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마주한 대한민국의 계엄령: 무력감과 연대의 기록

한수연

일본 국제기독교대학(ICU)에 재학중이며, 지금은 교환학생으로 영국 브라이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국제관계학과 개발학을 전공합니다.

  아마도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이 잠 못 이뤘을 그날 밤, 이곳 영국은 점심이 조금 지난 무렵이었다. 평소처럼 오전 수업을 끝내고 기숙사에 돌아와 유튜브를 보려고 창을 열었는데, 방송사 채널들이 앞다퉈 뉴스 속보를 생중계하고 있었다. 진행자들이 전하는 내용을 귀 기울여 듣기도 전에 눈에 들어온 ‘계엄령 선포’라는 헤드라인은 대한민국에서 한참을 멀리 떨어진 이곳에 사는 나조차도 생생한 공포를 느끼게 할 만큼 대단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내가 이해한 계엄이 맞다면, 초 비상적인 국가 재난 상태라 짐작했고 북한의 도발로 전쟁이 발발했구나, 생각했다. 가족과 친구들의 안위를 확인하기 위해 두려운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연결된 전화로 확인한 대한민국의 상황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전쟁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찰나의 안도였지만, 상황을 파악한 뒤에는 지금까지도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굉장히 혼란스럽고 절망스러운 감정을 느껴야 했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당시 대한민국의 상황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그리 느꼈을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 적어도 우리 역사만큼은 해당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선배의 유혈로 만들어진 우리 역사만큼은 예외일 거라고 생각했다. 과거의 아프지만 강했던 우리 역사가 현재의 우리를 지켜주고 있고, 그러므로 우리는 늘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너무나 비참했다.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러했듯, 나 역시 며칠간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친구들 중 누구는 계엄 당일 국회 앞에서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고 있었고, 또 다른 누구는 응원봉과 핫팩을 손에 쥐고 매주 집회에 나가 힘을 보태고 있었다. 나 역시 한국에 있었더라면 지역구 시위에 참여해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받고자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영국 작은 도시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은 더욱더 무력감을 느끼게 했다.

  대학교 한인회에 연락해봤다. 시국 선언문 작성을 할 계획이 있는지, 있다면 돕고 싶은데 함께할 수 있는지 물었다. 임원단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듯했으나 며칠이 지나도 회신이 없었다. 한참을 떨어진 이곳에서 온 나라가 초유의 사태에 매달리고 있는 한국과 같은 반응을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무리일 수 있지만, 예상보다 미지근한 반응에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혼자서 시국 선언문 초안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함께해 줄 누군가가 나타나기까지 기다리고만 있기에는 마음이 급했던 것 같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과 SNS를 통해서 지역구 한인 대학생들을 찾았다. 재학 중인 대학과 브라이튼 대학, 그리고 노팅엄 대학의 몇몇 학생분들로부터 함께하고 싶다는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한 사람 두 사람 모이기 시작하며 윤곽이 그려지니 처음의 막막했던 심정은 점차 기대감으로 채워졌다. 

  시국 선언문은 ‘서식스 대학, 브라이튼 대학, 노팅엄 대학 학생 공동 발의 선언문’으로 완성됐다. 그리고 총 205명의 영국 거주 한인 학생들의 서명을 받아 최종 발제가 이루어졌다. 혼란스러운 시국에 다들 해야 할 과제들을 미루고 밤새우며 준비해 준 덕분에 완성될 수 있었던 결과물이었고, 소도시의 대학생들이 서로를 찾아내 연대의 힘을 보여준 노력의 모습이었다. 

  돌이켜보면, 이 선언문을 준비하는 과정은 계엄 사태 자체에 대한 논의뿐 아니라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대해 고민해 볼 기회를 줬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 

  우리 사회는 이번 사태를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으로 규정해 버렸다. 정의와 부정의로 논의돼야 할 문제가 어째서 정치 이념의 대립으로 인한 싸움이 돼버린 건지 답답할 일이다.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서로에 대한 비난을 서슴지 않는 판국에 반성과 해결을 위한 대화와 타협의 공간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의 부재는 비단 정계에서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도 나타난다. 

  계엄령 선포가 있던 주에 만난 한인 커뮤니티의 분위기는 예상외로 잠잠했다. 놀랐다, 무서웠다, 걱정된다 정도의 가벼운 몇 마디 정도는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누구도 먼저 입밖으로 계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다들 정치적인 이야기를 조심하고 꺼리는 눈치였다. 나 역시 시국 선언문을 준비하며 주변 지인들에게 서명 부탁을 할지 말지 망설이기도 했다.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성을 가지고 한 울타리 안에 모였지만 이곳에서 대화의 공간은 여전히 부재했다. 

  언제부터 정치 이야기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의(義)를 상실하게 하고 암묵적으로 피해야 하는 것이 됐는지 모를 일이다. 더욱이, 정당화될 수 없는 불법 계엄 앞에서 분노와 두려움으로 외치는 대화들이 옳고 그름이 있는 가치판단이 될 수 있는지,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다고 이 대화들을 묵살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정말로 대한민국을 위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고민할 수 있어야 하지만, 자유로운 대화가 허락되지 않는 이번 사태의 흐름을 지켜보며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사회 안에서 발견한 연대의 모습 또한 언급하고 싶다. 

  시국 선언문을 함께 준비한 분으로부터 한 소통 창구를 소개받았다. ‘한인 유학생(연구자) 네트워크’라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었다. 계엄 이후 탄핵을 촉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으로, 공통된 바람과 비슷한 신분을 공유하는 우리들은 빠르게 연대할 수 있었다. 

  마치 대나무숲처럼 서로의 경험과 느낌을 공유하며, 한인 커뮤니티에서의 소극적인 움직임에 대한 실망감과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은 비단 나 혼자만 느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사는 곳은 달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이번 사건을 바라보며 분노와 슬픔, 그러한 일련의 감정들을 느껴내고 있었다. 

  오픈채팅방을 통해 알게 된 한 유학생분이 나에게 남겨준 메시지다. ‘이 방, 참 위로가 됐죠….’ 특별히 나에게 어떤 말을 건네준 것도 나와 그분이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닌데, 같은 것을 소망하고 연대하는 이 사람들의 존재가, 혼자라고 생각했던 그 길에서 내 뒤에 그리고 옆에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함께 걷고 있고, 함께 해 줄 거라고 느끼게 했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일본군 위안부, 제주 4·3, 우리는 가슴 아픈 상황들과 마주하며 자주 ‘연대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제는 연대한다는 말을 너무 자주 사용해 그 의미를 실감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확인한 연대만큼은 실존적인 것이었고, 함께 하는 이들에게 위로를 준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준 것이었다. 

  어느새 해가 바뀌었다. 매일 아침, 지난 밤사이 무슨 일이 없었나 뉴스부터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일상이 된 지 오래고 지난 계엄 이후 한국을 걱정하며 잘 해결이 되었나 줄곧 묻는 영국 친구들의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 또한 여전하다. 

  45년 전의 계엄령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와 상실의 결과를 가져왔는지 기억하는 우리에게 이번 사태는 분노와 그 이상의 좌절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계엄 철회 이후 보이는 대통령과 측근들의 반성 없는 변명, 법치국가에서 법을 공부한 이 나라의 대표가 법과 국민을 무시한 채로 재판에 임하는 태도, 이러한 상황에서 어떠한 기대도 사치가 돼버린 지금이다. 그저, 우리들의 작은 목소리가 합쳐져 쉽지는 않지만 해낼 수 있음을, 해내길 바라는 염원에 작은 힘이 되길 바라고 있을 뿐이다. 

  이 글을 여기까지 써 내려온 지금까지도 앞으로 어떠한 일들과 마주하게 될지 잘 모르겠고 자신이 없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이 현실을 지켜보는 우리들은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그렇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앞으로의 우리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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