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볼루션(revolution)’. 혁명과 회전은 영어로 옮겨놓을 때 같은 단어로 만난다. 2016년에 이어졌던 촛불의 행렬은 촛불 혁명이라고 불리곤 했다. 그래서 혁명은 성공했던가? 만일 혁명이 세상을 완전히 뒤바꾸는 것이라면, 어째서 우리 앞에는 윤석열이라는 이름이 돌아왔을까. 어째서 고함과 비명과 울음으로 가득한 ‘소음’은 여전할까. 어쩌면 2016년의 촛불은 혁명이 아닌 회전에 그쳤을지 모른다. 한 바퀴 돌아서 제자리. 하지만 황정은의 소설은 말한다. 진정한 혁명은 회전을 기꺼이 살아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디디의 우산』은 중편소설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를 묶은 연작소설이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2017년 3월 10일의 한순간을 다룬다. 제18대 대통령 박근혜가 파면되는 순간. 주인공 ‘나’와 동반자 ‘서수경’, 동생 ‘김소리’, 조카 ‘정진원’이 그 순간을 함께하기 위해 식탁에 모여 낮잠을 자고 있다. 유일하게 깨어있는 ‘나’는 모두가 혁명이라고 부르는 이 순간을 마주하기까지, 식탁 위의 그들이 어떤 차별과 수치심으로 빚어진 삶을 지나왔는지를 회상한다.
소설은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이 격화되고 완수된 2015년부터 2017년의 세월을 포착하되, 그것을 단순한 승리의 역사로 기술하지 않는다. 대신 젠더·계급·장애·퀴어 등 수많은 정체성이 교차하는 몸을 갖고 이를 겪어낸 실제 사람을 통해 역사의 자세한 내막을 들여다본다.
예컨대 ‘나’는 가정·대학·직장 등 삶 내내 일상화된 성차별을 받아온 여성이며, 법적으로 혼인 관계를 인정받지 못하는 동성애자다. 하지만 ‘박근혜 퇴진’이라는 단일한 구호가 울려 퍼지는 광장에서 ‘나’가 가진 이러한 복잡성은 간과된다. ‘나’는 ‘惡女 OUT(악녀 아웃)’이라는 여성 혐오적 팻말에 불쾌함을 느끼지만, ‘지금 우리가 우리니까’ 침묵하고 넘어가게 된다. 명백한 차별적 언어에 대한 불편이, 혁명의 동력을 흩뜨리는 사소한 감정일 수 있다며 스스로를 검열한 것이다. 이처럼 황정은은 ‘우리가 무조건 하나라는 거대하고도 괴로운 착각’을 섬세히 들여다보며,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묵살된 차이들과 그로부터 발생한 억압을 놓치지 않는다.
황정은은 혁명을 하나의 특수한 사건이 아닌 역사의 연속으로 읽어낸다. 이 비상이 생겨나기까지 일상에는
조짐이 있었다. 또한 ‘나’는 수많은 비상의 계보 속에 놓인 1996년 연세대학교 범민족 대회, 2008년의 ‘명박산성’, 2009년 용산참사의 기억을 누적한 채로 촛불을 맞이했다. 언제나 폭력은 존재했고, 세계를 바꾸려는 혁명의 시도도 반복됐다. 하지만 세계는 그대로며 문제는 늘 다른 얼굴로 돌아온다. 한번 일어났다. 그러면 그것은 다시 일어난다. 프리모 레비의 말을 떠올리는 ‘나’의 모습은 이 혁명 역시 회전의 한 지점일 뿐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황정은의 시선은 혁명의 일체성과 완결성 모두가 허구적이라는 사실을 예리하게 드러낸다. 혁명은 쉽게 숭고화되지만 실은 너저분한 회전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의미가 없는 것일까.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나. 하지만 황정은은 무기력함을 사유의 종착지로 삼지 않는다. 다만 이 덧없음을 정확히 알고, 이곳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첫 수록작인 「d」에는 환멸이 가득하다. 주인공 ‘d’는 연인 ‘dd’를 교통사고로 허무하게 잃었다. dd와 함께 꾸려가던 생활은 아름다운 음악 같았지만, 그의 죽음 이후 d는 다시 자질구레하고 잡음 가득한 세상에 내동댕이쳐진다. 세상은 여전히 하찮은 일들이 회전하듯 반복되고, 이 굴레에서 벗어날 길은 없어 보인다. d는 읊조린다. 나는 내 환멸로부터 탈출하여 향해 갈 곳도 없는데요.
하지만 그토록 덧없음이 삶의 불가피한 조건이라면, 도리어 환멸을 충분히 느끼는 것이 삶을, 또한 타인을 똑바로 바라보게 되는 방식일지 모른다. d는 그 환멸을 직시한다. d는 자질구레한 세상을 그대로 축소한 듯한 세운상가에서 택배를 분류하며 일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디오 수리공인 ‘여소녀’를 만난다. d는 여소녀의 수리실에 들렀다가, 그가 턴테이블에서 재생한 음반을 듣는다. 그 순간 d는 그 소리에 매료된다.
dd는 유품으로 음반들을 남겼다. 그대로 두면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검은 원반들. d는 여소녀에게 도움을 받아 턴테이블 장비를 맞춘다. 곧 턴테이블에는 dd가 차곡차곡 모았던 음반이 오르고, 천천히 돌기 시작한다. 노래가 울린다. 노래는 음악이기 이전에 소리다. 온갖 사물들과 부딪쳐 떨게 만드는 파동. 그것은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을, 또한 우리가 있는 공간을 체감시킨다. 회전으로부터 진절머리 나는 환멸을 느꼈던 d는 그때 깨닫는다. 회전함으로써만 아름다움과 기능을 다하는 사물이 있다고.
음반은 턴테이블로부터 탈출해서는 아무 소리를 내지 못하지만, 회전하면서 비로소 소리를 발생시킨다. 회전할 수밖에 없다면, 충실히 회전해야 한다. 턴테이블은 음악이 아닌 소리 역시 읽어내며, 잡음을 음반 특유의 ‘사운드’로 승화한다.
불규칙하고도 일정하게 자글거리는 잡음이 내내 이어졌다. d는 그것이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바늘이 먼지를
긁거나 잡다한 흠欠을 읽는 소리라고 여소녀가 답했다. 그 소리는…… d가 듣곤 하는 이명, 잡음과도 유사했는데 음악과 더불어 그것은 음악처럼…… 음악의 일부처럼 들렸다.
각기 다른 정체성을 지닌 우리가 혁명이라는 거대한 움직임과 관계할 때는 늘 잡음이 발생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차이의 흔적을 차단할 것이 아니라, 그것마저 기꺼이 음악의 요소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d는 어느 날 친구 ‘박조배’와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가,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집회를 목격한다.그곳에는 d와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이를 잃고 세상에 남겨진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세상의 덧없음에 기꺼이 저항하며 회전에 뛰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완고한 차단선을 구축해 이들의 행진을 방해했다. d는 철저히 인파가 격리된 세종대로 사거리를 ‘진공’이라고 표현한다. 또한 ‘저 소리(집회 참가자들의 소리)는 이 간격을, 이 진공을 도저히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염려한다.
하지만 2025년의 우리는 그 진공이 결국 소리에 의해 점령됐다는 것을 안다. d는 여소녀가 앰프를 정비할 때 전구와 비슷한 진공관을 발견한다. 여소녀는 ‘진공관은 소리를 좌우한다고’ 말한다. 소리를 한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정류와 신호의 진폭을 늘리는 증폭을 통해. 소리를 정렬하고 배가시키는 이 사물을 무심코 만진 d는, 그 뜨거움에 깜짝 놀란다. 우습게 보지 말라고 여소녀가 말했다. 그것이 무척 뜨거우니, 조심을 하라고.
우리는 회전을 통해서 회전을 이겨낼 것이며, 진공을 통해서 진공을 돌파할 것이다. 턴테이블과 앰프를 통해서.황정은은 진정한 혁명은 회전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사물과, 그것을 매만지는 사람들의 몸짓에서 온다고 말한다. 윤석열이라는 이름이 또 한 번의 회전으로 돌아온 지금, 우리는 어떻게 혁명을 사유해야 할까. 황정은의 소설은 이 물음 앞에 첫 번째로 돌아봐야 할 한국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