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롭고 아름다운 우리들의 대학언론

위기론 속 우리가 마주하는 대학언론의 가능성과 미래
▲〈서울대저널〉 편집실 달력
▲〈서울대저널〉 편집실 달력

  대학언론이 위기에 놓였다는 지적이 거의 30년째다. 실제로 대학언론이 처한 상황은 나날이 나빠져만 가고 지금도 많은 매체가, 기자가, 독자가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것들이 있다. 소수의 기자와 소수의 독자. 계속해서 쓰이고 계속해서 읽히는 이야기. 위기라는 말로 압축할 수 없는 희망과 성취. 확실한 위기 속에서도 어렴풋이 만져지는 대학언론의 가능성을 들여다봤다.

대학언론에 자유를

편집국 기자들은 주간, 편집위원이 통제할 대상이 아니다. 주간과 편집위원은 〈전대신문〉의 편집권과 언론 자유를 보장하고 1668호 제작 중단 통보를 철회하라.

― 대자보 ‘〈전대신문〉 주간·편집위원은 편집권과 언론 자유를 보장하고 제작 중단 통보를 철회하라’

  언론의 자유는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제1항으로 보장되지만, 많은 대학언론이 탄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현직 대학언론인으로 구성된 비영리 단체인 ‘대학언론인 네트워크(대언넷)’에 따르면, 1991년부터 2022년까지 발생한 대학언론 탄압 중 알려진 사례만 총 38건에 달한다. 구체적으로는 ▲지면 발행·배포 중단(19건) ▲기사 삭제·검열(14건) ▲기자 해임·징계(11건) ▲재정 보조 중단(5건) 등이다. 대학언론이 언론 탄압을 공식적으로 보고하거나 피해를 인정받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피해 사례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대학언론에 유독 편집권 침해가 잦은 것은 대학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적 근거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에  2024년 11월 더불어민주당 정을호 의원은 ‘대학언론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는 고등교육법을 일부 개정해 제19조의4를 신설하는 의안으로, 대학언론의 자율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정을호 의원이 대표 발의한 대학언론법 법조항 ⓒ빈채현

  대학언론법이 발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7월 윤영덕 당시 국회의원 역시 대학언론법을 발의했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임기 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이를 고려해 재발의된 대학언론법에는 윤 전 의원이 제출한 법안에 포함됐던 일부 조항이 삭제됐다. 정을호 의원은 “윤영덕 의원의 시안에서는 정부 측이 반대하는 국가 및 지자체가 재원을 지원하는 조항이 포함됐기 때문에 통과되지 못했다”며 “대학언론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우선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시급했다”고 축소 발의한 사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보수적인 접근을 취했다고 해서 법안 통과를 낙관하기는 어렵다. 정을호 의원에 따르면 2월 18일 교육부와 한국사학법인연합회는 검토 보고서를 통해 대학언론법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대학언론의 자유를 법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대학의 자율성’을 해친다는 이유에서였다. 교육부는 대학언론의 독립성을 법률로 보장하는 대신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사학법인연합회 역시 대학언론 운영을 대학 자치에 맡겨야 한다며 신중을 기하고 있다. 정 의원은 “대학언론이 대학 자율에 맡겨졌을 때, 대학 당국에 의한 언론 탄압이 반복돼 왔다”며 대학 당국이 자율성을 명분 삼아 대학언론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은 언론 자유의 본질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대학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대학언론인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이자 대학언론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대언넷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차종관 기자는 “언론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아 제대로 된 콘텐츠를 만들 환경 자체가 없는 것이 대학언론이 위기를 겪는 핵심적인 이유”라고 지적한다. 일단 ‘기록할 자유’가 보장돼야 ‘무엇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대학언론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온몸으로 분투하고, 답하고, 때로는 실패할 기회다. 이를 위해서는 일단 대학언론에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부지런한 실패자들

버겁고 귀찮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전부 상쇄하고도 훌쩍 남을 만큼 즐거웠다. 교지에서는 좋은 게 왜 좋은지 나 빼고 전부 지칠 때까지 말해도 되었다. 감탄과 비통을 가감없이 표현해도 되었다. 

한계없이 상상하고 화려하게 실패해도 되었다.
― 〈건대〉 유희영 전 편집장, 〈건대〉 ‘발화’ 편집후기

  대학언론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나면,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빈 지면을 채워나가는 과정에서 끝없는 질문과 실패가 이어진다. 대학언론인이 가장 먼저 직면하는 고민은 무엇을 어떻게 취재할지 결정하는 일이다. 건국대 교지편집위원회 〈건대〉의 유희영 전 편집장은 “세상에 문제가 얼마나 많고, 그중 지면으로 옮겨야 하는 목소리는 얼마나 많겠냐”며 “시기도 따져야 하고, 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따져야 하고, 고려해야 할 점이 매우 많았다”고 말한다. 특히, 대학생 기자는 기성언론에 비해 인터뷰나 현장 방문을 승낙받기 어렵기 때문에 선정한 소재가 취재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도 잦다. 실제로 한림대 학보사 〈한림학보〉의 안디모데 편집장은 취재원의 비협조나 정보 미제공으로 인한 어려움을 번번이 겪는다고 토로했다.

  무엇을 어떻게 취재할지 결정한 뒤에는 그 이야기를 바라보는 기자의 관점과 태도를 설정하는 과제가 뒤따른다. 고려대 교지편집위원회 〈고대문화〉의 편집위원들은 교지를 제작할 때 필자가 놓인 위치에 대해 고민한다. 원하영 편집위원은 “장애에 대한 글을 쓸 때는 내가 가진 비장애인으로서의 특권을 발견하고, 비인간에 대한 글을 쓸 때는 인간으로서 비인간을 착취하면서 살고 있음을 자각하다 보니 내 글이 기만적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대상을 시혜적으로 바라보며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는 우려를 표했다. 엄정후 편집위원은 “내가 가진 특권과, 특권을 해체하고자 하는 나의 글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고민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대학언론의 독자가 점점 부족해지는 탓에, 기사가 발간된 이후에도 기자들의 고민은 이어진다. 많은 대학언론인이 자신이 겪은 실패의 순간으로 발간물이 읽히지 않는다고 느꼈던 때를 꼽는다. 이화여대 학보사 〈이대학보〉의 김아름빛 전 편집장은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아무도 안 본다고 느껴졌을 때 가장 힘들었다”며 “정말 중요한 기사라고 생각해서 공들여서 쓰고 1면 가장 위에 올린 기사의 조회수가 거의 안 나올 때 ‘누가 도대체 우리 기사를 보기나 할까’ 싶은 허무감이 몰려왔다”고 회고한다.

  독자가 줄어드는 데서 비롯되는 어려움은 대학사회의 탈정치화와 맞물리면서 심화되고 있다. 학생정치에 대한 대학생의 관심이 급격히 수그러들면서 독자층이 더욱 불명확해졌기 때문이다. 동덕여대 교지 〈목화〉의 최예인 편집장은 “정치적인 것을 금기시하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교지가 “어떤 길을 택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대문화〉의 엄정후 편집위원 역시 “학생사회가 무너지고 학생들이 공유하는 공통된 담론이 실종되면서 내 위치를 파악하는 일이 어려워졌다”며, “나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사회로 뻗어 나가는 글을 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대학언론은 소재와 전달 방식, 독자와의 관계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취재의 전 과정에서 반복되는 실패를 마주한다. 그러나, 이들이 경험하는 각종 어려움이 대학언론을 위축시키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를 둘러싸고 대학언론 내부에서 이뤄지는 치열한 고민이 역설적으로 각 언론의 정체성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어려움을 붙들고 늘어지며 때로는 실패해 본 경험은 대학언론인에게 수련과 성장의 과정이 된다. 대학언론의 실패에 깃든 능동성을 함께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대부분의 대학언론은 소재와 취재 방법을 결정하는 기획회의를 몇 차례에 걸쳐 진행하면서 각 언론만의 문제의식과 보도 방향성을 정립해 나간다. 유희영 전 편집장은 “4주간의 기획회의 동안 교지의 위치와 역할을 고민하면서 이 기사가 필요한 이유와 기사가 하필 〈건대〉에 실려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했다”고 설명한다. 기획회의에서 이뤄지는 자기 성찰과 토의는 특정 기사가 지금 자신들의 매체에서 다뤄져야 하는 이유가 보다 선명해지도록 돕는다.

▲〈건대〉 기획회의 장면 ⓒ유희영

  대학언론은 기자가 취한 위치와 관점이 타당했는지 사후에 비평하고 반성하는 절차를 함께 마련하고 있다. 〈고대문화〉는 학기 말에 교지에 수록된 글을 함께 검토하는 행사인 ‘체제 개편’을 진행한다. 최은희 편집장은 “체제 개편으로 지난 호의 전반적인 완성도를 검토하고 글에 대한 평가를 나눈다”며 “지나간 한 학기를 돌아보고 다음 체제를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건대〉 역시 수습 위원 모집을 마친 뒤 진행되는 ‘트레이닝 기간’ 동안 직전 호를 함께 비평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러한 시간을 거쳐 각 대학언론의 고유한 위치가 만들어진다.

  대학언론은 독자층을 분석하고 확장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김아름빛 전 편집장은 “기사를 많이 읽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독자 대상으로 크게 설문조사를 했었다”며 이를 통해 독자들이 어떤 기사를 좋아하는지 파악하고 지면 구성이나 디자인을 바꿔봤다고 설명했다. 마케팅 측면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김 전 편집장에 따르면 〈이대학보〉는 디지털 콘텐츠 마케터부를 따로 두고 뉴스레터를 발간하거나 인터랙티브 웹*을 제작하는 등 독자와 연결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인터랙티브 웹(interactive web): 사용자가 내부 콘텐츠와 클릭, 스크롤, 입력 등으로 상호작용 가능한 웹페이지

실패를 통과한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쉴 새 없이 넘어지더라도, 나는 우리가 시대의 방황에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는 교지가 그런 답장을 써낼 수 있는 훌륭한 터전이자 따뜻한 둥지라고 생각했습니다. ― 〈목화〉 최예인 편집장, 〈목화〉 ‘날’ 편집후기

  실패를 성실히 통과하며 대학언론은 기성언론과는 구별되는 자신만의 역할과 가능성을 발견한다. 당사자성에 기반을 둔 독자적인 시선으로 기성언론에서는 발견하지 못한 문제에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안디모데 편집장은 “한림대는 학교 구성원이 약 1만 명인 작은 사회”라며 “기성언론에서 이런 작은 사회에 관심을 두기는 상당히 어렵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한림학보〉는 학내에서 전개되는 사건과 대학 본부의 입장, 재학생 내부 논의 등을 학생사회에 전달하고 기록하는 거의 유일한 언론 기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여자대학의 언론이 청년 여성의 관점에서 기사를 발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최예인 편집장은 “대학생으로서, 그중에서도 여자대학에 다니는 학생으로서 특정 문제를 바라본다”며, 여성이 겪는 현실을 고발하는 것이 〈목화〉의 주요 가치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목화〉는 교지 코너를 ▲학내 ▲사회 ▲문화 ▲여성으로 구분해 여성 의제를 필수적으로 다루고 있다. 최 편집장에 따르면 “정치적인 것만큼이나 여성들의 이야기가 금기시되는 시대”에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여자대학의 언론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대학언론은 기성언론에서는 짚지 못했던 문제들에 주목하면서 괄목할 성과를 내기도 한다. 김아름빛 전 편집장은 전입신고를 하지 못해 발생하는 청년 주거 문제를 다룬 기사로 2023년 〈시사IN〉 대학기자상 대상을 수상했다. “정말 ‘맨땅에 헤딩’을 하는 기분으로 취재를 시작했다”고 말문을 연 김 전 편집장은 “전입신고가 안 되는 집이 얼마나 있는지, 이로 인해 어느 정도의 피해가 존재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학교 근처 반경 몇 킬로미터를 하나하나 살펴봤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박종현 한국기자협회 회장은 해당 기사에 대해 ‘기성언론은 전입신고를 하지 못함으로써 나타나는 부정적 현상까지는 짚지 못했다’며 ‘〈이대학보〉의 보도는 대학언론의 존재 이유를 웅변한 수작’이라는 심사평을 남겼다.

  한편, 대학언론은 기성언론의 저널리즘 윤리와 규칙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비틀거나 변형함으로써 차별점을 획득하기도 한다. 한국기자협회는 언론윤리헌장에서 ‘특정 집단, 세력, 견해에 치우치지 않고 공평무사한 자세로 보도’하는 것을 윤리적 언론의 조건으로 제시한다. 객관성과 중립성을 핵심적인 저널리즘 윤리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생 기자는 기계적인 중립성을 지키는 대신 오히려 의도적인 편향성을 견지하기도 한다. 최예인 편집장은 스스로를 객관적 서술자로 위치시키기보다는 사회와 적극적으로 얽혀 있는 “시대적인 존재”로 인식하며 글을 쓴다. 중립을 지키라는 요구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학생 기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용감하고 실험적인 글쓰기다. 유희영 전 편집장은 “대학생이니까 자신이 연대하고 싶은 이야기, 쉽게 주목받지 못하는 이야기를 선택해서 조명할 수 있다”며 “그런 능력이 있으면 반드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12.3 내란 이후 〈고대문화〉에서 발행한 호외 ⓒ최은희

  한편 이러한 시간을 통과하며 대학언론인 개인의 삶에도 변화가 생긴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는 개인적인 삶의 경험을 정치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게 된다는 점이다. 유희영 전 편집장은 글을 쓰면서 투쟁과 저항의 가치를 배웠고, 최은희 편집장은 기록해야 하는 정치적 순간에 대한 ‘감’을 갖게 됐다. 최 편집장은 “〈고대문화〉에 들어온 후로 ‘그래도 이건 써야 하지 않겠나’하는 순간이 많아졌다”며 이것이 〈고대문화〉가 윤석열 파면을 촉구하는 대자보를 작성하고 호외 발간을 결정한 배경으로 작동했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대학언론인이 스스로를 ‘정치적 존재’로 의미화하는 과정에서 대학언론의 문제 의식과 실천도 더욱 뾰족하게 다듬어진다. 

  자신의 삶 너머를 자연스럽게 상상하는 능력이 생겨난다는 점 역시 실패의 시간을 견뎌낸 대학언론인의 삶에 나타나는 변화다. 원하영 편집위원은 〈고대문화〉를 통해 “고립감에서 벗어나고 타자와 내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피부로 체감하게 됐다”고 밝힌다. 이러한 경험은 자연스럽게 이후에 이어지는 기획에도 녹아든다. 유희영 전 편집장에 따르면 2025년 3월 〈건대〉에서 발간한 교지 ‘발화’의 목표는 “발화하거나 말할 자유가 없는 사람들 혹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었다. 그동안 쉽게 울리지 못했던 타자들의 이야기를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기획이다.

우리는 책을 낼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 책이 나오기까지 애쓰신 

모든 노동자분께 감사드립니다. ― 〈고대문화〉

  대학언론에서 글을 쓴다는 것, 거듭되는 실패를 봉합하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제 선정부터 취재, 발간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막대한 시간과 노력이 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기록물조차 주목받지 못한 채 조용히 사라지기 일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학언론이 여전히 진지한 고민을 이어가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대학언론인을 붙드는 것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이다. 최은희 편집장은 “〈고대문화〉에 들어온 이후에 의무감과 책임감이 생겼다”며 “나중에 조금이라도 떳떳하기 위해서 집회도 나가고 자보도 붙인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대학언론인은 글을 쓰는 이가 수행해야 할 정치적·사회적 역할을 자각하며 책임감을 갖게 된다. 원하영 편집위원 역시 자신이 쓰는 글에 개인적 글쓰기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 원 편집위원은 “내가 할 수 있는 사회운동의 한 가지 방식으로서 글쓰기를 선택한 것”이라며 그렇기에 “읽는 사람에게 뭔가를 남겨야 한다는 간절함이 있다”고 부연했다.

  기사를 내기 위해 필요한 물리적·사회적 조건이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깨달음은 책임감을 강화한다. 엄정후 편집위원은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는 권리와 환경이 자신에게 특권적으로 주어졌다는 사실의 무게를 깊이 체감한다. 엄 편집위원은 “최근에 내가 글을 쓸 수 있도록 해준 물적 토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며 그로 인해 “글 한 편을 쓸 때도 이것이 실리고 읽혀야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고 전했다.

  대학언론인의 책임감을 만들어내는 요소로서 취재원과 독자의 존재도 빼놓을 수 없다. 기사는 취재원이 제공한 시간과 경험에 빚져 만들어지며, 독자의 존재 덕분에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아름빛 전 편집장은 활동 당시 만났던 취재원과 독자들을 특별한 의미로 뚜렷하게 기억한다. 김 전 편집장은 SPC 공장을 취재할 당시 만났던 노조 측 취재원에 대해 “밤까지 근무하신 뒤에 인터뷰를 하고 다음 날 출근을 하시는 바쁜 일정임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자신을 믿고 대가 없이 시간을 내어준 취재원에게 느끼는 책임감은 대학언론인의 활동에 큰 동력으로 작용한다.

  자신이 기록하는 이야기가 무의미하지 않다는 깨달음도 중요하다. 김아름빛 전 편집장은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취소될 위기에 놓였을 때 진행한 취재에서 “퀴어 당사자인 학내 구성원이 고맙다고 말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대학언론과의 만남에서 발생하는 취재원과 독자의 존재론적 변화는 대학언론의 시간이 무용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강력한 증거다. 그래서 안디모데 편집장은 “대학언론은 그 무엇보다도 취재원과 독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

  한편, 대학언론이라는 공동체에서 경험하는 서로에 대한 지지와 돌봄이 대학언론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도 한다. 원하영 편집위원은 “〈고대문화〉를 통해 혼자 했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들을 해낼 수 있었다”며 편집위원들과 참여한 집회, 함께 공부하고 글을 쓴 경험들을 떠올렸다. 대학언론 활동은 각자의 작업을 수행하는 과정으로 보이기 쉽지만 실제로는 함께 실패에 부딪히고 문제를 해결하면서 공동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다. 최예인 편집장 역시 “기민하고 사려 깊은 여성들과 인연을 맺고 함께 글을 쓰는 것은 삶에 두 번은 없을 행운”이라며 공동체로서 대학언론이 갖는 의미를 짚었다.

  대학언론의 시간은 결국 끊임없이 타자와 마주치고 이들의 구체적인 얼굴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대학언론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이유도 이곳에 있다. 대학언론은 취재원, 독자, 인쇄 노동자, 대학언론 동료, 타 대학 언론인 등 한 편의 발간물을 둘러싸고 마주한 존재들의 힘으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대학언론이 생명력을 이어가기 위해 중요한 것은 결국 타자와 연결되는 경험이다. 대학언론을 경유해 만들어지는 이러한 연결이 끊이지 않는 한, 우리는 책을 낼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대학언론과 대학언론인은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고 더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한 매일의 구체적인 실천으로 계속해서 새롭게 태어난다. 그러므로 대학언론에게 실패는 좌절과 괴로움의 순간이기도 하지만, 변화와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미래의 씨앗이기도 하다. 대학언론은 미완의 공간, 대학언론인은 미완의 존재로서 앞으로도 커다란 실패와 저마다의 분투, 얼마간의 성공과 존재론적 변화를 거듭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 속에서 우리는 대학언론의 위태로움과 아름다움을 함께 목격하게 될 것이다.

▲대학언론을 지켜온 사람들.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전대신문〉, 〈건대〉, 〈이대학보〉, 〈고대문화〉, 〈한림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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