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식물, 퍼져나가는 작은 정원

반려식물 문화의 현재와 그 시사점을 톺아보다
▲화훼 단지 밖에 놓인 식물들
▲화훼 단지 밖에 놓인 식물들

  풍경이었을까, 생명이었을까. 우리는 식물 앞을 무척 쉽게 지나친다. 화단 속의 맥문동, 벽을 타는 담쟁이, 카페 안의 극락조. 엄연히 그곳에 존재함에도, 우리와 다른 움직임과 언어를 가진 식물은 풍경으로 간과되곤 한다. 하지만 거꾸로, 한 식물 존재를 위해서 집의 풍경까지 바꾸는 이들도 있다. 볕과 흙과 물이면 어디든 불어나는 생물들을 반려로 삼는 이들. 퍼져나가는 ‘반려식물’ 문화의 구체적인 모습을 살펴보고, 그를 통해 나아갈 수 있는 지점을 둘러봤다.

식물을 돌보는 ‘집사’들

  명확한 사전적 정의가 있진 않지만, 농촌진흥청의 정의에 따르면 반려식물은 ‘인간과 서로 짝이 되어 교감하며 살아가는 특정한 식물’을 이른다. 그리고 반려식물을 돌보는 이들은 흔히 ‘식집사’로 불린다. 반려묘를 기르는 이들을 ‘집사’라고 부르는 문화에서 파생된 이름이다.

  식집사들은 어떤 계기로 어떤 식물과 교감하게 됐을까.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현재 서울대 정원 조성 동아리 ‘피움’의 회장을 맡고 있는 김주호(원예생명 23) 씨는 요리에서 출발했다. 김 씨는 “토마토를 썰다가 튀어 슬리퍼에 묻은 씨를 심어보니 토마토가 자랐다”며, “이후 과일과 채소의 씨를 직접 심고 기르는 일에 점점 흥미를 가졌다”고 말했다. 김 씨는 현재 집에서 백향과와 아보카도 나무 등 다년생 식물을 기르고 있다.

  반려식물은 사소한 계기로도 돌보기 시작할 수 있다. 식물을 기르는 데 요구되는 조건이 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김주호 씨는 대학생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에 머무르므로 동물을 키우기엔 여건이 여의치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하며, “반면 식물은 물만 주면 자라고 사람이 없어도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고 반려식물의 높은 접근성을 설명했다.

▲현서윤 씨가 기르는 배추 ©현서윤

  하지만 식물은 동물처럼 뚜렷한 신호를 보내지 않기에, 잘 돌보기 위해선 오히려 더 세심한 공부와 관심이 필요하다. 배추·은행목·이오난사 등을 집에서 기르는 현서윤(원예생명 24) 씨는 “식물은 정말 조용하지만 환경이 조금이라도 바뀌면 반응이 바로 나타나는 신기한 생명체”라며, “관심을 가지고 계속 들여다봐야 이런 반응들을 알 수 있어 식물을 기르면서 더 섬세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주호 씨 역시 “동물은 배고프면 금세 티를 내지만, 식물은 이미 늦기 전까지 모를 수도 있다”면서, 잘 돌보기 위해 자신이 기르는 종을 자세히 공부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시작은 가벼웠더라도, 점차 책임과 애착의 무게는 커진다. 강원도 태백에서 살고 있는 이진희 씨 역시 15년 전 “아는 사람을 따라갔다가 다육식물이 그냥 예뻐서 샀다”고 말했지만, 어느덧 900개에 이르는 식물을 돌보고 매일 마당에 두세 시간은 머무르는 열성 식집사가 됐다.

  식물을 돌보며, 집사들의 마음과 삶은 변화한다. 루콜라·로메인 상추·사탕수수 등을 돌보는 변가영(생물교육 25) 씨는 식물을 돌보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고 말한다. 현서윤 씨는 “식물을 기르면서 삶이 정말 풍성해지고 집에서의 시간이 따분하지 않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나아가 현 씨는 “지나가다 피어있는 들꽃이나 벚꽃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더 자세히 들여보게 된다”면서, 자신이 돌보는 식물을 매개로 다른 식물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무튼, 식물』(2019)을 쓴 임이랑 작가는 식물로 인해 변화한 삶의 풍경에 대해 적었다. 임 작가는 ‘과거의 나는 오후 두 시 전에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종류의 사람’이었다고 설명한다. 임 작가는 밴드 ‘디어클라우드’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로, 주로 늦은 밤에 영감을 얻어 창작 활동을 해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숱한 식물을 돌보게 된 이후로는 ‘이제는 그 정적과 어둠보다 햇살 속에서 식물들과 노는 시간이 더 좋다’고 말하면서, 식물과 함께하는 삶이 일상 자체를 바꿨다고 밝혔다.

▲피움 동아리방에서 실내 조명을 받고 있는 금어초

  반려식물은 거주자의 공간을 변형시키기도 한다. 반려식물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집사들은 실내 공간에 ‘식물 구역’을 만들거나 식물이 자라기 알맞은 환경으로 기존의 공간을 재구성한다. 기숙사에 사는 변가영 씨는 “실내에 늘 빛이 잘 안 들어 불만”이라며, “인터넷으로 식물용 형광등을 사 이곳저곳 달아보며 제일 좋은 위치를 찾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현서윤 씨는 “앞으로 주거지가 바뀌면 내 식물들은 다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한다”고 말했다. 식물은 비단 현재 거주하는 공간뿐 아니라, 이후 살아갈 공간에도 영향을 미친다.

  동해안생명과학연구원 김희석 전임연구교수는 논문 「반려식물이 대학생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2019)에서, 반려식물의 영어명 ‘companion plant’가 공영식물(共榮植物)로도 번역된다고 짚는다. 이 용어는 ‘함께 생육을 통해 한쪽 혹은 양쪽의 생육을 촉진시키는 관계의 식물’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 말처럼, 반려식물과 집사의 관계는 서로의 삶을 촉진한다.

우거지는 녹색 관심

  집사들의 이야기는 몇 가지 특수한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반려식물은 실제로 주요한 문화 현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3월 11일 농촌진흥청 보도자료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반려식물을 기른다고 추산되는 인구는 1,745만 명이다. 3명 중 1명이 반려식물을 돌보는 셈이다. 반려식물을 기른다고 답변한 인구는 30대 이하와 60대 이상에서 제일 많았는데, 각각 전체 답변의 37.2%와 34.6%를 차지했다. 반려식물 문화가 특정 연령대에 국한되지 않고 두루 퍼져있다는 것이다.

  산업 규모 역시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의 농업 정보 포털인 ‘농사로’에서 제공한 ‘빅데이터로 알아보는 반려식물’에 따르면, 2019년 불과 100억 원 규모였던 생활 원예 매출은 2020년 600억 원으로 증가했다. 2025년 현재 반려식물 산업 규모는 총 2조 4,215억 원에 달한다.

▲화훼 단지에서 판매되는 다육식물들

  반려식물은 일반적인 꽃집이나 화훼 단지는 물론이고, 종로 꽃시장·양재동 꽃시장처럼 큰 규모의 공판장에서도 직접 구할 수 있다. 온라인 매장 역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다양한 씨앗과 화초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쿠팡 마켓플레이스 등 온라인 플랫폼을 거점 삼아 거래된다. 대개 씨앗을 직접 구해 발아시키는 김주호 씨는 “구하기 쉬운 식물의 종자는 다이소 매장에서 직접 구한다”고 말했다. “지점별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본사 직영점에까지 가게 될 때도 있고, 그곳까지 없다면 온라인으로 구매한다”고 김 씨는 덧붙였다.

  하지만 반려식물이 매매의 형태로만 유통되는 것은 아니다. 산업 바깥에서 식물이 움직이는 경우 역시 많기 때문이다. 『여기는 ‘공덕동 식물유치원’입니다』(2023)를 쓴 백수혜 작가는 식물을 구입하는 대신 구조한다고 밝힌다. 백 작가는 재개발 주택 단지에 버려진 식물들을 집으로 옮겨와 기른다. 이렇게 백 작가의 ‘식물유치원’에서 잘 자란 식물 개체들은, 엑스(구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등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분양된다.

  이렇게 반려식물은 매매가 아닌 나눔을 통해 전파되기도 한다. 백수혜 작가는 책에서 ‘소매넣기’ 문화를 언급하며, ‘내가 키운 식물이 잘 자라 개체가 늘어나면 무조건적으로 주변에 나눠주는 행위’라고 설명한다. 이는 식물에 관심을 갖거나 식물을 돌본다는 유대감 위에서 발생하기에, 지인이 아니라 처음 만나는 사이에서도 이뤄지기도 한다. 백 작가는 가게에서 식물을 관찰하다 보면 ‘예쁘죠?’라는 말로 사장님이 대화를 걸어오며, 대화의 끝은 늘 ‘조금 나눠줄까요?’로 끝난다고 말한다.

  김주호 씨 역시 피움에서 “반려식물을 입양해 기르는 특별 활동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동아리 회원들이 따로 식물을 구입하지 않아도 식물을 기를 수 있도록 동아리 차원에서 메리골드·팬지·로벨리아·방울토마토 등의 반려식물을 나눴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피움에서 활동 중인 변가영 씨는 이때 분양받은 로벨리아를 최근 싹 틔웠다. 이처럼 반려식물은 산업의 안과 밖을 덩굴처럼 넘나들며 현대 문화 사이로 뿌리내리고 있다.

도시 한가운데, 최소한의 정원

▲화단의 반려식물들

  반려식물 문화를 통해, 식물은 우리 삶에 선뜻 가까워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식물이 우리 곁에 있었던 것은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식물은 작물, 약재, 재료, 조경, 심지어는 설화 속 등장인물까지 인류의 역사에 꾸준히 얽혀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식물은 어째서 반려의 대상이라는 새로운 관계로 우리 앞에 나타났을까.

  반려라는 개념은 확장 중이다. 198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국제 심포지엄에서 처음으로 개·고양이·새 등이 ‘애완’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반려 존재로 인식된 후, 반려라는 개념은 차차 그 외연을 넓혀왔다. 이러한 인식의 발전 속에서 식물 역시 하나의 존중받는 생명으로 자리매김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려식물에 대한 수요 증가는 조금 더 복잡한 사회적 함의를 지닌다. 상술한 농사로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반려식물 산업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급성장했다. 한정된 개인 공간에만 머무르며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반려식물이 유대감을 형성할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다.

   또한 늘어나는 반려식물에 관한 관심은 미세먼지·황사 등 심화되는 대기오염과도 연결된다. 농사로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사람들이 반려식물을 기르는 이유로는 ‘공기 정화를 위해 키운다’는 응답이 58%로 가장 많았다.

  즉, 반려식물에 대한 수요 증가는, 그만큼 사회 구성원 전체가 감당하고 있는 소외감과 대기오염의 정도를 반증한다. 조경학자 김지윤은 “공기 오염과 정신 불건강 등 사회 문제가 조경 문화에 영향을 준다”고 짚었다. 실제로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영국에서 정원 조경 실무를 맡았던 김지윤은 “사회적으로 거리가 생긴 전염병 시기에 정원을 가꾸고자 하는 고객이 늘었다”고 짚었다. 반려식물을 하나의 문화이자 사회적 징후로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가속하는 도시화, 1인가구화, 노령화, 그리고 기후위기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갈수록 시간 자원과 심리적 자원이 희박해지는 도시민에게, 반려식물은 이런 문제를 개인 차원에서 비교적 용이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해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조경학자 김지윤은 식물을 가꾸는 일이 소외감과 우울감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여러 가지 이론과 결과가 뒷받침한다고 설명한다. “한 생명을 길러냄으로써 느끼는 자기 성취감, 혹은 우리 뇌가 자연을 통해서 회복한다는 뇌과학적 인식”까지, 우리는 식물을 통해 치유 효과를 얻는다.

▲이진희 씨가 기르는 다육식물 ©이진희

  또한 김지윤은 인간이 자연에서 온 존재기에 자연과 교감하는 것이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바이오필리아(biophilia)’ 이론 역시 언급한다.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인간이 자연과 생명을 가진 것들에게 집중하고 소속되고자 하는 선천적인 경향이 바이오필리아라고 설명한다. 즉 자연에서 온 인간이 자연을 갈망하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가운데 반려식물은 인간이 도시 속에서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최소한의 자연, 혹은 정원으로 기능한다. 조경학자 김지윤은 “작은 화분 하나라도 개인이 인지하기에 따라 정원이라고 충분히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김지윤은 『정원 읽기』(2025)에서 이렇게 갖가지 형태로 사람들이 식물을 조경하는 일이 ‘자연과 소통을 위한 사람들의 소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하고, 이런 작은 정원을 통해 ‘도시 공간에 더 많은 정원과 공원이 필요함을 깨닫는다’고 설명한다.

  그 말처럼, 사람들이 사회 문제에 직면해 반응하는 방식 중 하나가 반려식물 문화라면, 단순히 반려식물의 확산에만 안주하는 게 아니라 보다 큰 틀에서 도시의 녹지 공간을 늘릴 필요가 있다.이는 도시에 사는 모두가 공평한 녹지 공간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경학자 김지윤은 “영국의 팬데믹 시기에 부유한 고객들은 정원을 더 가꿀 수 있었던 반면, 해도 안 드는 아파트에 살아 식물조차 기르기 어려운 사람도 있었다”고 말한다. 김지윤은 “공원에 나오는 방식도 있지만 근린시설이 근처에 없는 사람도 있었다”고 덧붙인다. 즉 도시 내에서 정원을 영위하는 데도 엄연히 공간적인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과 접촉면을 늘리려면, 개인화된 생활 양식을 넘어 도시 전체 차원에서 녹지를 어떻게 활성화할지 고민해야 한다. 조경학자 김지윤은 “용산 부지와 같은 공공부지를 공원으로 개방하거나 경의선 숲길처럼 기존 공간을 공원화한 사례가 있다”고 짚었다.

  그러나 공공 공간의 접근성을 넓히는 것 외에도 실제 생활하는 건물에서 녹지 면적을 늘려야 할 필요 역시 있다. 조경학자 김지윤은 “건축법 시행령에 따르면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을 지을 때는 규정된 최소 녹지 규모를 조성해야 한다”면서, “최소한의 법에만 맞출지 혹은 더 노력해서 녹지 공간을 더 조성할지는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므로 조경학자 김지윤은 시민이 녹지 공간과의 연결을 더욱 의식하고 이를 요구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도시 개발이든 건축물 시공이든 시민 주체가 녹지 공간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점차 생기면 이런 문제점도 차츰 해소될 것”이라고 김지윤은 강조했다. 김지윤은 책에서 ‘그렇게 생겨난 더 많은 녹지는 사람뿐 아니라 더 넓은 생태계에도 도움이 되고,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지를 제공하며 생물 다양성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한다’고도 설명했다.

땅 밑으로 얽힌 서로의 뿌리

  이처럼 반려식물의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보다 큰 차원의 문제를 연결해 상상할 수 있다. 식물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주요한 힘과 상상력은 어쩌면 이런 연결감일지 모른다. 반려식물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고유한 개체의 생명과 연결되고, 그 연결을 매개로 다른 존재와 다시 연결된다. 식물은 우리가 다만 연결망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밝혀준다.

  반려식물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 이진희 씨는 다육 식물을 기르면서 예상하지 못한 접촉을 경험했다. 이 씨는 “다육 식물을 기르며 다양한 커뮤니티에 가입하게 됐다”면서, “서로의 식물을 보고 예쁜 식물이 있으면 정보를 공유하고 실제로 선물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개인적인 친분을 쌓기도 한다고 이 씨는 덧붙였다. 백수혜 작가 역시 ‘일면식 없는 사람들과 온라인으로 (식물을) 나누기도 한다’며, ‘식물을 매개로 뭔가 서로 통하는 것이 있는 건지 나이, 성별 상관없이 일단 주고받게 된다’고 적었다.

▲피움이 운영하고 있는 공동 정원

  피움은 공동 정원을 운영한다. 학내에 있는 정원을 텃밭 삼아 다양한 식물을 재배하고 수확하는 것이다. 김주호 씨는 “농사를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인 동아리 부원들이 텃밭을 함께 일구는 것은 무척 새로운 경험”이라고 말한다. 김 씨는 2024년에 고구마를 수확하던 때를 떠올리며 “10명 넘는 사람들이 고구마밭에 모여서 땅을 팠는데 같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중요하게 느껴졌다”며 그때를 돌아봤다. 김 씨는 올해도 무지개방울토마토·팝콘 옥수수·땅콩·금땅꽈리 등 다양한 과채를 심을 계획이다.

  김주호 씨는 무엇보다 “작물을 수확해 함께 나눠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무척 중요한 활동이라고 이야기한다. 품을 들여 기른 수확물을 직접 먹을 때, 우리는 채소와 과일이 환경에서 분리돼 상품으로 느닷없이 나타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재배한 것이 나를 구성한다는 사실은, 나아가 식물을 비롯한 생태계와 인간이 강하게 결속됐다는 사실을 체감시킨다.

  그러므로 식물은 인간을 넘어서 비인간 존재까지 걸친 넓은 생태계와의 연결을 촉진한다. 식물이 모이는 곳에는 다양한 곤충들이 방문한다. 백수혜 작가는 식물유치원을 운영하면서 그와 나란히 ‘곤충유치원’ 역시 열었다. 화분의 물을 마시러 오는 땅벌, 레몬 잎을 갉아먹는 나비 유충, 집을 열심히 짓는 거미, 항상 반갑지만은 않은 파리와 모기까지. 식물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존재들은, 우리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가리킨다.

  연결 없이는 우리의 삶 역시 상상할 수 없다. 『100가지 식물로 읽는 세계사』(2024)의 저자 사이먼 반즈는 인간이 숨 쉬는 것, 먹는 것, 그리고 제작하는 것 모두 식물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짚으며 ‘인간은 여전히 식물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고 말한다. 반려식물은 이런 필수적인 상호 연결을 의식하게끔 촉진한다. 조경학자 김지윤은 “식물을 돌보는 일은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소통하고 단서를 얻는 방식”이라며, “이 연결이 차츰 환경 문제나 소외된 이들 등 더 넓은 문제까지 조망하게끔 돕는다”고 그 의미를 확장한다.

▲피움에서 올해 재배할 예정인 무지개방울토마토 모종

  반려식물 문화가 그 뒤에 자리한 사회 문제를 진단하도록 연결했듯이, 그것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 인식해야 할 우리의 존재 조건을 연결해 주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가 한 정원에서 함께 살아가며 서로 달라붙은 존재들이라는 사실이다. 각자의 공간에서 자라나는 이 자그마한 정원들은, 빛과 물을 따라 움직이는 몸짓으로 우리가 서로 끊임없이 연루되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속삭인다.

  무성해지는 반려식물 문화는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나아가 우리에게 가려진 풍경과 가능한 풍경을 함께 제시한다. 이장미 작가의 동화 『달에 간 나팔꽃』(2020)엔, 낮달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달에 가려고 한참 자라나는 나팔꽃이 등장한다. 나팔꽃은 끈질기게 몸을 뻗어 결국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달에 다다라 꽃을 피운다. 식물의 줄기를 타고 우리 역시 머나먼 달까지 가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볕과 비와 계절을 걱정하는 집사들은 식물과 함께 먼 곳에 이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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