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6일, 이화생활도서관(이화생도)의 주관으로 이화여대 학생문화관에서 세미나 ‘다시 만난 여대’가 열렸다. 이화생도는 독재정권하에 불온서적으로 지정된 책들을 모아 1990년대에 설립됐으며, 학내 구성원의 권리 감수성 및 문화 다양성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자치 단위다. 이화생도는 동덕여대를 중심으로 확장 중인 공학 전환 반대 투쟁이 가지는 의미와 현시대 여대의 존재 의의를 묻고자 본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화생도 운영위원회 진의 위원은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투쟁과 관련해 학내에서 많은 목소리가 나왔다”며 “공론장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껴 이번 행사를 계획했다”고 밝혔다. 또한 진의 위원은 “동덕여대생을 향한 여성혐오적 욕설뿐만 아니라 ‘취업 시장에서 도태될 거다’ 식의 비방이 마구 쏟아졌다”며, “대학사회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은찬 위원은 “정치적 의견을 내면 비난받는 학생사회 내부의 탈정치화된 분위기가 갑갑했다”며, 이를 이화여대가 처한 특수한 상황과 이어서 바라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지난달 초 시작된 동덕여대 공학 반대 투쟁은 사회적으로 많은 파장을 일으켰다. 민주적인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고 논의된 공학 전환은 많은 동덕여대 학생의 분노를 촉발했고, 학교 본부와 학생들 간의 불통은 투쟁을 장기화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학교의 반민주적 절차를 문제 삼는 말부터 공학 전환은 여대의 설립 의의를 무시하는 행위란 말까지, 수많은 말이 얹어졌다. 타 여대의 연대 성명서가 발표되고 뉴스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가 공학 전환으로 채워졌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폭력 시위를 세금으로 수습해 줄 필요 없다며, 벌였으니 책임지라는 날 선 말들이 인터넷 창에 가득하다. 피해보상액 ‘54억’만이 전부란 듯한 비아냥이 과연 여대 공학 전환 반대 투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정도 논의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우리는 더욱 이 사태를 엄중하고 세밀하게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모였다. 세미나에는 이화여대 졸업생과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학소위) 부원, 학내 장애인권 자치 단위 ‘틀린그림찾기(틀찾)’ 부원과 이화여대 대학원생 등 30명가량이 참석했다.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투쟁 살펴보기
첫 번째 발제는 ‘2024 여자대학의 공학 전환 반대 투쟁 함께 살펴보기’였다. 발제를 맡은 은찬 위원은 11월 초부터 시작된 공학 전환 반대 투쟁의 전개 양상을 짚고 이를 둘러싼 학교 안팎의 말들을 분석했다.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투쟁은 학교 측이 학교 발전 계획 수립 과정에서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공학 전환을 논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시작됐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학교에 분노했고, 11월 8일 공학 전환 철회를 촉구하는 동덕여대 총학생회(총학)의 첫 번째 입장문이 올라왔다. 총학은 공학 전환이 여대의 존재 의의를 잊고 여성이 처한 차별적 현실을 외면하는 행위라며 본부를 규탄했다.
동덕여대 학생들은 해당 사안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학생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본부의 태도를 문제 삼으며 11일부터 점거 농성과 수업 거부를 시작했다. 12일 학생회를 주축으로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총력대응위원회(총대위)’가 꾸려지며 본격 시위에 돌입했다. 총대위는 공학 전환 요구 철회와 민주적 소통 과정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건물 점거를 비롯해 시위를 계속해 나갔다. 이는 학생회의 독단이 아닌 수많은 동덕여대 학생의 참여를 토대로 이뤄졌는데, 지난 20일 열린 학생총회에 재학생 3분의 1가량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이후 22일 열린 처장단과 총학의 면담에서 본부가 공학 전환 논의를 중단할 것을 밝혔으나, 학생들은 해당 논의를 완전히 철회할 것을 요구하며 건물 점거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에 본부는 최대 54억 원에 이르는 피해 금액을 제시하며 본관 점거 해제를 요청했고, 총학과 처장단의 계속된 협상 결렬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25일 진행된 3차 면담 이후 동덕여대는 11월 30일 총학생회장을 비롯한 동덕여대 학생 10여 명을 공동재물손괴‧공동건조물침입 등의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소했으며, 본관을 점거한 학생들을 퇴거시켜달라는 취지의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이에 총학은 ▲비민주적인 남녀공학 전환 논의에 대해 학생들에게 사과 ▲2025학년도 공학 전환에 대해 차기 총학생회와 논의 ▲학생 의견 수렴 구조체 신설 ▲11월 3주 차부터 이뤄진 수업 거부에 대한 출결 정상화 등의 내용을 담은 ‘대학 본부를 향한 총학생회 요구안’을 발표했다. 그러자 12월 2일 본부는 ‘총학생회에 대한 대학의 입장문’을 게시해 ‘이번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며, ‘점거가 길어질수록 책임은 무거워집니다’라며 엄정하게 대응할 것임을 강조했다.
이 같은 투쟁의 장기화에도 사회적 관심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이번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투쟁은 ‘젠더 갈등’과 폭력 시위 등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일부 누리꾼들은 래커칠과 학교 기물 파손 등을 들며 시위 방법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비판했고, 학생들의 신상을 캐내려는 시도까지 이어졌다. 시위 초반부터 외부세력 개입설이 떠오르며 학생들이 외부세력으로부터 선동당했다는 의혹 제기가 있었다. 반여성주의 단체 ‘신남성연대’는 동덕여대 학생들을 폭도로 칭하며 학교 앞에서 ‘여대에 만연한 페미니즘 규탄 집회’를 열었고, 이는 학내 민주주의 훼손이란 문제의 근원을 비껴간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졌다.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장되는 동안 학생들은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한편, 동덕여대의 공학 전환 반대 투쟁에 광주여대와 성신여대를 비롯한 여러 여대가 연대했다. 이화여대는 총학 차원의 입장 표명은 없었으나 11월 21일 학소위의 연대 성명문 발표가 있었다. 학소위는 동덕여대 학생들의 움직임을 단순한 폭력 사태가 아닌 “폐쇄적인 학교 본부에 대한 저항”이자 “진작 이루어졌어야 마땅한 의사소통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라 봤다. 학소위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배제되는 형태의 몸을 가진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함”인 여대의 설립 목표와 그로부터 쌓여온 여대 공동체 내의 사회적 합의를 강조하며, 여대 소멸에 대한 혐오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후 성명문과 학소위에 대한 온라인상의 공격이 이어졌고, 학소위는 23일 추가 성명문을 통해 학소위가 이화여대 전체 학생의 의견을 대변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해명해야 했다. 이화생도는 이날 학소위의 성명문과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투쟁에 연대하는 성명문을 발표해 학소위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좌표 찍기와 기계적인 운동권 검열”에 그쳐 현 사태를 납작하게 바라보는 건 아닐지 우려했다.

은찬 위원은 이처럼 동덕여대와 관련된 담론이 “본부의 비민주적 의사 결정이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한정되지 않고 “재학생과 외부인을 막론한 수많은 이들이 여대를 정의하고, 해석하고, 지지하거나 부정함으로써” 현 사태를 그려나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말들이 단지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비방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사태의 재구성을 통해 “여대 일반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학 전환 반대 투쟁에 대해 나오는 여러 목소리를 일회성으로 흘려보내기보단 동덕여대를 비롯한 여대 전반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를 묻고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
두 번째 발제인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는 이 같은 동덕여대 공학 전환과 관련해 나오는 다양한 목소리에 초점을 맞춰, 투쟁의 구호와 여대의 존재 의의에 대해 생각할 점을 짚었다. 발제를 맡은 이화생도 A 운영위원은 여대를 ‘남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으로만 상정하는 것이 왜 문제적인지와 여대가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지를 말했다. 발제에 따르면, 현재 여대에 관한 논의는 여대의 존립과 폐지의 두 가지 선택지만을 중심으로 전개돼 이를 벗어나는 고민과 성찰은 여성을 위하지 않는 것으로 손쉽게 간주된다. 이는 논의의 폭을 좁히고 여대의 정체성을 한정한다. 여대 재학생들의 말을 참고했을 때 여대가 실제로 남성 권력의 횡포에서 보다 자유로운 공간이란 사실은 일부 맞을 것이다. 그러나 여대가 여성혐오적 사회로부터 여성을 분리한 피난처로만 작용해서는 안 된다. 이들이 여대에서 얻은 안전한 경험들이 여대 밖에서도 보편이 될 수 있도록 여대는 “유토피아가 아닌 페미니즘의 실험실”이 돼야 한다.
또한 A 운영위원은 여대의 정체성이 “남학생의 부재를 넘어선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물학적 여성만이 여대 정체성의 전부가 될 경우, 이는 여성들이 “성차별의 피해자로서 연대”할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되지만, 동시에 “‘진짜 여자’로서의 피해를 겪어본 적 없으리라 상정되는 이들을 배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여대 안에는 실제로 “다양한 퀴어 정체성, 계급, 몸, 국적, 인종,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으며, 생물학적이고 확실한 여성의 세계를 내세우면 MTF 트랜스젠더와 같이 ‘진짜 여자’에서 비껴난 몸들은 지워지기 마련이다. 특히나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가 심해지는 오늘날, 즉각적인 연대감과 효능감을 얻을 수 있는 래디컬 페미니즘의 득세로 대학 내 교차‧퀴어 페미니스트들은 힘을 잃고 있다. ‘여대에도 트랜스젠더가 있다’고 말하는 교차 페미니스트들의 말은 “살면서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정상성 규범 밖의 사람들과 관계 맺고 마주친 경험이 없거나, 있어도 알지 못했던 이들”에게 “여성 의제와 관련 없는 사안을 끌고 온다”는 반발을 마주한다.
그러나 여대는 계속해서 변할 수 있는 장소다. 페미니즘이 단지 생물학적 여성만을 위한 학문이 아닌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지배 규범에 도전하도록 하는 대안적 인식론이자 그 지배 규범에 맞지 않는 타자와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관점”이란 것을 고려했을 때, 여대의 역할은 “남성 패권주의적 사회의 주체를 여성으로 바꿔 재생산”하기보단 “소수자들을 위한 다른 사회를 상상하고 대안적인 지식을 생산”하는 곳에 가깝기 때문이다. 대학이 소수자 차별에 맞설 담론과 사람을 만들어내는 곳이라면, 여대는 그 선봉장이 될 수 있다. 공학 전환을 비롯한 개방에 관한 논의는 이와 궤를 같이할 것이다.
발제가 끝난 후엔 참가자들의 첫 번째 자유 토론이 진행됐다. 학소위 부원 B씨는 동덕여대 학생들에 대한 본부의 억압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을 목도하며 이에 저항하는 마음으로 연대 성명문에 쓸 말을 신중하게 골랐다고 밝혔다. 그러나 B씨는 성명문 게시 이후 이화여대 내부에서 “남성 아닌 사람들”이란 표현에 대해 “트랜스젠더만을 위한 게 아니냐”는 식의 반발이 커서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성명문에서 여성이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를 전제로 단일화된 범주”가 아닌 “사회적 정상성에서 빗겨나 있는, 비규범적 삶들을 포괄하는 용어로 확장돼야 한다”고 언급한 것을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진 것이다. B씨는 여대라는 공간과 여성이란 개념이 어떻게 확장될 수 있을지 논의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론장의 필요성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학소위의 성명문에 연대 성명문을 작성한 이화생도 운영위원 C씨도 “래디컬 페미니즘 담론의 몸집이 커져 생물학적 여성의 연대만이 강조되는 것 같다”며 우려를 표했다. 틀찾 부원 D씨 역시 “여대 내에서 생물학적 여성을 제외한 다른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아직도 얼마나 부족한지”를 느꼈다고 덧붙였다.

2016년의 이화여대, 2024년의 동덕여대
마지막 발제는 ‘우리는 왜 ‘다시 만난 세계’를 다시 만나지 못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진행됐다. 발제를 맡은 진의 위원은 2016년 이화여대 미래라이프대학 시위(미라대 시위)가 오늘날 이화여대가 바라보는 여대 공학 전환 반대 투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짚었다. 미라대 시위는 본부가 민주적인 의견 수렴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미용‧건강 관련 단과대인 미라대 신설을 추진하자 이에 반발한 재학생과 졸업생의 참여로 이뤄진 시위다. 학생들의 자발적 움직임을 통해 총장 해임과 학내 비리의 진상 규명을 달성한 성공적인 시위로 꼽히기도 한다.
진의 위원은 미라대 시위 당시 외부세력의 개입을 주장한 최경희 전 총장의 의견에 학생들이 “순수한 학내 시위”라고 반발하는 과정에서 운동권을 뜻하는 ‘꿘’에 대한 배제가 일어났다며, 이를 이화여대에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레드콤플렉스의 시발점으로 짚었다. 시위 이후 이화여대에서 미라대 시위는 쉽게 언급할 수 없는 금기어가 됐다. 당시 시위에 참여한 이들의 트라우마가 심해지거나 2차 가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고자 시위 관계자들은 온라인에 남은 관련 기록을 전부 없앴고, 그 결과 현재 이화여대에는 시위의 시사점 내지는 잘못을 따져볼 기회 하나 없이 “운동권에 대한 다수의 추상적인 두려움과 소수의 추상적인 지지”만 남았다.
이러한 정치색에 대한 금기 외에도 이화여대가 정치적 사안에 대한 의견을 표명할 경우, 그것이 부정적인 낙인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해 학생들은 목소리 내는 걸 꺼리는 경향이 있다. 이는 대학 입시 결과를 기준으로 했을 때 여대 중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이화여대의 특수한 맥락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진의 의원은 대표성이 무엇인지를 물으며, “낙인이 누구에게 어떻게 가해질지는 온전히 낙인을 찍는 사람의 주관에 의해 결정되기에” 피낙인자가 그를 회피하고자 하는 행위는 무용하다고 말했다. 즉, 애초에 낙인이 개인의 의지로 통제 가능한 영역이 아니므로 의견의 외부 노출을 터부시하는 학내 구성원의 태도가 그저 이들의 운신 폭을 좁힐 뿐이라는 것이다. 낙인을 우려해 목소리 내기를 포기한다면 결국 검열의 정당성을 인정하게 될 뿐이라는 지적이다.
발제가 끝난 후엔 참가자 간의 자유 토론이 진행됐다. 미라대 시위가 금기시된 것에 대해 은찬 위원은 “당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만큼 대학에서 다양한 혼란과 트라우마 같은 것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라며, “8년이 지난 지금 시위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들은 학내에 거의 남아있지 않을 텐데 온라인상에서 미라대 시위를 빌미로 정치적 사안에 목소리를 내면 안 된다고 말하는 이들이 누군지 궁금하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참여자 E씨는 “당사자성이 증발한 현재의 이화여대 학생들이 미라대 시위를 근거로 공포를 형성하고 2016년의 이야기를 재생산하는 현 상황이 학내 탈정치화와 관련된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참가자 F씨 역시 “당시 시위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가 사회적으로 많이 이야기됐다면 참가자들이 더 많이 위로받고 시위가 금기로 여겨지지 않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덧붙였다.
참가자 G씨는 순수하고 완전무결한 피해자상의 압박 역시 목소리 내기의 어려움을 가중한다며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이 피해자일 수는 있으나 그것이 모두가 인정하는 피해자성 획득을 위한 탈정치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어떤 순간엔 분명 피해자일 수 있으나 그것이 여성 스스로를 설명하는 정체성 전부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변방의 몸을 향해,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하기
목소리를 내는 것의 어려움에서 시작된 자유 토론은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투쟁이 불법 시위로 프레이밍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 시위를 폭력 시위로 볼 것인지 비폭력 시위로 볼 것인지에 관한 질문에 참가자 H씨는 “폭력인지 비폭력인지를 해석하는 과정에 권력의 작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이분법적 구조 안에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현재 언론이 이를 폭력 시위로 프레이밍하고 학교가 마치 기업이 노조 대하는 방식처럼 학생을 대하고 있는” 점은 문제적이라고 말했다. 참가자 I씨는 “폭력과 비폭력을 나누는 것 자체가 폭력이라고 생각한다”며, “폭력과 비폭력을 나누는 과정에 동원되는 요소들이 기득권의 판단으로 정해지기에 이 과정에서 억압이 관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참가자 J씨는 “폭력적인 사회에서 우리가 완전히 폭력적이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질 필요도 있다고 주장했다. J씨는 “비폭력이라 명명되는 것들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며 현재 비폭력 시위로 언급되는 사례들이 단지 폭력 시위를 비판하기 위한 도구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제기했다.
여대를 남학생에게 개방하는 것에 관해서도 많은 의견이 오갔다. 참가자 K씨는 “페미니즘의 존재 이유가 하나의 여성 범주를 상정하는 것이 아닌 그로부터 시작해 소수자에 대한 억압과 차별의 철폐에 있다고 보면, 여대의 기능은 소수자의 관점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L씨는 두 번째 발제에서 언급된, 흑인들만 받다가 현재는 인종의 제한 없이 학생을 받는 ‘Historically black colleges and universities(HBCU)’의 사례를 들어 “남학생을 받더라도 여대란 이름을 유지한다면 소수자의 관점을 배우는 새로운 포용적 공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참가자 M씨는 “여대가 창립됐을 당시의 현실을 생각하면 생물학적 여성만 모여 공부하는 공간이 당연히 대안적 시도였을 것”이지만 “2024년에는 그때만큼 진보적이고 대안적일 수는 없다”며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여대란 공간을 새롭게 상상해야 함을 강조했다.
당초 2시간으로 예정됐던 세미나는 4시간 가까이 논의가 오간 후에야 마무리됐다. 현재 이슈가 되는 공학 전환 반대 투쟁과 더불어 여대라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와 앞으로 여대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참여자들은 하나의 답을 내리고자 오늘 이 자리에 모이지 않았다. 명확한 답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여대를 둘러싼 논의의 양과 질을 향상할 필요에 공감하며, 흑백논리가 가린 것들에 대해 말하고자 만들어진 자리였다.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투쟁이 길어지고 있다. 여성혐오 혹은 페미니즘의 이분법적 시선을 넘어 더 많은 상상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