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 5일, 비상계엄 선포 후 48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열린 전체학생총회(총회)에선 50여 분간 자유발언이 진행됐다. 총회 개회 직전 현장에서 소집된 임시 총운영위원회(총운위)에서 단과대별로 한 명씩 자유발언자를 내보내는 것이 의결됐다. 긴박하게 준비된 자리였지만, 16개 단과대학 학생들이 나서서 현장을 뜨겁게 달궜다.
각자 2분 동안 자유발언에 나선 학생들은 각기 다른 목소리로 저마다의 생각을 펼쳤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발언 기회로 2,700 여 명의 학생 앞에 선 이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여섯 명의 자유발언자가 답했다. 송지민(소비자 24), 송준혁(건축 19), 어현서 (디자인 23), 박준섭(물리천문 22), 전현철(농경제사회 19), 이강준 (의학 19) 씨가 보내온 답변의 일부를 정리했다.
SJ 발언에 나서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무엇이었고, 내용은 어떻게 준비했나.
지민 이런 시기에 침묵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발언에 나섰다. 발언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총회 시작 직전에 알았던 만큼 내용을 별도로 준비하지는 않았다. 대략적인 내용만 구상한 뒤 사실상 즉흥적으로 발언에 임했다.
준혁 평소에도 정치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번 총회가 많은 사람 앞에서 의견을 펼칠 기회라고 생각해 발언대에 섰다. 처음에는 발언권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공과대학에서 지원자가 많이 나오지 않아 운 좋게 기회를 얻었다. 발언 내용은 평소 윤석열 씨에게 품고 있었던 여러 생각에서 출발해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내란수괴 윤석열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다른 발언자의 말을 듣고 ‘윤석열,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문장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이를 중심으로 평소 하던 생각을 덧붙여 내용을 정리할 수 있었다.
현서 총회 자리에 있던 미술대학 학생들과 상의해 발언대에 올라갔다. 내용 또한 미술대학 학우들과 논의하고 검토하며 적었다. 과도하게 공격적인 내용은 배제했고, 최대한 사실에 기반해 비판할 수 있도록 발언문을 작성했다.
준섭 자연과학대학 학생회장과 총학생회 산하 ‘정부 R&D 예산 확보를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정부 정책 및 시국과 관련해 자연과학도의 입장을 잘 대변할 것이라 기대했기에 현 자연과학대학 학생회장이 나를 추천한 것이 아닌가 싶다. 평소 활동하며 생각했던 과학기술 및 고등교육 정책의 아쉬운 점을 바탕으로 배종훈 교수님께서 대학의 재정 운용과 관련해 〈대학신문〉에 기고하신 칼럼을 참고해 발언했다.
현철 발언 내용은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그대로 내뱉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동안 윤석열 정부가 일삼은 파국적 행태에 대해 마음속에 쌓아온 것을 최대한 정제된 언어로 표현하고 싶었다. 반헌법·반국가적 행태에 대한 범국민적 여론이 그저 신기루나 찻잔 속 태풍으로 치부할 것이 아님을 알리고, 그런 시류를 배가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발언에 나섰다.
강준 총회 개회 약 2시간 전 단과대별로 자유발언자가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 많은 서울대 학생이 모인 총회에서 자유발언자가 부족할 경우 총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한 명의 국민이자 서울대 학생으로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발언에 지원했다. 내용은 계엄의 부당함에 목소리 낼 필요성에 초점을 맞춰 작성했다. 다양한 단과대 학생이 서울대라는 이름 아래 한데 모인 자리인 만큼, 특정 단과대와 관련된 사항보다는 대다수 학우가 공감하는 민주주의라는 가치에 무게를 실어 내용을 준비했다.
SJ 많은 학생 앞에서 발언할 때 어떤 마음이었나.
지민 이틀 연속으로 3시간을 자고 나왔던지라 졸렸다. 춥기도 했고. 그래도 여러 사람 앞에 서본 경험이 있어서 많이 떨리지는 않았다.
준혁 발언대에 나설 당시에는 준비한 발언 내용을 복기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앞의 많은 대중을 볼 겨를이 없었다. 발언하는 동안에도 발언 내용에 심취해 있어 부담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다만 발언을 끝내고 내려간 후엔 미뤄둔 부담감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급체하는 바람에 조금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현서 날이 상당히 추웠는데도 미술대학을 비롯해 많은 단과대학에서 사람들이 모였다. 그렇게 많은 학생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지만, 한편으로 이번 사태에 대해 많은 이들이 불안해하며 걱정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런 만큼 발언 내용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준섭 학생회장직 인수인계를 준비하며 총회의 역사를 되짚어 본 적이 있는데, 실제로 학생들이 집결한 광경을 보니 대표자로서 가졌던 책임감과 영향력이 무거웠음을 깨달았다. 자유발언을 끝으로 영광스럽게 임기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다.
현철 자유발언이 지속되며 발언이 조금 격화되는 양상이 보여서, 발언이 격해지지 않도록 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 돌아보니 조금 격하게 말했던 것이 있는 것 같아 지금으로서는 아쉬운 부분도 있다. 내가 하는 발언이 서울대생 전체의 의견인 것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 했다. 각종 언론사에서 자극적인 기사를 만들기 위해 합의되지 않은 소수의 의견을 ‘서울대’라는 이름을 달아 확장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당시 발언이나 총회가 그런 식으로 쓰이지 않았으면 해서 최대한 한 단어 한 단어에 신경쓰고자 했다. 또, 윤석열 정부의 반헌법적 비상계엄 선포에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학우가 있을 수도 있었기에 그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싶었다.
강준 총회에 한 명의 자유발언자로 나설 수 있다는 게 감사하고 영광이었다. 우리의 목소리가 세상을 바꾸는 데 일조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유발언을 했다. 또한, 내 발언 내용이 왜곡돼 전달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발언하는 그 순간까지 한 글자 한 글자 고심했다.
SJ 총회 이후로도 벌써 두 달 반 가량이 지났다. 지금 시점에서 당시 발언을 돌아본다면.
지민 역사는 대체로 반복되지만 끝내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가 독재 정권으로의 회귀를 막아낸 이상 한국의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더욱 굳건해질 것이다. 탄핵 소추와 일련의 법적 절차를 거치며 드러났듯 책임을 회피하려는 윤석열의 발악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발언 당시 윤석열의 계엄 선포문 중 일부를 뒤집어 ‘나는 너를 척결하겠다’고 말했다. 이제 그의 척결까지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확신이 든다.
준혁 졸업하기 전 대학생으로서 나라의 미래를 위한 활동을 해낼 수 있었다는 점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에 무관심한 젊은 세대로 남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현서 사실 아직도 명쾌하게 해결된 문제가 그다지 없다는 점에서 약간의 참담함을 느낀다. 그러나 이런 사태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는 종류의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리라 느낀다. 이번 시위를 통해 많은 사회적 문제가 함께 공론화되고 있다. 환경·여성·인권·노동 등 많은 문제가 공론장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이번 사태에 계속 주목하는 동시에 이번 사태를 통해 다른 사회 문제에도 조금씩 관심을 가져준다면 고맙겠다. 저번 총회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었던 연대감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사회에서도 큰 역할을 하리라 생각한다. 서로가 겪는 각자 다른 문제에 관한 관심과 참여, 그리고 연대가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길 바란다.
준섭 정책 대상자와 정치인 사이의 소통이 효율과 자율성을 모두 챙기기 위한 중요한 열쇠라고 생각한다. 현 정부에서 추진한 과학기술정책이 가진 대부분 문제가 재정건전성을 명목으로 현장 소통 없이 예산 삭감을 단행한 것에 기인한다. 예산 복원 과정에서조차 연구과제의 효용을 둘러싼 평가나 기준틀이 실무자와 정책결정권자 사이의 괴리를 좁히지 못했다. 민관 협력 위원회나 장기 연구과제 보호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초기 혁신 방향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역시 시행권자와 정책 대상자 사이에 공감대 형성이 전제되지 않았기에 발생한 갈등이자 문제 상황이라고 느꼈다.
현철 전반적인 생각은 당시 발언 내용과 변함이 없다. 오히려 지금 속속 드러나는 내란 모의의 전말을 보며 더욱 분노하고 있다. 또 내란 동조 세력에 대해서도 참담한 심정이다. 당시 “이 모든 책임을 윤석열이란 이름에 담아 탄핵만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장밋빛 전망을 하지 말자”고 발언했다. 관련한 모든 책임 있는 세력과 부패한 정치세력에 대한 청산을 함께해야 한다는 저의를 담고 싶었는데, 그 부분이 묻힌 것이 참 아쉽다.
강준 지금도 당시 발언의 방향성에는 여전히 동의한다. 정당성이 없는 계엄이었다고 생각하며, 충분한 탄핵 사유라 생각한다. 또한, 탄핵 찬성과 반대 집회가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음에도 여론은 탄핵 찬성의 편이라 생각한다. 다만, 당시에는 이 사안마저 야당에 의해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고려하지 못했다. 총회 당시 전현철 학우께서 윤석열 대통령 외에도 이러한 상황을 만든 정치인이 다 같이 반성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그 말에 많이 공감한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이재명과 더불어민주당(민주당)도 자성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이 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에서 선택할 때, 호와 불호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차악과 최악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 같다. 민주당이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이후 상황을 정치적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정의 기회로도 활용했다면 국민의 지지를 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더불어, 자유발언 준비 시간이 충분했다면 더 좋은 발언을 할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도 있다.
SJ 박준섭 씨는 총회 자리에서 R&D 예산 삭감 문제와 함께 연구의 자율성이 지닌 힘을 언급했다. 해당 발언의 취지는 무엇이었나.
준섭 국가 주도의 과학기술 거버넌스가 대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하다. 그러나 지원하면서도 간섭하지 않는 연구 환경 역시 과학기술 선도 국가가 되기 위해 필수적인 요건이다. 현재는 연구자가 근로자의 지위를 분명하게 보호받지 못하고, 연구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 역시 불충분하다. 자율적이고 도전적인 연구자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대학과 연구 환경이 정치적 목적으로 흔들리는 정도를 줄이고 환경을 안정화할 수 있는 법제 장치를 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과학자와 정치인이 보다 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해 발언했다.
SJ 전현철 씨는 총회 자리에 박종철 열사의 사진을 가져왔다. 자유 발언을 위해 미리 준비한 것이었나. 어떤 취지였나.
현철 지난 1년간 사단법인 ‘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로 활동했다. 가장 어린 이사로 활동하며 ‘박종철 정신’의 계승과 함께 오늘날의 박종철 정신 등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관점에서 비상계엄과 관련된 반국가적 작태를 보며 박종철 열사가 가장 먼저 떠올랐고, 사진을 갖고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들의 말은 그날 2,700여 명의 학생 앞에서 퍼져나가며 이미 제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발언자를 만나, 그의 생각을 글로 물었다. 수많은 학생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장면은 오늘날 많은 대학생에게 낯선 광경이다. 그날 충분한 준비 시간 없이 발언에 나선 학생들은 발언대에 나서기 전후에 어떤 생각을 했을까. 발언대 위에선 무엇을 봤을까. 이 기록이 훗날 마이크를 잡을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며, 흩어진 말을 지면에 다시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