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4일 ‘서울대학교 내 마르크스 경제학 개설을 요구하는 학생들(서마학)’이 출범해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 개설을 요구하는 연서명을 시작했다.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 개설 투쟁이 지속되며 곳곳에서 연대의 물결이 일고 있다.
연대의 물결 잇따라
4월 18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 서울대분회(서울대분회)가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 개설 연서명에 연대를 표하는 성명문을 냈다. 성명문에서는 “사회과학 전반에 있어 마르크스 경제학이 미치는 영향이 가볍지 않다는 사실은 명백하다”며 학문으로서 마르크스 경제학의 가치를 강조했다. 서울대분회는 단순히 “경제학계에서 비주류”라는 이유로 “학술의 명맥을 이을 기회조차 보장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학술기관이 아니라 “학벌을 판매하는 영리단체”에 불과하다고 인정하는 것이라며,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를 없앤 경제학부를 강하게 규탄했다.

이어 4월 24일, 비정규직없는서울대만들기공동행동(비서공)이 ‘우리는 경제학부 교과위원회를 고발한다’는 제목의 성명문을 발표했다. 비서공은 수요 부족을 이유로 폐지가 예고된 교과목들 모두 “10명 이상의 학생이 수강을 희망”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해당 강의 담당 비정규교수 역시 계속 공급할 의사가 있다”며, 학생들의 요구와 비정규교수의 의사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경제학부 교과위원회를 비판했다. 비서공은 대학이 “학생과 노동자를 비롯한 다양한 구성원의 권리가 반영돼야 할 공동체”라며,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 개설 투쟁에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연서명 자체도 SNS를 통해 빠른 속도로 전파됐다. 서마학은 4월 24일 오전 기준 2,061명, 36개 단체가 연명했다고 밝혔다. 연서명 시작 열흘 만에 2천 명이 넘는 이가 마르크스 경제학을 지키고자 힘을 보탠 것이다.
마르크스 밀어내는 경제학부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제학부는 ‘기존에 개설·운영돼 온 다른 수업에 대한 전반적인 수요가 매우 높다’며 이에 비해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 개설 수요가 높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2025년 하계 계절학기 수요조사 결과에 따르면 마르크스 경제학 과목은 경제학부 개설 교과목 11개 중 상위 3개 항목을 차지했다. ‘마르크스경제학’, ‘정치경제학입문’, ‘현대마르크스경제학’ 신청자가 각각 16, 21, 16명인데 반해 나머지 과목의 신청자 수는 한 자릿대를 웃돈다. 일례로 하계 계절학기에 개설되는 ‘계량경제학’ 신청자는 2명에 그친다. 조사 결과가 과목 개설 여부를 결정하는 유일한 요인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도, 개설 예정인 과목과 비교했을 때 마르크스 경제학 과목의 수요가 충분치 않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수요와 관련된 판단 근거에 대해 경제학부는 여러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답했다. 경제학부 측은 〈서울대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특정 분야의 수요는 학생들의 강의 개설 수요뿐만 아니라 해당 분야의 연구 성과 등 다양한 트렌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다고 밝혔다. 마르크스 경제학 과목과 동일한 전공선택과목임에도 신청자 수가 현저히 낮았던 ‘계량경제학’ 개설 사유로는 “최근 인공지능의 확산과 함께 연구·교육 수요가 크게 증가”한 점을 꼽았다. 수요를 판단하는 기준을 신청자 수·연구 성과·시류로 나눴을 때 마르크스 경제학 과목이 뒤의 두 항목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마르크스 경제학을 배우고 가르쳐 온 교수들이 목소리를 냈다. 충남대 류동민 교수(경제학과)는 “서울대 경제학부가 마르크스 경제학을 포함한 비주류경제학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주류경제학 중심으로 기울어져 있는 한국 경제학의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류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현 경제학부) 재학 중 故 김수행 교수의 지도로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했다. 류 교수는 마르크스 경제학 수업 폐강에 대해 “전임교수가 없는 교과목이 편의에 따라 열리지 않는 건 흔한 일”이라며, 이번 사태가 “2008년 故 김수행 교수의 정년퇴임 이후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 교수가 충원되지 않았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라고 밝혔다.
경상국립대 정성진 연구석좌교수(경제학부) 역시 “국가기관의 일부인 서울대 경제학부가 마르크스 경제학을 개설하지 않다니 야박하다”며, 마르크스 경제학 연구자를 전임교수로 충원해 학생들에게 강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후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장, 한국사회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마르크스와 한국경제』(2005), 『21세기 마르크스 경제학』(2020) 등을 집필했다. 정 교수는 경제학부가 강의 미개설 사유로 내건 재원 부족에 대해서 쓴소리를 냈다. 윤석열 정권에 들어 관직 겸직을 위해 휴직한 일부 경제학부 교수를 대신해 주류경제학 강의를 담당할 시간강사가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마르크스 경제학 과목이 희생됐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모두가 주류경제학 전공”이기에 주류경제학 강의를 맡는 게 당연하나, “일부가 ‘투잡’을 뛸 요량으로 본업인 교수직을 휴직한 결과”로 해당 과목이 시간강사의 몫이 됐다고 설명했다. 시간강사를 고용할 재원이 한정된 상태에서, 마르크스 경제학 담당 강사에게 주류경제학 강의를 배정한 현실은 주류경제학을 우선시하는 경제학부의 풍조를 잘 드러낸다.
경제학부의 교수 이탈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과 동시에 김소영 교수가 휴직 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에 올랐을 뿐 아니라, 장용성 교수와 이재원 교수가 연달아 공직에 임명됐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서울대는 기존 교수가 휴직해도 교수를 충원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휴직한 교수의 빈자리를 채우고자 강사 혹은 초빙교수가 임시방편으로 동원된다. 이는 경제학부의 수요·재원 부족이라는 설명 뒤에 보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마르크스 배워야 하는 이유는

오늘날 마르크스 경제학이 갖는 의의는 다양하다. 서마학 소속 편린(미학과 석사과정) 씨는, 인문사회과학 전반을 통틀어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지 않은 학문이 없기에 투쟁에 나섰다고 말한다. 편린 씨는 마르크스 경제학이 ‘지금 이곳의 현실이 최선의 세계인지’를 묻고 있다며, 인문사회과학에 이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없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 경제학이 오늘날 여전히 유효하냐는 질문에 편린 씨는 “마르크스 경제학은 과거의 이론에 머물지 않고 여전히 현실의 문제를 분석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라고 답했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자본주의가 갖는 모순을 이해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정성진 교수는 주류경제학은 시장의 작동 원리를 분석하는 데는 탁월할지 몰라도 시장경제하에서 발생한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을 마련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주류경제학이 시장경제 배후에 있는 비시장적·비경제적 영역을 주변화하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주류경제학 지상주의는 주류경제학 자신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주류경제학이 마르크스 경제학과 상호비판·상호작용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류동민 교수 역시 마르크스 경제학이 “개인의 행동이 사회구조와 연결되는 지점에 천착하는 사회과학 본연의 의미에 충실한 학문”이라며, 지배층의 행동을 감시·견제하는 민주시민이 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또 류 교수는 오늘날 마르크스 경제학이 갖는 의의로 “자본주의 경제를 비판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시각 제공”을 들었다. “자본편향적 시장주의로 기울어진 주류경제학에 대한 대항담론”으로서,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한 그 의미를 상실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자본주의 체제가 무너지지 않는 한 마르크스가 언제까지고 존재할 거라는 뜻이다.
5월 초 경제학부 강사 신규임용이 예정돼 있다. 편린 씨는 이에 “강사 임용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서마학은 강력한 규탄 메시지를 내고 투쟁을 이어갈 계획”이라며, 여러 연대체와 공동 대응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또 공식 SNS 채널을 통한 기고 모집, 피켓 시위 등을 염두에 뒀다고 전했다.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 개설을 위한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 지금, 경제학부의 향후 대응에 관심이 쏠리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