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정류장은 신영극장입니다.”
안목해변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강릉 중심가에서 내린다. 고개를 들면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이라고 적힌 간판이 오가는 이를 반긴다. 1990년 겨울 1미터 넘게 쌓인 폭설로 극장이 무너진 자리에 다시 세웠다는 쌍둥이 빌딩, 그 4층에 신영극장이 있다.
신영극장은 1965년 강릉에서 가장 큰 극장으로 문을 열었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강릉 사람들은 ‘신영극장 앞에서 보자’는 말로 만남을 약속했다. 《쉬리》, 《왕의 남자》, 《괴물》 같은 화제작이 오르면 영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극장 앞을 가득 메웠다. 좌석이 가득 차면 상영관 바닥에 앉아 영화를 보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매점에선 팝콘 대신 갓 구운 오징어나 쥐포를 종이에 말아 팔았다. 강릉에서 나고 자란 현정 씨는 옛 신영극장을 “모든 추억을 함께한 옛 친구 같은 공간”으로 기억한다.
폭설에 지붕이 무너져도 다시 일어난 신영극장이건만, 인근에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들어서며 발길이 끊기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2009년 폐관한 신영극장은 3년간 아무도 찾지 않는 채로 방치됐다. 그렇게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는 듯했던 신영극장은 2012년, 지역 영화인으로 구성된 비영리단체 ‘강릉씨네마떼끄’에 의해 강원도에 하나뿐인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으로 되살아났다. 숱한 위기 속에서도 이곳을 지키고 가꿔온 이들의 이야기를,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의 김슬기 사무국장에게 전해 들었다.
같이 영화 볼 사람 찾아요
‘영화 도서관’을 뜻하는 프랑스어 ‘씨네마떼끄(cinémathèque)’는 숨겨진 독립·예술영화를 지역사회에 소개하는 비영리 공간이자, 그런 공간을 지역에 구축하려는 문화운동을 가리킨다. 1990년대, 누구나 영화예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열망을 품은 영화인들은 전국 곳곳에서 씨네마떼끄 운동을 전개했다. 서울 마포구 ‘영화공간 1895’를 필두로 ‘문화학교 서울’, 대구 ‘영화언덕’, 부산 ‘1/24’과 같은 공간과 단체가 생겨났고, 1997년에는 도시 14곳에 거점을 둔 ‘전국씨네마떼끄연합’이 출범했다.

강릉씨네마떼끄 역시 이런 흐름 속에서 1996년 모임을 결성했다. 김슬기 사무국장은 “이름은 거창해도, 사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동호회에 가까웠다”고 설명한다. 처음엔 극장에 걸리지 못한 영화, 검열당한 영화, 오래된 영화의 비디오테이프를 구해 함께 보는 것이 활동의 전부였다. 이후 영화 세미나를 주기적으로 열고, 영화 제작을 교육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혀 갔다.
1998년에는 강릉인권영화제를 시작했다. 강릉인권영화제는 매년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 즈음 성평등, 장애, 노동, 환경 등을 다룬 작품을 상영하는 행사로, 2023년부터는 강릉 지역단체들이 참여해 이어가고 있다. 2024년 제25회 영화제에서는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강릉시민들을 조명한 유민아 감독의 《우리는 바다가 계속 살아있길 바란다》와 강원도 교육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록한 김상패·나단아 감독의 《차별없이 억압없이 혐오없이 배제없이》 등 작품 10편을 무료로 상영했다. 김슬기 사무국장은 “영화와 함께 지역 현안을 돌아보는 것이 강릉인권영화제의 취지”라고 덧붙였다.
신영극장에 터를 잡기 전에도, 강릉씨네마떼끄는 영화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2000년대는 독립·예술영화 공동체상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였다. 공동체상영은 관객이 직접 상영회를 기획해 영화를 관람하는 대안적인 상영 방식으로, 상업영화 중심의 배급 환경에서 기회를 얻기 어려운 독립·예술영화의 활로를 극장 밖에서 찾는 시도다. 강릉씨네마떼끄는 강릉 내 극장, 양로원, 도서관은 물론 요청이 오면 동해, 속초, 태백 등 강원도 곳곳으로 달려갔다. 《똥파리》, 《워낭소리》 등 당시 주목받던 독립영화도 이들에 의해 강원도에서 상영됐다. 김슬기 사무국장은 “이 과정에서 독립·예술영화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음을 확인했다”며, 안정적으로 영화를 상영할 상설 공간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고 설명했다.
강릉씨네마떼끄의 다음 과제는 영화를 상영할 상설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이때 2009년 폐관하고 비어 있던 신영극장이 눈에 들어왔다. 김슬기 사무국장은 “신영극장은 강릉 시민들의 오랜 약속 장소이자 시내 중심에 자리한 랜드마크”라며 신영극장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신영극장 폐관을 안타까워하던 강릉 시민들도 기다렸다는 듯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극장 임차에 필요한 보증금 5천만 원은 극장 좌석마다 후원자의 이름을 새기는 ‘나는 주인이다’ 프로젝트로 채워졌다. 시민 개개인은 물론 공무원노조 강릉지부, 전교조 강릉지부, 김성수 열사 기념사업회 등 지역사회 단체도 여기에 이름을 올렸다.
마침내 2012년 5월 18일, 신영극장이 시민 곁에 돌아왔다. 지역에 처음 문 연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이었다. 영화를 사랑하고, 극장을 아끼는 이들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영화가 안내하는 ‘비일상’의 순간

김슬기 사무국장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영화인이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김 사무국장은 “2010년 개관한 강릉시 영상미디어센터에서 강의를 듣던 중,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청소년기록팀으로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매년 8월 첫째 주에 강릉씨네마떼끄가 개최하는 정동진독립영화제는 1999년에 출발한 지역 최초 독립영화제다. 시작은 단순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독립영화를 상영하자는 제안이었다. 당시 정동진은 드라마 《모래시계》 흥행으로 유명세를 탄 해돋이 명소였다. 아마추어 동호회였던 이들에게 첫 영화제 개최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정동초 운동장에 합판을 세우고 하얀색 페인트를 칠해 스크린을 만들고, 간이의자가 부족하면 맨바닥에 앉아 영화를 봤다. 어설퍼도 열정 어린 마음이 통한 걸까, 첫 영화제는 사흘간 관객 2,500여 명을 모았고, 지금은 1만 명 이상이 찾는 강릉 대표 문화행사로 성장했다.

영화를 좋아하던 고등학생 김슬기 사무국장에게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김 사무국장은 “학교 운동장에 돗자리를 깔고 영화를 보는 광경이 생소하면서도 자유로워 보였다”며 그때 본 풍경을 떠올렸다. 바닷바람 간지러운 여름밤, 열기가 식지 않은 운동장 바닥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웃음을 터뜨리며 영화를 보는 사람들.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낭만이다.
그렇게 강릉씨네마떼끄와 연을 맺은 김슬기 사무국장은 스무 살이 되자마자 정동진독립영화제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고, 2015년에는 매표 아르바이트로 신영극장에 합류했다. 지금은 신영극장과 정동진독립영화제를 운영하는 사무국장이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문을 여는 극장을 직원들과 돌아가며 지킨다. 권정삼 대표가 육아휴직으로 자리를 비운 지금은 프로그래머 역할도 겸한다. 배급사에서 보내는 영화 소개서와 스크리너*를 검토해, 한 주에 신작 2~4편을 편성한다.
*스크리너(screener): 영화 개봉 전 배급사가 배포하는 사전 공개본
신영극장은 관객 수나 매출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독립·예술영화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김슬기 사무국장은 “상업영화에서 보기 어려운 편안한 감성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2024년 개봉한 빔 벤더스 감독의 《퍼펙트 데이즈》가 대표적이다. 작중 우직하고 야무지게 일상을 일구는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는 오랜 시간 소신을 지켜온 신영극장과 닮았다. ‘나중은 나중이고, 지금은 지금이야’라는 대사처럼, 극장에 들어선 사람들은 스크린을 마주한 현재에 오롯이 집중하게 된다.
때로는 현실을 날카롭게 직시하는 영화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1월 개봉한 이종수 감독의 《부모 바보》는 복지관에서 만난 세 인물의 시선을 따라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착취, 사회제도가 지닌 허점을 드러냈다. 4월에는 제주 4·3을 조명한 지혜원 감독의 《목소리들》, 장흥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구자환 감독의 《장흥1950: 마을로 간 전쟁》 등 국가폭력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를 연달아 걸었다. 김슬기 사무국장은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도 가끔 독립·예술영화를 올리지만, 민감한 사회 문제를 건드리는 작품은 거의 상영되지 않는다”며 신영극장이 이런 영화를 고집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개인적인 영화 취향을 묻자, 김슬기 사무국장은 멋쩍은 듯 유령을 향한 ‘덕심’을 드러냈다. 김 사무국장이 ‘최애작’으로 꼽은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의 《고스트 스토리》는 사고로 세상을 떠난 남자가 지박령이 돼 연인과 동거하던 집에 머무는 이야기다. 김 사무국장은 “영화 중간에 시공을 초월하는 연출이 흥미롭다”며 관람을 권했다.
신영을 아끼는 사람들이 있기에
김슬기 사무국장은 “좋은 영화가 관객에게 선택받지 못한 채 스크린에서 내려올 때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충무로나 남포동이 아닌 영화예술의 변방, 인구 20만 명 남짓한 소도시에서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을 운영하기란 녹록지 않은 일이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국의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은 64곳인데, 그중 43곳이 수도권(서울·인천·경기)에 몰려 있다. ‘강원도에 하나뿐인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이라는 수식어는 영화 불모지에서 꽃을 피운 신영극장의 자부심이지만, 지역 영화계의 낙후된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기도 하다.
2016년 신영극장은 재정 문제로 무기한 휴관한 적이 있다. 2015년 영진위는 신영극장을 비롯한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을 지원하던 기존 정책을 폐기하고, 위탁단체가 선정한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에만 지원금을 주겠다고 통보했다. 사실상 정부 입맛에 맞는 영화만 상영하도록 강요한 셈으로, 다양한 영화를 소개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영극장이 이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이후 정부 지원이 끊기며 임대료조차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2016년 극장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김슬기 사무국장은 “명목상 휴관이었지만, 같은 자리에 다시 돌아올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막막했던 심정을 털어놨다.

그러나 1년 뒤인 2017년, 신영극장은 극적으로 되살아났다. 강릉시가 신영극장의 공적 가치를 인정해 기초자치단체로서는 처음으로 지원을 약속한 것이다. 신영극장 재개관을 바라는 지역 여론이 최명희 당시 강릉시장의 ‘구도심 활성화’ 정책과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2017년 3월 24일, 극장은 시민과 영화인들의 축하 속에서 다시 문을 열었다. 재개관을 기념하는 첫 영화는 신영극장이 배경으로 나온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였다. 그날, 한 단골 관객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가오나시’로 분장하고 관객들에게 사탕을 나눠줬다. 김슬기 사무국장은 “신영극장이 돌아와 기쁜 마음에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라며 “관객들이 이곳을 아끼는 마음이 느껴졌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매표소에서 마주치는 관객들은 김슬기 사무국장에게 저마다 고유한 얼굴로 기억된다. 한 할아버지는 20킬로미터 떨어진 주문진에서 매일같이 찾아와 거의 모든 개봉작을 항상 같은 자리에서 챙겨 본다. ‘냉정한 시네필’인 그는 영화가 재미없으면 중간에 나가버리곤 한다. 할아버지의 반응으로 흥행 여부를 점칠 수 있는 셈이다. 상영하는 모든 다큐멘터리를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챙겨 보는 관객, 매일 저녁 방문하면서도 말 거는 걸 쑥스러워하는 ‘극내향인’ 관객, 주말마다 타지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오는 관객까지, 모두 잊을 수 없는 얼굴이고 신영극장을 지탱하는 힘이다.
신영극장에 모인 사람들은 영화를 매개로 서로 연결된다. 관객 프로그램 ‘영화소담회’는 격주에 한 번, 개봉작을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누는 소모임이다. 존엄사를 다룬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룸 넥스트 도어》를 보고 나눈 대화는 김슬기 사무국장에게 유독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중년 여성 둘, 강릉에서 ‘일주일 살기’ 중인 젊은 여성, 극장 단골 남성, 그리고 김슬기 사무국장까지 다섯 명이 둘러앉아 삶과 죽음을 이야기했다. 김슬기 사무국장은 “이곳이 아니었다면 그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일은 평생 없었을 것”이라며 영화에는 나이도, 성별도, 사는 곳도 다른 이들을 잇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내일도 신영에서 만날 수 있을까
지금 강릉씨네마떼끄는 또 한 번의 위기에 맞서고 있다. 2025년 강릉시는 신영극장 지원예산 6천만 원을 전액 삭감하고, 정동진독립영화제 지원예산도 2024년도 1억 2천만 원에서 5천만 원으로 절반 넘게 줄였다. 김슬기 사무국장은 “예산 삭감 전 강릉시와 대화할 기회도, 납득할 만한 설명도 없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강릉시는 ‘신영극장이 강릉인권영화제에 공간을 내준 것이 예산지원 목적에 어긋난다’거나, ‘팬데믹 당시 한시적으로 지원한 예산을 되돌렸을 뿐’이라는 등 일관되지 않은 설명만 반복하고 있다.
강릉시는 2024년부터 250억 원을 투입해 경포호수에 인공분수를 건설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시는 수질 개선과 관광자원 개발을 명분으로 들었지만, 사업 목적과 근거가 불분명한 탓에 8,400여 명이 반대 서명에 참여했다. 시민사회가 반대하는 토건 사업에는 수백억 원을 쏟으면서, 시민과 여행객이 즐겨 찾는 문화공간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자금줄을 끊는 모양새다. 2024년 정동진독립영화제에는 1만 4,500여 명이 방문했고, 신영극장에는 1만 200여 명이 방문했다. 강릉시 인구 약 1/20에 해당하는 수치다.
강릉시의 예산 삭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홍규 강릉시장은 취임 직후인 2023년 신영극장 지원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당시 신영극장은 운영비 마련을 위해 후원 캠페인 ‘신영극장을 부탁해’를 벌였고, 두 달 만에 4천만 원이 넘는 후원금이 모였다. 신영극장과 연이 있는 영화인들도 발 벗고 나섰다. 강릉 출신인 전여빈 배우를 비롯해 공민정·문소리·조은지 배우, 임순례 감독 등이 출연료를 받지 않고 관객과의 대화 행사에 참여했다. 독립·예술영화를 소개하는 지역 공간을 지키고자 마음을 모아준 것이다. 결국 강원도와 강릉시가 2023년 추가경정예산으로 지원금을 복원하며 고비를 넘겼다.
2년 만에 똑같은 위기가 찾아온 지금, 김슬기 사무국장은 또다시 강릉시민들에게 손을 벌리긴 미안하다고 말한다. 성인 기준 9천 원인 푯값을 올릴 생각도 없다. 신영극장은 누구나 영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하기에, 이곳을 유지하는 부담을 관객에게 전가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대신 강릉씨네마떼끄는 지금의 상황을 널리 알리는 한편, 기념품을 판매하거나 기업 후원을 받는 등 새로운 수익구조를 고민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임대료가 낮은 공간으로 이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김슬기 사무국장은 “장소를 옮기면 신영극장이라는 이름을 계속 쓰긴 어렵겠지만, 강릉씨네마떼끄의 목표와 활동은 변치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화관 대신 스트리밍 서비스가, 영화 대신 1분 남짓의 ‘숏폼’이 떠오르는 시대다. 누군가는 영화를 먹고 사는 데 쓸모없는 눈요깃거리로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김슬기 사무국장은 “영화를 보며 자신을 바꾸고 타인과 교류하는 경험은 생계를 영위하는 것만큼이나 삶에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일상(非日常), 김슬기 사무국장이 좋아하는 말이다. 영화는 ‘나’의 일상을 벗어나 ‘당신’ 또는 ‘그들’의 삶과 고통을 보게 하고, 그 경험은 타인을 이해하고 돌보는 발판이 된다. 강릉씨네마떼끄가 변화와 위기 속에서도 극장을, 극장에서 함께 영화를 보는 경험을 지키려 하는 이유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도 사과나무를 심는다. 강릉씨네마떼끄는 신영극장과 정동진독립영화제 지원예산 복원을 요구하는 2차 연대 서명을 모으고 있다. 5월에는 《퍼스트 카우》, 《쇼잉 업》을 연출한 켈리 라이카트 감독 기획전도 열린다. 김슬기 사무국장은 “강릉에 관광명소가 많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관객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며 신영극장이 의미 있는 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을 〈서울대저널〉 독자들에게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