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든 잘 살고 싶을 뿐인

나고 자란 곳을 떠나 서울에 사는 청년들을 만나다
▲인터뷰 참여자 정보 ⓒ빈채현

  청년 인구가 서울로, 수도권으로 이동할 때, 다른 한편에는 가속화된 청년 유출로 소멸을 우려하는 지역들이 존재한다. 2023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국내인구이동통계』에 따르면, 20대 가운데서만 5만 7천여 명이 수도권으로 순유입*됐고, 그중 약 80%는 서울로 향했다. 30대에서는 2만 3천여 명이 서울을 빠져나갔음에도 이들 대다수가 수도권 내에서 이동하는 경향을 보이며, 수도권 권역은 여전히 순유입을 기록했다. 비수도권 지역 중에선 대전, 세종, 충북, 충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20·30대 인구의 순유출이 나타났다. 

  청년 인구의 거취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빚어낼 핵심적 요인이다. 이들의 이동이 중요하다고 믿는다면, 통계에 미처 투영되지 않는 청년들의 삶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서울로 가겠다는 선택은 복잡한 조건들 속 최선의 삶에 대한 긴 고민의 결과기 때문이다. 현재의 지역 불균형은 청년들의 삶을 어떻게 방향 짓고 있을까. 이들이 원하는 삶은 어디에서 가능할까.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살고 있는 청년들이 〈서울대저널〉에 그들의 이야기를 나눠줬다.

▲인터뷰 참여자 정보 ⓒ빈채현

*순유입은 특정 지역으로 이동해 온 전입자가 그 지역을 빠져나간 전출자보다 많은 것을 의미한다. 전입자보다 전출자가 많은 반대의 경우는 순유출로 분류된다. 

각자의 상경

  상경(上京)은 단순히 서울로 이동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서울이 남한 영토의 북쪽에 위치하는 건 사실이지만, 서울에 ‘올라간다’는 관용적 표현이 단지 지도상의 위쪽으로 향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에 올라가고 고향에 내려간다는 일상적인 표현은 은연중에 서울을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만든다. 각자의 이유로 서울로 올라온 청년들에게 서울행은 어떤 의미였을까. 6인의 상경의 맥락을 들어보자.

▲인터뷰 현장

  서준 씨와 도연 씨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하며,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살게 됐다. 공주에서 자란 서준 씨는 “워낙 좁은 동네에서 오래 살다보니 꼭 서울이 아니더라도 다른 지역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도연 씨의 사정도 비슷했다. 제주도에는 대학도 2개뿐이고,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공간도 거리 하나 정도가 전부였다. 도연 씨는 늘 같은 공간에서 놀 수밖에 없는 자신을 보며 “대학교 때는 여기서 술 먹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고, 그 다짐을 이뤘다. 도연 씨에게 제주는 한 달 살기엔 좋을지 모르지만, 그 이상을 살기엔 답답하고 불편한 곳이다.

  지우 씨도 대학 진학을 위해 인구 3만 명 정도가 사는 지역인 강진군의 작은 마을에서 서울로 왔다. 초·중학교는 시골에서 나왔지만 고등학교는 전라남도 지역에서 꽤 큰 편인 사립학교에 진학했던 지우 씨는, 고교 생활을 통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또한, 도시 공학 전공을 꿈꿨던 고교 시절 책을 통해 서울에 있는 도시 공학 사례들을 많이 접했고, “대학교에 가면 그런 곳들도 직접 가보며 인사이트를 얻고 싶다”는 마음으로 서울에서의 생활을 꿈꿨다. 마찬가지로 대학 진학과 함께 서울에서의 삶을 시작한 민아 씨는, 학업을 마친 후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벌써 10년이 넘는 시간을 서울에서 보내고 있다.

  나경 씨는 대구에서 태어나 자랐고, 2019년 서울에 일자리를 구하며 서울에 살기 시작했다. 대구는 분위기가 보수적이고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느껴온 나경 씨는 학생 때부터 대구를 벗어나 서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갖고 있었다. 특히 어릴 적부터 TV에서 보던 큰 회사나 방송국이 서울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쉽게 말해 ‘서울이 주류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이후 대전과 김해에서도 거주한 경험이 있지만, 고향인 대구와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이었기에 서울로 가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전역 후 대학 생활보다 직장 경험을 먼저 해보고 싶었던 윤호 씨는 서울에 직장을 구하며 처음으로 고향인 대구를 떠나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꼭 서울에 있는 직장을 찾았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서울에 일자리가 많다 보니 서울에서 취직할 수 있었다. 윤호 씨는 평생 대구에 살며 “다들 서울이 좋다고 말하니 오히려 가기 싫은” 마음이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강교가 보이는 집에 살며, 주말이면 한강공원에서 휴식을 즐기는 성공한 삶”의 모습을 그려왔다. 

서울에 산다는 것

  기자가 만난 청년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서울은 요컨대 다양하고 편리한 공간이다. 많은 인구가 모여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가는 서울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하고, 그렇기에 조금 더 질 좋은 무언가를 향유하기 쉽다. 도서관, 미술관, 극장 등 다양한 종류의 문화 공간뿐 아니라 의료 서비스나 외식, 미용 등의 분야에서까지 서울에는 아주 폭 넓은 선택지가 마련돼 있다. 도연 씨의 말마따나 “빵집 하나를 가더라도 여러 선택지가 있는” 곳이 서울이란 것이다.

  비수도권 지역에선 이에 비해 선택의 폭이 좁으며, 때론 특정 분야에 관한 기반 시설이 전무한 경우도 있다. 도연 씨와 서준 씨는 문화생활과 관련한 영역에서 서울과 고향의 격차를 가장 크게 느낀다. 도연 씨는 “제주에는 연극이나 뮤지컬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고, 전국투어를 하더라도 제주까지는 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말했다. 서준 씨도 고향인 공주에서는 관심 있는 예술 분야에 관해 전문적인 강연을 듣거나 서적을 구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광역시부터 중소도시, 마을 단위까지 다양한 규모의 지역에서 온 청년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서울의 특징은 교통의 편리함이었다. 지하철과 버스 등의 대중교통이 도시 전체를 촘촘히 연결하고 있기에, 다른 어느 지역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이동성이 보장된다. 서준 씨는 공주에서는 제일 잦은 버스가 10분에 1대씩 있고, 보통은 1~2시간에 한 대씩 와서 서울과는 비교 자체가 어려운 수준이라 전했다. 지우 씨도 읍내로 나가려면 하루에 6번 오는 버스를 타야 했다고 말했다.

  교통의 편리함은 택배나 배달 서비스의 차이로도 이어진다. 제주에서 온 도연 씨는 처음 서울에 왔을 때 하루가 채 되지 않아 택배가 배송되는 걸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제주에서는 상품을 구매한 후 2~3주를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제주 안에서도 시골에” 살았던 도연 씨는 택배가 집 앞까지 배송되지 않아 차를 타고 나가 주문한 물건을 찾아 와야 했다고 덧붙였다. 

  나경 씨는 좋은 인력이 서울에 모이면 좋은 서비스가 창출되고, 좋은 서비스가 축적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서 살고 싶어지는 순환 구조가 서울과 지방 간 격차를 키운다고 지적했다. 물적·인적 인프라의 집중은 다양한 측면에서 이들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현재 스타트업에 종사하고 있는 윤호 씨의 경우, 서울에서 살기 시작한 후로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많아졌다. 인적 인프라가 집중된 서울은 관심 분야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기에도 확연히 유리한 공간이다. 이런 집중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유행이 서울에서 시작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윤호 씨는 서울에 사니 유행을 더 빨리 읽을 수 있다는 점도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의 경쟁적인 분위기와 높은 물가는 서울에서 계속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지를 회의하게 만들기도 한다. 민아 씨는 대학에 진학하며 상경했던 2012년 무렵에는 10년 후 훨씬 나은 거주지에 살고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 사이 물가와 집값이 너무 올라 생활 여건은 여전히 1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서울에 산다는 건 높은 값을 지불하며 좁은 집에 살아야 하는 “가성비 나쁜 주거 환경”을 감당하는 일이다. 서준 씨는 이에 더해 “집값도 문제지만 서울이란 도시 자체가 개인들에게 계속 무언가를 더 요구한다고 느낀다”고 털어놨다. 서울에 사는 이상,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경쟁의 압박에 끊임없이 노출된다는 것이다.

  열악한 녹지 접근성에 대한 지적도 존재했다. 지우 씨는 서울엔 녹지가 부족하고, 그마저도 그린벨트 주변으로만 모여 있어 녹지에 대한 접근성이 낮다는 점을 서울살이의 답답한 점으로 뽑았다. 특히 아주 가까이에 산림 국립공원이 있는 지역에서 온 지우 씨는 서울의 공기가 나쁘다는 것을 확실히 체감한다고 덧붙였다.

지방이 사라진다는 것

  지방소멸은 기자가 만난 청년들의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 중요한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서울로 유출된 청년 당사자로서, 이들은 지방소멸이 문제적이란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나경 씨는 서울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변함없지만, 자신이 “서울에서 꾸려갈 삶을 위해서도 서울과 지방의 균형은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로 유출되는 청년 인구가 계속해서 많아진다면, 서울에서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도연 씨는 대부분의 자원이 서울에만 집중돼 있기 때문에 “서울에서 태어났거나 산다는 것 자체로 얻는 이점이 너무 많다”는 점을 꼬집으며, 지방소멸이 심각한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또한 “서울에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집값이 계속 오르지만, 정작 지방에는 남아도는 빈집과 땅이 많은” 현재의 상황이 매우 비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지방소멸의 요인으로는 일자리 문제가 가장 많이 지목됐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도연 씨는 일자리만 있다면 제주로 돌아가 살고 싶은 생각이 크고, 주변에도 직장 문제만 해결된다면 고향에서 살고 싶다는 친구들이 많다. 민아 씨는 서울 내에서도 일자리가 밀집된 여의도나 강남 등이 아닌 외곽 지역에서는 주민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이는 청년 인구의 이동이 일자리의 분포와 직결됨을 시사한다. 민아 씨는 최근 경기 화성시를 방문했을 때 저출생 문제가 와닿지 않을 만큼 어린이가 많다고 느꼈다며, 그 이유를 “대기업 산업단지가 조성돼 있기에 많은 청년 인구가 거주할 수 있다”는 데서 찾았다. 실제로 화성시는 전국에서 소멸 위험이 가장 낮은 지역 중 하나로, 최근 10년 동안 인구가 40만 명이나 늘었다. 2024년 9월 기준 화성시의 평균 연령은 39.7세로, 같은 시기 전국 평균인 45.2세나 경기도 평균인 43.4세와 비교해서도 확연히 젊다. 새로 태어나는 인구도 많아, 2023년 기준 0.98명의 합계출산율을 보였으며, 전국의 기초지자체 중 가장 많은 출생아 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청년들의 지역 선택이 단지 일자리의 유무에만 걸린 문제는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다. 윤호 씨는 청년들은 보통 유명한 대기업을 바라보고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가려고 하지만, 이는 “비수도권 지역에도 좋은 기업들이 있다는 걸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취업했을 때 받을 수 있는 급여나 복지 수준이 수도권 기업보다 나을 수 있음에도, 지방에서의 삶 자체가 긍정적으로 고려되지 않기 때문에 지방 기업들에 관한 인식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평균 임금이 격차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히 일자리의 양이나 질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관해 지우 씨는 “외부 인구가 지방으로 유입되는 것도 중요한데, 이들 대부분은 도시 생활에 대한 이상을 갖고 있다”며, “정말 좋은 기업이 있어도 의료, 교통 인프라 등이 다 갖춰지기는 어렵고, 생활 기반이 열악하다는 점 때문에 지방으로 못 가는 경우도 있다”고 꼬집었다. 지우 씨는 한국전력공사(한전) 본사가 전라남도 나주로 이전하며 이를 중심으로 빛가람혁신도시가 조성됐지만, 기대만큼 사람들이 많이 이주해 오지 않아 공동화 문제가 대두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특히 주중엔 나주에 머무는 직장인들이 주말이면 수도권을 비롯한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주말 공동화 현상이 현재까지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전 본사가 나주로 이전한 지 10년째가 되는 올해, 나주 빛가람혁신도시의 인구는 여전히 정부가 설정한 계획인구의 80% 수준에 머무는 실정이다. 교통과 교육, 문화 인프라 등의 정주 여건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이 주요한 원인으로 거론된다. 

▲광주·전남 공동(나주 빛가람) 혁신도시 전경 ⓒ나주시

  일자리뿐 아니라 교육 문제에 있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방에서 입시 상담 일을 했던 나경 씨는 “방학이 되면 학생들을 서울로 보내서 공부시키는 경우가 많았다”며, “지방에서는 만족스러운 학습 결과를 얻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고 밝혔다. 수도권 외의 지역에서 아이를 낳거나 키우지 않으려는 경향은 질 좋은 교육이 서울에만 몰려있는 현실에도 기인한다. 나경 씨는 “학벌이 한국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기 때문에 입시의 중요성이 이렇게까지 대두되는 것 같다”며, 대학 또한 서울과 지방에 고루 분포돼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대학 진학과 취업으로 이어지는 선형적인 경로가 정답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 이런 정형화된 삶은 언제나 서울을 배경으로 삼는다. 우선 ‘괜찮은’ 대학이나 기업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에 모여있다. 괜찮은 삶을 지탱하는 또 다른 축인 의료, 교육, 문화 시설 등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대학에 입학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루는 규격화된 삶의 단계들 역시, 서울, 적어도 수도권의 범위 안에서만 이뤄져야 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서준 씨는 “이미 모든 기준점이 서울에 가있다 보니 막연히 서울에 가야 한다거나 지방을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인식의 차원에서도 변화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지방소멸이 가져오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완화하는 방식의 대응이 보다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지우 씨는 “지방 재생이나 지역 브랜딩보다는 그 지역의 인프라들을 중심지로 모아서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고자 하는 압축도시의 방향에 더 찬성하는 쪽”이라 밝혔다. 지우 씨가 살던 강진은 최근 몇 년간 지방소멸 대응 우수 사례로 뽑히며 지속적으로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받고 있다. 그러나 지방 재생을 취지로 진행되는 여러 정책이 “관광객을 유치하거나 거주인구가 아닌 생활인구를 늘리는 방향을 지향”하다 보니, 정작 삶의 기본적인 여건과 맞닿는 주거 환경의 개선은 미흡했다. 지우 씨는 어린 시절 피부를 꿰매는 간단한 처치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없어 다른 시 단위 지역에 갔어야만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는데, 이렇듯 “의료, 교통 등의 기본적 생활 여건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지방소멸 대응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거주민들이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우려를 표했다.

어디에서 살 것인가 

  결국 어디서 사느냐의 문제다. 청년들은 앞으로의 삶의 기반을 어디로 계획하고 있을까. 청년이 꿈꾸는 미래는 어디에서 가능할까.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윤호 씨와 민아 씨, 나경 씨는 앞으로의 삶을 서울에서 이어 나가고자 한다. 서울에 살며 잃는 것도 많지만, 얻는 것이 더 많다고 믿기 때문이다. 민아 씨는 “신체적으로 건강한 삶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의료기관과 정신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줄 교육 시설 등이 갖춰진” 서울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앞으로는 더 넓고 좋은 주거지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란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나경 씨는 서울에서만 누릴 수 있는 다양하고 편리한 서비스를 포기하고 싶지 않지만, 서울이 언제까지나 자신을 환영해 줄 것이라곤 확신하지 못한다. 서울에선 키오스크로 주문하거나 앱으로 택시를 호출하는 게 어느덧 당연한 풍경이 됐고, 이러한 변화는 지방에서보다 훨씬 빠르고 급격하게 일어났다. 나경 씨는 “지금은 생산 활동을 쌩쌩히 해낼 수 있는 청년이기에 경쟁적인 분위기에서 질 좋은 서비스들을 누리고 있지만, 최신 기술로부터 소외돼 정보를 얻기 어려운 노년이 됐을 때도 서울에서 지금처럼 만족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학 생활을 하고 있는 서준 씨는 “아직 많은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지방으로 돌아가도 상관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대학원에 가서 학업을 이어가려면 서울에 있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기에, 경기권으로 생활권을 옮기는 것을 고려하고 있기도 하다. 물가를 포함한 삶의 피로도 전반을 고려할 때, 서울 안에서 만족스러운 삶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도연 씨도 “하고 싶은 것을 더 배우고, 전문성을 갖춰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수도권에 머무르거나 해외로 나가서 지내게 되지 않을까 예상한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뭘 안 해도 될 때”, 즉 은퇴한 이후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지우 씨는 수도권 내의 신도시에 살고 싶다는 상상을 자주 한다. “원래 살던 지역으로 돌아가는 건 피하고 싶지만, 장기적으로 서울에서 사는 건 당장 집을 구하는 것부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지우 씨는 “도시 공학적으로 최신의 기법, 장치, 설계들이 도입된 신도시에서 살면서 가끔 서울에서 하는 콘서트를 보고 싶을 때 교통편을 이용해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정도”의 삶을 꿈꾼다. 큰 녹지를 중앙에 두고 설계된 신도시에서는 서울의 아쉬운 점 중 하나인 녹지에 대한 접근성도 해소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지방소멸 문제의 핵심이라 여겨지는 청년 세대는 원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그리고 싶은 미래를 그리기 위해 서울로 향했다. 이들은 서울의 극심한 경쟁과 폭등한 물가에서 각자 살아남아야 한다는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럼에도 수도권 안에 머무르며 서울에 걸친 삶을 지속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불투명한 미래 앞, 그나마 믿어볼 만한 선택지가 수도권이기 때문이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에겐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지만, 이들의 선택이 조금이나마 나은 삶을 지향한 결과라는 점은 같다. 그 선택들이 모여, 전국 청년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으로 몰린 형국이 됐다. 지방 청년에게는 수도권으로 떠나거나 고향에 남겨지는 두 갈래의 길밖에 없는 듯 보이고, 이는 과밀한 수도권에서 또 다른 문제들을 낳는다. 지방소멸이라는 현실은 출신 지역을 넘어 청년 세대 전체의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어디서든 잘 살고 싶을 뿐인 청년들이지만, 수도권에서의 삶도 지방에서의 삶도 갈수록 힘겨워진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인 지형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고쳐나가야 할 때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도 삶의 가능성을 그려볼 수 있을 때,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더 나은 삶을 일궈갈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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