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도의 시선으로 끝나지 않은 한국의 12월을 바라보다

사회과학대학 학부생 주도 집담회 열려
▲발제 중인 모습 ⓒ김수환 사진기자

  지난 25일, 우석경제관에서 사회과학대학 학부생 자율 집담회 ‘끝나지 않은 12월: 한국, ()로 읽다’가 열렸다. 기획에 참여한 김재우(인류 22) 씨는 “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며 학부생이 수신자의 위치에만 있다고 느꼈다”며, “우리 학부생이 주체적으로 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새로운 공론장을 구성하고자” 해당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주최 측은 계엄 선포 이후 많은 공론장이 형성됐음에도 학부생이 사건 해석의 적극적인 행위자로 나설 기회가 많지 않았다며, 오늘날 청년 세대가 느끼는 감각과 정동의 체험을 조명하려 했다고 밝혔다. 50명가량이 참석한 집담회는 크게 학부생 6팀의 발제, 소그룹 토론, 특강 순으로 진행됐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선아(사회 22) 씨는 ‘2016년에 비춰본 2024년 광장 안팎의 페미니즘 정치’를 주제로 2016년 박근혜 탄핵 국면의 광장과 2024년 소수자 중심의 광장을 비교했다. 김 씨는 소수자 혐오에 기댄 박근혜 퇴진 담론에 맞서 구성된 ‘페미존(Femi-Zone)’을 언급하며, 2016년의 광장에서 박근혜 탄핵이 민주주의의 완성으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짚었다. 당시 시민사회단체와 진보정당 여성위원회 등이 연합해 만든 페미존은 광장 안팎의 여성이 안전할 수 있도록 직접 발언자 가이드라인과 집회 내 성폭력 대응 매뉴얼 등을 제작해야 했다. 이는 발언 중 혐오 발언이 나오면 바로 마이크를 끄고, 주최 측에서 ‘평등한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을 만들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대상화를 막고자 한 2024년의 광장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김 씨는 “지금의 광장은 사회적 소수자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낯설었던 의제를 학습하는 배움의 공간”이라며 광장을 매개로 한 연대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선전전으로, 동덕여대 학생들의 공학 전환 반대 투쟁으로, 세종호텔 농성장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프라인 광장의 확장과 별개로 온라인에서는 윤석열 탄핵과 광장의 의제를 분리하고, 트랜스젠더 혐오와 같은 소수자 혐오가 계속 분출되고 있다. 김선아 씨는 온라인상에서 논란이 된 게시글을 가져와 “생물학적 성별 이원론을 바탕으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노골적 배제가 일어나고 있다”며, “억압의 구조를 해체하기보다 개인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적 정서를 토대로 한 분리주의적 행동주의가 사회적 연대를 약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통된 억압의 뿌리에 집중하기보다 동질성을 연대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순간 인권이나 평등과 같은 가치가 분배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김 씨는 이러한 보수적 페미니즘을 넘어 현재 광장에서 하나의 집단으로 묶이는 이들 내부의 차이를 조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제 중인 모습 ⓒ김수환 사진기자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이준협(정치 23) 씨는 ‘계엄 이후 보수의 가치와 한국 보수진영’을 주제로 계엄 전후 한국 보수진영의 움직임에 대해 발표했다. 이 씨는 정치적 가치와 지지 정당이 무조건 일대일 대응이 될 수 없음에도 각종 매체에서 이를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으로만 나누려는 경향을 비판했다. 또한 이 씨는 한국 보수진영이 갖는 이념적 빈곤을 문제 삼으며 “보수진영이 민주화 이후 변하는 현실에 맞춰 지금 우리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했어야 한다”고 짚으며, “그러나 방어적으로 나오기 바빴던 탓에 전통과 시대에 맞추려는 노력이 모두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이념적 빈곤을 넘어서지 않고는 윤석열 다음에 올 보수의 가치 역시 한국 사회에서 유효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 씨는 한국 보수진영과 지지층이 앞으로 정치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지, 애초에 진정한 보수가 존재할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지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세 번째 발제자로 나선 이윤(사회 21) 씨는 ‘계엄 이후 법적 언어의 경제’라는 주제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장(champ)’ 개념을 활용해 현재 계엄과 탄핵에 대해 제기되는 주장들의 정당성을 따졌다. 이 씨는 세력 관계를 보존하거나 변형하려는 투쟁이 일어나는 장소로 장을 설명하며, 정치인들이 정치 장 내에서 어떤 자본을 형성하는지 짚었다. 이 씨는 “한국의 정치적 논의는 어떤 가치에 따라 옹호 여부를 따지는 게 아니라 헌법적이거나 반헌법적이라는 식의 법적 언어를 통해 전개된다”며, ‘대통령의 인권이 남파된 간첩보다 못합니까’라는 윤석열 대리인단 변호사의 말이 법률 장에선 무력할지언정 정치 장에서 울림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법적으로 무력한 상태일지라도 윤석열의 존재가 정치 장에서 여전히 새로운 이득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윤 씨는 윤석열을 옹호하는 세력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부정함으로써 힘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현재 대통령 지지도가 올라가고 국민의힘 정당 지지도가 더불어민주당을 추월했음을 보이며, 여론조사 응답률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지지율 상승의 배경에 이재명 대표에 대한 부정이 있다고 추측했다. 이 씨는 윤석열이 법적으로 무력화된 상태임에도 계속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함께 고민하길 권하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발제 중인 모습 ⓒ김한결 사진기자

  첫 번째 세션이 끝난 이후엔 3명의 발제자를 대상으로 한 질의응답이 있었다. 참가자 A씨는 기존 페미니즘 운동의 실책과 책임감의 부재에 관해 얘기하고 싶다며 운을 뗐다. A씨는 “2016년 페미니즘 리부트 당시 활동가들이 과격함과 적대감을 기반으로 운동을 전개했다”며, “이러한 자기중심성과 극우적 마인드에 기반한 페미니즘이 대중의 반발을 낳았다”며 이것이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의 전략적 실패라고 짚었다. 이에 김선아 씨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사그라든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 당시 수많은 백래시를 견디며 소진된 활동가들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책임감의 부재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얼마나 더 책임감이 있어야 했냐며 되물었다. 또한 이준협 씨는 “현재 한국의 페미니즘은 여성의 해방과 권리 신장을 위한 구성을 충분히 갖췄다고 생각한다”며, “남성들이 왜 우리의 권리를 신장하려는 운동이 없느냐며 박탈감을 느낄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느낀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발제 중인 모습 ⓒ김한결 사진기자

  두 번째 세션의 첫 번째 발제자인 이재현(서양사 18) 씨는 ‘식민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역사를 통해 본 계엄과 노동자 운동’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 씨는 도서 『내전, 대중 혐오, 법치』를 토대로 신자유주의를 “국가와 기업의 권력을 활용해 사회 전반이 경영적 효율성만을 추구하려는 방식의 지배”라고 정의했다. 민주주의를 시장 밖으로 밀어내는 과정에서 국가 권력을 적극적으로 동원하고, 그 과정에서 인구집단을 분할해 내전으로 지배하려는 시도가 오늘날 횡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씨는 식민주의와 파시즘의 관계를 조명하며 국민과 비국민을 나누는 폭력적인 지배의 방식이 불안정노동자의 결합을 흐트러뜨리는 방식으로도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의 노조 탄압과 같은 노동자 억압에 대항하기 위해선 국민과 비국민, 시민과 비시민의 이분법을 넘어 확장된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씨가 활동 중인 노학연대단체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공행동’이 팔레스타인 깃발을 함께 달고 집회에 나가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질의응답 중인 발제자들 ⓒ김한결 사진기자

  다음 발제는 박민정(사회 24) 씨, 송수림(사회 23) 씨, 주민우(사회 24) 씨가 함께 ‘음모론과 민주주의 정신’이라는 주제로 한국 사회의 음모론과 제도권 정치의 결합 양상을 조명했다. 주 씨는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메우는 서사가 음모론을 만든다며, 중국 공산당 음모론과 부정선거 음모론을 예로 들었다. 박 씨는 민주주의에 독이 되는 음모론뿐만 아니라 적당한 긴장감을 불어넣는 음모론 또한 존재할 수 있음을 짚으며, 전형적인 서사에 흡수되지 않고 현 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작은 이야기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형적인 서사와 작은 이야기의 차이는 그 안에 윤리가 존재하는지다. 결국 무비판적으로 거대한 서사를 수용하기보단, 성찰과 망설임의 태도를 가져야만 차이의 가능성을 짚고 음모론에서 윤리의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송 씨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 요구되는 것이 “순수한 동일성을 지향하기보다 구체적인 차이를 포용하기”라고 말하며 당연하게 여겨진 것들을 의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답변 중인 발제자 ⓒ김한결 사진기자

  마지막 발제를 맡은 이원재(사회 24) 씨는 ‘K-POP 문화와 결합된 시위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가’를 주제로 변화된 시위의 양상을 짚었다. 이 씨는 계엄 이후 광장의 시위 현장에서 케이팝 노래가 불리고 형형색색의 응원봉이 나타나는 등 이전 시위와 다른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케이팝과 같은 대중문화가 결합된 시위가 과거 민주화 운동에서 드러난 정치적 진정성을 계승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케이팝의 상업적 요소와 축제화된 시위의 분위기가 정치적 진정성을 약화한 것은 아닐지 우려했다. 팬덤 문화와 결합한 시위가 참여층을 확대하고 소속감과 제공하는 긍정적인 측면은 가질지라도 정치적 메시지의 무게감이 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씨는 특히나 케이팝 산업의 본질인 상업성이 평등과 자유를 외치는 집회에서 온전히 그 몫을 다할 수 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소그룹 토론을 진행 중인 모습

  발제가 끝난 후 두 번째 세션 질의응답이 진행됐다. 참가자 B씨는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현재 한국 사회의 시위 각각이 갖는 진정성이 있는 것 같다”며 “케이팝 문화가 현대 민주주의의 흐름 속에서 갖는 나름의 진정성 또한 있는 듯한데 그 부분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참가자 C씨 또한 “민중가요와 케이팝이 왜 분리돼 대립 구도에 놓였는지”를 먼저 따져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참가자 D씨는 세 번째 발제에 관해 덧붙이고 싶다며 시위에 등장한 케이팝과 소비주의 문제를 함께 생각하길 권했다. 케이팝의 정치성과 소비자 중심주의의 한계를 성찰하지 않는다면 시위 참여자들이 소비자로만 표상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에 이원재 씨는 “현재 집회 현장에서 민중가요를 잘 아는 이들과 케이팝을 잘 아는 이들이 계속 마주치며 서로의 것을 배우려고 한다”며, 새로운 시위 문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의 마주침이 또 다른 진정성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다고 답변했다.

▲특강을 진행 중인 한인섭 교수 ⓒ김효원 사진기자

질의응답 후에는 각 발표의 발제자가 좌장을 맡아 집담회 참여자들과 의견을 나누는 소규모 토론이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각자 원하는 토론방에 들어가 질의응답에서 못다 한 얘기를 나누고 발제자들이 던진 질문을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40여 분의 토론 후 한인섭 교수(법학전문대학원)의 ‘인권과 헌법이 교차할 때’라는 제목의 특강을 듣는 것을 끝으로 집담회가 마무리됐다. 윤석열의 계엄 선포 이후 혼란한 12월이 지나 새해가 왔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엔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산재해 있다. 그 기간에 열린 수없이 많은 집담회와 간담회에서 학부생은 발언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호명되기 일쑤였다. 그러니 이날의 집담회는 학부생들에게 ‘청중의 자리를 넘어 내가 발 딛고 선 광장을 이야기하겠다’는 외침과도 같았다. 우리의 감각과 체험 역시도 중요하다고 외친 사회과학도들로부터, 끝나지 않은 한국의 12월이 새로이 조명됐다.

▲참가자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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