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1일 오후 5시 30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2025년 3.8여성파업 조직위원회’와 ‘A학교 성폭력 사안‧교과 운영 부조리 공익제보 교사 부당전보 철회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의 주최로 여성‧퀴어 노동자 오픈마이크 ‘윤석열은 퇴진하고, 지혜복은 복직시키라!’가 열렸다. 본 행사는 여성혐오를 부추기며 성장한 윤석열 정권을 규탄하며, 여성과 퀴어를 비롯한 소수자가 겪은 폭력적 현실을 고발하고자 마련됐다. 변혁적 여성운동 네트워크 ‘빵과 장미’,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 정의당 여성위원회 등 단체 참가자를 비롯해 60여 명의 여성‧퀴어 노동자가 자리했다.

행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참가자들은 주최 측에서 준비한 국화를 들고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묵념 후 참가자들은 “더 이상 죽이지 말라”,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외치며 자리에 앉았다. 사회를 맡은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명숙 상임활동가는 “윤석열 퇴진을 외치는 광장에 굉장히 많은 여성‧퀴어 노동자들이 나왔다”며, “함께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연히 살아남는 사회가 아닌 젠더폭력과 국가폭력이 없는 사회를 상상하자”고 행사의 포문을 열었다.
첫 번째 발언자는 학내 성폭력 사안과 교과 운영 부조리를 공익제보한 후 부당전보를 당해 투쟁 중인 지혜복 교사였다. 2023년 5월 지 교사는 학내 성폭력 사안을 공개적으로 알렸으나 조사 과정에서 피해 학생을 향한 2차 가해가 발생했고, 교육청은 해당 사안을 축소하고 은폐하려고 했을 뿐 실질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피해 학생의 편에 섰던 지 교사는 부당한 전보 발령을 받았고, 이를 거부하다가 2023년 9월 해임당했다. 그 후 지 교사는 학교가 아닌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성폭력 사건의 축소‧은폐 해결과 보복성 부당전보 철회를 외치며 연좌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지혜복 교사는 “피해 학생 편에 서서 성폭력을 공익제보하고 사안 해결을 위해 나섰다는 이유로 부당전보‧해고를 하는 것은 여성 노동자에 대한 국가 교육‧행정 기관의 폭력”이라며, “여성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짓밟은 교육 당국은 폭력을 묵인하고 교사로서의 책무를 저버리라는 것이냐”고 외쳤다. 부당한 일을 신고한 교사는 학교에서 쫓겨났고 그 자리엔 입을 닫은 피해 학생들만이 남았다. 학교는 성범죄를 비롯한 각종 젠더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과 A학교는 성폭력 피해 지원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는커녕 해당 사건을 덮기에 급급했다. 지 교사는 일 년이 지난 지금도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다음 발언자로 나온 코레일네트웍스 소속 임현경 씨는 자신을 “비정규직 철폐와 여성 노동자의 권위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철도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소개했다. 임 씨는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유독 불만이 가득한 고객들이 여직원에게 응대를 받고 싶어 한다”며 고객들이 욕을 하거나 소리를 지를 때 여성 노동자의 단호함이나 제지가 통하지 않는다는 고충을 토로했다. 반면 그 상황에 남성 노동자가 나서면 민원인과 취객의 대다수가 태도를 바꾼다며, 여성 노동자가 받는 대우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에 걸친 인식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개인이 처한 문제 상황의 원인을 그에게서 찾을 것이 아니라 젠더 간 위계를 비롯한 사회적 맥락 안에서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연극인으로서 목소리를 내고자 온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의 송김경화 씨는 “학생들에게 위계 폭력을 행사해 2018년 사직한 송영종이 오늘 오전 서울문화재단 대표로 임명됐고, 성폭력을 방관하고 조력해온 김소희는 서울 소재 대학의 전임 교수로 지금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며 젠더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예술계의 상황을 조명했다. 송김 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교수 김태훈은 수업 중 인물 프로필의 예시로 성욕 해결 방식이나 과시 성향 여부를 언급하는 등 여성혐오적 행위를 일삼으며 학생들에게 정서적 위협을 가했다”며, 이것이 2024년 한예종 극작과 학생들이 처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교수가 혐오 발언을 계속해도 학내에 이를 바로잡을 시스템이 없다면, 공동체 구성원의 존엄은 결코 지켜질 수 없다.
송김경화 씨의 발언 후엔 짧은 공연이 있었다. 참가자들은 공대위에서 준비한 무지개떡을 먹으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공연 뒤엔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동덕여대 졸업생 B씨는 “동덕여대 출신을 고용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이 온라인상의 혐오와 테러가 난무한다”며 우려를 표했고, 자신을 논바이너리라고 밝힌 C씨는 “여성으로 태어나 논바이너리로 살아가며 차별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해를 당한 적도 여러 번”이라고 말했다. C씨는 “여성과 퀴어, 소수자를 차별하고 강간하고 희롱하고 죽이지 말라”며, “이 간단한 요구조차 지켜지기 힘든 시대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살아남아 소중한 존재들과 사랑하고 저항하며 살 것이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내일이면 20살이 되는 레즈비언이자 학교 밖 청소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D씨는 “여성을 향한 성희롱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공간과 혐오를 부추기는 교사들 사이에서 사라진 퀴어”가 자신이 학교를 나온 이유였다고 밝혔다. D씨는 차별을 당하고 목숨을 위협받아도 가해자가 당당히 살아가는 나라에서 과연 누가 청소년으로, 여성으로, 퀴어로 살고 싶겠냐고 호소했다. D씨는 이어 “청소년이 정말 미래라고 생각한다면 그 미래가 사라지는 걸 가만히 보고 있지 말고 청소년이 청소년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라”며 서울시교육청을 규탄했다.

2024년의 마지막 밤,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여성‧퀴어 노동자 오픈마이크는 몇 시간 후면 성인이 되는 청소년의 발언으로 끝을 맺었다. 다양한 나이와 성별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각기 다른 일터 속 이야기로 자리를 채웠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더는 아무도 이렇게 잃을 수 없다고. 끝없는 혐오와 차별에 숨을 죽이고 자신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날들이 끝났음을 선언한다고. 그렇게 손을 잡고 윤석열이 퇴진하고 지혜복 교사가 복직한, 모두가 안전한 일터에서 일할 수 있는 세상으로 건너가자고. 다음 오픈마이크는 돌아오는 4일 오후 1시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2030은 늘 광장에 있다’는 주제로 진행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