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미래는 그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근데 저는 못 믿겠어요. 커버를 준비하며 가장 많이 한 말이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요. 지금 광장에 모인 이들이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다뇨. 이들의 목소리가 정치권의 벽에 가로막히지 않을 수 있다뇨. 차별금지법도 생활동반자법도 비동의 강간죄도 노란봉투법도 있는 세상에서 살 수 있다뇨. 정말 아름답지만 하나도 못 믿겠어요. 나도 확신하지 못한 채 쓴 이야기로 다른 이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막막한 마음을 숨긴 채 무작정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당신은 왜 광장에 나갔나요. 가방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투쟁 머리띠는 어디서 구했나요. 그 밤 남태령이 어떤 기억으로 남았나요. 어느 때보다 많은 이들을 만났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동덕여대 캠퍼스에서,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국회의사당역과 경복궁역을 오가며. 숨을 쉴 때면 안경에 뿌옇게 김이 서렸다. 카메라를 들고 헤매기 바빴던 내게 먼저 다가와 무지개떡과 따뜻한 보리차를 건네던 이들의 얼굴을 기억한다. 빨갛게 언 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한 자씩 또박또박 힘줘 발음하던 사람들, 그들의 말속에서라면 나는 얼마간 내가 바라던 세상에 살 수 있었다. 어쩌면 미래는 그런 방식으로 오는 게 아닌지.

  래커칠한 바닥에서 마스크를 쓰고 본부를 규탄하던 동덕여대 학생들의 곁에. 시민들로 가득 찬 승강장에서 더는 쫓겨나지 않겠다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의 외침처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감색 털모자를 쓰고 연좌 투쟁을 이어가던 지혜복 선생님의 굳게 쥔 주먹같이. 나는 성소수자 시민이라고 자신을 밝히기 주저하지 않던 목소리들 사이로. 얼마간 꿈꾸던 것들이 커다란 절망의 틈을 비집고 멈추지도 않고 들어왔다고. 최악의 나날 속에서도 얼마간 희망을 봤다고, 그래서 이것을 조금이나마 기회로 보고 싶었다고. 그렇게 쓰는 건 너무 기만일까?

  열아홉 번째 인터뷰가 끝났을 때 나는 비로소 믿을 수 있었다. 어쩌면 도래할지도 모르는 세상을. 나는 페미니스트며 퀴어이며 성폭력 생존자이며 20대 남성이며 청소년이며 그 밖의 모든 것이라는 이들의 결연한 눈빛을 보고 그들이 남긴 말을 곱씹다 보면 내게 미래는 냉소가 아닌 믿음의 영역이 됐다. 믿음은 의지의 영역이다. 당연히 믿을 수 있는 건 없다. 당신들은 나를 믿게 해줬다. 거대한 폭력 앞에 더는 아무도 홀로 두지 않겠다던 당신의 말 앞에서 나는 자주 겸허해졌다. 

  여전히 지는 싸움을 하는 게 싫다. 보온병에 챙겨간 물은 금방 식고, 얇은 방석은 아스팔트 바닥의 한기를 다 막아주지 못하고, 한 시간만 지나도 발가락의 감각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신나게 투쟁을 외치다가도 경찰이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을 밀치는 장면을 보면 순식간에 마음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광장 안팎을 오가며 만난 이들의 얼굴에 떠오른, 그 커다란 용기와 사랑을 어떻게 모른 척할 수 있을까. 

  지금의 세계가 하나도 당연하지 않다며 기어이 깨부수길 택한 이들을 사랑한다. 그들이 조각난 삶 위에서 새로이 재건 중인 세계에 함께 드러눕고 싶다. 우리가 매번 지는 싸움의 끝에 간당간당하게 매달려 있을지라도, 끝없는 피로에 서로의 눈을 마주치기조차 미안한 날에도, 여전히 믿을 수 있길 바란다. 내 옆에 분명한 체온을 가진 이가 있었다는 걸. 그 뜨거운 몸이 어제도 오늘도 내 곁에 있었다는 걸. 사실 그게 내가 구하고자 한 전부라는 걸. 나는 그 미래 속에서만 내일을 바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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