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다시 이태원에서 만나요

‘이태원을 기억하는 호박랜턴’ 이상민 활동가를 만나다
▲이태원 참사 2주기 축제 포스터 ©이태원을 기억하는 호박랜턴

2024년 10월 29일은 이태원 참사 2주기였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역 1번 출구 해밀턴 골목에서 159명이 압사로 사망했다. 예측할 수 없던 불운한 사건이 아니었다. 현장의 안전 관리와 인파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압사 우려에 대한 신고가 계속 있었음에도 경찰이 이를 심각하게 인지하지 않았으며, 참사 직후 현장 대응과 기관별 보고 역시 미흡했다. 관련 당국이 신속히 대응했다면 피해 규모를 줄일 수 있었던 사회적 참사였다.

참사 이후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 앞에 권력자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고, 정부는 일방적으로 국가 애도 기간을 지정해 추모와 애도의 마음을 통제했다. 생존자와 유가족을 향한 2차 가해와 혐오 발언이 이어졌고, 인터넷을 통해 참사 현장을 담은 사진이 확산되며 또 다른 트라우마를 유발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올해 5월,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안(특별법)’이 제정되고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출범했다. 이제 막 첫발을 뗀 특별법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특조위가 독립적 조사기구로서 사명을 다하는지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테다.

그러나 특별법과 특조위는 결코 이태원 참사의 끝이 될 수 없다. 그렇기에 법과 제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희생자와 유가족이란 틀 안에 담기지 못한 참사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법을 만들고 진실을 파헤쳐 잘못한 이가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만큼이나, 참사를 경험한 모두가 자기 삶의 맥락에서 그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언론이 참사를 설명하는 언어에 갇히지 않은 채 이태원이, 핼러윈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을 때, 이것이 비로소 내 이야기가 된다. 이태원과 핼러윈을 여러 방식으로 조명하고 있는 ‘이태원을 기억하는 호박랜턴(호박랜턴)’의 이상민 활동가를 만나 기억과 애도에 관해 물었다.

이태원을 비추는 호박랜턴

호박랜턴은 참사 1주기 즈음 활동가와 연구자, 다큐멘터리 감독, 이태원 주민과 참사 생존자 등 참사를 어떻게 소화할지 고민하던 이들이 알음알음 모여 만들어졌다. 이태원과 참사에 관한 책과 논문을 읽고 함께 얘기하는 읽기 모임이 시작이었다. 구성원들은 이태원의 역사에 대한 논문을 찾아보고, 고통을 말하고 연대하는 법에 관한 책을 읽으며 공부했다. 이는 올해 7월 참사의 의미를 묻고 사회적 애도의 가능성을 들여다보는 세미나 개최로 이어졌다.

이상민 활동가는 호박랜턴의 방향성으로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이란 장소와 핼러윈 문화에 주목하기”와 “희생자와 유가족 중심의 서사 밖에서 직간접적으로 참사를 경험한 이들이 어떤 식으로 참사와 연루됐는지 조명하기”를 들었다. 함께 참사에 대해 공부하며 호박랜턴은 계속해서 물었다. 이태원 일대를 구성한 이들이 어떤 시간을 살아왔는지, 참사 이후 무엇이 우리의 애도를 가로막았는지, 퀴어한 존재가 애도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참사의 사회적 원인이 무엇인지. 호박랜턴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통해 참사를 ‘나의 이야기’로 복원했다.

이들은 이러한 고민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자 참사 2주기에 맞춰 상영회와 간담회, 핼러윈 액션과 집담회로 구성된 축제 ‘멈추지 않는 노래를 해’를 기획했다. 각각의 프로그램은 고유의 의미를 지닌다. 이상민 활동가는 영화 《이태원》(2016) 감독과의 대화 ‘알지 못한 이곳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태원의 역사와 문화에 집중해 이 지역과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왜 중요한지를 담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장혜영 전 국회의원과 참사 생존자 이주현 씨, 이 활동가가 패널로 참여한 간담회 ‘우리가 참사를 경험하는 방식’은 그간 충분히 말해지지 못한 참사 경험을 나누기 위한 자리였다.

▲이태원 참사 2주기 축제 포스터 ©이태원을 기억하는 호박랜턴

  이상민 활동가는 2주기 시민추모대회 당일 녹사평역 인근에서 진행된 핼러윈 액션을 통해 “애도와 추모가 꼭 슬프고 엄숙한 방식만이 아니라 이렇게도 가능하단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핼러윈 코스튬을 준비해야 한다는 고지에 따라 참가자들은 미니언즈, 브리저튼 등으로 분장해 광장에 나타났다. 훌라와 어쿠스틱 공연을 감상하고,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합창했다.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광장을 행진하고 참사에 관해 얘기했다. 오픈 마이크 시간엔 이런 이태원이 그리웠다는, 코스튬을 하고 이곳에 다시 올 줄 몰랐다는 말이 쏟아져나왔다. 

▲핼러윈 액션을 진행중인 모습 ©이슬하

  앞으로 이태원의 핼러윈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묻자 이상민 활동가는 “지역사회 구성원을 비롯해 이태원과 핼러윈을 아껴온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기에, “참사 이전 이태원의 핼러윈을 떠나보낸 자리를 공백으로 남겨두는 게 아닌 다른 방식으로 승화해 애도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는 결국 참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태원과 핼러윈의 앞날을 고민하고 각자가 가진 참사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려는 시도로, 참사 유가족의 생각과도 맞닿는다. 〈세계일보〉에 따르면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위원장은 ‘아이들이 좋아했던 곳이 슬럼가가 되고 무너지길 바라지 않는다’며, ‘더 많은 사람이 계속 들러 이태원을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지켜달라’고 밝혔다. 이태원 상권의 회복을 바라며 유가족협의회가 상인들과 업무협약을 체결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다. 

이태원, 핼러윈,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

  참사를 경험한 이의 삶은 결코 전과 같을 수 없다. 특히 그날 현장에서 생사가 오가는 경험을 한 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이 들 것이다. 호박랜턴 구성원이자 동료로서 참사 생존자와 함께해온 이상민 활동가는 쌍방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현장에서 그가 겪은 특수한 경험을 나눌 수는 있어도 참사 생존자란 이유로 특별히 대한 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 활동가는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각자 돌봄이 필요한 순간이 올 때 서로의 힘이 됐다”며, 참사 생존자에 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이들을 담백하게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사 피해와 고통은 같지 않으므로, 참사 피해자가 당연히 고통을 가졌으리라 전제하고 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도리어 피해자에게 또 다른 고통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이상민 활동가는 “사회가 고통스러운 얘기를 원할수록 피해 경험이 제대로 말해지지 않을 수 있다”며, 참사 생존자가 당연히 트라우마를 가진다는 식의 논의가 보편화될 경우 트라우마를 경험하지 않는 생존자는 사회가 말하는 피해자의 모습과 자신의 경험이 엇나간다고 느낄 수 있음을 짚었다.

▲간담회를 진행중인 모습 ©이슬하

  중요한 건 이 경우에도 피해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사회가 고통의 모양새를 구성하고 정해진 피해자의 틀을 강요할 때, 그 안에 속하지 못한 이들은 입을 닫고 숨게 된다. 피해의 다양한 양상 속에서 특정한 피해만 배·보상의 대상 혹은 피해자 인정의 요건이 될 경우, 이는 피해의 위계를 나누는 행위로 이어진다. 매출에 타격을 입은 이태원 상인들은 유가족들의 특별법 투쟁 앞에서 어떻게 나의 힘듦을 주장할 수 있냐며 말하기를 꺼렸다. 또 ‘놀러 간 게 아니냐’거나 ‘마약과 관련 있는 게 아니냐’는 순결한 피해자성의 강요 속에 사라진 목소리들이 있다.

  이상민 활동가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보며 “우리 사회에 참사를 상상할 수 있는 언어가 너무 빈약하다고 느꼈다”며, 이것이 참사 피해를 폭넓게 상상하지 못하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참사와 연루된 각자의 감정과 사연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활동가가 ‘이태원 기록단’의 운영팀장을 맡아 『이태원으로 연결합니다』(2024) 기록 작업에 참여한 것 역시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였다. 

  참사 2주기에 맞춰 발행된 『이태원으로 연결합니다』는 공동체 미디어 용산FM이 기획하고 기록단 8명이 참여해 발간됐다. 책에는 이태원 주민, 방문객, 드랙 아티스트, 클럽 DJ, 경리단길 이주민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태원과 연결된 이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인터뷰이들은 각자가 기억하는 이태원과 핼러윈에 대해 고백한다. 이상민 활동가는 책 작업에 참여한 이유로 “단순한 공감과 위로를 넘어 사람들이 참사와 관련해 느끼는 다양한 생각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책은 이태원을 둘러싼 낙인과 혐오를 걷어내고 낭만화하기보단, 그 무엇도 지우지 않는 방식을 통해 진실에 다가가길 택한다. 이상민 활동가는 “일종의 일탈적 에너지까지 핼러윈 축제 안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며, “마약을 비롯해 축제 과정에서 실제로 불쾌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옹호하지는 않으나, 그런 일을 완전히 지워내며 다음을 그리는 게 맞는지에 관해선 의문이 든다”고 고백했다. 이태원이란 ‘문란한’ 공간에서 예기치 않게 참사에 휩쓸린 ‘성실한’ 희생자들의 서사 속에 포함되지 못한 것들이 눈에 밟힌다는 것이다. 

  적당히 불편하고 적당히 위험하며 적당히 사랑하는 것들, 우리의 일상을 이루고 공간을 채우는 것들. 기록단이 고민 끝에 그려낸 이태원의 모습이다. 어떠한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향유하는 존재를 이해하는 것이 또 다른 단면을 지적하는 것과 매번 대척점에 있진 않다고, 수많은 목소리의 복원을 통해 책은 전한다.

내가 다시 이태원에 간 이유는 

  참사 1주기에 맞춰 이상민 활동가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이태원이었다. 이 활동가는 애니메이션 《코코》(2017)의 ‘미구엘’로 분장해 통기타를 둘러매고 거리로 나섰다. 곳곳에 배치된 경찰과 길목마다 설치된 펜스로 이태원의 분위기는 어수선했지만, 이 활동가와 친구들은 코스튬을 걸친 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었다. 

▲이태원 거리를 행진하는 사람들 ©이슬하

  『이태원으로 연결합니다』에서 이상민 활동가는 당시를 회상하며 ‘용기를 내어 압사가 발생한 골목까지 다다르자, 희생자들을 기리는 물결이 계속되고 있었다’며, ‘내가 칠 줄 모르는 기타를 어설프게 튕기는 동안 주현은 보라색 리본과 팔찌를 주변에 건넸다’고 썼다. 사람들은 팔찌를 받아 손목에 끼거나 이미 받았다는 사인을 보냈고, 이 활동가는 만나는 이들에게 ‘REMEMBER ITAEWON’이라고 쓰인 도장을 찍어줬다. 사람들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이태원의 핼러윈을 즐겼다.

  2022년 12월, 참사 49일째가 되던 날 참사 이후 첫 시민추모제 ‘우리를 기억해주세요’가 열렸다. 유가족들은 피 흘리는 심경을 의미하는 붉은 목도리를 둘렀다. 그날 추모제를 본 이상민 활동가는 핼러윈 주간에 이태원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직접 이태원에서 핼러윈을 즐기는 것이 참사를 기억하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활동가는 핼러윈 축제에 참여한 이유를 “참사 피해자들이 그렇게 즐기려 했던 것을 그날 내가 같이 즐기진 못했더라도 몇 년 뒤라도 함께 즐기고 싶었다”며, “당신들이 무엇을 하고팠는지, 그날 완성되지 못한 축제에 우리가 새로이 걸음을 내딛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일 년 뒤 같은 자리에서 핼러윈을 즐기는 것으로나마 당신들과 연결되고 싶었다’며, ‘나아가 참사 이후를 살아가는 모두가 여기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랐다’는 『이태원으로 연결합니다』 속 이상민 활동가의 글처럼, 참사 이후 이태원의 핼러윈은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이 활동가가 호박랜턴 구성원으로 활동 중인 참사 생존자 이주현 씨를 만난 것 역시 그곳이었다. 《코코》 속 인물로 분장한 둘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거리를 활보했다. 참사 이전까지 이태원의 핼러윈을 제대로 즐긴 적 없던 이 활동가는 그날 미구엘이 돼 맘껏 놀았다. 이전엔 미처 알지 못했던, 희생자들이 그토록 사랑한 이태원의 핼러윈이 무엇이었는지 조금이나마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더 많은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태원 참사를 우리는 어떻게 계속 기억하고 애도할 수 있을까. 이상민 활동가는 “내 삶의 맥락 위에서 이태원 참사가 어떻게 놓여있는지를 계속 고민하고 발견할 것”을 당부했다. 유가족에게 연대하고 책임자 처벌을 외치는 것만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는 아니라며, 그렇기에 무엇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무력함 속에 빠지지 않길 바란다며.

  애도는 무언가를 떠나보내는 행위다. 참사 이후 우리는 희생자뿐만 아니라 참사 이전의 핼러윈과 이태원을 떠나보내고 슬픔에 잠긴 퀴어 공동체와 각종 집단을 봤다. 잘 떠나보내려면, 아픈 기억을 아프게만 남기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상민 활동가는 참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활동가는 “이번 2주기 때는 낭독회를 열거나 카페를 대관해서 함께 참사에 대해 얘기할 자리를 만드는 등 여러 시도가 있었다”며, “계속해서 터가 생기고 다양한 것들을 시도했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다. 

▲상영회를 진행중인 모습 ©이슬하

  특조위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지 약 두 달이 지났다. 특조위는 참사 피해자로 희생자의 유가족 외에도 ▲신체적·정신적·경제적 피해를 보거나 ▲직무가 아님에도 수습에 참여하고 ▲참사 인근에서 사업장을 운영하거나 일했던 사람 등을 규정해, 참사 당시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는지를 규명하고 이태원 참사의 서사를 복원하려 노력 중이다. 이상민 활동가는 “참사의 피해를 표현할 언어가 빈약하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피해 구제를 신청할 수 있는 사람이 제한적일 거라 생각한다”며, 특조위를 필두로 이뤄질 진상규명이 관련 부처를 조사하고 책임자를 추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수많은 이들의 증언을 모아 이 참사가 어떤 의미인지 이해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밝혔다. 159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 참사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이것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참사를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더 많은 상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호박랜턴은 이태원 참사를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를 고민하다 핼러윈마다 길가에 걸리는 호박랜턴을 보고 만들어진 이름이다. 매해 10월이면 주황색 호박과 흰 천으로 만든 유령들이 가게를, 거리를 꾸민다. 누군가는 여전히 ‘HAPPY HALLOWEEN’이란 글자 앞에 웃을 수 없고, 사람들의 가방에 걸린 보라색 리본을 아프게만 바라볼 것이다. 누군가는 얼굴을 가득 분칠해, 몇 주 전부터 고심한 옷을 입고 이태원으로 향할 것이다. 사진을 찍고 사탕을 나눌 것이다. 누군가는 이태원에도, 별들의 집에 가 희생자들의 얼굴을 볼 자신도 없는 스스로를 탓하고 몰아세우기 바쁠 것이다. 현장에서 무력했던 자신을 원망하며 스스로를 피해자라 인지조차 못 하고 있을 것이다. 

  애도와 추모에는 정답이 없다. 참사를 기억하는 방식은 하나가 아니다. 이태원과 핼러윈은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닌, 지금 당장 당신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참사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은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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