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호가 발행됐다, 마침내. 12월 3일 이후 내놓는 첫 호가 12.3 내란을 다루는 특집호여야 한다는 데엔 이견이 없었다. 늘 그래왔듯 기사의 주제와 논조에 있어 기성 언론과의 차별화를 신경 썼고, 각종 디자인과 레이아웃까지 많은 방면에서 변화를 꾀했다. 어떤 권호보다도 오랫동안,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한 끝에 내놓는 호라고 자부한다. 고생한 저널러들에게 이 지면을 빌어 감사와 위로, 응원을 전하고 싶다.
이번 호에 참여한 건 12월 3일 국회로 달려가 민주주의를 지켜낸 시민들에 대한 부채감 때문이다. 내 나름의 방식으로 마음의 짐을 덜고, 내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완전히 후련해지지도 못했고 그럴 수도 없겠지만 다시 돌아가도 더 나은 기사를 쓸 자신은 없다. 육군에서 현역병으로 복무 중인 한 인터뷰이는 12월 3일 국회에서 시민의 편에 서서 함께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고 말했다. 내란을 둘러싼 수많은 의제 중 군대를 다룬 건 장병들에게 미약하게라도 위로를 전하고 싶어서였다. 원치 않게 현장에 투입된 이들은 물론, 수상한 시기에 복무 중이라는 이유로 마음 한편이 무거웠을 이들에게 자책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공들여 준비한 것들을 무사히 내놓을 수 있어 기쁘고 후련하지만, 두렵고 벅찬 마음도 그에 못지않다. 세 학기에 걸쳐 아홉 호에 참여했지만, 내겐 이번 호가 가장 힘겨웠다. 내란이 실현된 주축엔 군대가 있다. 이는 오래 전부터 지적된 군의 병폐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문제를 짚고, 구조를 파헤치고, 대안을 모색했다. 이는 사회부 기사의 전형적인 구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와 구조는 늘 복잡다단하기 그지없고, 대안은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보이기 일쑤다. 기사란 그 거대한 얘기들을 다듬고 좁혀서 지금-여기로 끌어오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범람하는 말들 속에서 기자가 중심을 다잡고 굳건하게 해내야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번 호는 유독 많이 헤맸다. 군 의제를 둘러싼 온갖 분석과 진단들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모든 말들이 타당했고,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어 보였다. 사안의 핵심을 놓칠까, 독자에게 피로감만 더하는 뻔한 기사가 나올까 두려웠다. 무엇보다도 근 세 달 동안 온 마음을 쏟아온 다른 저널러들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았고, 동시에 그들이 부끄럽지 않았으면 했다. 결국 마감 기한을 한참 넘겨서 모두를 애타게 만들어버렸다. 굉장히 미안하다고, 동시에 끝까지 믿고 기다려줘서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189호를 끝으로 다시 〈서울대저널〉의 독자로 돌아간다. 함께한 이들에게 말도 안 되게 큰 빚을 져버렸다. 189호 제작을 총괄하며 중심을 잡아준 선우, 늦어지는 초고에도 한결같이 응원하고 격려해준 세민, 본인 일처럼 마음을 써가며 양질의 조언을 아끼지 않아준 수환, 커버팀 못지않은 애정과 열정으로 189호를 가꿔준 태현과 채현, 괜찮냐며 안부를 물어준 원민과 현서, 정원, 기사는 기자가 만족할 때까지 써야 한다며 날 믿어준 인표, 인터뷰이 물색에 도움을 준 다빈, 그리고 2021년과 2024년 저널에 몸담았던 모든 이들과 더불어 귀한 시간 내서 인터뷰에 응해준 모든 인터뷰이들까지. 결국 내게 저널은 곧 함께한 이들의 면면이었던 것 같다. 오래도록 잊지 않으려고 한다.
저널을 나가도 삶은 계속되고 세상은 여전히 엉망이겠지만, 그 가운데 어떤 마음을 견지하고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질 때마다 돌아볼 장면들이 생겼다. 몇 번이고 저널을 떠올릴 거고, 그때마다 난 얼마간 의연하고 겸허해질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