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한국퀴어영화제는 끝나지 않는다

이화여대와 아트하우스 모모의 대관 거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 열려
▲'한국퀴어영화제, 거절당한 이유를 묻습니다' 기자회견 포스터 ⓒ한국퀴어영화제 홈페이지
▲’한국퀴어영화제, 거절당한 이유를 묻습니다’ 기자회견 포스터 ⓒ한국퀴어영화제 홈페이지

  5월 13일 이화여대와 아트하우스 모모의 한국퀴어영화제 대관 거부를 규탄하는 ‘한국퀴어영화제, 거절당한 이유를 묻습니다’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국퀴어영화제는 ‘성소수자의 삶을 밀도 있게 바라보는 영화제’를 표방하며, 한국 영화의 다양성을 높이고 성소수자의 인권과 문화를 증진하기 위해 매년 서울에서 개최되고 있다. 2001년 단 한 편의 상영작으로 시작한 한국퀴어영화제는 해마다 성장해 왔으며, 2024년에는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12개국 39개 작품을 상영하기에 이르렀다. 아트하우스 모모는 이화여대 캠퍼스 내에 위치한 영화관이지만 운영 주체는 영화사 백두대간으로, 시민에게 개방된 문화예술 공간이다.

  제25회 한국퀴어영화제는 올해에도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조직위)는 4월 30일, 아트하우스 모모로부터 대관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조직위는 이미 3월부터 대관을 협의해 왔고, 4월 28일에는 최종 계약서까지 받아 서명만을 남겨두던 상황이었다. 수 주에 걸쳐 안정적으로 진행된 대관 절차가 갑작스럽게 무산된 것이다.

  극장 측의 입장 변화는 영화제 대관이 “이화의 정체성을 위협한다”고 반복적으로 제기된 민원이 압박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재도 “기독교 정신에 반하는 영화제가 대학 공간에서 열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서명운동과 온라인 여론몰이를 통해 지속되고 있다. 신효진 한국퀴어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이러한 메시지들이 “더 이상 단순한 반대 의견이 아닌, 성소수자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배제하려는 노골적인 혐오 언어”라고 말했다. 대관 거부가 단지 “개별 행사의 존폐 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 전반에 여전히 만연한 소수자 혐오의 구조적 현실”을 드러내는 사건이라는 점 역시 강조했다.

  이에 조직위는 대관 불허 사태에 대해 5월 1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공식 접수했으며, 정보공개 청구, 언론 대응, 시민사회 연대 등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6월 20일 개막 예정인 영화제의 원활한 개최를 위해 이화여대와 아트하우스 모모의 즉각적인 조치와 책임 있는 대응을 요구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두 기관 모두 대관 거부의 구체적인 이유나 공식 입장을 조직위에 전달하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불투명성은 기자회견 제목인 ‘한국퀴어영화제, 거절당한 이유를 묻습니다’에 그대로 반영됐다.

▲신효진 한국퀴어영화제 집행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손희정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의 연대발언

  기자회견에서는 신효진 위원장의 경과 보고 이후 손희정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와 홍다은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졸업생의 연대발언이 이어졌다. 손 교수는 “교육과 연구에 책임을 지는 한국 학계의 일원”으로서 자리에 섰다고 밝히며, 극우 교회 및 극우 기독교들과 뿌리를 공유하는 한국의 극우가 대학에 가하는 위협을 지적했다. 손 교수는 이화가 자랑해야 할 창립 이념은 “타자를 적극적으로 배제하고 차별하겠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는’” 기독교 이념이 아니라 차별받는 여성에게 교육의 문을 열어준 용기라고 강조했다. 또한 아트하우스 모모가 이미 수많은 퀴어 영화를 상영해 온 전례를 언급하며, 이번 결정은 퀴어를 상품으로 판매해 왔으면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는 거부하는 이중성을 드러낸다고 비판했다.

  홍다은 씨 역시 “이화에서 배운 기독교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홍 씨는 이화여대가 자신에게 늘 “안전한 공동체”였음을 회상하며, “차별에 맞서 환대하고 연대하는 사랑, 충만하여 흘러넘치는 사랑”이야말로 가부장제의 여성혐오에 맞서온 이화와 기독교 정신이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이번 대관 거부는 이화의 교육현장에 이미 존재하는 퀴어를 위협하는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홍 씨의 연대발언은 “이화에서 배운 대로,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혐오에 맞서 퀴어벗들과 함께 연대하겠다”는 결의로 마무리되었다.

  이화여대 내부에서도 대관 거부에 대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의 한국퀴어영화제 대관 거부를 규탄하는 이화권리연대체 이음 릴레이 성명서’에 영화제작동아리 EIF, 이화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에 나서는 동아리 ‘이화나비’, 중앙자치언론 이화교지편집위원회, 이화생활도서관 등이 연명했다. 홍다은 씨가 함께한 ‘퀴어와 연대하는 이화여대 기독교학·신학 공동체 입장문’이 발표됐으며, 캠퍼스 내에서는 대관 거부에 항의하는 팸플릿을 배포하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조직위는 현재 다른 상영 장소를 모색 중이며, 영화제는 이화여대와 아트하우스 모모의 대관 거부와 무관하게 예정대로 개최될 계획이다. 이는 조직위의 표현처럼 “성소수자와 퀴어영화를 지우려는 시도는 실패할 것”이며 “불허돼야 할 것은 퀴어영화제가 아니라, 이념을 빌미로 한 혐오와 차별”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지다.

  제25회 한국퀴어영화제는 6월 20일부터 22일까지, 3일간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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