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호에서는 세 편의 책과 한 편의 뮤지컬을 소개합니다.
『일인칭 가난』
안온, 마티, 2023.
천세민 기자(chunsemin011@snu.ac.kr)

20여 년간 기초생활수급자로 생활한 저자가 자신의 가난에 대해 말한다. 부족한 시간 자원은 꿈을 갉아먹었고, 글을 쓰고 싶었지만 언제나 돈이 먼저였다고. 20대 청년이나 MZ세대와 같은 말에 자신의 자리는 없었다고. 자신의 가난은 어쩔 수 없는 불운이 아닌 “교통사고, 알코올중독, 여성의 경력 단절과 저임금, 젠더폭력 및 가정폭력과 세트”였다고.
저자는 일인칭 시점에서 말해진 가난의 이야기가 지금보다 많아지길 요구한다. 현재의 빈곤 계측 모델은 제도의 사각지대를 메울지언정 가난과 자신의 삶을 분리할 수 없는 이들의 목소리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신청주의에 기반한 한국의 복지제도에선 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상황을 수치로 파악해 신청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 가난이 숫자로 환원되는 과정에서 수급은 권리가 아닌 낙인이 되고, 가난은 개인의 책임이자 불운이 된다.
때문에 저자는 비슷한 좌절의 경험을 가진 이들이 책을 통해 “우리를 알아가길 바라면서” 자신의 삶에 침투한 가난의 흔적을 찾아간다. 그렇게 당신의 고유한 이야기가 또다시 이 위에 쌓이길 소망한다.
『은엉겅퀴』
라이너 쿤체, 전영애·박세인 옮김, 봄날의책, 2022.
홍인표 기자(han0727@snu.ac.kr)

엉겅퀴라니. 너무 귀엽다. 엉성한 세 음절이 달라붙은 낱말의 꼴도, 민들레처럼 조그맣게 피는 꽃의 꼴도. 쿤체는 시에서 은(銀)엉겅퀴를 “뒤로 물러”서서 “땅에 몸을” 대는 식물로 그린다. 은엉겅퀴는 “남에게/그림자 드리우지 않”고, 다만 남의 그림자 속에서 작게 빛난다. 쿤체의 목소리는 은엉겅퀴처럼 작달막하다. 그의 시어들은 인식의 응달 속에 숨어들지만, 날아드는 빛을 놓치지 않고 때로 세상을 향해 가장 날카로운 반사광을 되비추기도 한다.
물러나기. 에두르기. 말을 아끼기. 쿤체의 서정시가 고수하는 소극성은 그가 살았던 현실과 맞물려 가장 적극적인 용기로 나타났다. 당시 사회주의 국가인 동독은 “강성의 프로파간다 언어가 난무”했고, 그 가운데 쿤체의 침묵은 도리어 “저항의 표지”가 됐다. 쿤체는 한 발짝 물러난 자리에서 대상을 제대로 느끼고 판단하는 법을 시로 적어낸다. 그럼으로써 이 시집은 말의 확장이 아닌 감축이 대상에 관한 가장 강력한 비판이 되기도, 혹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준다.
뮤지컬 「이터너티」
예스24 아트원 1관, 2024.09.19.~ 2024.12.08.
정유림 기자(jul2001@snu.ac.kr)

“그 모든 순간은 지금 날 위하여, 영원한 난 이터니티”
1960년대, 글램록 스타인 블루닷은 자신의 노래로 영원히 기억되고자 하지만 대중들은 더 이상 그를 찾지 않는다. 이제는 아무도 블루닷의 노래를 듣지 않지만, 그를 동경하며 그와 같은 글램록 스타가 되길 선망하는 카이퍼는 그를 기억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기억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래한다. 각자의 시간 속에서 두 사람은 글램록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 부딪히지만, 둘은 마침내 하나의 영원을 노래한다.
화려한 조명과 라이브 밴드의 향연이 이어지는 무대와 대비되게 극은 화려함 속에 가려진 외로움, 자신의 노래가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조명한다. 그리고 각자의 과거와 미래가 하나의 음악이 돼 현재의 불안하고 상처받은 자신을 위로한다. 너와 내가 기억하기에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그렇기에 영원하다는 것. 콘서트 현장을 방불케 하는 커튼콜을 함께하며 글램록을, 그들의 세상을 경험해 보길 바란다. 대중적이진 않더라도 화려한 가발과 의상이 자신의 정체성이었던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조금 망한 사랑』
김지연, 문학동네, 2024.
이다빈 기자(qlsekdl11@snu.ac.kr)

김지연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조금 망한 사랑』이 나왔다. 그가 바라본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은 거대하지 않다. 소심한 원망과 소심한 체념, 사소한 아픔과 사소한 겁, 애매한 지질함에서 벗어나고 싶어 짜냈던 애매한 용기, 잠깐의 미루기와 그렇게 영영 미뤄진 어떤 관계들. 그런 작은 마음과 움직임이 하나의 톱니가 돼 세상을 굴린다. 굴러간 결과 누군가의 세상이 송두리째 바뀌기도 하고 내가 사랑했던 너와의 관계가 영영 망해버리기도 하지만, 주인공들은 이 엉망진창의 세상 속에서 계속 다음 날을 살아간다. 조금 망했다는 건 전부 망하지 않았다는 것, 딱 그 정도의 무게여야 하니까.
그러나 책장에 손을 베였을 때처럼, 조금의 아픔이 때로는 무엇보다 큰 아픔이 되기도 한다는 것 역시 저자는 소설 속에서 여실히 드러낸다. 조금 망한 사랑이라고 해서 조그마한 사랑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고, 그래서 그로부터 비롯된 슬픔 역시 절대 조그마한 게 아니었다고. 한발 늦게 되뇌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누구보다 탁월하게 그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