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시나요?

3일간의 ‘건강한’ 식사 도전기
▲기자의 지도 앱 목록 ‘맛있겠다...’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녀?” 아주 흔하고도 친절한 인사말이다. 밥을 잘 챙겨 먹는다는 건 곧 삶을 잘 챙긴다는 의미기도 하다. 잘 챙겨 먹으며 나를 잘 돌보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걸까? 바쁘고 고단한 와중에도 많은 이들이 건강한 식생활에 관심을 갖고 실천하려 애쓴다. 

  그런데 건강하게 먹는다는 건 어떻게 먹는 것이고, 어떻게 가능할까? 결국 건강하게 먹기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편에는 마라탕과 요거트 아이스크림이, 다른 한편에는 단백질 셰이크와 간헐적 단식이 놓인 현대식(食) 스펙트럼 위에서, 3일 동안 건강에 초점을 맞춘 식사에 도전했다. 기자는 밥을, 그리고 삶을 잘 챙길 수 있었을까?

먹기, 그런데 건강을 곁들인

  음식은 건강을 위해 필수적이고 중요한 요소지만, 우리가 언제나 건강만을 위해 먹는 건 아니다. 실은 많은 이들이 건강이 아닌 다른 이유로 먹고, 먹는 일을 생각한다. 지난 10월 종영한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2024)의 폭발적인 인기나 SNS에서 빈번하게 공유되는 맛집 콘텐츠는 맛있고 멋있는 음식에 대한 대중의 강한 욕구를 방증한다. 기자의 핸드폰 지도 앱에도 ‘맛있겠다…’라는 제목으로 517곳의 식당 및 카페가 저장돼 있다. 

▲기자의 지도 앱 목록 ‘맛있겠다…’

  최근엔 ‘건강하게 먹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마라탕과 탕후루 같은 자극적인 음식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건강을 우려하는 경고의 목소리도 함께 떠올랐기 때문이다. 공복 상태에서 특정 음식을 먹은 뒤 혈당이 급격히 올랐다가 내려가는 현상을 일컫는 ‘혈당 스파이크’를 경계하기도 하고, SNS를 중심으로 ‘저속노화’ 식단에 관심이 증가하기도 했다. 대형 배달 앱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 형제들’이 주문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성한 ‘배민트렌드 2024 가을·겨울 편’을 보면, 디카페인·저칼로리·저염·무첨가 식품의 주문량이 지난해에 비해 눈에 띄게 오른 걸 확인할 수 있다. 

▲배민트렌드 2024 가을·겨울 편 ©우아한 형제들

  한편 건강하게 먹기를 향한 관심이 증가하는 걸 지켜보는 기자 개인의 식습관은 형편없는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연달은 수업 탓에 주 4회 이상의 끼니를 편의점에서 해결했고, 돈을 아껴보겠다는 마음에 식사를 거르고 초콜릿을 먹기 일쑤였다. 요즘 유행하는 저속노화 식단이 무엇인지는 잘 몰라도, 지금 나의 생활이 건강 악화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안다고 해서 브레이크가 자동으로 걸리는 건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여유로운 식사 시간보다는 삼각김밥을 입에 넣고 과제를 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심심한 맛의 음식보다는 스트레스가 풀리는 자극적인 음식이 필요했다. 

  학기의 절반이 지날 동안 두 번의 장염을 앓고 나서야 나의 먹기에도 건강을 곁들일 필요가 있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잘 챙겨 먹는 게 왜 이리 어려운 건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음식과 건강과 삶을 모두 챙기며 살아가는 건지. 궁금증을 안고 건강을 최우선의 목표로 둔 먹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건강한 식단 찾아 삼만리

  도전을 다짐한 순간 떠오른 첫 번째 질문, 어떻게 먹는 게 건강하게 먹는 걸까? 20여 년 동안 끊임없이 먹어왔으면서, 마치 처음 음식을 찾아 나서는 사냥꾼처럼 뭘 먹어야 할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영양학회, 국가건강정보포털을 돌아다녀 보니 어디서든 공통으로 제시하는 지침이 있었다. ▲균형 잡힌 식단 ▲적정량 ▲덜 짜고 덜 달고 덜 기름진 식단 ▲가공식품과 설탕 줄이기였다. 정제된 곡물보다 통곡물이 좋고, 신선한 과일과 채소가 도움이 되며, 생선과 콩류 등 좋은 단백질과 지방을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강조됐다. 그렇구나…. 그래서 내일 뭘 먹으면 된다고?

  원칙만 나열된 정보로는 건강한 식단을 구성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대로는 식품 구성 자전거만 노려보다 실패할 것 같아 방향을 조금 틀었다.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나열하고, 이를 제하는 방식으로 식단을 구성하고자 했다.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세계 10대 불량식품은 ▲숯불구이 ▲기름에 튀긴 식품 ▲소금에 절인 식품 ▲설탕에 절인 과일 ▲가공된 육류 ▲과자 ▲아이스크림 ▲탄산음료 ▲간편 조리 식품 ▲통조림이다. 흡사 기자의 과거 식단 구성과 다르지 않아 보이는 목록이었다. 이 열 가지는 꼭 제외하겠다고 다짐하며 본격적으로 식단을 구상했다. 

  도전 일자인 11월 18일부터 20일까지의 일정과 여건을 고려하고, 건강관리 앱으로 영양소와 열량을 계산해 매일 세끼 식단을 구성했다. 통곡물과 건강한 단백질, 채소가 꼭 들어가도록 했고, 간식이 당길 땐 초콜릿이나 과자 대신 과일을 먹기로 했다. 일반 식당의 음식은 영양 성분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외식은 최대한 자제하기로 했다. 아침은 꼭 요리해 먹기로 하면서도, 기자의 요리 실력과 시간을 고려해 간편한 메뉴로 구성했다. 가족과 함께 살고 있지만 도움을 받지 않기 위해 3일간의 식재료를 따로 구입했고, 같은 식탁에서 별개의 음식을 먹겠다고 미리 양해를 구했다. 

▲식단 계획표 ©빈채현

  기자가 직접 짠 이 식단이 완벽하게 건강한 것도, 건강식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여건이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해 잘 챙겨 먹어보겠다는 굳건한 의지가 담긴 식단표였다. “잘 먹겠습니다!”하고 외치며 여정에 뛰어들었다.

Day 0-1 : 첫째 날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본격적인 도전을 시작하기도 전에 휘청거렸다. 마트에서는 고작 신용카드 두 개 크기인 연어를 1만 4천 원에 팔았다. 가격은 두 번 나눠 먹을 정도였으나, 양은 두 번 식사하기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다른 생선으로 눈을 돌리니 연어의 세 배만 한 민어가 같은 가격에 놓여있었다. 건강만을 생각하자고 다짐했지만, 크게 차이 나는 ‘가성비’에 연어를 고이 내려두고 민어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한편에서는 민어 다섯 마리를 묶어 5만 원에 팔았는데, 마리당 가격은 만 원을 가뿐히 넘겼음에도 한 마리만 장바구니에 담았다. 다섯 마리의 민어가 상하기 전에 먹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식재료 구입에 총 34,900원을 지출했다. 이것으로 일곱 끼를 해결하는 것이니, 어림잡아 한 끼를 약 5,000원에 해결하는 셈이었다. 

  본격적인 Day 1. 월요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수업이 연달아 있다. 항상 편의점 가공식품을 먹거나 아예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기에 꼭 점심 도시락을 싸기로 했다. 저녁 7시에는 과외가 있어 근처에서 포케를 먹기로 계획했다. 바깥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 중 그나마 건강과 맛을 고루 충족한다는 생각에, 아껴둔 패를 내밀듯 정한 메뉴였다. 

  9시 수업을 위해서는 7시 50분에 집을 나서야 하고, 아침을 요리해 먹고 점심 도시락을 싸기 위해서는 7시 전에 일어나야 했다. 그리고 나는 7시 55분에 눈을 떴다. 식사는커녕 가방을 잘 챙겼는지도 모르게 튀어 나갔다. 첫날 첫 끼부터 목표를 지키지 못해 죄책감이 상당했다. 특히나 아침 식사가 그렇게 중요하다던데, 월요일 아침은 정말 힘든 것이구나 생각하며 졸린 눈으로 학교에 도착했다. 

  11시 50분에 수업이 끝났고, 12시 수업을 가기 전 재빨리 편의점에 들렀다. 도시락을 못 쌌으니 어떻게든 점심을 챙겨보려는 의지였다. 무엇보다 공복 상태로 3시까지 버티다가는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마구 먹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편의점에서 뭘 사야 가장 건강하게 먹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건강, 고단백, 저염 등의 단어가 붙은 샌드위치와 김밥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건강할까, 가공식품인데 괜찮을까, 근데 맛있어 보이는데, 따위의 고민을 오가다 ‘통밀 에그 맛살 샌드위치’를 집었다. 

▲점심으로 먹은 ‘통밀 에그 맛살 샌드위치’

  수업 후 5시에는 교수님과의 면담에서 작은 쿠키를 하나 먹었다. 상자째로 건네시며 먹으면서 얘기하라고 말씀하시는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집어 먹었다.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에서 쿠키라도 먹으니 왜인지 긴장감이 풀리는 것 같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눈앞에 놓인 달콤한 음식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단 음식이 한 번 들어가니 더 먹고 싶어졌는데, 저녁에 먹을 포케를 생각하며 참았다. 그리고 저녁은 계획대로 포케를 사 먹었다. 

▲첫째 날 건강관리 앱 결과

  첫째 날의 식사를 돌이켜보니 의외로 영양소 균형은 나쁘지 않았지만, 섭취 열량이 목표량의 절반에 그쳤다. 무엇보다 아침을 거르고 점심을 가공식품으로 먹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점심까지의 목표가 어그러졌을 땐 아무거나 먹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기도 했다. 영양학적 측면만을 고려해 식단을 짰더니 이를 지키는 데에 예상보다 많은 걸림돌이 있었다. 그래도 대놓고 자극적인 음식은 먹지 않았으니 괜찮은 편이 아닐까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렇게 첫째 날을 마무리했다. 

Day 2 : 만 원의 행복

  11월 19일 화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인권센터 자원 활동이 있고, 1시간의 점심 식사 시간과 더불어 식비 1만 원이 제공된다. 내 돈 내지 않고 밥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면서도, 늘 1만 원어치의 식사보다는 6천 원짜리 편의점 음식과 4천 원의 커피를 구매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근처의 백반집을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포케를 찾아봤으나 1시간 내로 먹고 올 수 있는 거리에 포케 가게가 없었다. 아쉬움에 그나마 가까운 가게의 메뉴를 노려보다 가장 저렴한 메뉴가 10,500원인 걸 알고 깔끔하게 포기했다. 이날은 흔치 않게도 저녁에 일정이 없는 날이었는데, 만나자는 친구의 유혹을 뿌리치며 집에서의 저녁을 지켜냈다. 디저트를 꼭 같이 먹기로 한 친구였기에 만나서 샐러드만 먹고 헤어질 바엔 다음에 만나기를 기약했다. 

▲아침으로 먹은 민어 구이

  등교하는 날 같으면 집을 나서고도 남아야 했을 시간을 지나, 8시에 느지막하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요리하는 게 크게 어렵지 않았다. 생선을 구워 밥과 채소와 함께 먹으니 기분이 좋았다. 그 이유가 계획대로 성공해서인지 아니면 건강하게 먹어서인지 알 수 없었지만, 스스로 차려 먹은 이 아침 사진을 후에도 자주 들여다봤다. 별 건 없지만 잘 챙겼다는 생각이 들었고, 식탁에 올라와 있는 모든 음식의 성분과 조리 과정을 스스로 다 알고 있다는 감각이 좋았다. 

  오후 12시, 식사용 카드를 들고 곧장 찾아놓은 백반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화요일은 정기 휴무일이었다. 허무하게 틀어진 계획 탓에 길에 덩그러니 서서 슬퍼하며 다른 선택지를 모색했다. 주변 음식점을 검색하니 고깃집이 대부분이었고 디저트류를 파는 카페가 몇 개 있었다. 편의점에서 파는 샐러드라도 먹을까 하고 돌아가려는 찰나 다른 활동가를 만났다. 사정을 들은 그는 자신은 쌀국수를 먹으러 가던 길이었는데, 같이 가겠느냐고 물었다. 쌀국수 정도면 차선책으로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를 따라갔다. 

  쌀국수는 맛있었고, 특히 숙주가 많아 제법 위안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런데 쌀국수보다 더 좋았던 건 활동가와의 대화였다. 이주여성 당사자로서 활동하는 그의 개인적인 얘기를 듣는 것이 좋았다. 동묘의 길거리를 바라보며 “여기 있으면 사람 사는 것 같다”고 얘기했고, 가고 싶은 해외 여행지를 공유하기도 했다. 쌀국수가 백반보다 얼마나 건강한지는 몰라도, 매번 혼자 먹던 점심보다 지금 이 순간이 더 건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챌린지를 계획할 땐 무엇을 먹을지만 고민했을 뿐, 누구랑 먹을지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정해놓은 식단을 지키려다 친구와의 약속을 미루거나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며 대부분의 식사를 혼자 하기 일쑤였다. 누군가와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게 건강하게 먹기에 포함될 수 있다는 걸 느낀 순간이었다. 

  저녁은 계획대로 두부를 부쳐 먹었다. 곁들인 베이비채소가 벌써 조금 시든 듯한 느낌이 있었지만, 그런대로 먹었다. 잘 챙겨 먹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이날 단백질 섭취량이 부족한 것으로 기록됐다. 단백질 음료라도 먹을까 고민하다 특유의 인공적인 맛으로 하루를 끝내고 싶지 않아 관뒀다. 

▲둘째 날 건강관리 앱 결과

Day 3 : 여유는 없어도 밥은 잘 먹고 싶어서

  11월 20일. 수요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수업 두 개, 오후 4시 30분부터 9시까지 과외 두 개가 있는 날이다. 두 수업 사이, 두 과외 사이 각각 10분의 시간이 있다. 수요일은 늘 진이 빠지는 하루였다. 이렇게 일정을 짠 학기 초의 기자는 하루 정도 식사 따위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점심은 도시락을 가져가고, 저녁은 어쩔 수 없지만 편의점에서 빠르게 먹고 가기로 계획하며 하루를 잘 지내보자고 다짐했다. 

  첫째 날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자 아침에 일어나는 데 최선을 다했다. 다행히 비몽사몽 일어나 요리하고 도시락을 챙겼다. 그러면서도 챌린지가 아니고서야 쉬이 못 할 일이라고 느꼈다. 오후 수업을 들으며 도시락을 먹었는데, 웃기게도 수업을 들으면서 먹으니 오히려 천천히 먹을 수 있어 좋았다. 그동안은 얼른 식사를 끝내고 돌아가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자주 사로잡혔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 좋았다. 시간이 없거나 심리적 여유가 없어서 식사를 허겁지겁 마쳤던 순간들도 떠올랐다. 오랜 시간 품을 들여 요리한 음식도 몸에 좋지만, 무엇보다도 그 음식을 천천히 먹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주어질 때 더 건강해질 수 있단 걸 느꼈다. 오후 수업이 흥미 있는 수업이었던 것도 한몫했다. 들을 때마다 괴로운 수업이었다면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도 건강하다고 느끼기보다는 두 배로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으로 먹은 도시락

  강의실에서 먹다 보니 음식 냄새가 강하지 않아야 하는 것도 중요했다. 이를 고려해 식단을 구성한 건 아니었는데,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또 당근 씹는 소리가 꽤 크게 나는 것 같아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한편으로 고구마와 당근, 계란의 조화로운 빛깔이 고와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맛집’이란 해시태그로 SNS에 업로드되는 음식 사진이 아니라 이런 단순한 조합을 보고도 예쁘다고 느껴지는 게 신기했다. 

  아침과 점심을 든든하게 먹었기 때문에 편의점 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걱정을 조금 덜었다. 그런데 이때 예기치 못한 부고 연락을 받았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챌린지의 마지막 식사는 편의점 음식이 아닌 육개장이 됐다. 조문을 드린 후 사촌과 마주 앉아 육개장을 먹으며 꽤나 오래 멍했다. 이 상황에서 챌린지 생각이 드는 것이 우습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사촌이 “언니 육개장 먹어봐, 진짜 맛있어.”라고 말하며 수저를 들었다. 그 자리에서 나도 수저를 들어 육개장과 수육과 김치를 먹었다.

▲셋째 날 건강관리 앱 결과

챌린지를 마무리하며

  3일간의 건강하게 먹기 도전은 이렇게 끝이 났다. 결과적으로 하루에 한 끼씩은 목표대로 지키지 못했다. 식단표를 짤 땐 영양학적 요소만 고려했는데, 막상 이를 실제로 실천하는 데는 훨씬 다양한 고려가 필요했다. 돌이켜보면 각종 이유로 흔들렸다. 가성비와 시간이 부족해서, 잠과 의지가 부족해서, 선택지가 제한돼서, 상황이 변해서, 사람이 달라져서. 3일만큼은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먹자고 다짐했지만, 주어진 여건과 상황에서 ‘건강’이라는 요소만을 따로 분리해서 고려하기는 어려웠다. 

  모든 식사가 의도대로 흘러간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의지가 담긴 실천만으로 뜻깊은 순간들이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요리하는 건 분명 힘든 일이지만, 예전엔 막연한 불안과 부담으로 다가왔다면 지금은 조금이나마 친근한 일이 됐다. 대충 때우지 않고 갖춰 먹는 아침 식사가 하루의 힘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느꼈다. 어떤 음식이 정말 건강한지 한 번 더 의심해보는 건 귀찮은 일이었지만, 더 나은 선택지로의 길을 열어줬다. 건강한 식사가 맛있고 멋있는 식사의 반의어가 아닌 유의어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무엇보다도 내가 먹는 것을 스스로 알고 조정하는 기쁨은 내 삶을 챙긴다는 자부심으로 이어졌다.

  그런가 하면 건강하게 먹기의 개념 자체가 확장되기도 했다. 단지 무엇을 먹는지 뿐만 아니라 얼마만큼의 시간과 돈을 쓰며 먹는지, 누구와 먹으며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어느 곳에서 어떤 마음으로 먹는지 등이 건강한 식사와 연결됐다. 목표를 설정하며 생각했던 ‘건강한’ 식사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요소들이지만, 나는 그런 요소들로 인해 건강하게 먹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챌린지 후에도 건강하게 먹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모든 하루를 삼시세끼로 쪼개고 계획하며 살기는 어려워도, 하루 한 끼라도 건강하게 먹기 위해 고민하는 것 자체가 삶을 챙기기 위한 브레이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건강하게 먹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싶은 만큼, 바라는 점도 많아졌다. 어떤 것이 건강한 음식인지 더 쉽게 알 수 있으면, 건강한 음식을 만들고 먹을 여유가 더 많았으면, 함께 즐겁게 먹을 수 있는 순간이 더 많아졌으면 하고 바라게 됐다.

삶을 잘 챙기기 위해 밥을 챙기고자 했는데, 밥을 잘 먹기 위해서도 삶을 돌아봐야 했다. 건강하게 먹는 일이 너무 힘에 부치는 일이 아니기를 바라며, 다시 한번 이렇게 묻는다.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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