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어디서나 행복해야 하니까

청년들이 사는 지방을 상상하기
▲이상호 박사는 지역간 연결성 개선이 인프라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빈채현

  청년들이 만족하며 살아가는 지방을 상상할 수 있을까.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구분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자유롭게 택해서 살아가는 청년의 삶을 꿈꿀 수 있을까. 청년이 지방을 떠나길 원치 않는다면 떠날 필요가 없는 공간 마련이 선행해야 하고, 청년이 지방에 찾아오길 원한다면 살고 싶은 공간 마련이 선행해야 할 것이다. 살 수 있는 지방, 살고 싶은 지방의 설계도를 어떻게 그려나가야 하는지 청년의 시선에서 모색해 봤다.

청년들이 살 수 있는 지방 상상하기

  지방의 청년들은 수도권으로의 이주를 꿈꾼다. 그러나 이 꿈은 희망 가득한 꿈이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꿈에 가깝다. 2022년 청년유니온에서 진행한 「지역격차 해소를 위한 청년 지역일자리 실태조사」와 「지방소멸 시대의 청년세대 지역격차 경험에 대한 질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수도권 청년 78.9%가 지역 내 일자리 충분 정도에 대해 ‘불충분하다’고 응답했다.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한 청년들의 상경 이유 중 32.1%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항목은 ‘다양하고 안정적인 일자리’였다. 오늘날 일자리를 얻기 위해 학력과 직업 교육이 필수가 된 상황을 고려했을 때, 22.2%로 두 번째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 항목인 ‘원하는 교육을 받기 위해’란 답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실제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당해 연도의 전국 지역내총생산에서 수도권(서울·경기·인천)의 생산 규모만 1,137조 원에 달하며 전체 총생산의 52.5%를 차지했다.

  이처럼 지방엔 청년을 위한 일자리가 부족하다. 절대적인 일자리 수 자체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경제적 기반을 다져 나가야 하는 청년들에게는 일정 수준 이상의 안정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한데, 그 수요에 맞는 일자리는 몹시 한정적이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2년 임금 근로 일자리 소득(보수)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의 월급은 평균 591만 원으로 중소기업의 286만 원보다 2배 이상 많았다. 나날이 임금 격차는 심해지고,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는 상황 속에서 청년들이 대기업 정규직이란 한정된 일자리에 집중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좋은’ 일자리의 문이라도 두드려보기 위해선 결국 상경이란 결론에 다다르는 구조다.

  따라서 청년들이 머무를 수 있는 비수도권을 만들려면 지방에도 좋은 일자리가 반드시 확충돼야 한다. 그러나 이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청년유니온 김지현 사무처장은 “완벽한 일자리가 아닌 괜찮은 일자리의 확충은 공공일자리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사안일뿐더러 괜찮은 일자리가 모든 청년에게 돌아가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청년들이 기대하는 수도권의 일자리와 동일한 조건의 일자리를 만드는 방향으로 대안을 모색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방의 일자리는 어떤 방식으로 상상할 수 있을까. 한국고용정보원 이상호 박사는 “지역전략산업, 지역특화산업 등 해당 지역만의 특색을 살린 일자리를 개발해 청년 맞춤형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답했다. 현재 전국에선 많은 지역전략산업들이 조직되고 있지만, 대다수의 경우 타 지역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특색에 대한 고민이 부실한 상태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역전략산업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추세다. 이 박사는 “AI, 2차 전지 등 현재 주목받는 산업에 너도나도 뛰어들다 보면 내부에서 동일한 파이를 가지고 경쟁하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기에 지역전략산업에 대한 정책적 접근을 달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경상남도에서 시행됐던 다양한 일자리 정책들은 지역전략산업을 적극 활용한 좋은 사례로서 주목할 만하다. 경상남도는 지난해 조선업 특화취업지원 플랫폼 운영, 근로자 채용 인건비 지원, 전문기술 전수 지원 등을 통해 침체된 조선업을 회복하기 위한 다방면의 노력을 거쳤다. 또한, 우주항공청 개청으로 변화한 우주항공산업에 발맞춰, 우주항공·방산 분야에 특화된 글로컬 대학을 선정하고 우주항공 교육발전 특구를 지정하면서 일자리가 요구하는 전문적인 교육의 장 역시도 제공했다. 이와 같은 노력은 2023년 기준 전년 대비 청년 순유출이 22.2%나 감소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좋은 일자리에 대한 논의엔 임금이나 직종뿐만 아니라 노동환경에 대한 복합적인 논의도 포함돼야 한다. 2023년 청년유니온에서 진행한 지역 청년일자리 포럼에선 ‘비수도권 지역의 보수적인 분위기와 그것을 내재화하고 있는 일자리의 분위기’가 지역이탈을 고려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으로 거론됐다. 소위 텃세라고 불리는 일자리 내 보수적인 분위기가 현재 일자리에서의 노동을 힘들게 만들 뿐만 아니라 지역 내 동종 업계에서의 이직조차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청년들이 직장에 들어가는 것만이 아니라, 잘 적응하고 정착할 수 있기까지를 포괄적으로 고민할 때 비로소 청년을 위한 좋은 일자리란 그림은 완성된다.

  좋은 일자리를 상상했다면, 자연스럽게 그다음은 일자리 바깥에서의 삶 전반에 대한 개선을 이야기해야 한다. 교통, 문화,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삶의 질을 책임지는 인프라 역시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심각하다. 일례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발행한 『2023 문예연감』의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열린 4만 532건의 문화예술활동 중 1만 5,377건이 서울에서 개최됐다. 이에 작년,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에선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란 국정목표에 맞게 ‘읍·면 지역 주민과 대도시 주민 간 문화예술관람률 및 여가생활만족도 격차를 2027년까지 5%p 내로 축소하겠다’는 목표를 밝히기도 했다. 구체적인 대안으로 ▲약 80개 지역의 중소형 서점에 문화활동 프로그램 운영 지원 ▲지역 갤러리 및 유휴 전시공간 60여 곳에 다양한 시각예술콘텐츠 제공 ▲문화·관광 분야 4개 공모사업에서 인구감소지역 사업에 가점 부여 등을 내세웠다.

  이처럼 인프라 격차에 대한 문제 제기와 개선 시도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적절한 대응이 뒤따르진 못했다. 지방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다른 인프라가 전무한 상태에서 쇼핑몰 하나만 덩그러니 세워두는 등의 하드웨어적 개선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이에, 지방을 떠나고 싶지 않은 청년들을 위해서라도, 한 번의 정책마다 드는 비용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소프트웨어적 개선을 같이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등장하고 있다. 가령 지방에 자녀양육센터를 만든다고 가정했을 때, 건물을 만드는 것에서 지원이 그치는 게 아니라 그 공간을 운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강사, 기획자에 대한 지원까지도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호 박사는 지역간 연결성 개선이 인프라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빈채현

  비수도권에 수도권과 동일한 질의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전략 역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상호 박사는 “현재 도로 철도망이 수도권 중심으로 돼있기 때문에 비수도권의 경우 같은 권역임에도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하며, “지역끼리의 연결성을 개선하면 모든 인프라를 우리 지역 내에 갖출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컨대 인프라가 부족한 농어촌에 사는 사람도 30분에서 1시간 내로 주변 도시로 이동할 수 있다면, 공공시설이나 문화공간을 얼마든지 향유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긴다는 것이다. 온라인 수업이나 원격 진료 등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접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모색도 현재 대한민국의 인프라 불균형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연결의 확장은, 청년들이 비수도권에서도 정치·사회적으로 소외되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실마리까지도 제공한다.

  모든 것이 완벽히 확충되는 길은 지난할 것이다. 그럼에도 청년들이 필요로 하는 일자리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의 노동환경을 상상하고, 일이 끝나고 다양한 삶을 영위하는 청년을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을 때, 등 떠밀리듯 서울로 떠나가야 했던 청년들의 발걸음은 비로소 멈출 수 있을 것이다.

청년들이 살고 싶은 지방 상상하기

  떠나가는 청년을 붙잡는 것만큼, 새로운 청년들을 지방으로 유인하는 것 역시 간절한 상황이다. 지방에서의 삶의 모습은 하나로 특정할 수 없게 몹시 다양하지만, 청년들의 인식에 박힌 획일화된 삶의 틀을 깨려면 많은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전국 단위 신규 개최 및 행사·축제 경비 평균 비율 ©빈채현

  지금껏 지방에선 외부 인구 유입을 위한 전략으로 지역축제를 활용했다. 올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한 「지역축제 개최 계획(2019-2024)」과 지방재정365에서 나온 「행사·축제경비 편성(2019-2024)」 자료를 살펴보면 신규 지역축제의 수는 줄지 않고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다. 이로 인해, 2014년 이전에는 707개였던 지역축제가 2024년에 이르러선 1,170개로 불어났다. 그러나 늘어난 전국의 행사·축제의 수에도 불구하고 각 자치단체에서 축제를 위해 배정한 경비의 평균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후죽순 불어난 축제 수에 비해 지역축제가 가져온 효과는 여러 면에서 미미하다. 나라살림연구소에서 발간한 「2024년 지역축제 현황 및 성과분석에 따른 성과관리 제도개선 방향성 제언」에 따르면 2019년 대비 2023년의 외부 방문객 증가율은 –1.58%로 감소 추세를 보였다. 지역 주민들의 축제 참가율 역시 –9.63%로 감소하면서 지역축제가 주민들조차 유인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이처럼 무분별하게 증가한 지역축제가 주민들의 호응도, 외부 관광객의 유인도 끌어내지 못하는 까닭은 단순하다. 지역 특색에 대한 고민 없이 만들어진 양산형 축제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방으로 청년들을 초대하기 위해선 각 지방이 가진 특색을 섬세히 살피고 이를 살려 차별화된 노선을 개척해야 한다는 의미다. 도쿄도시대학 임화진 교수는 〈한경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지방소멸 대응 정책은 지자체의 특성을 100% 반영해 브랜딩한 것’이라며 ‘한국도 우리 도시에 어떤 사람들이 놀러 오고 어떤 사람들이 살기를 원하는지 명확한 페르소나를 설정하는 등 정책을 더 세분화해 전략을 짜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관계인구나 생활인구를 겨냥해, 지방에서 거주하진 않더라도 지속적·심적으로 연결된 인구를 유인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도 등장하고 있다. 관계인구·생활인구에는 관광객은 물론이고, 거주하진 않지만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는 사람, 해당 지역에 주말농장을 두고 있는 사람, 군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포함된다. 지방에서의 삶에 대한 장벽을 낮출 뿐 아니라 지역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자 하는 취지인 것이다. 양구군에선 2023년 1월부터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해 지방 곳곳의 자원과 연계하기 위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시행 300일 만에 8,452만 원의 모금 성과를 거뒀다. 자연 생태계를 살리는 기금사업으로서의 성공과 더불어 지역경제에 대한 기여와 지역에 대한 외부적 관심을 이끄는 것까지도 성공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청년들이 지방에서 살고 싶어지기 위해선 단계별로 세분화된 유입 과정이 이어져야 한다. 잠깐의 머무름에서 그치지 않고 청년이 지방에 온전하게 정착하려면 지방에서의 삶을 알아가는 단계, 뿌리를 내리기 위한 준비 단계, 실제로 살아보며 겪는 시행착오의 단계 등 여러 과정이 연쇄돼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지방 곳곳에 있는 청년 유입 및 자립을 돕는 프로그램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지방에서의 삶을 가볍게 꿈꿔볼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들이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청년들의 필요에 맞게 구성돼 있다. 가령, 가치살자 협동조합에서 운영 중인 문경 달빛탐사대에선 ‘로컬살이에 관심은 있으나 한 달은 부담스러운’ 청년들을 위해 2박 3일 동안 문경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취향마이 문경’이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은 청년을 주요 대상층으로 잡고 있기 때문에, 프로그램 구상부터 진행 방식까지 청년들의 눈높이에 알맞은 맞춤형 지방살이를 경험할 수 있게 지원한다.

  그럼에도 많은 프로그램들이 오래가지 못하고 사라질 위기에 놓이는데, 이는 예산 문제와 직결돼 있다. 1, 2년 남짓의 단기적인 정부 지원이 끊기고 나면 프로젝트 대부분이 이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청년을 지원할 수 없게 되고, 자연스레 실적 저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2020년부터 5년째 이어져 온 문경 달빛탐사대 역시 국비와 경상북도 예산 지원이 모두 종료되면서 사업 예산 확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를 거듭하며 축적될 지방 청년 간 관계 맺기를 위해서라도 청년 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장기적인 지원은 필수적이다.

  지방 체험 프로그램 등을 통해 지방살이에 관심을 보이는 청년들이 그 이상을 꿈꿀 수 있도록 각 프로그램 간의 연계에도 힘써야 한다. 이상호 박사는 “청년들이 지방살이와 관련해 여러 분야에서 관심을 갖고 좀 더 깊이 알고 싶어 하는 욕구를 느낄 때, 이를 단계별로 채워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며 “청년이나 청년단체를 중심으로 기획되는 프로그램들은 각자 흩어져 있어 넓은 범위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때문에 예산이나 지원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이런 청년 정착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지자체와의 협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도, 지방에 살고 싶은 청년들이 나타났을 때 그들을 충분히 환영할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 해당 논의의 밑바탕엔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필요한 충분한 금액적 지원도 당연히 포함된다. 그러나 청년이 어떤 삶의 형태로 어떤 지방에 뿌리내릴지에 따라 인적, 기술적 기반 등 필요한 지원의 형태가 달라질 수 있음을 세심히 고려해야 한다. 전북특별자치도의 경우, 청년 농업인 정책지원사업의 규모가 확대됐음에도 불구하고 청년 농업인구가 5년 새 41% 감소하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초기 투자금이 많이 드는 데다 초창기 수입원이 불안정한 농업의 특성상, 농지를 매매한 청년 창업농의 경우 농가부채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산부터 유통까지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한 산업임에도 이에 대한 지원은 이뤄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외에도 청년 농업인 육성에 있어 청년창업농과 후계농업인이 필요로 하는 지원방식이 다름을 고려해야 하는 등, 지방은 청년들이 각자 처한 상황에 맞는 복합적인 지원을 완비해 둘 필요가 있다. 일방적인 적응이 아닌, 서로 간의 오가는 환대 속에서 비로소 청년들은 살고 싶은 지방을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청년들이 함께 사는 지방 상상하기

  창업, 예술 활동과 같은 생산활동부터 취미생활, 사회활동, 정치 참여 등 다양한 층위에서 고립되지 않는 비수도권을 상상하려면, 결국 지방에서도 청년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청년이 부족한 지방이기에 청년의 목소리가 전달되기 위해서라도 더욱, 청년공동체 확충은 필요하다. 김지현 사무처장은 “커뮤니티가 그 지역에 애정을 갖게 하는 요소 중 하나인 것은 확실하다”며 “어떤 사람이 어떤 지역을 가든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들에게 정을 붙이는 것은 힘들겠지만, 커뮤니티는 의지할 수 있는 하나의 인적 기반이 돼준다”고 말하며 청년공동체가 경제적 기반만큼이나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골언니 프로젝트 포스터 ©농림축산식품부

  지방엔 이미 다른 청년들과 만나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 여러 방식으로 만남을 만들어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주관하에 진행 중인 ‘시골언니 프로젝트’는 도시의 청년 여성들에게 전국의 농촌에서 1주에서 2주 정도 살아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해당 프로그램의 핵심은 농촌지역에 먼저 정착한 여성 멘토와 함께한다는 점에 있다. 사업 소개에서 드러나듯 현지인의 현실적인 조언과 솔직한 후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은 ‘시골살이의 환상을 조금 덜어내고, 편견을 조금 허물어보는 시간’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무엇보다 비슷한 나이대의 청년 여성들끼리 인간적인 연결망을 형성해 나간다는 점에서 프로젝트는 의의를 지닌다. 교육 기간이 끝난 후에도 프로그램 참가자들끼리의 연결은 곧 타 지역민과 해당 지역을 연결해 주는 매개체가 된다. 또한 프로그램 참가자가 농촌에 정착하고 싶어 할 때, 프로젝트로 알게 된 멘토들을 통해 실질적인 조언과 도움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시골언니 프로젝트에서 이뤄진 또 다른 프로그램인 ‘시골언니들의 땡땡땡땡 상담소’는 이미 시골에 정착해서 살고 있는 여성들끼리의 연결을 도모했다. 이처럼 청년공동체는 청년들이 지방에서 잘 살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 것과 동시에 청년이 잘 살 수 있는 지방을 만들어 나가는 데 일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뿌리내린 청년들끼리 서로를 도와주면서 지방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고, 청년이 정착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지원을 자족적으로 채워갈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공동체는 지방 살리기의 주체로서의 가능성도 품고 있다. ‘2023년 경북 로컬체인지업’ 사업에 참여한 청년공동체 ‘청송친구들’이 그 예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고향 친구들끼리 모여 만든 청년공동체인 청송친구들은 청송에 대한 애향심과 더불어 청송에서 친구들과 오래 함께하고 싶은 마음속에서 탄생했다. 이들은 ‘2023년 경북 로컬체인지업’ 사업에 참여하며 다양한 프로그램과 커뮤니티를 추진했는데, 청송의 특산물인 사과를 활용한 ‘에이플(A+) 챌린지’를 통해 지역 농산물 판매에 일조하기도 했다. 이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성공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실제로 청송에 오래 발붙이고 산 존재들이기 때문이었다. 청송의 마케팅 요소가 무엇인지, 사과가 지역 내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알았기에 청송친구들은 자신들의 기억을 살려 건강한 습관을 만드는 참여형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사업의 일환으로 청년을 위한 원데이클래스를 추진하면서 또 다른 청년들과의 연결고리를 만들며 청년공동체를 확장해 나가기도 했다.

  지난 6월, 대전에선 ‘제1회 지방특별시 포럼’이 열렸다. 이 포럼은 참가자 대부분이 20~30대 청년들로 구성돼 있어 지방 문제에 대한 청년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공유됐다. 피상적인 논의가 아닌 실제적인 소통 속에서 청년 스스로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협업하고 목소리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청년들의 요구에 발맞춰 지속적인 지원을 이어 나가고자 하는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이 뒤따라야 하겠지만, 지방소멸 문제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 스스로를 재위치화하는 청년들의 움직임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청년들은 꿈을 꾼다. 거창한 꿈보다는 현실적인 꿈이 잦고, 스스로가 선택한 꿈보다는 세상에 의해 선택당한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행복하게 살 수 있길 바라는 기저를 공유한 채 꿈을 꾼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살고 싶은 공간이 어딘지를 모색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의 욕구는 쉽게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산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는 청년이 보장받아야 할 마땅한 권리다. 살고 싶은 곳을 찾을 권리, 그리고 그곳이 어디든 행복할 수 있을 권리. 그 권리를 되찾아주기 위해서라도 지방은 좀 더 살 수 있고, 살고 싶고, 함께 사는 공간이 돼야 한다. 우리는 어디서든 행복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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