보인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는 전시 공간의 섬세한 설계로 다양한 수용자의 경험을 고려한다. 1층 전시 입구에 들어서면 어느 각도에서나 작업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칠각형 모양의 쉼터가 설계돼 있다. 북서울미술관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무장애 문화 향유 활성화 사업’에 선정돼 자막 해설, 음성 해설 및 촉각 모형에 관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전시관은 공간에 오는 누구나 환대받는 존재임을 느낄 수 있도록 관람객의 편의를 우선으로 구성됐다. 또한, 소수자를 유형화해 전시 공간을 구획하기보다 각 개인의 서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그림, 사진, 촉각 모형, 영상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배치했다.

전시관 1층 입구를 지나다 보면, 강렬한 색채를 담아낸 선주민 여성과 마주하게 된다. 이 작품은 1960년대 한국 실험미술에 등장했던 아방가르드 작가 중 한 명인 정강자 작가의 「자화상」으로, 그가 중남미에서 남태평양까지 여행하며 체감한 이국적 풍경과 선주민의 생동감을 반영해 그린 자화상이다. 작품 속 작가는 머리에 끈을 동여매고, 화려하지만 토속적인 귀걸이를 착용한 채 한 손은 허리춤에 두고, 다른 손에는 붓을 들고 꼿꼿이 정면을 보고 있다. 근대 유럽 남성 작가는 고귀한 옷을 차려입고 붓과 팔레트를 든 모습을 그린 자화상을 통해 작업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낸 반면, 정강자의 「자화상」 속 작가는 편안한 청바지를 입고 짙게 그을린 피부를 가진 모습으로 묘사된다. 작가는 서구 미술사에서 대상화되고 낭만화된 선주민에 대한 묘사를 지양하고 피식민지 아시아 여성으로 선주민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작가가 활동하던 1960년대에는 페미니즘이 정착되지 않았고, 여전히 남성 중심적이고 서구 중심적인 사고가 예술계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선주민과 유사한 피부색을 가진 채 당당히 붓을 든 모습을 반영한 그녀의 작품은 비서구권의 대상화와 백인 남성 중심의 예술관에 저항함으로써 여성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전시관 내부의 벽면을 따라가다 보면, 발밑의 시각에서 촬영한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이족보행을 위한 몇 가지 전제들」은 영상 매체를 통해 사회 이면에 내재한 복잡한 메커니즘을 탐구한 이은희 작가의 작품이다. 작가는 주로 기술로 이어진 신체와 노동의 관계를 파고들어 사회가 주입하는 신체의 정상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 작품은 높고 가파른 계단이 많은 북서울미술관의 안팎을 순회하는 걸음을 담은 2채널 영상 작업이다. 미술관 안팎을 순회하는 걸음걸이가 만드는 리듬에 맞춰 장애등급 판정 기준, 보행 및 일상생활동작의 수행능력을 평가하는 지수인 수정바델지수, 인지기능장애 평가 도구의 문항들이 내레이션으로 낭독된다. 장애와 비장애가 철저한 기준에 따라 분류되는 듯하지만, 낭독되는 문항들은 실상 경계가 모호하다. 그렇기에 우리가 정상으로 인식하는 신체의 조건에 의구심이 덧입혀진다. 작가는 이를 통해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일상적일 수 있는 ‘걷는’ 행위에 숨어있는 정상성의 의미를 묻는다.

전시에는 시각적 예술뿐 아니라, 혼합 매체를 이용한 작품도 적지 않게 배치돼 있다. 이 작품은 한국 페미니즘 미술의 선구자인 윤석남의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윤석남은 기록되지 않은 여성의 역사, 평가 절하된 모성, 생태에 이르기까지 페미니즘을 주제로 다양한 회화, 설치 작업을 진행해 왔다. 「어머니의 이야기」는 한국의 보편적인 어머니의 사연을 담은 설치 작품이다. 당시 유행하던 식탁 의자의 윗면과 네 다리에 쇠가시를 박은 설치물이 자리하고, 그 오른편 나무 조각을 이어 붙인 화판에 한복을 입은 전통적 여성상의 인물이 서 있다. 이 작품은 흔히 여성의 공간으로 간주되는 부엌에서조차 온전한 자리를 보전하지 못한 채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현실과 그럼에도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여성의 강인함을 형상화한다.

전시관 내부를 관람하고 출구로 향하다 보면, 긴 탁구대가 관람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작품은 이원호의 「The White Field 2」이다. 이원호 작가는 일상에서 관성적으로 지나치게 되는 통념이나 관습, 규칙 등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를 해체하고 재구축하는 설치, 비디오 작업을 해왔다. 작가 스스로의 실천을 통해, 때로는 작가와 참여자 간의 협상을 통해서 규칙을 깨거나 새로운 규칙을 형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운동 경기에서 흰색 선은 팀의 범주를 설정하고 득점을 판가름한다. 작가는 이러한 탁구대의 흰 선에 해당하는 부분의 목재를 잘라낸 후 따로 모아 탁구대 내부에 또 다른 사각형을 만들었다. 작가는 게임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동하는 선을 물리적으로 잘라내고, 게임에서 작동하는 규칙이 영구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로써 규칙의 무용성을 드러내며 우리를 제한하는 규범과 사회의 통념을 성찰하게 한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전시를 기획한 유은순 학예연구사는 “소수자가 양적인 차이로 정의돼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흔히 소수자는 주류 사회의 규범에서 벗어나거나 배제된 사람들로 규정되지만, 유 연구사는 “누구나 사회적 소수자가 될 수 있으며, 그 규범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바꾸고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유 연구사는 차별적 경험이 단순히 타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일 수 있음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사회에 사랑과 연대를 표현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그 대상을 포용하는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특히 소수자를 표현하는 방식은 정형화돼 그 속에 있는 복합적인 서사는 손쉽게 가려진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는 다양한 소재와 형태의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왜 당연하지 않은지, 우리가 타인을 규범 안에서 대상화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를 문제시한다. 전시를 통해 나와 다른 존재를 섣불리 타자화하고 때로는 연민하는 것을 넘어,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를 마주하며 연결되고, 연대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그렇게 다양성과 사랑이 만나는 지점을 찾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