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분류되지 않는 존재가 뛴다

성별이분법을 벗어난 스포츠의 가능성을 상상할 때
▲2017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달리고 있는 캐스터 세메냐 ⓒ〈로이터〉
▲2017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달리고 있는 캐스터 세메냐 ⓒ〈로이터〉

  2025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 서명한 행정명령을 통해 미 연방정부는 여성과 남성 2가지 성별만을 인정하겠다고 선언했다. 성별 정체성을 성별 구분의 기준으로 인정하지 않고 ‘생물학적 진실을 회복’하겠다는 발표는 노골적인 트랜스젠더 차별이 제도화될 것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성별이분법을 정부가 ‘공언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성별이 그 자체로 자명하지 않은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반(反)다양성이란 기치 아래 시행되는 정책과 그로써 정당성을 얻는 혐오 담론은 스포츠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트럼프 취임 약 2주 후에는 트랜스젠더 여성(트랜스여성)이 여성 스포츠에 출전하는 것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이 통과됐다. 2028년 미국 LA에서 열릴 하계 올림픽 때 트랜스젠더 선수의 입국을 막을 것이란 주장도 나왔다. 이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지금껏 걸어온 경로를 거슬러 올라가는 일로 보이며, 국제스포츠기구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스포츠에서 성별은 언제나 중요한 쟁점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스포츠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범주가 모든 인간을 구분할 수 없음을 증명하는 사례로 가득하다. 성별이분법에 기반한 스포츠 제도의 한계를 톺아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해 봤다.

성별은 둘이 아니다 

  2024년 파리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 알제리 대표로 출전한 복싱 선수 이마네 칼리프는 뜻하지 않은 구설수에 휘말렸다. 여자 복싱 66kg 부문에 참가한 칼리프는 2023년 열린 세계복싱선수권대회엔 출전하지 못했는데, 성별 규정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언론은 앞다퉈 이마네 칼리프를 ‘트랜스젠더’ 혹은 ‘XY 염색체를 가진 생물학적 남성’으로 보도했다. 제대로 된 사실 확인도, 선수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는 선정적 보도는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여론의 움직임에도 지대한 영향을 줬다. 16강전에서 그와 겨룬 선수가 울며 기권했다는 이야기는 그가 여성 선수와 겨뤄선 안 된다는 주장을 더욱 부추겼다.

  칼리프는 자신이 여성으로 태어나 여성의 정체성을 갖고 자랐다고 말한다. 세간에 알려진 바와 달리 칼리프가 XY 염색체를 가졌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적은 없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는 여성으로 살아왔음에도 XY 염색체를 지닌 DSD(differences of sex development, 성적 발달의 차이) 선수로 추정된다. 

  DSD는 해부학적 구조나 호르몬, 염색체와 같은 신체 특징이 여성과 남성이란 두 범주에 들어맞지 않는 경우를 통칭한다. 더 오래전부터 쓰인 인터섹스(intersex, 간성)란 개념과 범주상 겹치지만, 인터섹스가 사회적 관점 위에 자리하는 데 반해 DSD는 의학적 관점에서 정의된다는 차이가 있다. 미국소아과학회는 DSD라는 용어가 도입된 배경을 남성이나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갖는 이들에겐 인터섹스라는 이름이 부적절한 낙인으로 다가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스포츠계에서 DSD로 분류되는 선수는 종종 ‘생물학적 남성’이라 여겨지거나 ‘남성적’ 이점을 갖는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지정성별* 여성으로 자라, 이와 일치하는 성별 정체성을 갖는 경우가 많다. 이때 생물학적 성은 지정성별로 치환되지 않는다. 인터섹스라는 사실은 출생 시부터 드러나기도, 2차 성징 시기에 알게 되기도 하지만, 외부 생식기나 출산 등의 재생산 경험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다면 검사를 해보지 않는 이상 평생 모르고 살아갈 수도 있다.

*지정성별: 태어날 때 의사 등에 의해 분별되고 지정되는 성.

  트랜스여성은 태어났을 때 지정된 성별, 즉 ‘생물학적 성’이 남성이라는 이유로 DSD 선수와 유사한 규정 및 논란의 대상이 된다. 스포츠 규정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주로 여성 부문에 출전하는 트랜스여성의 경우다. 이들이 가진 ‘남성적’인 신체 특징이 여성 선수와의 경쟁에서 ‘부당한’ 이점으로 작용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성 부문에 출전하고자 하는 이들에겐 별도의 조건이 요구되지 않는다. 트랜스여성 선수로는 미국 대학리그인 NCAA에서 활약했던 수영 선수 리아 토마스나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역도 선수 로렐 허버드, 강원도민체전에서 활약한 사이클 선수 나화린 등이 있다. 

▲도쿄올림픽에서의 알라나 스미스 ⓒThomson Reuters Foundation

  한편 여성 부문에 참여하는 트랜스젠더 중에는 논바이너리* 정체성을 가진 이도 있다. 2021년 도쿄올림픽에 참가한 스케이트보드 선수 알라나 스미스가 대표적이다. 스미스는 특정 성별 인칭대명사로 규정되지 않겠다는 뜻으로 자신의 스케이트보드에 ‘they/them’이란 대명사를 새기고, 여성 부문에 출전했다. 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오픈리** 논바이너리 선수였지만, 지정성별 여성 부문에 참가했기 때문에 다른 트랜스젠더 선수들과 같은 논란을 겪지 않았다. 

*논바이너리(non-binary): 기존의 이분법적인 성별 중 어느 쪽으로도 자신의 성을 규정하지 않는 경우, 혹은 그러한 사람들.

**오픈리(openly): 자신의 성적 지향, 성 정체성, 젠더 이력을 숨김없이 타인에게 밝히는 것.

  이분법적인 스포츠 무대에서 자기 자신으로 뛰고자 한 선수들은 끊임없이 ‘논란’을 불러왔다. 생물학적 성을 둘로 구획하려는, 성 정체성을 생물학적 성별로 환원하려는, 그리고 이분법적 시선으로 젠더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이들의 존재 앞에서 모두 얼마간 무용해진다.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적 구분으로 매끈하게 분류되지 않는 몸과 접하는 여러 경계에서, 스포츠는 제도적 변화를 거듭해 왔다.

성별이분법 위의 스포츠

  이분법적 성별 구분에는 여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복잡한 문제가 따랐다. 여성의 스포츠 참여가 확장되고 보편화되던 20세기 중반, 여성 선수의 여성성을 확인하는 성별 검사가 시행되기 시작했다. 1964년 세계육상연맹은 모든 여성 선수가 성별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명문화했다. 당시 시행된 성기 검사 방식에는 곧 심각한 인권 침해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1965년부터 염색체 검사 방식이 도입됐다.

▲성별 검사와 트랜스젠더 출전 규정의 변천 ⓒ빈채현

  본래 성별 검사의 취지는 남성이 여성 부문에 침범해 부당한 이익을 누리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으나, 이 제도가 실제로 가려낸 것은 XXY형의 염색체를 가졌거나 안드로겐불감성증후군*을 가진 이들이었다. 법적·사회적 여성으로 살아온 선수가, Y 염색체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여성 부문에 출전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후 염색체가 성별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계속되며, 90년대에 들어 모든 여성 선수에게 염색체 검사를 의무화한 조항은 폐지 수순을 밟았다. 다만 합리적 의심이 되는 경우 선별적으로 성별 검사를 할 수 있다는 단서는 여전히 존재했다. 

*안드로겐불감성증후군: XY 염색체가 있으나 세포의 안드로겐 수용체가 반응하지 않아 남성 신체 발달이 일어나지 않는 것. 안드로겐은 남성 호르몬의 총칭이며, 테스토스테론은 안드로겐의 한 종류.

  2010년대에 들어 여성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염색체에서 호르몬으로 바뀌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육상 선수 캐스터 세메냐의 등장은 DSD에 대한 스포츠계의 논의를 본격화하고, 안드로겐을 기준으로 한 새로운 규정을 출현시켰다. 2011년 세계육상연맹은 혈중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리터당 10나노몰 이하인 경우만 여성으로 출전할 수 있다는 규정을 발표했다.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선수는 호르몬 수치를 낮추는 의료 조치를 받아야만 출전할 수 있었다. 

  2015년 인도의 육상 선수 듀티 찬드는 선천적으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DSD 선수가 출전 자격을 얻기 위해 신체를 변화시켜야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테스토스테론이 경기력에 미치는 영향이 영양 상태나 훈련 시설 등 다른 경기력 향상 요인보다 명백히 큰지 알 수 없다며, 2년 내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고안드로겐혈증 규정을 폐지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 결정 이후 세계육상연맹은 테스토스테론 수치와 경기력 사이에 유의미한 관계를 보이는 연구 결과를 동원해, 리터당 5나노몰 이하로 출전 자격 기준을 강화했다. 2018년 세메냐는 같은 규정을 다시 CAS에 제소했으나, 이번에는 경기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합리적 규정이란 판결이 나왔다. 

  한편 트랜스젠더의 경기 출전이 공식적으로 허용된 것은 2004년 IOC의 스톡홀롬 합의가 기점이었다. 이때는 성전환 수술, 법적 성별 정정, 최소 2년의 호르몬 치료 등의 조건이 붙었다. 이후 2015년, IOC는 성전환 및 고안드로겐혈증에 대한 새로운 합의를 통해 리터당 10나노몰 이하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라는 조건으로 규정을 완화했다. 이로써 성전환을 경험한 선수들은 수술적 조치 없이도 여성 부문에 출전할 수 있게 됐다. 남성 부문에 출전하고자 하는 트랜스젠더 선수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준을 두지 않았다. 

  2021년, IOC에선 더욱 급진적인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호르몬 수치에 대한 기준을 삭제하고, 성별 정체성이나 성별의 분화와 상관없이 모든 이가 스포츠에 안전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은 권고 사안에 그쳤으며, 출전 자격을 관리할 실질적인 권한은 여전히 각 국제스포츠연맹에 있었다.

  이런 규정의 변천은 경기의 공정성을 보장하되 DSD나 트랜스젠더 선수를 부당하게 배제해선 안 된다는 복합적인 과제를 두고 국제스포츠계가 고민해온 자취다. 엇갈리는 외침들 가운데서 규정을 매만지는 스포츠기구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는 과학적 증거의 중요성을 거론한다. 그러나  세계육상연맹이 근거로 제시한 논문을 두고 학계에선 연구에 오류가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안드로겐 수치나 성전환 경험 등이 경기력에 미치는 복합적인 영향에 대해선 여전히 명확한 답을 내리기 어렵다. 그러나 과학이 정답을 알려주기만을 기다리며 사회적 논의를 미룰 수는 없다.

공정과 포용 사이에서

  DSD나 트랜스젠더 선수의 여성부 출전에 관한 논의는 많은 경우 공정과 포용이란 두 가치의 충돌로 이해된다.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을 존중받으며 평등하게 스포츠에 참여해야 한다는 포용의 요구가, 여성 스포츠의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와 맞서는 것이다. 

  여성 부문을 남성과 분리해 운영하는 것은 큰 맥락에서 여성의 스포츠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서다. 국민대 박성주 교수(스포츠교육학과)는 “남성과 여성의 직접적 경쟁에 따른 여성의 배제를 피하면서 여성의 스포츠 참여를 확대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근거에서 “대다수가 남녀 스포츠 분리를 주장해왔다”고 설명했다. 

  스포츠는 기본적으로 치열한 경쟁의 현장이고, 엘리트 스포츠에서는 더욱 그렇다. 승패만을 스포츠의 본질로 여기며 과열된 경쟁의 부작용을 눈감는 경기장 안팎의 환경은 분명 경계해야 하지만, 오늘날 스포츠에서 경쟁을 말끔히 지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공정’은 경기를 뛰는 선수나 운영하는 관계자뿐 아니라, 경기를 지켜보는 모든 이에게 무척 중요한 화두가 된다. 박성주 교수는 이때 공정의 조건 중 하나는 “참가자 모두가 어느 정도 합당한 승리 가능성을 갖는 것”이라 말했다. 

  DSD·트랜스젠더의 여성부 참가를 반대하는 입장은 이들이 신체적 이점을 갖는다고 전제한다. 박성주 교수는 이러한 주장은 “경쟁자들 사이의 생리학적 평등이 스포츠의 결정적 특성이며, 이 특성 없이는 그 어떤 스포츠의 내재적 선도 실현될 수 없다는 그릇된 생각”에서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신체적 이점은 곧바로 불공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의학 물리학자 조안나 하퍼는 유리한 신체적 특성이 의미 있는 경쟁을 해칠 정도인지 아닌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큰 문제는 공정성이 전적으로 시스젠더* 여성의 입장에서만 고려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부에 출전하지 못하는 이들이 처한 불공정한 상황은 다수의 공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것이 된다. 이 간편한 공리주의적 발상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는 전형적인 논리로 작동한다. 박성주 교수는 공정한 경쟁에 매몰돼 그보다 중요한 인간의 존엄이란 가치를 간과해선 안 된다고 힘줘 경고했다. 간사이대 이타니 사코토 교수(영미문화전수)가 「스포츠분야 트랜스젠더 배제에 대한 페미니즘 담론」(2020)에서 역설한 ‘트랜스젠더 소녀가 여자 대회에 참가할 권리가 시스젠더 소녀가 우승할 권리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문장을 곱씹을 때다. 

*시스젠더(cisgender): 지정성별과 일치하는 성별 정체성을 갖는 사람들

  공정과 포용의 대결 구도는 쉽게 시스젠더 여성과 트랜스젠더 여성의 인권이 충돌한다는 프레임과 연결된다. 그러나 이 사안은 두 집단 간의 갈등이기 이전에 젠더 질서에서 기인한 구조적 문제다. 문학연구자 허주영은 『계집애 던지기』(2020)에서 ‘누구나 정정당당하게 싸울 수 있는 공간’으로 여겨지는 남성 리그와 불공평한 신체가 문제시되는 여성 리그 사이의 불평등에 주목하며, 이는 트랜스젠더 선수 때문이 아니라 여성은 남성보다 약하다는 이분법적 젠더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트랜스젠더든 아니든, 기량이 뛰어난 여성 선수에게 따라붙는 여성성에 대한 의심은 스포츠가 기획하고 공고화해온 본질적 성차에 대한 믿음 없이 해명될 수 없다. 

▲트랜스젠더의 여성 스포츠 참가 금지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트럼프. 서명 직전 소녀들을 가까이 모이게 해 상징적 장면을 연출했다. ⓒ〈로이터〉

  요컨대 공정성 담론은 충분하지 않다. 이 논의는 공정과 포용의 충돌, 나아가 DSD·트랜스젠더와 시스젠더 여성의 대결로 축소될 수 없다. 성별이분법 및 공정과 포용의 대결 구도란 전제를 의문시할 때, 비로소 이분법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이 어떻게 스포츠의 장에 참여할 수 있을지에 관한 폭넓은 사회적 논의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은 상상은 어디에 

  그렇다면 대안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전문가들은 성별이분법에 들어맞지 않는 다양한 신체를 스포츠 제도가 어떻게 포용할 것인지에 대한 일관된 해답을 내놓지 못하는 듯 보인다. 첨예한 대치 관계에 갇혀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상상일지 모른다. 

  일각에선 여성, 남성 부문과 별개로 운영되는 ‘오픈부문’을 열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오픈부문이 오히려 DSD·트랜스젠더를 분리하는 차별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모두의 운동장』(2023)에 실린 단독인터뷰에서 박한희 변호사는 오픈부문의 운영이 ‘여성과 남성 외에 트랜스젠더라는 성이 따로 있는 것’이라는 차별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성소수자에게 강요되는 ‘너희들끼리만 있어라’는 요구처럼, 소수자를 치워버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란 우려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지속되는 한, 오픈부문이 실효성 있는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일차적으로는 엘리트 수준에서 활동하고 있는 트랜스젠더 선수의 수 자체가 많지 않다. 선수에게 커밍아웃은 여전히 커다란 부담이며, 오픈부문에서 거둔 성과가 기존 부문과 동등하게 평가받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세계수영연맹에선 2023년 베를린 수영월드컵에 오픈부문을 신설했으나, 참가 신청이 단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아 경기가 열리지 못했다. 

  DSD·트랜스젠더의 스포츠 참여는 단지 엘리트 체육에서만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학교체육과 생활체육을 아우르는 근본적인 문제가 엘리트 체육과도 맞닿기 때문이다. 박한희 변호사는 학교에서부터 트랜스젠더가 소외되는 한국에선 트랜스젠더 엘리트 선수가 늘어나기 어렵다고 전했다. ‘성별 정체성을 편하게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이 먼저 필요하다는 얘기다. “생활스포츠 모임은 많지만, 대개 여자팀과 남자팀으로 구분돼 성소수자 친화적인 공간은 부족하다”고 전한 소연 씨는, 바로 그런 이유에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소속 운동 소모임인 ‘큐리블’을 만들었다. 소연 씨는 “트랜스젠더를 향한 혐오에 어떻게 대항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스포츠를 떠올렸다”고 말하며, 스포츠는 다양한 정체성이나 젠더 표현을 가진 이들이 “같은 팀에서 동료로 활동하며 팀워크를 쌓아가는 경험”이라 설명했다. 

▲2024년 퀴어여성게임즈에 출전한 큐리블의 응원 현수막 ⓒ이소연

  생활체육에서는 이분법적 경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가 차츰 늘어나고 있다. 2018년부터 이어진 아마추어 생활체육대회인 ‘퀴어여성게임즈’는 성별에 따른 구분이나 제한이 없는 경쟁의 장을 열었다. 이 대회에선 트랜스젠더와 시스젠더 여성이 함께 팀을 이루기도, 남성과 여성이 함께 경쟁하기도 했다. 큐리블 역시 2024년 열린 퀴어여성게임즈 풋살 대회에 참여했다. 소연 씨는 “퀴어 여성 사이에도 트랜스를 배제하는 모임이 있으니, 다른 운동 모임과의 접촉이 조심스럽기도 했다”고 밝히며, “퀴어여성게임즈를 준비하면서는 큐리블 밖의 이들과 교류하는 기회가 많았다”고 말했다.

  물론 운동 능력의 우위를 치열하게 다투는 엘리트 스포츠에 이러한 시도가 곧바로 적용되긴 어려울 것이다. 지금도 엘리트 스포츠에선 성별이분법을 공고화하는 제도적 실천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도권 밖에서 시도되는 다양한 실험은, 성별을 둘러싼 관점을 확장하고 스포츠 제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중요한 자원일 것이다. 엘리트 선수는 풀뿌리 체육의 어느 위치에서도 나타날 수 있으니 말이다.

  박성주 교수는 인터뷰에서 “스포츠는 단순히 신체적 경쟁의 장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와 규범을 반영하는 사회적 장”이라 강조했다. 우리는 종종 스포츠가 사회의 축소판이라 말한다. 스포츠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은 단 한 경기에서조차 인생을 엿보곤 한다. 성별이분법의 세계는 스포츠에만 있지 않다. 경쟁과 공정의 논리가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기 쉽다는 스포츠의 특징은, 경기장 밖의 사회로도 뻗어나간다. 스포츠의 안팎에서, 경쟁 상대이자 동료인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함께 살기 위한 규칙을 새로이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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