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억을 다시 통과하며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강에 스며든다』(2025)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강에 스며든다』 포스터 ⓒ서울시립미술관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강에 스며든다』 포스터 ⓒ서울시립미술관

  역사와 기억은 다르다. 역사가 과거의 것이라면, 그 과거를 지금 이 자리에서 불러냄으로써 존재하는 기억은 전적으로 현재의 것이다. 공적인 역사에 편입되지 못한 과거가 사라질 위험에 처할 때, 그것을 발굴하고, 잇고, 기억하는 것은 지금 우리의 몫이다.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의 기획전시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강에 스며든다』는 바로 이러한 기억에 관한 전시다. 3월 6일 시작한 전시는 7월 27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기억 기관으로서의 미술관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모음동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는 서울시립미술관의 분관 중 하나로, 현대 미술사의 중요한 자료를 보관하고 연구하는 데 특화된 미술관이다.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는 한국 현대 예술가와 연구자의 활동 자료로 구성된 컬렉션을 구축하고, 이를 매개로 다양한 전시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아카이브는 예술가·연구자 사이에서 활용되는 데 그치지 않고, 일반 시민들과의 소통 속에서 그 가치를 형성해 나간다.

  아카이브란 사회적 기억을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이때 미술관은 일종의 기억 기관으로서, 사회적 기억의 매개 역할을 맡는다. 이 일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기록해야 하는지,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함께 기억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관한 지속적인 질문과 고민을 수반한다. 이번 전시 역시 그러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전시는 미술 작가뿐 아니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제주4·3평화재단,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과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이들은 각각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기념하고 그 정신을 전승하기 위해, 제주 4·3의 미결된 진상조사를 이어가고 추모하기 위해, 한국 퀴어 운동의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하기 위해 힘써 온 기관이다. 이들이 수집하고 연구한 기록물은 이번 전시의 핵심 자료가 됐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 권은비, 김아영, 나현, 문상훈, 윤지원, 이무기 프로젝트, 임흥순, 타카하시 켄타로는 각기 다른 주제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실제 사회와 역사의 자료를 수집하고 그것을 작업의 일부로 삼는다는 점에서 공통된 접근 방식을 취한다.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는 작업의 결과물인 작품만이 아니라, 그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도 함께 수집해 전시한다. 이번 전시에도 영상·사진·설치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뿐 아니라, 작가들과 협업 기관 관계자들의 영상 인터뷰가 또 다른 작품처럼 함께 전시되고 있다. 

  전시가 품고 있는 각 기억에 보다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 역시 준비돼 있다. 남은 전시 기간 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는 제주4·3평화재단과 임흥순 작가가 함께하는 대화 프로그램, 「트랜스-젠더-시간-지도」 앞에서 이태원의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의 삶을 자신의 방식으로 전하는 렉처 퍼포먼스*, 그리고 「폐허의 잔해로 직조한 시」와 관련해 구술자가 재난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구술 퍼포먼스가 있다. 퍼포먼스에서 추가된 기억은 작품을 변형시키기도 한다. 「트랜스-젠더-시간-지도」의 렉처 퍼포먼스에선 벽면에 설치된 작품에 연필로 질문이 덧쓰이고, 「폐허의 잔해로 직조한 시」의 구술 퍼포먼스는 작품의 사운드트랙으로 추가된다.

*렉처 퍼포먼스(lecture performance): 작품에 강의 형식을 도입한 퍼포먼스의 일종

편지들의 무게 

  이 전시를 꼼꼼히 보려면 온종일을 써도 부족할지 모른다. 어느 전시물도 쉬이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다. 영상·사진·사운드트랙 등 다양한 예술적 형식에 담긴 기록과 가공되지 않은 실제 자료를 통해 드러나는 삶은, 비록 역사의 거대서사에서는 탈락했을지라도 각자 더없이 방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내어주는 삶의 단편은 깊은 곳까지 마음을 흔든다. 스무 명에 가까운 레즈비언이 촬영한 연인의 손 사진으로 이뤄진 문상훈 작가의 「손」 앞에선 이들 사이의 관계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임승훈 작가의 「바다」는 제주 4·3을 통과해 일본으로 이주한 이들에 주목한다. 작품은 두 언어를 오가는 구술 인터뷰와 오래 전 건너온 바다를 바라보는 고요한 뒷모습을 통해 재일제주인들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무엇보다 발길을 잡아두는 것은 편지들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구속자가족협의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등의 형태로 이어져 온 가족운동에 초점을 맞췄다. 어머니·아내·가족이란 이름으로 양심수 석방을 요구하고 독재 정권에 대항한 이들의 목소리는 민주화운동의 역사에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주체가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이런 목소리는 투옥된 가족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또 옥중에서 수신된 서신을 통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수감된 이기정에게 그의 모친 이중주가 보낸 서신

  퀴어락의 전해성 컬렉션에서도 여러 장의 편지를 만날 수 있다. 이 전시엔 한국 최초의 성소수자 단체로 알려진 ‘초동회’와 초동회가 와해된 후 만들어진 여성 동성애자 단체 ‘끼리끼리’의 활동을 보여주는 소식지와 회의록뿐 아니라, 1990년대 초중반 무렵 이들이 주고받은 서신이 포함돼 있다. 자그마치 30여 년 전, 이 땅에도 레즈비언 모임이 필요하다는 뜻을 모은 이들이 주고받은 편지에는 들뜬 열기, 걱정, 일상의 고단함, 먼 타국에서 동지들에게 보내는 애틋한 마음 등이 가득하다.

  편지 앞에서 유독 마음이 흔들리는 건, 그것이 지닌 물성 때문이기도 하다. ‘동성연애자’처럼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표현이나 특정 시대의 스타일을 짐작하게 하는 문장부호와 어투 같은 사소한 요소들이,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과거의 조각을 선명히 실감시킨다. 또, 퀴어락에서 전시하는 여러 편지엔 수신자나 발신자의 이름이 지워져 있다. 이 자료의 기증자인 전해성 씨는 대중매체를 통해 레즈비언으로 대(對)사회 커밍아웃을 한 인물이지만, 당시 함께하거나 교류했던 알려지지 않은 이들의 이름은 익명으로 보호된 것이다. 이름이 지워진 자리에 남은 건 고유한 손글씨, 어투, 그리고 편지에 담긴 삶의 일부다. 그 빈칸을 따라가며, 지워진 이름의 주인을 조심스레 그려본다.

▲전해성 컬렉션에 포함된 한 서신

  편지는 전시되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니다. 40년, 30년쯤 전에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건넨 지극히 사적인 기록. 전시품으로 제삼자에게 읽힐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을 누군가의 편지를 읽는 일은 약간의 부끄러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돌고 돌아 전시장에 자리하게 된 그 사적인 기록에는, 이를 아카이브에 기증한 이의 마음과 그것을 나보다 먼저 읽고 소중히 보관·전시한 이들의 마음이 겹겹이 쌓여있다. 글쓴이는 이 편지가 지금 여기의 나에게 읽힐 것을 당연히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어쩌면 바라왔을지도 모른다고 짐짓 오만한 생각을 했다. 이 편지를 오늘의 관람자에게까지 닿게 한 것은, 어쩌면 수십 년 전 편지를 주고받음으로써 누군가와 연결되고자 했던 간절한 마음일지 모른다. 

기억을 잇는 지도

  이 전시에서 개인의 기억은 ‘우리’의 것이 된다. 이때 ‘우리’는 어떤 정체성을 공유하거나 같은 공동체에 속하는 이들, 서로 우정을 나누는 이들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제껏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여온 적 없던, 대다수 타인이 전혀 몰랐거나 무관심했던 존재들의 삶과 기억을 포함한다. 

  제주 4.3, 재일제주인, 일본군 ‘위안부’ 진상규명 운동, 민주화 가족운동, 한국 퀴어 운동, 여성 성소수자, 트랜스젠더·성노동자의 공간으로서 이태원, 재난과 사회적 참사 등, 이 전시를 이루는 것은 각기 다른 자리에서 기억하고 기록하려 한 하나하나의 시도들이다. 한 개인이나 한 공동체의 기억으로만 남아있던 것을 공적 기억으로 담아내는 작업은, 기억이 더 이상 개인만이 간직할 수 있거나 걸머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시간의 경과 속에서 그저 휘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이들의 작업을 통해, 그 기억은 현재를 살아가는 다른 이들과 연결된다. 

  무엇인가를 기록하는 활동은 그것을 기억될 만한 것으로 만들고, 언젠가 누구에 의해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일이기도 하다. 예술가든 활동가든, 제도적인 기록이든 예술적인 기록이든 이 점에선 다르지 않다. 기억은 언제나 현재의 관점에 기대 다시 만들어지고, 또 다른 목격자에게 지연되며 이어진다. 그러니까 기억의 세계에선, 모든 것이 새롭게 연결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지연하는 기억’, ‘목격하는 기억’이라는 전시의 첫 두 섹션의 제목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읽힌다.

▲「트랜스-젠더-시간-지도」의 일부 ⓒ서울시립미술관

  나아가 이 전시는 각각의 기록이 서로 공명할 수 있도록 한다. 현대사의 다양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 사람들의 삶이 서로의 궤적과 교차할 때, 그것은 서로 단절된 서사가 아닌 공적인 기억의 지형을 그린다. 이무기 프로젝트의 「트랜스-젠더-시간-지도」는 트랜스젠더와 성노동자의 공간으로 여겨지는 2010년대의 이태원에서 출발해, 재개발 계획으로 이제는 곧 사라질지 모르는 이 특별한 공간의 역사를 지도로 그려낸다. 지도에선 여러 정책과 문화, 사건과 담론의 조각들이 서로 연결된다. 이무기 프로젝트의 공연 「이태원 트랜스젠더-클럽 2F」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색자·로즈마리·미란·미래의 삶의 단편들도 여기에 함께 엮인다. 이와 같은 지도의 방식은, 비유컨대 전시 전체에 흐르는 구조기도 하다. 이 전시는 파편적인 점들을 이어 울퉁불퉁한 지도를 그려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폐허의 잔해로 직조한 시」 ⓒ서울아트가이드

  전시의 이러한 지향은 권은비 작가의 「폐허의 잔해로 직조한 시」에서도 함축적으로 나타난다. 폐허 속에서 찾은 파이프, 건전지, 목화, 폐기계부품 등의 파편들은 피아노의 현과 연결돼, 실로 면을 직조하는 모습을 재현한다. 서로 다른 역사적 시공간에서 벌어진 이야기들로 구성된 전시의 사운드트랙은, 노예 수송이 벌어지던 17세기 대서양과 지금 한국의 재난 피해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낸다. 다층적이고 파편적인 기억이 교차하는 곳에서 오늘의 시가 만들어진다. 

「트랜스-젠더-시간-지도」를 보고 이태원과 그곳에 뿌리내린 트랜스젠더의 역사를 한눈에 파악하지 못하길 바랐다. 이무기 프로젝트의 작업기를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인터뷰 영상에서 작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마치 역사 교과서를 훑는 것처럼, 필요한 이야기는 전부 이해했다는 착각을 일으키는 방식은 지양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이 기꺼이 내준 기억 앞에서 우리는 그것을 안다고 쉽사리 말할 수 없다. 쉽게 정리되지 않는 기억을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관람자의 몫이다. 어지러이 뒤섞이고 파편화된, 얼기설기 기워진 기억들을 통과하는 저마다의 경로 속에서, 기억은 한 사람의 몫만큼 길어지고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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