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사

  우리는 서울시가 ‘책 읽는 서울 광장’ 행사를 핑계로 근 2년 동안 퀴어퍼레이드의 시청 광장 사용을 불허한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12.3 내란 이후 하나로 종합할 수 없는 ‘퀴어한’ 목소리들은 광장에서 사회 대개혁을 요구했고, 그곳에 책을 가져가고 펼침으로써 책 읽는 광장이라는 말을 완전히 뒤바꿔 돌려줬다.

  189호의 특집 미련에서 〈서울대저널〉 기자들 역시 각자 한 권의 책을 소개한다. 계엄 이전을, 계엄을, 또 계엄 이후의 세상을 이해하고 그려보기 위해서. 지금 무엇을 바라봐야 할지 고민하고 서로에게 나누고자. 그렇게 광장에서 서로가 돌려 본 책들이 쌓여, 미래를 향한 계단을 짓길 바라면서.

『신극우주의의 양상』 
테오도어 W. 아도르노, 이경진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0.

홍인표 기자(han0727@snu.ac.kr)

▲©문학과지성사

  어째서 극우주의는 돌아오는가? 『신극우주의의 양상』 에서 아도르노는 1965년 독일 신극우주의 정당의 귀환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이 질문에 답한다. 나치가 패전한 뒤에도 극우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극우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가 처한 불안정성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우주의는 불안정성의 근본적인 원인을 탐색하는 대신, 공산주의나 사회적 소수자 등을 적으로 돌려 불안을 배출한다. 권위주의적인 인격에 호소한다. 프로파간다를 적극 이용한다. 자신들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킨다고 주장한다. 

  이는 오늘날 한국의 상황과도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아도르노는 극우주의가 ‘민주주의의 상처이자 흉터’로서, 민주주의가 완전히 기능하길 바란다면 절대 외면하지 않아야 할 문제라고 말한다. 아도르노는 ‘극우주의의 잠재적 추종자들에게 그들이 책임져야 할 결과에 대해서 경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발 딛고 선 합의점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려는 행동들 앞에서, 아도르노의 관찰과 비판은 지금도 많은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리 매킨타이어, 노윤기 옮김, 위즈덤하우스, 2022.

손원민 기자(dnjsals1203@snu.ac.kr)

  이 제목 앞에서 웃기도 울기도 힘든 표정이 지어진다면,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과학 부정론을 연구하는 철학자인 리 매킨타이어는 ‘평평한 지구 국제 학회’에 찾아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이들과 대화를 나눈다. 저자는 철학자로서 연마한 논증 기술로 이들이 스스로 모순을 깨닫게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그랬다면 이 책이 이렇게 두껍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한 끝에, 리 매킨타이어는 이들의 믿음을 바꿀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의 믿음은 단순한 신념이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저자는 이를 우습고 터무니없는 일로 치부하기보단, 그런 믿음이 지닌 위험성을 분명히 짚어내고 대화를 통해 변화를 이끌어낼 가능성에 집중한다.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다. ‘의견이 다른 사람과도 여전히 대화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그렇게 대화의 장을 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막막하게 느껴진다면, 이 책을 펼쳐보자. 저자가 고행 끝에 직접 획득한 몇 가지 전략이 그 안에 소개돼 있다.

『민중들의 이미지』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여문주 옮김, 현실문화연구, 2023.

이다빈 기자(qlsekdl11@snu.ac.kr)

  어두운 밤 비로소 빛을 드러내는 반딧불이처럼, 오늘의 광장에는 어두운 시국에 응원봉을 수놓는 낯선 민중이 자리하고 있다. 선택받지 못해 기억되지 못하던 민중과 선택돼 과잉 소비되던 민중이, 각자의 방식을 통해 한자리에 모여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광장을 상상하는 무수한 시선들이 쏟아지는 요즘이다.

  이 시점에서 각종 예술과 사상을 경유하며, 민중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노출되고 형상화돼 왔는지 살펴보는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사유는 더없이 유효하다. 자꾸만 민중에게 하나의 이름표를 붙이고자 하는 세상과 한쪽이 민중이 되면 한쪽은 민중이 될 수 없는 딜레마가 지겨운 사람들에게, ‘고전적 재현의 프레임 바깥’에 위치한 민중 혹은 여전히 광장에서 노출되지 못하고 있는 민중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책은 ‘대면할 수 있는 힘’을 바라는 독자들을 기꺼이 환영할 것이다.

『붕대 감기』
윤이형, 작가정신, 2020.

김한결 기자(popandcute0818@snu.ac.kr)

  170쪽 남짓의 경장편, 열 명이 넘는 여성들이 제각기 품은 고뇌와 타협, 기쁨과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 펼쳐진다. 이 소설은 단 하나의 결말로 수렴되는 서사라기보다, 잘 엄선된 체험형 전시에 가깝다. 독자들은 높은 해상도로 재현된, 같고도 다른 인물들에게 자신을 비춰보고 겹쳐본다. 그리고 마침내 책장을 덮고 전시장 밖으로 나오는 순간, 어느새 조금은 굳건하고 너그러워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붕대 감기』는 페미니즘 문학이다. ‘진정한 페미니즘’이라는 이상을 상정하고, 그로부터 빗겨나간 것들을 배제하는 건 ‘연대가 아니라 그냥 미움’과 다름없다고 외치는 소설이다. 이 책은 탄핵 집회에 무지개 깃발이 웬 말이냐는 외침을, 광장에 나올 자격과 나온 이들의 진정성에 대한 오만한 검열을 물리치는 동시에, 그 모든 머뭇거림 끝에도 광장에 나온 이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광장에 나온다는 건 서로 ‘같아지겠다는 게 아니고 상처받을 준비가 됐다는 것’이므로, 그 결심은 그 자체로 지지받아 마땅할 테다.

『증명과 변명』
안희제, 다다서재, 2024.

천세민 기자(chunsemin011@snu.ac.kr)

  살고 싶으면 증명하라. 실패에 대한 변명은 허락되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 사회 전반에 팽배한 정서다. 책의 주인공인 청년 남성 ‘우진’ 역시 성공에 관한 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저자는 친구 우진과 나눈 이야기를 토대로, ‘한국 청년 남성’의 틀을 넘어 개인의 고유성을 포착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지 묻는다. 

  ‘이대남’이란 단일한 기표 속에 20 대 남성은 자신을 설명할 언어와 자원을 상실했다. 정치는 소수자에 대한 폭력을 남성에게 외주 맡겼고, 이들은 혐오 정치의 선봉장으로 내몰렸다. 여성혐오와 보수가 ‘이대남’을 설명하는 핵심어가 되며, 20대 남성이 겪는 각자의 고유한 기쁨과 슬픔과 분노와 우울이 말해질 자리는 사라졌다. 이런 고립 속에서 우진은 반복된 실패에 자신의 부족함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20대 남성이 온갖 갈라치기 정치에 동원될 때 정치권은 이들이 겪는 문제를 소상히 들여다보고 해결하려고 노력했나. 우진이 어떤 표정으로 하루를 살아내는지 알려고 했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범주화된 표상을 넘어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다.


『오월의 사회과학』

최정운, 오월의봄, 2012.

한정원 기자(hangrdne@snu.ac.kr)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서 있었던 일. 그 믿을 수 없는 일은 오랜 시간 침묵의 주제이자 진상규명의 대상이었으며, 틀림없이 한국 민주화의 가장 중요한 장면으로 남았다.

  1999년 처음 출판된 후 2012년에 다시 발간된 『오월의 사회과학』은 5·18 에 관한 고전적인 저작이다. 민주화운동, 민중항쟁, 광주사태 등의 다양한 이름이 드러내듯 이 사건과 이를 둘러싼 말들은 한국 현대사를 방향 지어왔다. 이 책은 서로 다른 담론과 여러 층위의 현실을 거치는 연구자의 시선을 통해 1980년 오월 광주의 뜨거움을 다시 그려낸다. 말로는 설명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웠던 그때의 경험과 감정이 책장을 넘길수록 선명해진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차이도 죽음도 잊고 계엄군에 맞서 싸울 때, 그들의 투쟁은 무엇보다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광주에 빚을 지고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는, 그때의 연대와 투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되살릴 수 있을까. 나아갈 곳을 고민하는 이 시간에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가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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