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을 채운 우리를 지탱해 주는 건 무엇보다도 여러 종류의 문화예술이다. 노래가, 영화가, 문학이 우리를 연결하고 강하게 만드는 이 순간, 그저 지난 일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바로 윤석열 정권 내내 이어진 문화예술에 대한 검열과 탄압이다.
윤석열이 대통령 후보였던 시절 코미디 프로그램 《SNL 코리아》에 출연해 ‘(정치 풍자는) SNL의 권리입니다’라고 말하던 장면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 당연한 권리가 윤 정부에선 너무도 자주, 너무나 많은 이들에게 지켜지지 않았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기약하는 지금, 윤석열 정권이 자행해 온 문화예술 검열을 돌아봤다.

검열은 계속되고 있다
2022년 9월, 가수 이랑은 제43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기념식) 공연에서 ‘늑대가 나타났다’를 부를 예정이었으나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부마재단) 측으로부터 곡을 바꿀 것을 요구받았다. 이랑과 기념식 총연출을 맡은 강상우 감독이 해당 요구를 거부하자, 그들의 공연은 기념식을 불과 3주 앞두고 무산됐다. 가수와 노래, 총연출까지 모두 교체됐다. 연출자 섭외부터 공연 기획을 함께 준비했던 재단이, 갑자기 선곡 변경을 요구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 상황은 행정안전부(행안부)의 외압이 작용한 결과였다.
선곡 변경, 나아가 공연자와 총연출의 변경이 갑자기 추진된 건 대통령이 이날 행사에 참석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였다. 강상우 감독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참석할지도 모르니) 무조건 무색무취의, 그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공연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고 말했다. 폭도로, 늑대로, 마녀로, 이단으로 불린 약자들의 저항을 노래하는 ‘늑대가 나타났다’는 분명 부마민주항쟁을 기념하는 취지를 고려한 선곡이었으나, 대통령이 듣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유신 독재 정권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기념하는 자리에서조차,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다는 얘기다. 대통령은 이해 기념식에 결국 참석하지 않았다.
돌연 공연이 취소된 후, 가수 이랑과 강상우 감독에겐 어떤 보수도 지불되지 않았다. 이들은 미지급된 용역비와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인한 권리 침해 등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하며 행안부와 부마재단, 용역 대행업체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 중이다. ‘밝고 희망찬 분위기의 선곡을 검토해달라는 의견’을 재단에 전달했을 뿐이라는 주장으로 검열을 부인했던 행안부는, 주최 기관이 행사할 수 있는 정당한 관여였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같은 해 10월, ‘윤석열차’라는 그림이 또 다른 검열의 제물이 됐다. 2022년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금상을 받은 만화 작품이 문제가 된 것이다. 윤석열의 얼굴을 한 기차가 철도 위의 사람들을 위협적으로 쫓아내며 달리는 그림이었다. 기차에는 김건희 씨와 법복을 입고 검을 든 검사들이 줄지어 올라타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에서는 ‘정치적 주제를 다룬 작품을 선정해 전시한 것은 학생의 창작 욕구를 고취하는 공모전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주최 측인 한국만화영상진흥원(진흥원)에 엄중 경고라는 입장을 표했다.
문체부는 후속 입장을 통해, 해당 공모전이 문체부 후원 명칭 사용 시 요구되는 사항을 위반했다고 발표했다. 정치적 의도를 담거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작품 등에 적용되는 결격 사항이 진흥원의 공고에서 빠졌다는 것이다. 이듬해인 2023년 이 행사는 문체부와 경기도 교육청의 후원 없이 진행됐고, 2024년 예산안 편성에서 진흥원의 예산은 절반가량 감액됐다. 문체부는 부인했으나, 일각에서는 예산 감축이 윤석열차 사건의 여파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정치적 의도를 문제 삼는 검열은 지원 사업의 요강을 통해 공고화됐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선 윤석열차 검열 사건과 관련해 국가기관이 ‘정치적 의도’의 유무를 공모 심의 요건에 포함하는 경우 기본권 침해의 위험이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하지만 2024년 한국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청소년 대상 영화 교육 프로그램인 ‘차세대 미래관객 육성 사업’의 공고에 ‘정치적 중립을 준수하고 특정 이념·사상을 배제한 영화 및 교육프로그램으로 구성해 진행할 것’이라는 내용을 포함해 물의를 일으킨 것이다. 사전 검열을 제도화하려는 것이라는 날 선 비판에 영진위 측은 사과문을 게시하고 해당 문구를 삭제했다고 발표했다.
윤석열 정권하에서 자행된 문화예술 검열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지자체), 문체부나 지자체 소속의 문화예술 지원 기관들에서 한 달에 한 번꼴로 검열이 이어졌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의 근본적 해결과 표현의 자유를 위한 운동을 전개하는 단체 ‘블랙리스트 이후’의 정윤희 디렉터는 “문화예술인 당사자가 알리지 않기를 선택했거나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사례까지 고려하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의 그림자 안에서
개별 검열 사건을 좇는 시선은 결국 그 배경에 놓인 정부의 기조에 가 닿는다. 윤석열 정부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부정하면서도, 블랙리스트로 대표되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정책 기조를 계승했다. 블랙리스트가 실행되던 과거가 돌아왔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은 서서히 문화예술계를 위축시켰다.
블랙리스트 사태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이른바 ‘좌파적인’ 문화예술인을 지원으로부터 배제했던 사건이다. 총 9,273명의 문화예술인과 단체들의 이름이 오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고, 박 정권을 무너뜨리는 주요한 계기가 됐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2019)에서는 집권 세력이 국가기관 등을 통해 공식적·비공식적인 방식으로 정치적 견해가 다른 문화예술인을 감시·검열·배제·차별한 블랙리스트 사태를 ‘민주주의 원리를 파괴하고 예술 표현의 자유와 문화예술인의 권리를 침해한 국가범죄’라 규정한다.
이후 문재인 정부에선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진상을 조사하고 제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2017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가 출범해 ‘블랙리스트 방지를 위한 진상조사 책임규명 권고안’과 관련 백서를 발행했고, 2021년에는 표현의 자유 보호·예술인의 직업적 권리 신장·성평등한 예술 환경 조성을 골자로 하는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제정됐다. 문 정부의 1호 국정과제였던 적폐 청산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문제를 주요하게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의 미온적 태도와 사회의 무관심 속에, 현장 문화예술인들의 요구는 정부와 국회의 반대에 타협될 수밖에 없었고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과 진상조사는 미진하게 마무리됐다.
블랙리스트 사태의 진상을 밝히고 재발을 막고자 노력했던 지난한 시간이 무색하게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엔 블랙리스트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 반복됐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블랙리스트 책임자들의 복권이다. 2023년 윤 정부는 유인촌 전 장관을 문화특별보좌관(문화특보)에 임명했고, 오래 지나지 않아 유 특보는 다시 문체부 장관으로 지명됐다. 유인촌은 이명박 정부 시절 약 3년간 문체부 장관을 역임한 인물로, 소위 ‘문화계 좌파’를 청산하려 한 ‘문화권력균형화전략’을 주도했다. 2024년에는 박근혜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실무자로 지목된 용호성이 문체부 1차관으로 임명돼 역시 논란을 빚었다.
유인촌 장관은 인사청문회 등의 자리에서, 이명박 정부에서 블랙리스트는 없었다고 공언했다. 진상조사 결과와 사법적 판단과는 완전히 대치되는 주장이다. 지난 2023년 11월에는 이 정권에서 블랙리스트로 피해를 본 문화예술인들에게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법원의 1심 판결이 나와, 이명박 정부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재확인되기도 했다. 이러한 인사를 두고, 문화예술계에서는 정부가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검열을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블랙리스트와 같은 검열을 막고자 준비했던 제도적 개선 역시 무력화됐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이 대표적이다. 2023년 1월, 예술인권리보장법에 따라 예술인의 권리 침해 등의 사안에 대한 심의·의결의 역할을 맡는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위원회)가 출범했다. 그러나 위원회의 구성에서부터 블랙리스트의 실질적 피해자였던 문화예술인이나 검열과 관련해 표현의 자유 보장 운동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가 배제돼 우려를 낳았다. 결국 위원회는 이후 검열 사건이 줄지어 발생했을 때 예술인을 전혀 보호하지 못했다. 정윤희 디렉터는 “2년 동안 운영된 위원회에서 검열 사건은 단 한 건도 처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열 사건에 대해 신고해도 위원회에선 시간만 끌고 답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법을 사문화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예술인들은 결국 인권위 진정이나 소송과 같은 다른 창구를 찾게 됐는데, 앞서 언급한 가수 이랑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블랙리스트라는 국가범죄의 책임자들이 복권되고, 블랙리스트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모두 무산돼 가는 현실은 문화예술계를 더없이 위축시켰다. 정윤희 디렉터는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이 정책과 행정을 통해 통제되는 현실 앞에서 예술가들은 두려움과 회의감을 느끼고 스스로 내부적인 검열을 하게 됐다”고 짚으며 윤석열 정권을 통과하는 동안 문화예술계의 자기검열이 점점 더 심각해졌다고 토로했다. 이런 분위기는 블랙리스트의 귀환을 넘어, 더 정교하고 교묘해진 방식의 제도적·정책적 검열과 함께 심화됐다.
이름을 남기지 않는 검열
윤석열 정부의 문화예술 검열은 많은 부분 예산 삭감과 사업 폐지의 방식을 통해 작동했다. 예산을 손에 쥐고 통제하는 건 정부가 문화예술을 검열하는 보편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이는 박근혜 정부에서 지원 배제를 검열의 주된 무기로 사용한 것과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다. 서울과학기술대 김미도 교수(문예창작학과)는 윤 정부에선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보이는 지원제도의 지원금을 대폭 삭감”하거나 “그 제도 자체를 아예 없애는 방식”으로 블랙리스트 실행 방식을 고도화했다고 평가했다.
지역 영화제와 독립영화 예산이 크게 감축된 것이 대표적이다. 2024년 영화발전기금 예산에서 지역 영화문화 관련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2018년부터 이어져 온 지역 영화 생태계 발전을 위한 사업을 아예 폐지한 것이다. 2024년 국내외 영화제 육성 지원 예산 역시, 그 전년도 예산인 56억의 절반 수준으로 감액된 후 회복되지 못했다. 영진위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영화제의 수는 2024년 10군데로 급격히 감소했다. 그 전년도에 41군데에 달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소규모 영화제들은 운영 자체에 어려움을 겪었고,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영화제들 또한 감축된 예산에 규모를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도서출판계도 큰 타격을 입었다. 2024년 ▲국민독서문화 증진 ▲도서관 정책개발 및 서비스환경 개선 ▲출판콘텐츠 국제교류지원 ▲파주출판단지 활성화 ▲지역 서점 활성화 외 지역 출판산업 육성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정윤희 디렉터는 정부가 예산을 전면적으로 삭감한 영역이 영화제나 도서관처럼 “사람들이 모여 문화적인 담론을 나누고 사회적 문제의식을 형성하는 영역”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정권에 비판적인 시각을 포함해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할 수 있는 영역에 선제적으로 지원을 줄였다는 것이다. 독립영화나 소규모 도서관, 서점 등 상업적으로는 자생하기 어려워 정부 지원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분야의 예산을 큰 폭으로 삭감하는 정부의 행태는, 비판의 싹을 애초에 없애버리겠다는 의도로 파악된다.
윤석열 정부는 민관 협력 거버넌스를 구축했던 정부위원회들을 대폭 폐지하기도 했다. 문체부에서만 32개의 정부위원회 중 13개가 비효율성과 실적 부진을 빌미로 철폐됐다. 정윤희 디렉터는 “없애지 못한 정부위원회들도 현장 전문가가 아닌 공무원으로만 위원을 구성했다”며 “공공성이나 문화민주주의적 가치를 담는 사업을 지우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시민과 정부 관료들이 함께 정책을 논의할 수 있는 제도를 없앤 자리에는, 정부의 뜻에 따라서 독단적으로 정책이 결정되는 현실만이 남았다.
유인촌 장관이 제시한 책임심의제 역시 같은 맥락의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해 시범적으로 도입된 후, 올해부터 확장 시행되는 책임심의제는 주요 문화예술 지원 기관의 공모 사업 심의에 경력 10년 이상의 문체부 산하 기관 내부 직원이 참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유 장관은 지원 기관 소속의 심의위원에게는 심의 결과에 대한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검열을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내부 직원의 참여가 심의 과정에서 문체부의 지시를 관철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영진위에서의 사례를 통해 책임심의제가 지닌 위험성이 지적됐다. 영진위에서 15개의 영화제를 지원하기로 의결했음에도, 책임심의제에 따라 심사에 참여하게 된 영진위 직원에 의해 지원 대상이 10개로 축소된 것이다. 이는 문체부에서 10개 내외의 영화제를 지원하라는 공문이 내려온 이후의 일이었다. 현장과 가까운 거리에서 정책 집행의 구체적인 사안들을 결정해야 할 산하 기관들에 정부의 입장이 일방적으로 내려오고, 이것이 그대로 수행된 셈이다.
블랙리스트 사태를 가능케 한 구조적 요인으로 주요하게 지목된 문체부와 산하 기관의 위계는 여전히 공고하다. 각각 문체부와 국회에서 각각 일했던 김석현·정은영의 『블랙리스트가 있었다』(2018)에 따르면, 산하 기관의 행정이 문체부의 입김대로 집행되는 건 ‘청와대의 지시를 어떤 식으로든 관철시키려는 문체부의 요구에 체념하게끔 하는’ 위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부가 바뀜에 따라 문화 정책과 행정은 이리저리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속성이나 일관성 없이 정부의 기조에 따라 급변하는 문화 정책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건 현장의 문화예술인과 시민들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검열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검열의 가능성이 제도 속에 이미 내재하기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거나 문제를 제기하기도 쉽지 않다. 블랙리스트 사태 때에 비하면 사회적인 관심도, 문화예술계의 반발도 크지 않은 실정이다. 김미도 교수는 “지금 문화예술계에선 박근혜 정부 시절에 비해 저항의 움직임이 크지 않다”며 “블랙리스트의 명백한 증거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지원금 없이 오래 버티기 어려운 문화예술 생태계의 취약성으로 인해 그저 무기력하게 순응하는 쪽을 택하고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정윤희 디렉터는 “재발을 방지하거나 피해를 회복하는 절차가 전혀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요즘은 블랙리스트가 세상에 알려지기 전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 본다”고 견해를 밝혔다.
‘K-컬처’라는 공허한 포장지
윤석열 정부의 문화정책은 ‘K-컬처’를 함양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문체부는 2024년 정책 비전으로 ‘문화로 행복한 사회, K-컬처가 이끄는 글로벌 문화강국’을 제시했다. K-컬처에 대한 반복적인 강조는 정부의 문화정책이 수출 주도형 문화산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선명히 드러낸다. 이런 정책적 기조 아래 문화예술 분야에서 축소된 문체부의 예산 지원은 콘텐츠와 관광 분야로 집중됐다.
하지만 수출과 성과를 강조하는 접근이 K-컬처의 기반마저 약화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문학·연극·미술·독립영화 등 상업적 성공과는 거리가 있는 분야에 지원을 줄이고 검열을 일삼을 때, 이는 결국 문화예술의 저변 자체를 위기에 몰아넣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김미도 교수는 “BTS와 ‘《오징어 게임》’만 있고 한강 작가나 임윤찬이 없는 한국을 상상해 보라”고 말하며, “인문학의 뿌리가 퍼져나가고 순수예술의 대중화가 폭넓게 이루어질 때 이를 매개로 K-컬처도 생명력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고 짚었다. 김 교수는 “윤석열 정부에서 K-컬처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게 겉으로는 문화예술 중흥 정책을 실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순수예술에 대한 탄압을 눈가림하기 위한 것”이라고 평했다.
국제적 성과에 대한 지향의 이면에는 문화예술에서 정치적 목소리를 지우라는 압박이 존재한다. 정부는 검열을 합리화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오염된 예술’과 ‘순수한 예술’의 대립 구도를 조장하고, 정권에 비판적인 시각은 정치적으로 오염된 것이라 호도했다. 윤석열차 검열 당시 국정감사에서 박보균 당시 문체부 장관은 공모전이 ‘정치적으로 오염됐다’고 답했고, 유인촌 장관은 취임 전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의 임명을 반대하는 문화예술인들은 ‘예술가가 아니라 문화행동가들’이라 말했다. 이는 정치적으로 비판적인 의견을 제기하는 예술은 진정한 예술이 아니라는 주장과 같았다.
하지만 예술에서 정치성이 표백된 상황이야말로 도리어 예술이 권력에 길들어 오염된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남는다. 윤석열 정부는 정권에 비판적이지 않고 정치적으로 안전한 영역에 머무르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상업적인 성과를 가져다 줄 작품들에만 관심을 두는 경향을 보여왔다. 정윤희 디렉터는 이런 갈라치기의 행태가 문제적이라 강조하며, “자본주의의 논리가 지배하는 미술 시장에만 가 봐도 모든 작품이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는 마당에, K-컬처를 발전시키겠다는 정부가 정권에 비판적인 예술을 검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치적인 예술을 검열의 대상으로 삼는 정권의 논리는 시민사회 전체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 이는 시민들이 더 다양한 사회 비판적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를 박탈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지 그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예술을 경험한다는 건 본질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일이며, 그렇기에 문화예술은 삶의 양식으로서 모든 시민의 일이 된다. 정윤희 디렉터는 “누구나 문화예술을 창작하거나 즐기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시민의 문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문화예술 정책의 역할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검열은 시민들이 다르게 생각하고 말할 자유를 억누르고, 창의적 사유나 비판적 주장을 펼칠 힘을 약화시킨다. 이는 결국 한 사회의 다양성을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일이며, 우리는 이것이 초래한 결과를 지난 12.3 내란으로 확인했다. 계엄이란 충격적인 사건은 분명 일상화된 검열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문화예술에 대한 표현의 자유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너져 갈 때, 민주주의는 결코 온전히 보장될 수 없다.
‘입틀막 정권’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였다. ‘입틀막’ 당한 것은 비단 문화예술계만이 아니다. 정권을 비판적으로 보도한 언론을 탄압했고, 대통령을 풍자하는 영상을 올리고 공유한 시민들을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입건했다. 그러나 그 두려움 속에서도, 생각하고 말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검열의 사례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 역설적으로 이를 말해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한국예술학과)는 『예술@사회』(2018)에서 ‘저항이 없으면 검열도 없다’고 말한다. 검열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는 검열이 사라진 게 아니라, 오히려 검열이 일상화돼 저항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일 것이라는 의미다. 고도화된 검열이 서서히 한국 사회의 생명력을 잠식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저항뿐일지도 모른다. 빈틈을 찾아 삐져나오는 목소리들과 검열의 어두운 막을 함께 걷어내는 손길만이, 검열이라 인식하기도 어려운 검열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