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와 사진으로 가득 찬 지면 뒤에 단어를 고르고 셔터를 누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서울대저널〉은 학부생 기자와 PD, 디자이너까지 총 13명이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대학언론인의 삶은 대개 고달픕니다. 이들에게 주어진 일이 비단 기사 작성이나 다큐멘터리 제작 뿐 아니라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조별 과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요. 저널은 따로 활동비가 지원되지 않기에 이들은 때론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가며 취재를 다닙니다. 매끈한 표지 뒤에 마감과 시험이 겹치면 밤새우는 일은 예사인, 카페인을 들이부으며 한 글자라도 더 써내려고 분투하는 ‘저널러’들이 있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걸까요. 위태로운 대학언론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버텨온 이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30주년을 맞아 독자님들이 주신 질문에 현역 저널러들이 답변합니다.
1. 한 편의 기사가 나오기까지
SJ 기사 소재는 보통 어떻게 선정하나.
시윤 타 언론사의 기사를 읽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된다. 그 기사가 특정한 사안의 어떤 지점을 짚었는지 살펴보면, 분명 그 사안을 다른 시각에서 조명할 여지가 보인다. 그 지점을 깊이 파다 보면 좋은 소재가 나온다.
효원 친구들과 대화하며 발견하는 소재들이 있다. 이것들을 평소 가지고 있었던 문제의식과 결합하면 일상과 밀접하게 엮인 소재가 나오는 것 같다.
태현 예전에는 타 언론사 기사를 많이 봤다. 요즘은 내 주변의 존재들, 내가 사는 지역, 내가 접촉하는 공간 등 기성언론을 거치지 않은 소재를 찾으려고 노력 중이다.
SJ 기사 작성에 시간이 어느 정도 소요되나.
선우 문단의 첫 문장을 작성하는 데만 1시간 이상 쓴다.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문장이 나오기 전까지는 본문에 손을 못 대기 때문에, 아무리 빨라도 초고 작성에 2~3일을 할애한다.
원민 준비하는 기간 내내 기사가 작성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실제로 책상 앞에 앉아 기사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유의미한 글을 쓰는 건 하루 정도다. 대부분은 글의 시작이나 연결이 힘들어 고통에 차 공연히 보내는 시간이다.
정원 한글 파일을 켜서 초고를 쓰는 시간만 따지면 24시간보단 적지 않을까···. 괴로워하는 시간이 2배 이상인 것 같다. 또 저널 기사는 담당 기자 한 명이 쓰는 것이 아니라 약 일주일 동안 데스킹을 여러 번 거친다. 데스크와 원고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꽤 많은 부분을 다시 쓰기도 하고, 시간을 두고 내가 쓴 원고를 읽으며 스스로 고치기도 한다. 그렇게 치면 일주일 넘게 기사를 쓴다고 봐야 할 것이다.
SJ 기사 작성 및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서 유의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서윤 담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을 때, 오히려 문장을 고르고 쳐내는 과정에 유의하게 된다. 무작정 자료를 읽고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시작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이야기가 너무 커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겨냥하는 바가 있는 글로서 독자에게 가닿길 바라며, 부차적인 것을 다듬는 과정에 힘을 쏟는다. 이때 생략되는 이야기도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글을 전환하는 동력이 되거나 다음 문단을 쓸 힘을 준다. 이를 잊지 않고 신중하게 문장을 골라서 다큐멘터리 역시 완성하려 한다.
SJ 좋아하는 코너와 그 이유를 소개해 달라.
수환 ‘기자가 뛰어든 세상’. 기자의 체험을 담는 코너로, 패기와 도전정신이 엿보인다. 기사 뒤에 있는 기자의 얼굴을 알기 때문에 더 재밌는 것 같다. 즐거워하고 괴로워하는 표정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시윤 ‘기억은 권력이다’. 과거에 일어난 일을 다시금 조명하는 코너다. 과거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은 오늘날 또 다른 형태로 반복된다. 이때 기억은 현재를 살리고자 하는 과거의 강인한 의지로 발현된다. 이 코너가 무척 소중한 이유다.
세민 ‘묻다’와 ‘우리가 만난 사람’. 인터뷰 코너가 좋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것만으로도 내가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된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세상엔 중요한 이야기가 넘쳐나고, 우리는 번번이 너무 많은 걸 놓치고 산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전부일 수 있는 이야기를 지면에 한가득 써서 담아내고 싶다. 활자로 포획하기에 너무 거대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들과 함께 살아갈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인터뷰에서 도리어 힘을 얻고 오는 이유다.
원민 ‘기자수첩’과 ‘데스크칼럼’, ‘편집실에서’를 좋아한다. 기사에선 덜어내야 했던, 그렇지만 기자의 삶에선 어쩌면 가장 중요했을 장면이 거기서 어느 정도 보인다. 바쁘게 뛰어다니는 동료들의 모습이 괜히 글에 비치는 듯해 애틋해진다.
태현 어떻게 보면 ‘메타-기사’인 ‘비하인드저널’. 저널에서 오래 활동하며 기자도 활동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다면 여러 활동가의 행적을 기사에 담는 기자들의 이야기, 즉 기자들의 고민과 경험과 소회를 풀어놓는 코너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SJ 본인이 쓰고 만족한 기사가 있나. 혹은 잘 썼다고 생각하는 동료의 기사를 추천해 달라.
인표 187호의 한강 특집 미련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187호 초고 작성 기간 무렵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는데, 당시 편집장 현서와 문화부장 다빈이 발빠르게 추진한 덕에 가능했던 지면이다. 저널 문화부 코너는 전문성보다도 작품 및 작가를 향한 지극한 사랑으로 이뤄진다. 쭈뼛거리면서도, 고유한 마음으로, 저널러들의 언어로 한강을 호명할 수 있었다. ‘특집 미련’이란 코너가 만들어진 것도 뜻깊었다. 미련이라는 코너 자체도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특집 미련처럼 기자들의 마음에 따라 기사를 담아낼 새로운 형식이 계속 만들어지는 게 좋다. 이 30주년 지면도 그런 형식일 것이다.
태현 기자마다 작성하는 기사의 스타일이 다 너무 달라서 재미있다. 예를 들면 세민의 기사는 취재 대상을 향한 다양한 시선과 따뜻함이 잘 드러나고, 수환의 기사는 직선적이고 비판적인 논조로 특정 대상을 분석한다. 시윤과 같이 관심 주제를 지속적으로 다루는 경우도 있다. 기사를 읽을 때 어떤 기자가 썼는지 확인하고 이들의 시선을 느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2. 저널을 사랑하기, 저널러로 살아가기
SJ 기억에 남는 취재 혹은 저널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나.
수림 기획회의에 처음으로 참여한 날, 저널러들의 눈빛이 너무 반짝이고 그걸 지켜보는 내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서 학교를 세 바퀴 정도 빙빙 돌다가 기숙사에 들어갔다. 나만의 수줍은 비밀이(었)다.
수환 민주주의 특집으로 발간된 189호를 광화문광장에서 배포하던 날, 시민 몇몇이 다가와 ‘서울대 저널’인지 ‘서울 대(大)저널’인지 묻던 것이 떠오른다. 우리 이름을 더 열심히 알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세민 서울시교육청 앞 집회에서 지혜복 선생님을 처음 뵌 날이 기억에 남는다. 선생님께서 내 손을 감싸시며 날이 너무 추운데 와줘서 고맙다고 거듭 말씀하셨다. 또 동덕여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건국대 한국어 교원지부의 천막농성 발대식에서, 나는 카메라를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크게 환대받았다. 언론에 보도될 기회는 모든 곳에 균등하지 않다. 취재요청서 몇십 개를 보내도 기자 하나 없는 현장이 있다. 주로 이런 곳에서 만난 얼굴들이 오래 기억에 남아 이들의 근황을 계속 찾아보곤 한다. 체력과 시간은 한정돼 있기에 기왕이면 사라지기 쉬운 목소리들 곁에 있고 싶다. 누군가 어렵게 풀어낸 이야기가 현장에 모인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걸 넘어 활자의 형태로 더 많은 이에게 가닿길 바란다. 그렇게 나아간 글이 또 다른 이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SJ ‘저널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 적 있나. 어떤 순간에 그렇게 느꼈나.
시윤 본격적으로 작성하기 전, 모든 기자가 모여 기사 계획을 발제하는 기획회의를 진행한다. 이때 오가는 피드백이 하나같이 신선하고 날카롭고, 또 소중하다. 저널러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하지 않았을 수많은 생각의 원천이 된다. 이런 경이로움을 느낄 때마다 저널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태현 혼자 생각하고, 고민하고, 경험하는 것보다 말도 안 되게 많은 것을 사유하고, 공유하고, 배우고, 공감할 수 있다. 함께하는 저널러들의 깊고 넓게 멀리, 또 가까이 보는 눈과 듣는 귀를 빌려 세상을 마주할 수 있어 너무 좋다.
세민 저널러들과 함께하는 매 순간 그렇게 느낀다. 알지 못하는 세계를 이리도 섬세하고 신중하게, 그러나 비판 의식을 놓지 않고 다가가려는 사람들을 계속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세상은 왜 이 모양인가 싶다가도 잘 수선해서 어떻게든 살 것이라 다짐하게 된다. 비관하기 쉬운 세상에서 굳이 몸과 마음을 써가며 어려운 낙관을 택하는 이들이 이곳에 있다. 그리고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새로운 우정을 다진 모든 시간을 크게 아낀다. 모두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현장에 나가면 그 애타는 마음이 너무 절절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자신의 가장 큰 용기와 사랑을 꺼내는 순간을 기록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당신들의 이야기가 너무 중요하다고, 마음 깊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매번 그렇게 말할 수 없으니 열심히 사진을 찍고 녹음 버튼을 누른다.
수림 세민과 마찬가지로 정말 모든 순간에 그렇게 느낀다. 저널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상할 정도로 이 공간에 대한 사랑이 커져서 조금 어색하다. 자꾸 이곳을 아끼게 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풀리지 않는 매듭을 붙잡고 한참을 늘어져도 서로를 책망하지 않아서 좋다. 밖에 나가면 세상에서 가장 덜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는 이야기들이 이곳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라서 좋고, 진지한 눈빛과 천진난만한 웃음이 함께 있어서 좋다. 또 저널의 이름과 저널러들이 쌓아온 신뢰를 빌려 요청한 인터뷰에서 말도 안 되게 귀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편집실에 간식이 많은 것 역시 좋다···.
SJ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나 취재 현장이 있나.
세민 ‘예술계 미투’ 이후 생존자와 연대자가 함께 만든 창작집단, ‘상여자의 착지술’을 인터뷰한 게 기억에 남는다. 녹취록을 정리하며 정말 많이 울었다. 살아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하여 자기가 속한 세계를 기꺼이 바꿔내겠다고,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가진 이들이 쓰러지게 놔두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들의 이야기를 무척이나 아낀다. 이 사회에 만연한 젠더폭력을 끝내기 위해선 기적이 아니라 아주 긴 시간과 고민이 필요하다고, 그러니 밥을 잘 먹고 잠을 잘 자야 한다는 단단한 위로가 어떤 과정을 거쳐 나왔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창문 사이로 가느다란 빛이 들어오던 연습실에서 주거니 받거니 말을 이어가던 그들의 얼굴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수환 2024년 12월 21일 남태령이 기억에 남는다. 부끄럽지만 남태령을 겪기 전 윤석열 퇴진 투쟁을 바라보는 내 태도는 다소 냉소적이었다. 박근혜가 물러난 뒤에도 우리네 삶이 제자리였듯, 이번에도 탄핵과 정권 교체 이상으로 나아가지는 못하리라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트랙터 위에 올라 각기 다른 삶의 요구를 말하는 사람들은, 이미 파면 너머 모두의 존엄과 평등이 회복되는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생각이 오만했음을 깨달았다.
3. 우리가 끝끝내 이곳에 남은 이유는
SJ 학부생 기자·PD로 활동하며 학업과 저널 활동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가 힘들지는 않나.
원민 힘들다. 기사에 꼭 필요한 인터뷰가 잡히면 거리낌없이 수업에 늦거나 빠지고, 과제를 제때 내지 못하기도 한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어려움 외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받아들일 여유를 늘 갖춰야 한다는 게 가끔 벅찰 때도 있다. 그래서 어려운 기사를 쓸 때마다 세상 힘든 일은 다 내가 떠맡고 있는 것처럼 하소연한다. 그렇지만 내가 쓴 글이 멋진 동료들의 멋진 기사들과 함께 실린 게 너무 좋아서 계속하고 싶어진다. 알릴 만한 이야기를 만났다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계속하게 된다. 학생기자라는 신분을 갖고서만 만날 수 있는 현장과 사람과 기회가 기꺼이 밤을 새우고 가쁘게 숨을 쉬게 만든다.
선우 학기 중에는 매주 기획회의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재 선정, 기사계획서 작성, 회의, 취재, 자료조사 등 정말 많은 일을 동시에 하다 보니 학업과 저널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 결코 순탄치 않다. 그럼에도 둘 다 내 삶에서 중요하기에, 며칠 밤을 새우는 한이 있더라도 둘 모두를 잡으려 애쓰고 있다. 저널러들 앞에 떳떳하고 싶다는 마음에 더 달리는 것 같기도 하다. 늘 균형을 맞춰나가며 자기 자리에서 제 몫을 해내고 있는 동료들에게 존경을 보낸다.
SJ 저널을 하면서 후회하는 점이나 힘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정원 초고를 작성할 때가 되면 때로 이 기사를 쓰고 싶었던 ‘초심’이 옅어져 있을 때가 많다. 이것은 ‘워라밸(일과 휴식 사이의 균형)’에서 기인한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저널 활동을 시작한 것에 대한 후회는 아니지만, 기사를 준비하고 쓰는 과정에서는 늘 크고 작은 후회가 남는다. 조금의 후회도 묻지 않은 결과물을 낼 수는 없다는 것을 알지만, 부끄러운 기사를 내는 일에 여전히 익숙해지지 못한 것 같다···.
시윤 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는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한다. 기사를 작성하려면 밝고 화려한 무언가를 보고 감탄하다가도 그 이면에 드리운 그림자를 봐야 할 때가 많다. 특히나 그 대상이 평소 좋아했던 것이라면, 호감을 거두고 실망하게 된다. 때때로 그런 일이 괴롭다.
SJ 저널에 들어온 후, 바뀐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수환 저널 기자들은 교열기자 역할을 겸한다. 그러다 보니 글을 읽고 쓸 때 띄어쓰기나 문장부호를 과민하게 살피는 ‘직업병’이 생겼다. 특히 다른 이가 쓴 글에서 화살괄호(〈〉)를 쓸 자리에 부등호(<>)를 쓴 걸 보면 마음이 괜스레 불편해지곤 한다.
인표 이메일을 이렇게나 많이 쓰게 된 게 신기하다. 이전에는 문서를 ‘내게 쓰기’로 보낼 때만 이메일을 사용했다. 그런데 지금은 인터뷰를 요청하거나 저널 공식 메일로 오는 문의에 답변하는 등 여러 순간에 이메일을 작성한다. 더 넓게 생각하면 내가 할 말을 담아내는 새로운 방법과 매체를 기사부터 인스타그램 문안, 뉴스레터 등 정말 많이 알게 됐다. 이것들이 기존에 내게 익숙했던 말들과 서로 맞물리면서 영향을 주고받는 게 너무 신기하다.
원민 고정지면을 갖는 경험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꿔놨다. 처음 면접을 볼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할 말이 많아질 줄은 몰랐다. 판을 깔아주니 계속 글이 써지고, 쓰고 싶고, 써야 한다고까지 느낀다. 자신을 찾아올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가 어딘가에 있다는 믿음을 갖고, 그게 진짜든 아니든 거기에 힘입어 좋은 이야기를 찾아다니게 됐다.
수림 저널은 나이에 관계없이 서로를 이름으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수림은 어떻게 생각해?” 이런 식이다. 이게 금세 습관이 됐는지 저널이 아닌 조직에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께 호칭을 빼먹을 뻔한 적이 많다. 어쩌면 빼먹었을지도 모른다. 혹시나 그랬다면 저의 무례함에 사과드린다···.
SJ 기사를 쓰거나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무엇인가.
원민 예상했던 것과 다른 곳에 도달하면 도달한 대로 충실히 옮기는 것이 기자의 윤리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의도 안에 대상을 구겨 넣지 않는 자세, 또 글쓰기를 주저하게 했던 순간을 끝까지 풀어내려는 마음이 좋은 글을 쓰게 한다고 믿는다.
세민 말보다 더 큰 삶, 언어로 포획할 수 없는 순간, 그리하여 지면에 고스란히 녹아들지 않는 장면들이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 기자로 활동하며 도리어 기사로 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 자주 생각했다. 기사만 써서는 차별금지법을 만들 수도 없고, 특별법이 거부당해 낙심한 유가족의 눈물을 닦아줄 수도 없다.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가 땅을 디딜 수 있게 할 수도, 살처분 직전에 놓인 동물을 구해낼 수도 없다. 기사로 이들의 소망과 좌절과 슬픔을 조금이나마 전할 수 있을지언정 그건 현실의 백만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물론 기사를 써서 바꿀 수 있는 세상이 있다고 믿는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지면을 얻어 새로운 이들을 마주하고, 이제껏 몰랐던 이야기를 알게 된 이의 삶이 얼마간 변할 수 있다고 줄곧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 세상이 얼마나 일부인지를, 기사 밖에서 기자 아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종종 생각한다. 저널에 들어온 건 최고로 훌륭한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보다 나은 세상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카메라를 들기보다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거나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는 게 더 나은 현장도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걸 지면에 옮기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의 전부이지 않길, 그저 하나의 선택지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