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취약성이 저항의 불씨가 되도록

광장 너머 새로운 사회적 연대망을 그려보다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사람들

  12.3 내란 이후 석 달이 흘렀다. 윤석열이 퇴진해야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러나 윤석열의 당선과 계엄 선포를 가능케 한 조건이 사라지지 않으면 또 다른 윤석열은 계속 나타날 것이다. 윤석열만 없는 세상을 넘어 우리가 살고픈 세상을 새로 그려야 한다. 광장 안팎에서 나온 목소리에 기대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 다음 질문을 던질 차례다.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사람들

계엄은 2024년 한국의 또 다른 얼굴일 뿐 

  12.3 내란이 윤석열 개인의 망상에서 시작됐다는 해석은 위험하다. 윤석열과 극우 지지층을 내란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순간, 윤석열의 집권과 내란을 가능케 한 구조적 맥락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극우가 부상한 한국의 정치적 토양과 역사를 살피지 않고 특정 집단만 문제 삼는 건 구조 변혁의 기회를 없애는 일시적 미봉책에 불과하다. 내란이 제도적 민주주의의 미완을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해석 역시 옳지 않다. 윤석열은 선거로 당선됐고 계엄 이전 윤석열 정권의 통치는 법으로 뒷받침됐다. 12.3 내란은 그간 자유민주주의란 이름 아래 승인된 정치·경제 체제의 산물이다.

  개헌이 현 사태의 해결책이라는 의견에도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일각에선 대통령이 지나친 권력을 갖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기에 대통령 중심의 정치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국회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의원내각제가 대안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헌법이 제왕적 대통령을 탄생시켰다는 주장은 12.3 내란을 법과 제도의 문제로만 한정시킨다. 정치학자 채효정은 내각제를 택한 서구 민주주의도 극우에 잠식되고 있기에 제도 개선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내란 이전의 ‘정상’ 사회로 돌아가자는 말은 계엄 이전에도 안전하지 못했던 노동자와 소수자의 삶을 가린다. 성폭력·데이트 폭력 생존자 연주(가명) 씨는 “최근 몇 년간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하고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한 윤석열 정부와 비동의 강간죄 도입 요구를 외면한 정치인들이 나를 아프게 했다”며, “나를 강간한 건 가해자 개인일지 몰라도 내가 그를 신고하지 못하고 고통받은 건 2차 가해 및 법과 제도의 공백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권이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를 대상으로 자행한 폭력이 계엄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지금의 목표는 구체제의 정상성을 되찾는 게 아닌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정치로 나아가는 것이다. 새로운 정치는 어쩌면 지금 광장에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광장, 다시 만난 세계에서 

  광장 안팎에 모인 이들은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올해 20살이 된 베라 씨는 “광장에 나온 청소년은 ‘어린데 대단하다’거나 ‘우리나라 미래가 밝다’는 식의 말을 듣는다”며, 아동·청소년이 광장에서 특수한 존재로 조망되는 현상이 그만큼 그들의 몫이 광장에 작음을 반증한다고 지적했다. 베라 씨는 “청소년은 어른이란 미래를 향해 달려가기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라며 아동·청소년을 주체적인 존재로 대할 것을 요구했다. 비서울권에 거주 중인 지연 씨는 “광장의 목소리가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가기보다 한국 사회 전체를 바꿀 수 있길 바란다”며, 지역 청년·여성·아동·이주노동자의 인권에 주목해달라고 말했다. 

▲직접 만든 깃발을 든 베라 씨

  누군가는 광장에서 변화했다. 자신을 “강남에 사는 20대 중산층 남성”으로 소개한 민준(가명) 씨는 내란 이후 바뀐 스스로가 신기하다. 계엄 당일 국회에 가지 못한 부채감에 광장에 나가기 시작한 민준 씨는 어느새 ‘프로 집회러’가 됐다. “이전에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보면 대중교통에서 저게 뭐 하는 건가 싶었다”던 민준 씨는 이제 누군가 광장에 나왔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니 “그 절박함을 이해하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퀴어가 나와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지 않을까 싶었다”던 생각은 광장에서 퀴어 친구들을 만나 함께 밥을 먹으며 “나와 전혀 다르지 않은 한 인간”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친구들이 생긴 민준 씨에게 소수자 의제는 “내 옆의 사람이 차별받는 문제”기에 곧 자신의 문제다. 집회에 간 걸 “지금껏 선택한 것 중 가장 잘한 일”로 꼽는 민준 씨에게 광장은 끝없는 배움터였다. 

  광장에서 만난 이들은 서로의 용기가 됐다. 연주 씨는 대학 시절 강간을 당한 뒤 2차 가해 및 법과 제도의 공백으로 고립됐다. 모든 걸 잊고자 시작한 연애에서 상대에게 데이트 폭력을 당했다. “폭력 앞에 사람이 혼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너무 잘 안다”던 연주 씨에게 계엄 당일 장갑차를 막아선 시민들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함께라면 이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남태령과 한강진을 오가며 연주 씨는 “트라우마와 싸울 힘을 얻고 있다”고 느꼈다. 또 광장에서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을 만나며 비로소 “내 싸움이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다”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지연 씨 역시 광장에서 연대의 가능성을 다시 믿게 됐다. 지연 씨는 한강진 민주노총 집회 도중 공공운수 노조 조합원이 ‘응원봉 동지들 우린 이제 전부 동지니 같이 맞아줄 일 있으면 같이 맞아주고 같이 울어줄 일 있으면 같이 울어주겠다’고 말한 걸 듣고 많이 울었다고 회상했다. “그전까지 연대 가능성을 냉소했는데 이젠 나와 연대할 이들이 충분히 있다고 느낀다”며 광장에 나가는 이유를 설명했다. 비롯 씨는 ‘퀴어·전장연·민주노총과 연대하는 동덕여대 졸업생’ 깃발을 들고 조선소 진수식에 가서 만난 이들이 그대로 동덕여대 집회에 와준 일을 떠올렸다. 비롯 씨는 “깃발을 들었을 뿐인데 연대의 마음이 돌고 돌아 내게 온다는 게 기억에 남았다”고 말했다. 

▲여러 문구가 붙어있는 광장 게시판

  물론 2024년 광장 역시 초반엔 혐오 표현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았다. 월영 씨는 “김건희가 잘못한 건 맞지만 그를 창녀나 요부로 소비하는 말이 듣기 거북했다”며, 여성·성노동자에 대한 혐오 표현 때문에 광장에 가길 망설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집회 참가자들은 모두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광장을 계속 요구했다. 매주 범시민대행진을 주최하는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의 서민영 조직팀장은 “자유발언 중 윤석열을 멧돼지에 비유하신 분이 있었다”며, “현장에서 제지한 후 비인간에 대한 혐오 표현을 쓰지 말자는 내용을 ‘평등한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약속문)’에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서 조직팀장은 “이 말이 어떤 면에서 혐오 표현인지 설명하면 다들 수용한다”며 시민의식이 변했다고 짚었다.

  이는 박근혜 탄핵이란 대의 아래 소수자 의제가 밀려난 2016년 광장과 사뭇 다른 풍경이다. 2024년 광장에서 참가자들은 함께 약속문을 읽고, 발언 중 혐오 표현이 나오면 바로 마이크를 껐다. 발언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며 광장은 소수자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장소가 됐다.

진짜 진보는 어디에 

  광장에 나온 이들은 자신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이들의 요구를 정치권과 연결할 주체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난 2월 18일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을 ‘중도보수’라 칭했다. 경제 위기 극복을 명분 삼아 진보의 외피를 완전히 벗겠다는 선언이다. 민주당은 이전부터 진보와 거리가 먼 행보를 보였으며, 거대 양당은 진보적 가치를 버린 채 정치적 혼란을 부추기기 바쁘다. 이에 노동당·녹색당·정의당(노녹정)이 양당 체제 밖에서 ‘진보 3당’을 자처하며 이들을 비판하는 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들이 제도 정치에 약간의 지분을 형성하는데 만족한다면 진정한 진보 정치의 실현은 요원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2004년 총선에서 10석을 얻으며 진보정당 최초로 원내에 진입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노회찬과 심상정이란 스타 정치인, 촘촘한 지역 조직과 참신한 정책 제안 덕분이었다. 그러나 당 내부에서 주도권 다툼이 일고 사회운동 세력과의 연결이 헐거워지며 위기를 맞았다. 제주대 서영표 교수(사회학과)는 “총선에서 얻은 지분을 중심으로 제도 정치의 틈을 벌리고, 그 사이에서 흘러나온 자원을 밖으로 나눠 진보정당의 안정적인 지지 기반을 만들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제도 정치에 천착하기보다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진보적 대안을 구상했어야 한다는 비판이다. 

▲진보정당 지지율을 나타낸 그래프 ©〈매일노동뉴스〉

  진보정당을 살릴 방법으로 연동형 비례제에 따른 선거제 개혁이 논의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제22대 총선에서 녹색당과 정의당의 연합정당인 녹색정의당은 최소 득표율 3%를 넘지 못해 0석을 얻었다. 노동당의 득표율까지 합쳐도 2.23%에 불과하다. 100%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를 개혁해도 의석을 10석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요컨대, 진보정당이 부진한 원인을 제도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이들이 왜 다수의 유권자에게 매력적인 선택지로 다가가지 못하는지 성찰이 필요하다. 

  진보적 대안을 만들기에 여력이 충분치 않다는 말도 나온다. 청년녹색당 문성웅 비상대책위원장은 “밖에서는 대안이 부족해 보이겠지만 내부에선 소진이 너무 심한데 어떻게 모든 걸 할 수 있겠냐는 말이 나온다”며, 자원이 부족한 진보정당이 총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악순환에 갇혀 있다고 설명했다. 정의당 서울시당 청년위원회 변현준 위원장 역시 “방향성 수립을 위한 치열한 토론이 필요한데 그걸 버틸 정도의 역량이 당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진보정당이 의석 확보에 집중하는 걸 마냥 비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원내정당과 원외정당은 실제로 큰 차이를 갖기 때문이다. 변현준 위원장은 정의당이 원외정당이 되며 그 차이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변 위원장은 “사회적 참사 피해자들을 위해 싸울 때 국회의원이 오면 자료 청구가 되는데 우리는 그 자료를 입수할 수 없다”며, “시민들을 위한 싸움조차도 원외에선 너무 힘들다”고 밝혔다. 청년노동당 이병호 위원장 역시 “시민사회단체는 활동은 진보정당과 함께해도 목소리를 제도 정치에 진입시키기 위해 거대 정당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며 씁쓸함을 토로했다. 정당과 시민사회의 관계가 깨지는 순간, 시민사회단체는 의석을 가진 정당을 찾아가고 진보정당은 어떻게든 의석을 얻으려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보정당은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개인의 불안을 표출할 수 있는 정치적 통로를 만들 의무가 있다. 서영표 교수는 현세대가 “혼자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는 경쟁주의를 내면화한 신자유주의 시대의 아이들”이라며, 이들이 조직적 경험을 해본 적이 없기에 개인의 불만을 집단으로 논의할 수 있는 역량이 없다고 짚었다. 서 교수는 “좌파의 역할은 새로운 세대가 말할 수 있는 조건과 장소를 만드는 것”이기에,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고 해도 된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개인의 이야기가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학자 채효정 역시 신자유주의 사회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고립되기 쉽다며, “무섭고 외로운 사회에서 취약하지만 나와 같은 존재를 마주치고” “전혀 다른 존재에게 내 처지를 이해받는 순간”을 가능케 하는 연결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정당이 개개인의 불안을 공통의 문제로 엮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진보정당 활동가들은 이를 위해 세력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호흡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끼치는 하나의 세력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성웅 위원장은 이를 “단순히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단체를 하나로 합치자는 게 아니라 서로의 목표를 공유하며 함께 움직이자는 것”으로 설명하며, 사회운동에 충분한 조직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 사례로 창립 당시 녹색당의 상황을 들었다. 환경운동 내 정치 세력화가 시기상조라고 얘기되던 시기에 창당된 녹색당은 시민사회 내 조직적 기반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었다. 문 위원장은 “사회운동을 정치화하는 건 정당이고 정당을 시민사회에 녹아들게 하는 건 사회운동”이라며, “진보정당이 세상을 바꾸려는 정치 세력이라면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병호 위원장 역시 “표심 잡기에 연연하기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우리가 무엇을 할지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정당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다면 지금 광장에 나온 이들과 공동의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도 남기지 않고 미래로 

  광장의 목소리를 세력화하는 과정은 다양성에 기반해야 한다. 남태령 집회는 다양성에 기반한 연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12월 21일 ‘세상을 바꾸는 전봉준투쟁단 트랙터 대행진’이 남태령에서 막혔다는 소식이 들리자 시민들은 망설임 없이 전봉준투쟁단의 곁으로 향했다. 20대 여성이 농민을 지키고 SNS를 능숙하게 다루는 이가 연락책을 도맡았다. 이들은 달라서 서로의 힘이 될 수 있었다. 남태령의 승리엔 모두의 해방을 위해 ‘우리’의 외연을 끝없이 확장한 이들이 있었다. 

▲깃발을 들고 광장에 나온 사람들

  광장에 나온 이들은 결코 하나로 뭉뚱그려질 수 없다. 월영 씨는 “각기 다른 발언자들이 끝없이 쏟아져나온 남태령이 감동적”이었다며, “광장에 모인 이들을 쉽게 나와 동일시해 이들이 겪는 문제를 평면적으로 만들면 안 되겠다”는 고민이 있다고 밝혔다. 다르다는 말은 곧 배울 수 있다는 뜻이다. 우정소녀 씨는 “나도 퀴어지만 내가 몰랐던 퀴어의 세계가 이렇게나 크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며, “광장에 가면 내가 몰랐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의 광장이 와해되지 않으려면 개개인의 이야기를 공동의 요구로 모을 수 있어야 한다. 전국의 1,500여 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윤석열 퇴진과 사회대개혁을 목표로 함께 모인 비상행동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결성됐다. 서민영 조직팀장은 비상행동이 “그간 의제별 연대체로 활동하며 얻은 경험을 총동원해 현 시국에 대응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집회 전 11개 소위원회가 의제별 정책 제안을 발표하는 ‘사이다 파티’나 시민이 직접 의견을 게시하는 디지털 자유 발언대 ‘천만의 연결’ 역시 활동의 연장선상이다. 서 조직팀장은 윤석열 퇴진 이후에도 광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정치권을 계속 압박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이다 파티 홍보 포스터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각자의 요구를 공동의 미래에 연결짓는 건 함께 체제에 저항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정치학자 채효정은 “광장의 다양한 목소리는 반신자유주의와 반자본주의 투쟁이란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며, 각자의 삶 속에서 느끼는 위기를 연결할 때 윤석열과 극우 세력을 넘어서 우리가 맞서야 할 진짜 위기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신자유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불평등의 심화가 낳은 불안에 기존의 정치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극우 세력이 부상한다. 한국의 극우가 젊은 남성과 노인을 중심으로 세를 확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좌파 정치가 이들이 느끼는 고통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채효정은 “극우를 척결하기보다 어떤 마음으로 그들이 극우 집회에 가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며, “왜 이들의 분노가 반신자유주의‧반자본주의의 혁명적인 경로로 나오지 못하는지 성찰적 분석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결국 우리는 ‘극우 인셀’과 ‘태극기 할배’라는 납작한 기표를 넘어 이들이 동료 시민임을 인지하고 이들의 삶을 침식한 불안의 근본적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 

  너무 쉽게 극우로 호명되는 ‘이대남’ 역시 다시 살펴야 한다. 여명 씨(국어국문 23)는 “이대남의 속성이 20대 남성에게만 발견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속성을 가진 20대 남성이라 해도 이대남에 전적으로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며 “단어에 사람의 얼굴을 가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표상 너머 개인의 얼굴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명환 씨(경제 15)는 20대 남성이 경험하는 가장 극적인 사회 구조로 군대를 들며, “사조직을 엄격히 금지하는 곳에서 누구의 편도 들면 안 된다는 감각을 느끼는 게 20대 여성이 경험한 정치적 효능감과는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군 조직이 연대를 냉소하게 만드는 하나의 요인인 것 같다는 것이다. 이에 진수(가명) 씨는 “20대 남성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다”며, “대표적으로 채 상병 사건을 비롯한 군대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20대 남성의 정체성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말처럼 20대 남성은 각기 다른 생각을 가졌다. 그러니 특정 집단을 획일적인 기표로 만들어 갈라치기에 동원하는 정치는 해당 정체성에 대한 폭넓은 논의와 상상을 막을 뿐이다.

  물론 각기 다른 고통을 하나의 억압에 일방적으로 연결할 수는 없다. 비슷한 원인에서 기인한 취약성이라 해도 그 내용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이에 순위를 매기기보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입장에 서보는 것이다. 각자 어떤 고통을 느끼는지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 고통의 관계 맺음 속에서 환경이 바뀐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동료 시민으로서 변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한 믿음 위에서 결국 일상의 민주주의를 다시 세워야 한다. 시민단체 ‘마을의 인문학’ 백현빈 대표는 “지금의 정치 구도 자체가 일단 오라고 불러놓고 내 손님으로 들어온 후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며, 광장의 경험을 일상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수의 진보정당이 국회에 입성해도, 유권자가 표만 주고 정치에 무관심한 일상으로 돌아가면 지금 광장에서 말해지는 것들이 충분히 논의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학자 채효정도 지금의 연대가 각자의 경험으로 흩어지지 않으려면 사람들이 일상의 공론장의 발을 들일 수 있도록 곳곳에 광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한 혐오와 차별, 정치 엘리트와 소비자 유권자의 이분법을 넘어서기 위해선 풀뿌리 공론장을 만들어 내가 속한 세상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광장 안팎의 이야기가 현실이 되려면 정치권이 답을 제시하길 기다리는 것으론 충분치 않다. 광장의 목소리를 매개로 연결된 우리는 제도 정치를 견인하는 하나의 세력이 돼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연대망에는 제복 입은 시민도, 연대를 흩뜨리는 ‘적’으로 섣불리 규정되는 태극기를 든 시민도 함께할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내내 누군가를 민주주의와 시민 밖으로 상정했다.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이 배제와 분리의 정치를 뛰어넘어 서로의 취약성에 끊임없이 연루되는 것뿐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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