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10일, ‘성평등 정치로 가는 페미니스트 공동행동(공동행동)’ 주최로 ‘성평등 정치 요구하는 페미니스트 대행진’이 진행됐다. 용산 대통령실에 집결한 참가자들은 서울역을 지나 광화문으로 향했다. 공동행동 측은 ‘우리는 윤석열 파면을 위해 빛의 광장에 모여 성평등과 인권의 가치를 함께 외쳤다’며, 성평등을 지우지 않는 대선을 요구하고자 행사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여성폭력 희생자들을 기리는 ‘1,872개의 멈춘 발걸음’ 퍼포먼스로 행진이 시작됐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발표한 ‘분노의 게이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181명이다. 이는 언론에 보도된 최소한의 수치로,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여성이 죽었을 것이다. 범행 이유는 ‘홧김에, 싸우다가 우발적으로’(23.85%)가 가장 높았고, ‘이혼·결별을 요구하거나 재결합·만남을 거부해서’(20.92%)가 뒤를 이었다. 경찰에 신고하고 피해자 보호 조치를 취했음에도 살해당한 이는 전체의 17.5%에 달했다. 이는 피해 여성이 적극적으로 움직여도 범행을 피할 수 없었음을 보여준다. 참가자들은 희생자들을 기억하고자 짧은 묵념을 한 후, “여성폭력 방관 마라 광장의 명령이다”를 외치며 발걸음을 뗐다.

참가자들은 윤석열 정권의 혐오 정치를 규탄하고 성평등 공약을 요구하며 행진을 이어갔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하고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한 윤석열 정권 아래서 민주주의와 성평등은 후퇴했다. 여성가족부가 매년 공개하는 국가성평등지수는 이를 수치로 증명한다. 4월 17일 발표된 2023년 국가 성평등지수는 전년보다 0.8점 하락했다. ‘양성평등 의식’ 영역의 점수가 대폭 낮아졌을 뿐 아니라 ‘의사결정’과 ‘돌봄’ 영역 점수 역시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는 집계를 시작한 2010년 이후 처음으로 나타난 하락세다. 여성을 지우는 정치에 힘입어 권력을 얻은 윤석열 정권 이후 새롭게 도래할 세상은 달라야 한다며, 참가자들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성폭력에 대한 국가 공식 통계 신설 ▲피해자 보호를 위한 가정폭력법 개정 ▲직장 내 성희롱 가해자 처벌 등을 외쳤다.



주최 측은 종로문화원에 도착해 마무리 집회와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여성 시각예술인 네트워크 ‘루이즈더우먼’이 준비한 피켓을 함께 꾸몄다. 대행진의 취지를 설명하고자 한국여성단체연합 김민문정 상임대표가 발언대에 올랐다. 김민 대표는 “빛의 혁명이 만든 시대의 요구는 성평등 민주주의”라며, “오늘 우리는 차별과 혐오 정치의 상징인 용산 시대를 밟고 성평등 정치의 상징인 광화문으로 걸어온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김민 대표는 “대선 동안 ‘내 삶을 바꾸는 성평등 한 표 캠페인’을 진행할 것”이라며 행진 참가자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다음으론 윤석열 정부가 자행한 혐오 정치를 규탄하는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성차별 부정하는 대통령을 파면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뽑고 싶다”는 구호를 외치며 ‘퀴어 혐오’, ‘트젠(트랜스젠더) 혐오’, ‘유리천장’ 등이 적힌 검은 현수막을 찢었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포항여성회 방정임 사무국장은 지난 겨울 정치권이 “응원봉을 들고 집회를 주도한 광장의 2030 여성을 칭송”했지만, “선거의 시간에 여성은 보이지 않고 이준석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우며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를 정치적 자양분으로 활용”하며 순식간에 태도를 바꿨다고 규탄했다. 방 사무국장은 “우리 페미니스트들은 빼앗길 뻔한 우리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 누구도 배제되거나 소외되지 않는 사회대개혁을 열망했다”며, “새롭게 선출된 대통령은 응원봉 광장의 주역이 여성임을 기억하고 성평등을 진전시키기 위한 노력과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한다”고 목소리 냈다. 참가자들은 “여성의 경험이 정치의 가장 깊은 뿌리”라는 구호로 화답했다.

이어 성평등 정치로 나아가자는 결의를 담은 선언문 낭독이 진행됐다. 자신들을 “윤석열을 파면시킨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한 이들은 “빛의 혁명이라 불리던 윤석열 퇴진 광장은 무수히 많은 페미니스트가 함께 만들어낸 장”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성명문에서 ▲젠더 폭력 없는 성평등 세상 실현 ▲성별 임금 격차 해소한 평등한 일터 ▲성평등 함구령 해제를 통한 차별과 혐오 정치 청산 등을 요구했다. 낭독이 끝나자 참가자들은 다 같이 “성평등 정치를 실현할 대통령을 요구한다”며 페미니스트의 요구에 응답하라고 목소리 높였다. 이어 행진 대열 뒤쪽에서 은박 깃발을 든 기수들이 차례로 입장했다. 남태령과 광화문을 비롯한 연대 현장에서 나타난 빛의 광장을 상징하는 퍼포먼스였다. 깃발을 휘두르는 기수들에 맞춰 참가자들이 은박 돗자리를 머리 위로 흔들었다. 더 이상 지워질 수 없다는 이들의 굳센 목소리가 세차게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길가를 메웠다.

이하 선언문 전문.
“차별과 혐오선동 정치에서 성평등 정치로!” 선언문
우리는 윤석열을 파면시킨 페미니스트들이다. 우리는 광장을 지켜낸 응원봉과 깃발을 든 시민들이다. 우리는 지역을 소외시켰던 윤석열 정부에 대항해 삶의 터전과 운동을 연결하며, 분노하고 행동한 풀뿌리 페미니스트들이다. 우리는 조기대선을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우리는 성평등 정치를 말하는 대통령 후보를 뽑을 주권자들이다.
제21대 대통령 선거는 왜 6월 3일에 열리는가? 20대 대통령이었던 윤석열이 불법 게임을 선포하여,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에서 만장일치 파면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파면 결정은 국회의원과 헌법재판소만의 결정인가? 윤석열 파면은 계엄 당일 밤 민주주의를 구하고자 국회로 나선 시민들의 용기와, 123일 동안 광장을 지킨 시민들의 연대로 만들어진 결과이다. “빛의 혁명”이라 불리던 윤석열 퇴진 광장은 무수히 많은 페미니스트가 함께 만들어낸 장이었다.
우리 페미니스트들은 알고 있다. 윤석열이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한 것이 계엄과 내란을 통해서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윤석열은 임기 내내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헌법의 가치를 무시한 채 윤석열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말로 유세했으며, 대통령직에 있던 2년 반 동안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했다. 때문에 광장에서는 ‘윤석열 퇴진’을 넘어, 혐오와 차별 없는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자는 요구가 넘쳐흘렀다. “빛의 혁명”은 성평등 민주주의를 바라는 페미니스트 목소리를 제외하고는 이야기될 수 없다. 조기대선도 성평등 민주주의를 바라는 페미니스트들이 함께 만들어낸 것이다.
성평등 정책을 언급조차 하지 않는 21대 대통령 예비후보들은 광장을 보며 무엇을 배웠는가? 광장에서는 윤석열이 훼손한 민주주의 가치를 복원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평등의 가치를 더해나갔다. 모두가 평등약속문을 읽었고, 혐오 발언은 사과하고 시정했으며, 소수자가 숨지 않을 수 있었고, 환대와 연대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조기대선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대선 후보들은 윤석열이 삭제했던 평등과 인권의 가치를 기본 원칙으로 삼을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기에 조기대선은 당연히 성평등 민주주의를 외치는 자리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차별과 혐오 선동의 정치를 이어온 ‘용산 시대’를 밝고 빛으로 가득한 성평등 정치로 나아가는 길을 열고자 용산에서 광화문까지 행진했다. 윤석열을 파면시킨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원한다. 성평등 정치의 언어로 가득한 조기대선을 원한다. 젠더폭력 뿌리뽑고 성평등 세상을 실현하라. 성별임금격차 해소하고 평등한 일터를 만들라. 윤석열이 폐지하려던 성평등전담부처를 강화하라. 성평등 함구령 해제하고 차별과 혐오 정치 청산하라.
우리는 성평등 정치를 실현할 대통령을 요구한다.
2025.05.10.
성평등정치로 가는 페미니스트 공동행동
윤석열 파면한 페미니스트 대행진 “차별과 혐오선동 정치에서 성평등 정치로!” 참여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