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박종철센터에서 ‘금서전’이 열린다. 기획전시 「자유를 읽다 정의를 읽다」에서는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산하 기구인 자치도서관에서 기증한 시대별 금서들을 선보인다. 관람객들은 전시에 소개된 금서의 역사들을 볼 수 있고, 직접 서가에서 금서를 골라 전시장 곳곳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열람할 수 있다. 전시실에서는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을 둘러싼 검열과 저작권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페이오프》가 특별 상영 중이다. 해당 전시는 지난 12월 30일 시작해 25년 3월 15일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빨간 책’들이 품어온 진실
금서(禁書)는 뜻 그대로 금지된 책이다. 군부독재가 길게 이어졌던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 특정 도서들은 안보를 빌미로 제작·유통·독서를 엄격히 통제받았다. 하지만 무엇을 금지할지 결정하는 권력이 그 자체로 부당한 경우, 금지된 책들은 도리어 우리에게 필요한 진실을 포함하기도 한다.
전시의 제목인 「자유를 읽다 정의를 읽다」는 바로 그런 뜻을 담고 있다. 전시 소책자에는 ‘군사독재정권이 강요한 침묵 속에서 책은 진실을 전달하는 통로였고, 금서는 저항의 상징이었다’고 적혀있다. 이는 비단 군사독재정권 시기뿐만 아니라, 최근까지도 유해도서·불온서적·블랙리스트 등 숱한 명목으로 도서 검열이 진행되는 동시대에도 유효하다.

전시의 첫머리에는 1980년대 학생 운동 시기의 금서들이 놓여있다. 자치도서관에서 기증한 책들은 다양했다. 『세계철학사Ⅱ』· 『철학에세이』 등 철학 선집부터 『역사란 무엇인가』·『분단전후의 現代史(현대사)』 등 역사 서적과 사회과학 도서들이 주로 서가를 채웠다. 전태일 열사 평전인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나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등도 눈에 띄었다.

그중에는 제목도, 저자명도, 출판사도 없는 한 책이 있다. 흰색과 붉은색으로만 이뤄진 표지를 펼치면 블라디미르 레닌의 「칼 맑스 약전」, 칼 마르크스의 「1844년 경제학 철학 수고」,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상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의 발전」 등 당대에 철저히 배포가 금지됐던 공산주의 사상가들의 논고가 다양하게 수록돼 있다. 출판이 금지된 책들은 이렇게 암암리에 엮어내는 방식으로 만들어졌고, 학생사회에서 은밀하게 유통됐다. 쪽을 넘기다 보면 당시 학생들이 책을 통해 공부하며 남긴 밑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유일하게 이적표현물*로 처분된 무협지인 박영창의 『무림파천황』도 전시됐다. 전시 설명에 따르면 이 무협지는 ‘절정의 무공을 익힌 주인공이 부모의 원수를 갚고 정파와 사파가 대립하던 무림을 평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평범한 무협지의 서사를 다루고 있지만, 당시 정권은 ‘사파와 정파의 투쟁을 변증법으로 설명한 것과 강북무림이 강남무림을 향해 남진을 주장한 부분이 북한의 남침을 연상시킨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자의적인 해석에 따라 작가는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됐고, 최종적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적표현물: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을 돕기 위한 문서나 도화
여전히 빗금은 그어지고 있다

정권이 임의적으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비단 민주화 이전의 일만이 아니다. 전시실의 안쪽에는 2008년 국방부에 의해 선정된 불온서적 23권이 비치돼 있다. 당시 국방부는 이 도서들에 대해 부대 반입을 금지했지만, 이러한 조치에 반발한 시민들은 도리어 해당 도서들을 폭발적으로 주문하는 것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이 목록에는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노엄 촘스키의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현기영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 등이 있다.
전시실에는 2024년 경기도교육청이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성교육 도서라는 명목으로 폐기한 유해도서들 역시 전시됐다. 2023년 11월 경기도교육청은 성 관련 도서를 폐기하라는 공문을 경기도 내 교육기관에 하달했다. 경기도교육청은 따로 폐기할 목록을 명시하지 않았고, 보수 학부모 단체가 부적절한 성교육 도서를 폐기하라고 촉구한 기자회견을 참고하라는 모호한 지시를 내렸다. 이에 경기도 내 초·중·고에서는 해당 단체가 지목한 도서를 포함해 2,528권에 달하는 도서를 폐기했다.
그러나 실제 폐기된 책들은 성교육이나 성평등 부문에서 도리어 양서로 평가받았던 작품들이었다. 『여자와 남자는 같아요』, 『사춘기 내 몸 사용 설명서』, 『10대들을 위한 성교육』 등 폐기됐던 도서는 다양한 부문에서 추천 도서나 우수 도서로 선정됐다. 보수 학부모 단체들이 폐기를 요구한 140여 종의 책 중 간행물윤리위원회가 실제로 유해도서로 의결한 책은 단 한 권뿐이었다.

이 과정에서 성교육과 무관한 문학 작품들도 무더기로 폐기됐다.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주제 사라마구의 대표작 『눈먼 자들의 도시』부터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채식주의자』도 폐기 대상이었다. 대표적인 한국계 미국인 작가인 이창래의 『가족』이나,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최진영의 『구의 증명』도 폐기된 바 있다. 해당 작품들은 대개 독자나 평단에서 문학성을 검증받은 작품들이기에, 성교육 혹은 성평등의 부적합성을 이유로 처분됐다는 사실 자체가 의문스러운 일이었다.
검열을 이겨내고, 검열을 넘어서서

전시실의 중앙에는 강상우 감독의 영화 《페이오프》가 상영되고 있다. 이 영화는 19분 분량으로, 인터뷰와 영상 푸티지* 위주의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사계절출판사(사계절)가 1985년 펴낸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을 둘러싼 파란만장한 여정을 다룬다. 1984년 남북 공연단을 필두로 남과 북의 교류 분위기가 형성되자, 1982년 설립된 사계절의 김영종 대표는 이 시기를 틈타 『임꺽정』을 펴내고자 시도했다.
*푸티지 : 카메라로 녹화된 미편집 영상 원본들

홍명희는 해방 이후 월북한 작가였다. 당시 월북 작가들의 작품은 아예 출간되지 않았고, 학계에서 다뤄질 때도 이름을 제대로 표기하지 않는 등 언급이 터부시됐다. 그러므로 5공화국 치하에 『임꺽정』을 펴내는 것은 매우 큰 모험이었다. 결국 사계절은 비밀리에 출판을 진행했지만, 900여 권의 초판 원고들이 나왔을 무렵 문화공보부(문공부)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직원들이 들이닥쳐 모든 인쇄물을 압수했다.
사계절은 민사 소송을 진행했다. 이 처분에 대해 문공부는 실질적인 법적 근거가 없었고, 소송은 사계절 쪽에 유리하게 기울었다. 이에 문공부가 내세운 전략은 원작 작가인 홍명희가 북한에 있기에, 사계절이 저작권이 없다는 논리였다. 이에 김영종 대표는 북한에 홍명희의 손자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경로를 통해 저작권 협의를 조율하고자 했지만,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계절이 1991년에 소송에서 승소함으로써 『임꺽정』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그 뒤 『임꺽정』은 100만 부 이상 판매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2005년 의외의 국면이 찾아왔다. 북한에 있는 홍명희의 손자인 홍석중 씨가, 남한에서의 『임꺽정』 출판이 저작권 침해라고 규탄 성명을 낸 것이다. 이에 당시 사계절의 강맑실 대표는 당황스러워하면서도, 그 상황을 고무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임꺽정』을 통해서 저작권자와 출판권자의 만남이 언젠가는 이뤄질 것이라는 생각을 버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강 대표는 영화에서 술회했다. 북한에서 저작권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 그것도 남한에서 출간된 월북 작가의 저작권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남북이 문화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통로의 존재를 암시하기 때문이었다.
이후 강맑실 대표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홍석중 씨와 개성공단에서 만났다. 강 대표는 홍 씨가 ‘만나자마자 무조건 안아주셨다’고 당시의 만남을 회상했다. 홍석중 씨 역시 ‘작가가 북에 있다는 것 때문에 작품이 묻히게 되는 상황’에서 조부의 작품이 남한에 널리 알려졌다는 사실에 감사해한 것이다. 강 대표는 ‘저작권 문제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한 번도 부채 의식에서 헤어나본 적이 없다’고 홍 씨에게 전하며 ‘꿈같은 일이 이뤄졌다’고 감격했다.

결국 사계절이 15만 달러를 홍석중 씨에게 지불하며 『임꺽정』의 저작권 문제는 일단락됐다. 이제 『임꺽정』의 서지정보에는 저작권자 명의로 홍 씨가 기재돼 있다. 최초에 『임꺽정』은 월북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검열당했지만, 이후에는 남북 최초의 저작권 협상이라는 지평을 이끌어냈다. 검열의 명분으로 사용되던 분단 상황을 뛰어넘어 남북 간의 문화적 연결을 상상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검열은 그 주체와 명분만 바뀌면서 꾸준히 이어졌다. 전시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진행됐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역시 검열의 명백한 현재진행형이다. 블랙리스트의 검열 대상에는 도서 역시 포함됐고, 박근혜 정권이던 2014년부터 2015년 사이 블랙리스트 작가들의 도서는 세종도서 우수 도서 선정 목록에서 배제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통제는 언제나 발각되고 실패로 돌아간다. 시대가 특정한 목소리를 금지하려 해도, 목소리는 손아귀에 쥘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 책을 구해서 읽으며, 또한 그 책을 금지하는 권력이 내심 품는 두려움을 읽는다. 읽지 말라는 명령마저 읽히는 대상이 되기에, 금서는 늘 불가능한 기획일 수밖에 없다. 한 권의 책이 어떤 가치가 있을지는 각자 직접 읽어봐야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더욱이 검열은 감시받아야 한다. 이 전시는 그렇게 관람객으로 하여금 검열된 도서를 직접 마주하고, 또한 검열의 역사를 통해 시대의 행간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