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생존자가 전한 11년의 기억

공익법률센터에서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북콘서트 열려
▲왼쪽부터 김홍모 씨, 김형숙 씨, 김동수 씨, 최정규 변호사
▲왼쪽부터 김홍모 씨, 김형숙 씨, 김동수 씨, 최정규 변호사

  4월 14일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에서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북콘서트가 열렸다. 생존자 김동수 씨, 김 씨의 배우자 김형숙 씨, 그리고 김홍모 작가가 패널로 참석했다. 진행을 맡은 최정규 변호사는 2023년부터 교내에서 매년 세 분을 모시고 북콘서트를 개최해 세월호에 대한 기억을 나눈다고 밝혔다. 

  『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2021)는 참사 생존자 김동수 씨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로, 세월호 참사 7주기에 맞춰 발간됐다. 김홍모 작가는 “의인의 삶이 불행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작품을 통해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에 기여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간단한 책 소개가 끝난 후 김동수 씨는 참사 당일의 기억을 되짚었다. 김 씨는 배가 가라앉는 와중에도 선체 위를 뛰어다니며 소방 호스를 이용해 학생들을 물 위로 끌어올려 스무 명을 넘게 구조했다. 그러나 김 씨는 참사 이후에도 더 많은 이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참사 생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가 없는 상황 속에서도 김 씨는 “꺾일 수 없었고, 살아남아야만 했다”며 당시의 심경을 밝혔다.

▲김동수 씨의 막내딸이 세월호 1주기에 준비한 플래시몹 영상을 시청하는 모습

  이어서 김형숙 씨가 세월호 생존자의 가족으로서 트라우마를 직접 목격한 경험을 나눴다. 2019년 김동수 씨는 자해 후 세월호 전담 의료기관에 입원 중 의료진과 실랑이 끝에 ‘진상 환자’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형숙 씨는 이 과정에서 느꼈던 실망감과 고통을 전했다. 김 씨는 참사 이후 죄책감으로 수차례 자해를 했지만, 재판부는 김 씨의 트라우마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유죄 판결을 내렸다. 한편 김형숙 씨는 김동수 씨가 최근 자해를 하는 대신 등에 세월호 리본 타투를 새겼음을 언급했다. 타투 역시 몸에 리본을 새김으로써 고통을 받아들이고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인 것이다. 김형숙 씨는 “10년이 넘게 지난 후에도 생존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최정규 변호사가 국가배상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김동수 씨는 2015년 세월호 피해지원법에 따라 배·보상을 신청하고 국가로부터 배상금을 지급받았다. 화물 기사였던 김 씨는 참사 이후 트라우마로 화물 운송을 할 수 없게 되면서 빚 독촉에 시달렸다. 일부 유가족은 배상금 지급을 거부하고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했으나, 지속적인 생활고를 겪고 있던 김 씨와 가족들에게 소송은 선택지가 될 수 없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김 씨의 후유증이 3~5년 내 회복 가능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기한이 지나면 극복할 수 있다는 진단과 달리 김 씨의 트라우마는 끝나지 않았고, 배상금은 치료비를 간신히 충당할 수준에 그쳤다. 

  이에 김동수 씨를 비롯해 제주도에 거주하는 세월호 생존자들은 2021년부터 현재까지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진행 중이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서 생존자의 트라우마를 재평가하고 보상하라는 권고를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김 씨와 생존자들에게 더 이상 배상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최정규 변호사는 김 씨의 트라우마가 최소 2028년까지는 지속될 것이라는 판정을 받았다고 밝히며, 국가를 상대로 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생존자에게도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수 씨는 매년 4월 16일에 41.6킬로미터를 뛴다. 달리기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그만의 방법이다. 김 씨는 “추모도 중요하지만,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생존자를 도와줄 방법을 찾는 것에도 의미를 두어야 한다”고 말하며 북콘서트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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