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오후 2시, 혜화역 인근에서 동덕여대 8개 중앙동아리가 주관한 ‘민주없는 민주동덕’ 집회가 열렸다. 동덕여대 학생들은 ▲총장 직선제 실현 ▲공학 전환 철회 ▲학생 탄압 규탄 ▲학생 의견 수렴을 중심으로 학교 본부의 일방적이고 비민주적인 의사결정을 규탄하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요구했다.

연극동아리 ‘극예술연구회’, 영화제작동아리 ‘ㄲ5’, 만화창작동아리 ‘루루’, 국궁동아리 ‘비전(비전)’, 교육봉사동아리 ‘콩콩’, 사진동아리 ‘푸른자리’, 게임개발동아리 ‘NPC’, 래디컬페미니즘동아리 ‘SIREN(사이렌)’이 공동으로 주최한 이날 집회에는 동덕여대 학생을 포함하여 주최 측 추산 2,5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동덕여대 학생들의 발언과 함께 덕성여대, 서강대, 서울여대, 성신여대, 중앙대, 이화여대 등에서 단체·개인 단위의 연대발언이 이어졌다. 이에 더해 대학 입학을 앞둔 25학번 학생, 졸업생, 재학생의 아버지를 비롯해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거리를 울렸다.
학생들은 지난 몇 년간 학교 측의 무책임한 태도와 불투명한 소통이 지속됐다고 지적했다. 학교는 2018년 ‘알몸남’ 사건과 H교수의 성추행 등에 관해 학생을 적극적으로 보호하지 않는 미온적 대응으로 일관했고, 2021년부터는 학생들의 반대 의견을 묵살한 학과 통폐합과 학부제 개편을 추진했다. 2023년에는 6년 이상 안전시설 미비가 지적돼 왔던 등굣길 언덕에서 한 학생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고 이후 학측은 유가족에게 CCTV 자료를 제공하지 않고, 총장 사퇴와 공식 사과 등 학생의 요구를 무시했다.
특히 비밀리에 논의, 추진되던 공학 전환이 학생들의 반대 의사에 부딪히자 본부는 항의의 목소리를 철저히 탄압했다. 비전 소속A씨는 “학생들이 본관 점거와 시위를 이어가며 학생총회를 통해 공학 전환 전면 철폐와 총장직선제 실현이라는 학생 전체의 뜻을 학교에 전달했으나 본부는 이를 묵살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게재된 입장문에서 김명애 총장은 재학생의 1/3인 약 2천 명이 참가한 학생총회를 정상적인 절차라 보기 어렵다 평했다. 본부 측은 지속적으로 외부 세력의 개입 가능성을 거론하고 소수의 학생들이 폭력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도리어 손해배상과 형사고소를 제기했다.
A씨는 ‘민주 동덕’을 표방하는 학교가 “집회결사의 자유마저 침해하며 소통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정당한 목소리를 짓밟았다”고 말하며 “민주주의의 요람으로 기능해야 할 학교가 굴복하는 법만 가르치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문헌정보학과 재학생 B씨는 “학교의 운영 주체는 학생”이라며 “학생들이 무수히 요구해 온 시설 노후화, 장학제도 부실, 전임교원 부족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공학 전환을 통해 학교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학측의 논리가 이치에 맞지 않음을 강조했다. 자신을 동덕여대 학생들과 연대하는 여성 시민이라 소개한 E씨는 “동덕여대 학생 시위는 결코 폭동이나 폭력으로 폄하될 수 없으며, 학측은 학생들의 시위에 법적 조치를 들먹여서는 안 된다”고 규탄했다.

12·3 내란 사태 이후 더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 수호를 절실히 외치게 된 정국은 동덕여대 학생들의 목소리와도 공명했다. 동덕여대의 투쟁이 시민사회 전반의 문제로 확장될 수 있으며, 민주사회를 위한 움직임은 동덕여대 학생들과의 연대로 이어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연대발언을 진행한 서강대 인권실천모임 ‘노고지리’ 소속 C씨는 “국민을 탄압의 대상으로 보는 윤석열과 학생을 탄압의 대상으로 보는 동덕여대 학측은 다르지 않다”고 꼬집으며 “학측이 구성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는 여성을 넘어 시민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로 확장될 것”이라 주장했다. 이듬해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는 D씨는 “정부와 학교 당국 모두에게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학생들”이라 말했다.
많은 이들이 여자대학의 존재 의의를 강조하기도 했다. 컴퓨터학과 재학생 F씨는 “공학 전환은 동덕여대가 지켜온 여성 교육의 가치를 단절시키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크게 바꾸는 중대한 사안”이라 강조하며, 여대의 존립 이유와 정체성을 지킬 것을 촉구했다. 연대발언에 나선 서울여대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 ‘무소의 뿔’에서는 “여성주의의 역사 속에 설립된 여자대학교가 오늘날 여성 혐오의 대상이라는 사실이 분노스럽다”고 말하며, “대학 내 성폭력 사건과 딥페이크 성범죄 등 여성에 대한 폭력을 매일 마주하는” 현실에서 여대는 “사회의 억압에 굴복하지 않는 여성 인재를 길러내는 장”이라 힘주어 말했다. 여대 역시 폭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공간일 순 없지만, 여성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맥락에서의 사회적 필요성은 분명 유효하다는 것이다.
동덕여대에서 공학 전환 및 학교의 독단적인 의사 결정에 항의하는 학생 시위가 시작된 후, 이는 여성혐오, 페미니즘 혐오의 표적으로 겨냥됐다. 시위에 대한 공격은 학생들을 향한 실질적인 위협으로 이어졌고, 이들은 학교 본부에 저항하는 동시에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만 했다. 이번 집회를 주관한 8개 중앙동아리는 성명문을 통해 “유튜버 등 외부인의 학교 무단 침입, 언론, 인터넷 커뮤니티의 재학생 신상유포 및 허위사실, 명예훼손, 성희롱, 여성혐오 집단 신남성연대의 학교 앞 장기 집회 및 시위 등 외부로부터 오는 학생에 대한 비난 및 위협을 학교는 방관했다”고 지적했다.
학측은 학생을 보호할 책임을 저버린 것을 넘어 도리어 학생들을 대중의 먹잇감으로 던져줬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사이렌에서는 학측이 “급진적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앞세워 학생에 대한 외부인의 공격을 부추겼다”고 비판하며 페미니즘을 향한 혐오에 올라타 학생 시위를 탄압하는 지금의 사태 자체가 여대가 지켜져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여성혐오 집단에게 먹이 주니 기분 좋냐”, “여자대학 존재 이유 처장단이 증명했다” 등의 구호를 함께 외치기도 했다.
한편 이번 집회에선 참여자들의 개인 정보를 노출할 위험이 있는 외부 촬영이 엄격히 금지됐다. 집회 중 시위대의 사진을 찍는 행인을 저지하기 위해 찍지 말라는 외침이 반복되기도 했다. 연대 발언자로 참여한 이화여대 재학생 H씨는 “사진 한 장으로 신상이 유출될까 두려워 여성들이 마스크를 쓰고 시위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 여대가 사라져도 되는 사회의 모습이 맞냐”고 반문했다. H씨는 여성 의제와 페미니즘에 대해 여대에서만큼 자유롭게 토론할 수 없는 사회에서 청년 여성의 공간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약자, 소수자와 연대하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집회에서는 발언들의 사이사이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를 개사한 ‘동덕의 노래’와 ‘한국을 빛낸 백명의 위인들’을 개사한 ‘동덕을 빛낸 N명의 위인들’을 함께 불렀다. 재학생들은 뮤지컬 《영웅》의 ‘누가 죄인인가’를 패러디한 ‘동덕여대, 누가 죄인인가’ 퍼포먼스를 통해 학교의 주인이 학생임을 부각하고 학교 본부의 부정한 행적을 열거하며 본부를 규탄했다.
이날 집회에서 국어국문학과 재학생 J씨는 학교에 분노하고 있는 지금도 동덕인이란 정체성이 자랑스럽고 학교를 사랑하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하며 그렇기에 “민주 동덕의 명성을 꼭 찾고 싶다”고 호소했다. “저에게 동덕이 부끄러운 이름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 달라”는 학생들의 목소리에 동덕여대 본부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동덕여대의 투쟁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시작하는 하나의 지점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