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1일, ‘윤석열 OUT 성차별 OUT 페미니스트들’의 주관으로 이화여대 포스코관에서 페미니스트 대학생 집담회가 열렸다. 대학 사회 페미니즘과 탄핵 광장을 주제로 열린 집담회에는 ▲경희대 한의과대학 성평등위원회 ‘달해’ ▲계원예대 학생‧소수자 권리위원회 ‘잡초’ ▲고려대 여성주의 교지 ‘석순’ ▲고려대 여성위원회 ▲공주대 페미니즘 소모임 ‘공갈단’ ▲공학 여대생 연대 모임 ‘들불’ ▲덕성여대 페미니즘 준동아리 ‘FM419’ ▲동덕여대 중앙여성학동아리 ‘WTFeminism(WTF)’ ▲서울대 페미니즘 동아리 ‘달’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서페대연) ▲숙명여대 공익인권학술동아리 ‘가치’ ▲이화여대 학생‧소수자 인권위원회 ▲한국예술종합대 ‘돌곶이포럼’ ▲한신대 민중가요 노래패 ‘보라성’ 부원과 개인 참가자 40명가량이 참석했다. 사회를 맡은 서페대연 강나연 운영위원은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대학 사회의 페미니스트이자 광장에 나온 여성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며 집담회의 포문을 열었다.

집담회는 자기소개와 단체 소개, 조별 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간단한 자기소개 후 14개 단체의 소개를 들었다. 각 단체는 소개와 더불어 페미니스트 동아리로 활동하며 겪는 어려움을 공유했다. 공갈단 소속 A씨는 남성 혐오적 강연을 왜 여냐는 민원과 전화 테러를 받았을 때의 기억을 나눴다. 충남도청의 지원을 받아 페미니즘 강좌를 열었는데 “왜 이런 거에 지원금을 주냐”는 식의 비난을 들었다는 것이다. 행사 포스터를 붙이는 동아리 부원의 인상착의가 에브리타임(에타)에 떠돌기도 했다. 과거 WTF 소속이었다고 밝힌 B씨는 “이번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투쟁을 보며 학교를 졸업한 후 어떻게 활동을 이어가고 함께할 수 있을지 고민이 들었다”며,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투쟁에서 재학생뿐만 아니라 주위 관계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이야기하길 제안했다. 달 소속 C씨는 “동아리 유지에 필수적인 학부생 유치가 너무 어렵다”며 타 동아리들이 어떻게 부원을 모집하고 있는지 배우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이처럼 대학 페미니즘 동아리들이 겪는 어려움은 페미니스트에 대한 혐오부터 부원 유치까지 다양했다.

다음으론 대학 페미니스트들이 당면한 문제를 공유하고 실천 가능한 활동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가자들은 각자 시급하다고 여기는 문제를 포스트잇에 적었다. 혐오와 낙인, 공론장 형성의 어려움, 학벌주의, 운동권 혐오 등의 키워드가 나왔다. 페미니스트의 자격을 키워드로 제시한 여대 재학생 D씨는 “여대가 공학보다 페미니즘에 대해 말하기가 쉽다고 느낄 수 있지만 래디컬 페미니즘이 주류인 대학 사회에서 이를 비판하면 욕을 먹는 게 현실”이라며, 이것이 “나는 머리가 짧지도 않은데 내가 페미니스트가 맞을까” 식의 자기 검열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또 페미니즘 내부에 다양한 입장이 있는데 이들이 힘을 모으기보다 서로의 차이를 내세워 각자의 진영을 공고히 하기 바쁜 탓에 트랜스젠더 혐오가 심해지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남성이 없어야 여대가 안전할 수 있다고 여기는 래디컬 페미니즘 담론이 트랜스젠더 검열과 혐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참가자 E씨는 “여대의 존재 이유가 안전하다는 감각을 느끼는 게 전부일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나는 여대를 다니며 정말 안전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기에 생물학적 여성의 연대를 토대로 규정된 안전이란 가치에 공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참가자들은 트랜스젠더 혐오가 “내가 트랜스젠더가 아니고 내 주위에도 없으니 내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연결감의 부재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며 연결감 회복을 위해 어떤 방법이 있을지 논의를 이어갔다.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대자보를 작성하거나, 낙인이 두려워 동아리 가입을 망설이는 이들을 위해 부원이 아니어도 참여할 수 있는 세미나를 열자는 의견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조별로 나눈 이야기를 전체 참가자들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대와 공학의 분위기 차이에 대해 말을 꺼낸 F조는 여대는 래디컬 페미니즘과 트랜스젠더 인권이 치열하게 부딪히는 데 반해 공학은 페미니즘 논의 자체가 양적으로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에 F조는 어떻게 여대와 공학 각각에서 발생하는 논쟁의 간극을 줄일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극우화에 대한 대항을 주요 과제로 뽑은 G조는 페미니스트가 광장에서 계속 가시화될 필요성을 강조했다. 세를 확장 중인 극우에 맞서, 윤석열 탄핵 이후에도 성평등한 사회로 끝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참가자들은 대학 페미니즘이 당면한 문제로 탈정치와 신입 부원 모집의 어려움 등을 꼽았다.

참가자들은 집담회에서 나온 이야기에 공감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답답한 마음을 담아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오늘날 대학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라는 호칭은 그 자체로 낙인이 된다. 특히 에타와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혐오와 멸시는 그간 대학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억눌러 왔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을 온몸으로 건너온 참가자들은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 “대학 페미니스트가 뭉치면 이긴다”는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결코 익명의 혐오 앞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내비치며 집담회를 마무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