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하는 이들 곁에 선 189호

  〈서울대저널〉은 독자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자 독자편집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독자편집위원회는 〈서울대저널〉이 발행될 때마다 평가모임을 가지며, 그 결과는 다음 호에 게재됩니다.

  2025년도 1학기 독자편집위원으로는 엄지나(사회 24), 이지유(사회교육 21), 하진성(정치학 석사과정) 씨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  널  189호 커버스토리 ‘이 땅의 모든 민주를 위하여’에 대한 평가를 부탁드린다.

엄지나  계엄 뒤에 놓인 배경을 충실하게 짚은 커버스토리였다. 커버스토리를 읽으며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살펴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정치권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할 수 있었다.

이지유 세 번째 기사인 ‘우리의 취약성이 저항의 불씨가 되도록’을 인상 깊게 읽었다. 진보정당이 광장의 목소리를 정치적 대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논지에 공감했다. 한편으로는 광장의 요구에 집중하느라 광장 밖에 있던 이들은 상대적으로 가려진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두 번째 기사 ‘차별할 자유 외치는 사이비 자유민주주의’는 극우주의를 부추기는 대립과 배제를 넘어서자고 말하는데, 정작 기사에 사용된 언어와 이미지는 극우 세력을 낙인찍는 듯했다. 배제의 정치를 넘어서는 데 오히려 역효과를 주지 않을까 우려된다.

하진성 계엄과 탄핵 이후 민주주의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할 수 있는 기획이었다. 첫 번째 기사인 ‘사유하는 군대, 비로소 완성되는 민주주의’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군 조직에서 작동하는 권력 관계는 다른 일터와 뚜렷이 구별된다. 군의 지휘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제복 입은 시민’이 어떻게 명령을 이해하고 수행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저  널 기억에 남는 기사가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엄지나 학원부 초점 ‘윤석열의 ‘후배’들, 서울대의 현재를 말하다’를 꼽고 싶다. 윤석열에게도, 박종철에게도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서울대 학생사회의 개인주의를 정확하게 지적했다. 다만 집담회에 참여한 학생들이 가진 생각이 엇비슷해 다양한 시각이 담기지는 못했다. 기사에 나온 세 사람은 서울대에 큰 소속감이 없다고 말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지유 ‘세상에 눈뜨다’ 꼭지에서 이반지하의 무대를 사진으로 기록한 ‘바이처럼 살자꾸나’를 재밌게 읽었다. 기사를 읽고 ‘바위처럼’ 뮤직비디오를 찾아 주변에 공유하기도 했다. 사진 한 장만으로 광장 문화 특유의 해학과 풍자가 전해졌다.

하진성 ‘서울대저널, 묻다’의 ‘분노를 노래하소서, 민중이여!’가 기억에 남는다. 『일리아스』를 매개로 ‘덕후’와 전공자가 광장에서 만난 이야기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슬픔과 분노라는 감정이 광장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영웅은 어떤 모습일지 등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내용임에도 재밌게 전달됐다.

저  널 189호에 대한 총평을 부탁드린다.

엄지나 특집 기사마다 다른 주제를 다루는데, 우리가 쉬이 놓칠 수 있는 이야기가 고루 담겼다. 학원부 기사에서 전체학생총회를 되돌아보는 등 학내언론의 역할도 잘 해냈다. 189호를 마무리하는 ‘기자수첩’과 ‘데스크칼럼’이 감동적이었다.

이지유 윤석열 정권과 그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각도로 살폈다. 문화부 기사에서 민중가요 등 광장에서 울려 퍼진 노래를 문화 현상의 일종으로 분석한 점도 흥미로웠다.

하진성 디자인을 바꾸고 내용을 구성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들였을 것 같다. 한 사건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한 점이 좋았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지닌 다양한 생각, 그중에서도 특히 청년 세대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예술 작품을 비평한 ‘북새통’, ‘필름통’ 꼭지도 다른 기사와 유기적으로 연결됐다.

저  널 〈서울대저널〉이 다뤘으면 하는 기사가 있다면 무엇인가.

엄지나 학부대학이 설립된 뒤 잘 운영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서울대저널〉에서 현 상황을 알리고 문제가 있다면 지적하면 좋겠다. 189호 커버스토리 기사에서 종교와 정치의 문제를 건드렸던 만큼, 종교를 둘러싼 학교 안팎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또, 탄핵 이후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할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지 꾸준히 짚어주길 바란다.

이지유 기자가 학내에서 비건으로 생활하고 그 후기를 기사로 담는 것은 어떨까.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즈음에 학내 장애인 권리를 취재해도 좋겠다. 학내에 있는 장애 학생들이 잘 가시화되지 않는 것 같다.

하진성 탄핵 국면이 일단락된 지금, 상반된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 할 때다. 소수자를 차별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배제하는 것만이 답일지, 그들과 공존할 방법은 무엇일지 등을 두고 다양한 시각을 살펴보는 건 어떨까. 바로 이 시점에 논의해야 할 화두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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