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연애 프로그램 《신들린 연애2》(2025)에는 다른 연애 프로그램과 달리 화려한 직업 공개 장면이 없다. 출연진 모두가 점술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방기를 뽑아 연을 점치고, 타로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다. 젊고, 유능하고, 매력적인 점술가들이 미디어에 나타나 화면 너머 시청자에게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오랫동안 한국사회의 토양에 자리한 점술은 이처럼 오늘날 삶과 문화에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점술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점술 문화의 현대적 변모 양상을 자세히 살펴봤다.
※점술은 현상을 관찰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행위로서, 본 기사에서는 무당이 보는 신점, 명리학에 기반한 사주팔자와 주역점·타로·점성술 등을 모두 점술의 범주에 포함했습니다.
일상에 스며든 점술
점술을 대표하는 얼굴인 무속은 오랫동안 우리 곁에 존재해 왔다. 그러나 무속이 내내 평탄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무속은 일제강점기 식민사학의 영향으로 제도적 규제를 받기 시작했다. 일제는 우리 문화의 주체성을 부정하고자 무속을 근대적 합리성의 대척점에 선 악습이라고 폄훼했다. 이러한 기조는 박정희 정권까지 이어졌고, 1970년대 ‘미신타파운동’으로 본격적인 신당 파괴가 진행되면서 무속의 기반이 크게 약화됐다.
하지만 무속은 1981년 전두환 정권의 ‘국풍81’ 행사 이후 다시금 일상으로 편입됐다. 국풍81은 민족 문화의 주체성 고취를 명분으로 국학을 정치에 활용한 관제 축제였다. 이후 1990년대부터 《무릎팍도사》 등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에 무속이 주요 소재로 사용되며 심리적 장벽을 허물었고, 자연스럽게 무속을 접하며 자란 세대가 등장했다.
친숙한 문화 요소로 자리잡은 무속과 점술은 현재 스낵컬처*로도 향유된다. 신령과 교감한 무당이 운을 점치는 신점과 더불어 사주·타로·점성술 등이 유행하면서, 점술을 맹신하지 않아도 적은 비용으로 재미와 위안을 얻고자 점을 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한 달에 한 번은 타로점을 보러 간다고 밝힌 대학생 A씨는 “100% 흥미로 타로를 보러 간다”며, 자신이 뽑은 카드에 대한 해석을 듣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점괘가 들어맞는지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스낵컬처: 짧은 시간 동안 쉽게 즐길 수 있는 문화 요소

무속과 점술의 일상화가 진행되며 무속 모티프를 활용한 다양한 상품이 출시되기도 했다. 2023년 열린 최고심 작가의 팝업 스토어에서는 ‘모든 일이 잘되는 부적’, ‘칼퇴 부적’ 등 일상적인 소망이 담긴 ‘부적 굿즈’ 100종이 성황리에 판매됐다. 〈연합뉴스〉에 의하면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집’에서 2024년 4분기 ‘액막이 명태’ 상품 판매량이 40% 상승하기도 했다. 이러한 소품에는 악귀를 쫓는 전통적인 의미 대신, 자그마한 행운이라도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시대가 변하며 점을 보는 방법 역시 다채로워졌다. 오프라인 점집을 찾아가는 대신 전화나 카카오톡, 유튜브 실시간 방송으로 점술 상담을 받는 이들도 늘었다. 점술가가 타로를 뽑고 점사를 풀이하면, 카드의 의미를 자기 상황에 대입해서 해석하는 ‘제너럴 리딩(general reading)’은 불특정 다수가 시공간의 제약 없이 점사를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다. 소셜 미디어에서 활동하는 점술가들은 점괘가 적중한 후기를 공유하며 자신의 ‘용함’을 홍보하고, 이를 활용해 청년층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실제로 고객들은 소셜 미디어 후기를 바탕으로 방문할 점집을 고르기도 한다.
비대면 점술의 인기에 힘입어 온라인 점술 상담을 매개하거나, 오프라인 점술가와 온라인 고객을 이어 주는 중개 플랫폼도 등장했다. 점술 중개 플랫폼 ‘천명’은 천명 측 검증단이 직접 점술가에게 상담을 받고 만족한 경우에만 입점을 허락해 서비스 품질을 관리한다. 한편,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동화된 점술 플랫폼도 등장했다. 2017년 출시된 운세 챗봇 ‘헬로우봇’은 타로뿐 아니라 사주, 별자리, 해몽 등 다양한 서비스를 채팅으로 제공한다. 몇몇 사람들은 인공지능 프로그램 ChatGPT에 특정 명령어를 입력해 일주**를 확인하기도 한다.
**일주(日柱): 사주를 이루는 네 가지 축 중 태어난 날과 관련된 것
불확실성의 장에서 점을 치다
점술이 다채롭게 변화하며 우리 앞에 계속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뇌는 사람들을 점집으로 향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사주를 공부하는 대학원생 B씨는 “인간관계 고민이나 대학원 진학 같은 중대한 문제가 있을 때 도움을 얻기 위해 점을 보러 갔다”며, “기질에 대한 해석과 대소사의 시기가 잘 맞았던 기억이 있다”고 전했다. 점괘가 적중한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다면, 자기 힘만으로는 불안감을 떨치기 어려운 상황에서 쉽게 점집을 찾게 되는 것이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저서 『액체 근대』(2000)에서 후기 근대 사회에 만연한 유동성을 말한다. 그는 공동체 중심적인 규범이 해체되고 각자의 정체성이 끊임없이 재정의되는 유동적인 조건 아래 개인은 ‘날카롭게 신경을 건드리는 불안감과, 괴롭고도 숨 막히는 불확실성에 대한 힘겨운 투쟁’을 벌인다고 설명했다. 점을 보는 것은 그러한 유동성을 부인하거나 감춤으로써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소비 행위인 것이다.
이렇듯 불확실성을 통제한다는 차원에서 점술의 인기가 높아지는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 문화심리학자 한민은 “자신의 삶에 대해 통제력을 발휘하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근본적 욕구 중 하나”이며, “점을 보는 행위는 이러한 욕구의 표출”이라고 설명한다. 사회에 만연한 위험을 개인이 모두 떠안아야 하는 한국사회에서는 이러한 욕구가 더욱 강해진다. 설령 개인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도, 통제력을 회복했다는 ‘착각’이라도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민은 저서 『숭배하는 자들, 호모 피델리스』에서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환경과 조건에 무속인의 말을 대입해 통제감을 얻으며, ‘이들이 문제 상황을 타개할 힘은 ‘영적인 힘’이 아닌 플라시보 효과와 자기실현적 예언에서 나온다’고 설명한다.
어떤 이들은 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 자체보다, 자신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방점을 찍기도 한다. B씨는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잘 안 나온 일이 있었다”며 “당시에 계속 자책하고, 스스로를 비판하느라 우울증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B씨는 사주를 공부하면서 노력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한 덕분에 힘든 일이 다가와도 수용하고 극복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점술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특성과 상황을 이해하면서 이러한 마음가짐을 터득한 것이다.
점술 산업의 이면을 살펴보다

점술 시장의 규모를 엿볼 수 있는 공식적인 통계는 매년 통계청에서 진행하는 사업체 조사뿐이다. 2023년의 ‘점술 및 유사 서비스업’ 종사자 수는 1만 512명으로,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 종사자 대부분이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통계가 빙산의 일각이라는 평가도 있다. 스타트업 분석 업체 ‘혁신의숲’에서는 점술 시장 전체의 규모를 약 1조 4천억 원으로 추정했으며, 국내 최대 규모 무속단체인 대한경신연합회는 2024년 기준 무당 약 30만 명이 활동 중이라고 발표했다. 이런저런 추산은 많지만, 정확한 규모 파악은 불가능하다.
점술의 상업성이 뛰어난 만큼 점을 보는 과정에서 소비자의 간절한 마음을 이용한 범죄가 일어나기도 한다. 무속 관련 범죄 판결문 320건을 분석한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무속인 범죄는 ▲대출 및 투자 사기 ▲기도 행위 유도 및 횡령 ▲성범죄 ▲돈 받고 약속 미이행 ▲폭행 등으로 유형화됐다. 피해 금액은 평균 2억 6천만 원에 달했다. 피해자들은 건강 문제, 경제적 궁핍, 가족 간 불화 등을 겪어 정서적으로 취약한 상태인 경우가 많았다.
대법원은 2022년 판결에서 무속인이 점을 쳐서 특정한 결과를 약속하고 받은 대가가 ‘전통적인 관습 또는 종교행위로서 허용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난다면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복채가 과하게 비싼 것만으로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점술 산업에 대한 통계나 연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어느 정도가 적절한 점사비인지 판단할 기준은 모호하다. 명백히 과도한 복채 요구가 있었더라도, 피해자가 지불한 돈이 자신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점술가에게 자발적으로 지급한 것인지, 점술가의 적극적인 기망행위로 편취당한 것인지 구분하는 것 역시 어렵다.
주관적인 점괘 해석과 결과가 보장되지 않은 굿·기도 권유에 사람들이 취약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심리학자 한민은 가스라이팅*과 확증편향**을 그 이유로 든다. 무속인이 상담 과정에서 피해자로부터 신뢰를 이끌어내고 피해자의 심리적 의존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무속인을 한 번 믿기 시작하면 확증편향에 빠져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워진다. 이에 부당한 요구도 쉽게 거절하지 못할 뿐더러, 심지어는 요구가 부당하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또 점괘와 현실의 괴리가 커도 점술 자체에 대한 신뢰를 잃기보단, 더 용한 점술가를 찾아가면서 피해가 늘기도 한다.
*가스라이팅: 설득을 통해 타인의 마음에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듦으로써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
**확증편향: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과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과 태도
프로파일러 배상훈은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무속인의 가스라이팅 범죄가 ‘당사자의 절박함을 이용한 지배적 종속 전략’이며, ‘피해자의 고민을 해결해 줌으로써 기존의 믿음 체계를 파괴하고, 맞춤형 믿음 체계를 창조해 주면 오히려 맹목적으로 따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점괘에 길을 묻는 이유는
그럼에도 점술 산업은 꾸준히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사회 전체의 불확실성이 제도 내에서 완전히 해소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이 다양한 이유로 제도 내에 착지하지 못하거나 그 밖을 맴돌 때, 점술은 그들 곁에 대안으로 나타난다.
어떤 이들은 우울·불안·공황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정신과 진료를 받거나 심리상담가를 찾아가는 대신 점술가를 찾아간다. 한국방송통신대 최혜윤 진로·심리상담실 전임상담원과 아주대 김은하 교수(심리학과)의 논문 「상담전문가에 대한 사회적 인식: 인접분야 전문가, 점술가 및 민속신앙 종사원과의 비교」(2021)에 의하면, 사람들은 점술가의 자격요건과 전문성을 심리상담가에 비해 매우 낮게 인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점집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낮은 비용이다. 서울대입구역과 낙성대역 인근의 점집 15곳을 비교한 결과, 1회 가격의 중앙값이 각각 신점 10만 원, 타로 1만 원, 사주 5만 원대로 형성돼 있었다.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라 1회 상담에 7만 원에서 12만 원 사이인 심리상담에 비해 점집의 상담 비용이 낮고 그 편차도 적었다. 또 장기간에 걸쳐 여러 차례 받아야 하는 심리상담에 비해, 점술은 단발성 소비라는 점에서 체감되는 비용 부담이 덜하다.
점술은 심리적인 접근성 차원에서도 이점을 가진다. 상담 및 심리치료의 효과가 입증됐음에도, 여전히 사회에 만연한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으로 인해 심리상담에 대한 장벽은 높다. 심리적 어려움에 대한 도움 요청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태도도 여전하다. 서울시 정신건강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정신건강전문인력 수는 총 2,482명이다. 이중 정신과 전문의와 정신건강 임상심리사는 1,376명뿐이다. 한편 점술 및 유사 서비스업 종사자 수는 1,793명이다. 집계되지 않은 수를 고려하면 점술 서비스 종사자 수가 정신건강전문인력보다 많기에, 수적인 차원에서도 심리상담보다 간편하게 점집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이다.
또 점술은 실제로 소비자에게 심리적 안정을 제공한다. 점괘가 문제를 해결할 직접적인 단서를 제공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자신이 점괘가 말하는 해답을 따르지 않더라도, 그저 고민을 털어놓음으로써 느끼는 해방감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으로 공황장애까지 겪었던 C씨는 지인의 권유로 처음 타로 상담을 받았다. 이후 타로 공부를 시작해 소셜 미디어에서 타로 상담을 직접 해주게 된 C씨는 “마음이 잔뜩 상하고 기댈 곳 없는 분들이 사연을 나누고 마음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에 의미를 둔다”고 전했다.

나아가 교리나 경전에 얽매이지 않는 무속의 자유로움은 사회와 기성 종교로부터 소외당한 존재들을 포용할 힘을 가진다. 과거부터 무당은 여성, 장애인, 농민 등 천대받던 이들을 신령과 매개하며, 이들이 목소리 낼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점술은 개인이 느끼는 고통을 운의 흐름이나 타고난 기질로 해석하고 영적인 존재와의 연결로 이를 해소하며, 고통의 책임을 외부화하는 방식으로 위로를 건넨다. 또 점술은 개인이 구조적 문제 앞에 경험하는 좌절을 극복하도록 돕고, 제도적 차원에서 설명할 수 없는 내밀한 이야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치유적 속성을 갖는다.
이처럼 점술은 한국사회의 제도권 안팎에서 개인의 내적 갈등을 해결하는 잠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탐색의 수단으로서 점술이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아래 무한한 가능성의 집합 속에서 개인은 정체성 모색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매 순간 치열하게 고민한다. B씨는 사주를 공부하면서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범위가 넓어졌다고 말하며, 운명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해석이 마음에 들었다고 덧붙였다. B씨는 “운명(運命)의 ‘運’은 ‘운반하다’의 운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타고난 기질을 움직여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며, 사주를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더 의미있게 이끌어나갈지 나에 대해 알아가는 여정”으로 여긴다고 전했다.
이성과 합리성의 시대에 점술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Conversations with Zizek(2004)에서 ‘서사화할 권리’가 인간의 기본권이라고 말했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권리,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특별한 이야기를 정식화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점을 친다는 것은 내면의 불안감과 고통을 수용하고 극복할 힘을 얻는 하나의 과정이다. 과학으로 입증되지 않아도, 점사가 전달하는 위로만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