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5일, 경제학부의 마르크스 경제학 폐지에 문제의식을 느낀 이들이 모여 ‘서울대학교 내 마르크스 경제학 개설을 요구하는 학생들(서마학)’이 출범했다. 서마학은 출범과 동시에 ‘경제학부 교과위원회는 우리의 학문적 동료가 될 자격이 있는가’라는 제목의 성명문을 발표했다. 성명문에서는 교과목 개설 과정에서 학생들의 수요를 무시하고 마르스크 경제학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경제학부 교과위원회를 규탄했다. 서울대의 비주류 경제학 과목에 속하는 ‘정치경제학입문’, ‘마르크스경제학’, ‘현대마르크스경제학’ 세 과목이 2024년부터 점진적으로 종적을 감췄다는 것이 투쟁의 도화선이 됐다.
화려한 시작

서울대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의 계보는 1989년 故 김수행 교수가 관련된 강의를 개설하며 시작됐다. 故 김 교수는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국내 최초로 완역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다. 1980년대 말 마르크스주의가 성행하며 마르크스 경제학을 정식 강좌로 개설해달라는 학생들의 요구가 빗발쳤다. 수차례의 대자보와 서명 운동 끝에 개설된 강의엔 학생들이 매번 구름떼처럼 몰려 강의실은 늘 만원이었다. 하지만 2008년 故 김 교수의 퇴임 이후 서울대가 후임 교수를 뽑지 않으며 마르크스 경제학 과목의 수난이 시작됐다.
2008년 9월 자 〈서울대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2007년 2학기 故 김 교수의 퇴임을 앞두고 마르크스 경제학을 가르칠 후임 교수 채용이 불발되자 학내외로 비판의 목소리가 일었다. 2008년 2월 18일 경제학부 대학원생 70명이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 교수 채용을 바라는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대학원생들’의 명의로 대자보를 게시했다. 이후 3월 11일 전국의 경제학 교수 80명이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대는 학문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열린 대학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다음날인 3월 12일에는 교수‧연구자 221명이 ‘서울대학교 대학원생들의 마르크스 경제학 담당 후임 교수 채용 요구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냈다. 그러나 경제학부 전체교수회의는 지원자들이 여러 측면에서 채용 기준에 미달했다며,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를 교수로 채용하지 않았다. 이후 마르크스 경제학 과목은 강사들이 강의를 맡아 간신히 그 명맥을 이어왔다.
끝나지 않은 수난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의 수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23년 하반기, 경제학부 교수들로 구성된 교과위원회에서 ‘교과과정 운영과 강의 수요·공급 상황’을 이유로 마르크스 경제학 강좌를 담당하던 강성윤 강사에게 ‘현대마르크스경제학’을 개설할 필요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함과 동시에 ‘정치경제학입문’의 계절학기 개설 불허를 통보한 것이다. 결국 2024년 1학기, ‘정치경제학입문’을 제외한 나머지 마르크스 경제학 과목이 폐강됐다.

그리고 2024년 2학기, 학부 과정에서 마르크스 경제학 과목이 완전히 사라졌다. 교과과정 운영과 강의 수요 외에 별다른 명분은 없었다. 이에 2024년 7월 19일, 강성윤 강사는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들이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2024년 1학기 개설된 ‘정치경제학입문’을 끝으로 더이상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들이 개설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강 강사는 〈서울대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팬데믹 기간 대면 수업이 힘들어 수강생 수가 줄었던 시기는 있었으나 그럼에도 매 학기 30명 이상이 이 강의를 들었다”며, “아무리 적게 잡아도 1년에 120명 이상은 듣는 강의”인데 경제학부 교과위원회가 폐지 근거로 강의 수요를 내세운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관악 맑스주의 연구회 ‘맑음’ 등 15개 단체가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 폐강이 학문의 다양성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일부 학생이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 개설 중단을 규탄하는 피켓 시위를 진행했으나 바뀌는 건 없었다.

경제학부 교과위원회는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수요마저 무시했다. 3월 11일부터 17일까지 진행된 2025년 하계 계절학기 수요조사에서 ‘정치경제학입문’, ‘마르크스경제학’, ‘현대마르크스경제학’은 각각 21명, 16명, 16명으로 비교적 높은 수요를 보였다. 그러나 경제학부 교과위원회는 수요조사 결과를 전달받았음에도 이를 무시한 채, 강성윤 강사에게 주류경제학 강의를 배정했다. 또 ‘교양·필수과목 중심 개설’을 이유로 ‘정치경제학입문’의 하계 계절학기 개설을 불허했다. 현재 서울대에서 경제학부 교수와 강사를 통틀어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는 강 강사가 유일하다. 강 강사의 마르크스 경제학 개설을 불허하는 건 사실상 과목을 폐지한다는 의미와 다름없다.
이어지는 싸움
그러나 마르크스 경제학을 지키기 위한 학생들의 노력은 계속됐다. 서마학 소속 김선아(사회 22) 씨는 서마학의 출범 배경이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를 개설하지 않는 것에 대한 공통된 문제의식”이었으며, 경제학부 교과위원회가 2025년 하계 계절학기 수요조사 결과를 무시했던 사건이 본격적으로 대응을 시작한 계기였다고 밝혔다. 서마학은 성명문에서 “대학은 지식을 전달하고 생산하는 한 축을 담당하기에, 학문 다양성이 보장되고 내실 있는 기초교육이 이뤄져야 마땅하다”며 대학이 수요에 따라 지식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 “수요 논리에 의해 소수 학문의 존립을 위협하는 것은 대학의 근본적인 목적을 외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대학은 비주류 과목 또한 중요하게 여겨 이를 포함한 교육과정을 시행할 책임을 갖는다는 것이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주류경제학이 가린 자본주의 체제의 병폐를 지적하는 유일한 경제학 분파다. 강성윤 강사는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주류경제학이 제대로 된 설명과 대안을 내놓지 못한 지 오래”라며, 마르크스 경제학은 “자본주의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체제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학문”이라고 힘줘 말했다. 물질적 풍요만을 바라보며 발전해온 자본주의 체제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건 오늘날 공공연한 사실이다. 성장과 발전이란 이름 아래 달려온 시간 이면에서 우리가 당면한 현실은 양극화된 사회와 기후위기에 허덕이는 지구다. 강 강사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본주의 체제로 환원할 수는 없겠지만 파고 들어가면 대부분의 문제 밑자락엔 경제적‧물질적인 문제가 존재”한다며, 자본주의를 최선의 체제로 두고 출발한 이론은 뚜렷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를 수강하길 원하는 이들 역시 주류경제학이 포착하지 못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맹점을 마르크스의 언어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
이에 서마학은 ▲경제학부의 ‘정치경제학입문’, ‘마르크스경제학’, ‘현대마르크스경제학’ 개설 ▲수요 논리 배제 후 기초 학문 내실 보강 및 학문 다양성 보장 ▲강의 개설 구조 재검토를 통한 비정규 강사의 교육노동권 존중을 요구했다. 김선아 씨는 서마학의 목표가 “마르크스 경제학의 맥이 서울대에서 안정적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라며, “기자회견 등을 통해 외부에 소식을 알리고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연대를 확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결국 마르크스 경제학이 학생들에게 닿기 위해선 경제학부가 적극적인 강사 임용에 나서야 한다. 현재 2025년 2학기 강사 신규 임용을 위한 절차가 임박해 있다. 경제학부는 강사 임용 공고를 올릴 때 시간강사에게 맡길 과목의 목록을 함께 공고한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인 ‘정치경제학입문’, ‘마르크스경제학’, ‘현대마르크스경제학’의 공고가 올라왔으나 이번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전망이다. 올라올 강의 목록에 따라 서울대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선아 씨는 경제학부 교과위원회에서 마르크스 경제학 분야의 임용을 완전히 배제한다면 추가 대응에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의 존속을 위한 투쟁이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