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대선] “여성폭력 책임질 대통령에게 투표한다”

대학가 페미니스트 연합동아리 ‘서페대연’을 만나다

  2025 대선을 맞아 〈서울대저널〉이 주거·노동·여성·환경 등 각기 다른 의제를 내걸고 활동 중인 사람들을 찾아가 앞으로의 5년에 관해 묻는다. 각 의제가 대학생을 비롯한 청년의 삶과 어떻게 연결돼 있고, 왜 중요한지 듣는다. 6.3 대선은 12.3 내란 이후 123일간 광장을 지킨 이들이 만들어낸 조기 대선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광장의 시간이 끝나고 선거의 시간이라며 민중의 요구를 지우기 바쁘다. 빛의 혁명을 치켜세울 때는 언제고 여성과 성소수자를 비롯한 소수자와 노동자는 논의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워지지 않고 계속 목소리 낼 것이다. 정치권을 향해 묻는다. 저기, 제가 보이시나요.

  12.3 내란 이후 2030 여성은 광장의 주역으로 호명됐지만, 정치권은 ‘광장의 시간’이 끝나고 ‘선거의 시간’이라며 대선에서 여성을 지우고 있다. 여성 후보가 단 한 명도 없을 뿐만 아니라, 거대 양당의 10대 공약에서 여성 정책이 빠졌다. 그 와중에도 누군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 5월 17일은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9주기였다. 4월 22일에는 미아역에서 또 한 명의 여성이 죽었다. 사건 현장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는 ‘더 이상 누구도 잃을 수 없다’, ‘묻지마 살인 아닌 여성혐오를 직시하라’ 등의 문구가 쓰인 메모가 붙었다.

  대학가 페미니스트들은 안티 페미니즘 기류와 백래시에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소개하기 주저한다. 총여학생회가 줄줄이 폐지되고 페미니즘 행사 포스터가 하루도 못 가 떼어진다. 페미니스트의 자리가 없어 보이는 세상 한구석에서, 서로를 돌보며 연대를 확장해 온 이들이 있다.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서페대연)’는 대학가 페미니스트로 꾸준히 목소리를 낸 단체이다. 여성을 지우는 대선에 맞서, 우리가 페미니스트가 돼야 하는 이유를 서페대연 운영위원 다경 씨와 다희 씨에게 들었다.

단체 소개를 부탁한다.

다경 서페대연은 대학가 페미니스트 특별지부다. 대학에서 발생한 젠더폭력 사안에 연대하고, 내부적으로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생활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서페대연에서 활동을 시작한 계기와페미니즘이 내 삶에 들어왔다고 느낀 순간이 궁금하다.

▲서페대연 운영위원 다경 씨(좌)와 다희 씨(우)

다희 중학생 때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이 일어났다. 그 후 페미니즘 리부트를 겪으며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졌다. 고등학생 때 남학생이 새벽에 여학생 기숙사를 침범하는 일이 있었다. 학교에 항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때 특정한 사안에 대해 직접 목소리 내지 않으면 해결은커녕 고통이 가중된다고 느꼈다.

다경 고등학교 3학년 때 N번방 사태*가 발생했다. 우리 학교에도 불법 촬영을 한 남학생이 있었는데, 선생님들이 대학 입시를 이유로 그를 감쌌다. 아무도 책임지고 해결하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와 접한 에타(에브리타임)에는 N번방 피해자를 욕하는 글이 계속 올라왔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바꾸고 싶었기에 서페대연에 들어왔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이어진 텔레그램 기반 아동·청소년 성착취 사건가해자들은 피해자를 유인해 찍은 성착취물을 온라인으로 유통했다.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낙인이 되는 대학사회에서 활동하며 고민되거나 어려운 점은 없나.

다희 페미니즘 행사를 홍보하는 포스터를 학내에 붙이면 며칠 안 가 떼어진다. 에타에 홍보 글을 올리면 누군가 신고해 금세 삭제된다. 익명으로 욕이 계속 달려서 그걸 본 누군가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밝히지 못하고 움츠릴 것 같아서 걱정된다.

페미니스트가 될 수밖에 없던혹은 돼야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각자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의 정의와 엮어서 말한다면.

다경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는 우리 사회에 구조적 문제로서 성차별이 있다는 걸 알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여자로 태어난 이상 일상에서 너무 많은 성차별을 겪는다. 지금도 누군가는 차별받고 있다. 그가 느끼는 고통은 나와 무관하지 않다. 부당한 일을 겪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 이상 우린 모두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

다희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상은 성별이 사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 세상이다. 페미니즘은 모두의 권리를 되찾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부당한 사회 구조에서 차별받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두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페미니스트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화난’ 페미니스트다.

화난’ 페미니스트처럼 ‘~’ 페미니스트로 자신을 정의한다면.

다경 사랑이 많은 페미니스트? 요즘 다시 화가 많아지긴 했다.

다희 내가 화난 페미니스트 할게. (웃음)

다경 다정한 면도, 화난 면도 있다. 요즘은 유쾌한 페미니스트에 가깝다.

유쾌한 페미니스트는 어떻게 가능한가.

다경 유쾌한 페미니스트는 분노할 일이 생겨도 이야깃거리가 하나 생겼다고 생각한다. 언제든지 내 이야기에 같이 화내주고 웃어주는 이들이 있으니 ‘빨리 가서 말해야지’라고 생각한다.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이들의 존재를 떠올리면 유쾌하게 지낼 수 있다.

구성원들이 안심하고 소속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되도록 신경 쓴 점이 있다면.

다희 사람이 많이 모이는 행사를 할 때 평등 약속문을 읽는다. 우리는 이런 가치를 지향한다고 바로 알 수 있게끔 하나의 장치를 만든 것이다. 누군가 상처받은 일이 발생하면 곧바로 얘기해달라고 사전에 말한다. 이런 노력이 모두가 터놓고 말하기 쉬운 분위기를 만든 게 아닐까.

행사가 있을 때마다 서페대연 SNS에 함께 밥 먹는 사진이 올라온다그게 중요하게 느껴졌다행사가 끝나고 일부러 모여 식사하나.

다경 매번 뒤풀이와 소감 나누기를 진행한다. 모든 집회가 좋을 수는 없다. 특히 페미니스트들이 듣기 불편한 발언도 있을 수 있다. 그런 것들을 지나치지 않고 불편한 점을 솔직히 나누는 자리를 만든다. 이런 내밀한 얘기는 밥을 먹으면서 나오기에, 10분이라도 있다가 가라며 붙잡는다.

안전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사회를 정말 바꾸려면 외부와 계속 마찰해야 한다공동체 밖에서 나와 뜻이 맞지 않는 사람이나 무관심한 이들을 만나며 무엇을 느끼나.

다희 단지 안전한 공간을 찾기 위해 서페대연을 들어온 게 아니다. 정말 세상을 바꾸려면 공동체를 확장하는 건 필수적이다. 그 과정에서 기자회견을 하거나 연서명을 받는 등 공동체 밖 사람을 계속 마주치고 설득해야 한다. 혼자가 아니니까, 모두가 서로를 지키고 도와주니까 어려움은 딱히 없다.

12.3 내란 이후 광장을 오가며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나.

 ▲광장에 휘날리는 서페대연 깃발 ⓒ서페대연

다경 속으로 지지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 수많은 이가 자신 역시 페미니스트라고 밝히기 시작했다. 모두가 자기 정체성을 밝히는 과정에서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더 당당해진 것 같다.

다희 이전까지 집회에 관심 없던 친구들에게 함께하고 싶다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 이제껏 정치에 관심 없던 이들과 소수자 의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게 신기했다.

페미니스트를 바라보는 시선도 변했다고 느끼나.

다희 집회에 가면 사방이 페미니스트다. (웃음) 혐오 세력이 들어오기 어려운 환경이다. 탄핵 집회 때 ‘페미니스트가 윤석열 파면 요구한다’라고 쓰인 피켓을 나눠줬는데, 그걸 보고 욕한 일부 남성을 주최 측에서 즉각 제지했다. ‘페미세요?’가 긍정적인 질문이 된 게 처음이라 신기했다. 서페대연 깃발을 드니까 슬쩍 와서 옆에 서는 분도 있고. 페미니스트로서 환대받는 광장이 처음이었다. 또 이전까지 여성 의제를 내세운 집회는 페미니스트들만 모인다는 느낌이었는데, 12.3 내란 이후에는 연대 시민들이 굉장히 많이 온다.

일상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나.

▲다희 씨의 가방에 달린 페미니스트 열쇠고리 

다희 친구들한테 서페대연 활동하는 걸 전부 알렸다. 사회 문제에 관해 말하고 싶은데 얘기할 곳을 찾지 못한 애들이 다 내게 온다.

다경 예전에는 말하기 어려워서 끙끙 앓다가 일주일에 한 번 (서페대연에서) 모이면 그때 다 풀었다. 이후 페미니즘 공부를 하며 어느 정도 얘기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고, 조금씩 말을 꺼낸다. 계속 볼 사람들보다 길에서 한번 보고 말 사람들이 오히려 편하다. 예를 들어 길 가다 만난 분의 짐을 들어드리고, 그분이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면 ‘저 페미입니다’라고 답하는 식이다. (웃음)

그건 무슨 전략인가.

다경 가끔 마음이 너무 답답할 때가 있지 않나. 이 세상에 페미니스트가 아무도 없다는 듯이 모두가 얘기하는 것 같을 때. 그때 한 번씩 아무에게나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거다.

상대 반응이 어땠나.

다경 무슨 말인지 모르니 잘 듣는 것 같지 않다. (웃음) 사실 관계를 계속 이어가야 하는 이들이 문제다. 그럴 때는 다른 소수자 의제로 대화의 물꼬를 트고, 페미니즘을 한 번씩 찔러본다. 예전에 친했던 이들에게는 말하기가 더 어려웠다. 페미니스트라는 걸 밝혀도 될지 고민하는 동시에 ‘페미니스트가 뭐가 나빠’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그러다 몇 년 뒤에 다 밝혔다. 몇몇 친구에게 ‘그럴 줄 알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윤석열 정권 들어 여성가족부 예산을 삭감하고 각종 성평등 정책이 후퇴하는 등 정치권이 여성혐오를 양분 삼아 세를 확장했다활동하면서 피부로 느꼈나.

▲’2025 대선, 여성폭력 해결! 나중은 없다!’ 캠페인을 진행 중인 모습 ⓒ서페대연

다경 진보 의제에 관심이 많은 후배와 얘기를 하다가, 여성 문제에 대해 말을 꺼내자 혹시 페미니스트냐는 질문을 들었다. 네가 생각하는 페미니스트가 뭐냐고 역으로 질문하자 그가 ‘페미니즘을 지지는 하는데 눈살 찌푸려지는 페미니스트가 너무 많지 않냐’라고 답했다.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이 심해졌다고 느꼈다.

다희 페미니스트 악마화가 너무 심하다. 대학에서 여성 의제와 관련된 얘기를 꺼내면 남자 친구들뿐 아니라 여자 친구들도 거부 반응을 보인다. 성차별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게 페미니즘과 무슨 상관이냐는 식이다.

모두가 페미니스트였던 광장과 달리 대선 국면에 접어들며 정치권이 여성을 지우고 있다. 10대 공약에 여성 공약이 빠지고 일부 후보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하는 식이다이번 대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다경 탄핵 광장에 2030 여성이 많은 게 명백했는데 이 정도로 여성 의제가 없으면 광장에 있던 여성들이 ‘이렇게 해도 안 된다’는 좌절감을 느낄까 봐 걱정이다. 눈과 비를 맞고 밤을 새우며 지킨 광장인데 이렇게 여성을 지운다는 걸 믿기 힘들다.

다희 기존의 체제를 바꾸려 한 사람들의 의지와 열망을 이렇게 저버리고 있다는 점이 굉장히 화난다. 박근혜가 탄핵되고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성평등 공약을 발표하고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지만, 당선되자 모두 없던 일이 됐다. 어떤 정치인도, 정당도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데 슬픔과 좌절이 쌓였다고 느낀다. 대통령 후보들이 ‘여자를 버렸다’며 투표를 포기하겠다는 이들도 있다. 그걸 보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

여성 의제 중 특히 주목하고 있는 사안이 있나.

다희 여성폭력* 해결에 주력하고 있다. 여성 증오 범죄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모욕적이거나 공격적인 언사를 경험하거나, 여성을 표적으로 한 연쇄적인 공격이나 살인을 통칭한다. 대표적으로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이 있다. 또 4월 22일에는 미아역에서 여성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여성에 대한 혐오와 반감으로, 아무런 연이 없는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일이 더 일어나선 안 된다.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기에, 대선 국면에서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경 비동의 강간죄를 도입하거나 강간죄 구성 요건을 개정하는 게 제일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비동의 강간죄는 상대방의 동의가 없을 때 이뤄진 성관계를 성폭력 범죄로 처벌하는 것이다. 현행 형법의 강간죄 성립 요건인 ‘가해자의 폭행·협박’은 현실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성폭력 범죄를 포괄하지 못한다. 또 여성폭력에 대한 국가 공식 통계 신설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언론 보도를 토대로 매년 발표 중인 ‘분노의 게이지’ 외에 여성폭력의 실태를 알 수 있는 자료가 없다. 이마저도 언론에 드러난 숫자만 집계하기에 진짜 여성폭력의 규모라 말하기 힘들다. 2024년 발표된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사망에 이른 여성’의 수는 최소 181명이다. 제대로 된 통계가 있어야만 구제책과 예방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가족부의 지위를 성평등 전담 부처로 격상시키고 예산을 늘리려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여성가족부는 여성 정책뿐 아니라 청소년·가족 정책 전반을 담당한다. 현재 여성가족부에 배당된 예산이 너무 적다.** 마지막으로 여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시설에 더 많은 예산을 할당했으면 좋겠다. 여성가족부가 여성단체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사업이 2023년부터 점진적으로 예산 규모가 줄어 2024년에는 아예 없어졌다.

*UN 여성에 대한 폭력 철폐 선언에 따르면여성에게 신체적·성적·심리적 피해나 고통을 유발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젠더 기반 폭력을 뜻한다.

**2025년 기준 여성가족부에 배정된 예산은 약 1조 7,700억 원이다이는 18개 부처 중 가장 작은 규모로 우리나라 전체 예산의 0.2%에 불과하다부문별 정책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봐도 가족 정책(69.3%), 양성평등 정책(14.6%), 청소년 정책(13.8%) 순으로 높아여성 정책이 집중적으로 다뤄지지 않는 실정을 알 수 있다.

4월 27일부터 여성폭력 다이(Die-in)’을 진행 중이다다이인을 기획한 계기와 이를 통해 전하고픈 메시지가 무엇인가또 5월 21일 동덕여대 재학생연합과 다이인을 진행했는데함께 다이인을 기획한 계기가 궁금하다.

 ▲’2025 대선, 여성폭력 해결! 나중은 없다!’ 캠페인 참가자 단체사진 ⓒ서페대연

다희 여성이 죽고 있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참가자들이 죽은 것처럼 바닥에 눕는 다이-인을 준비했다. 동덕여대의 경우 5월 14일 학교 측이 고소한 학생들에 대해 고소를 취하했으나, 그 후 추가 고소·고발을 하는 등 아직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권은 동덕여대 학생들을 향한 여성폭력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동덕여대 학내 민주화 투쟁에 연대하는 마음으로 함께 다이-인을 준비했다.

앞으로 5년을 책임질 차기 대통령에게 대학가 페미니스트로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정치권에 한마디 던지면.

다희 당연히 그거죠. 여성폭력 정치가 해결하라. 나중은 없다.

다경 여성폭력 정치의 책임이다. 여성폭력 해결하려는 대통령에게 투표하겠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그치지 않는 현실 속에서 과거와 달라진 부분이 있다고 느끼는지 궁금하다어떻게 보면 바뀌지 않는 것 같은 세상에서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의하고 서페대연 활동을 꾸준히 해나갈 수 있던 동력은 어디 있나.

‘2025 대선, 여성폭력 해결! 나중은 없다!’ 캠페인에 참여 중인 다희 씨 ⓒ서페대연

다희 이전에도 여성폭력은 계속 있었다. 페미니즘이 백래시를 당할 정도의 사회적 의제가 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여성폭력 사건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고 그 사실에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지 않는 건 아니다. 나아진 게 있다. 조금씩이라도 바뀌었다고 믿기에 계속 활동할 수 있었다.

다경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역사를 공부하며 많은 게 바뀌었다고 느꼈다. 참정권도 없던 시절에서 현재까지. 정말 바뀌지 않는 것 같지만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변하는 게 있다. 그걸 믿기에 계속할 수 있다. 바꾸려는 사람이 있어서 바뀐다고 많이 느낀다. 서프러제트*를 보면 목숨을 바쳐 변화를 일군 많은 이가 있는데, 그들을 배신할 수 없다는 마음도 크다.

*20세기 초 서구권 국가에서 전개된 여성 참정권 투쟁을 일컫는 말영국의 활동가 에밀리 데이비슨은 여성 참정권의 실상을 알리고자 벌인 1인 시위 도중 말에 치여 죽었다이는 여성 참정권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을 이끌었다.

페미니스트라고 밝히기 두려운 이들에게혹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또래 여자애들에게 해주고픈 이야기가 있다면.

다희 세상이 망하고 있다는 감각 때문에 힘들 것이다. 해결하려는 움직임이나 돌파구를 알지 못한 채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도 들겠고. 나 또한 그랬기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우리’가 있다고 알려주고 싶다.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경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전엔 불평등한 사회 구조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내 탓으로 돌렸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못나서’라고 생각했다. 페미니즘을 공부한 뒤로 덜 힘들어졌다. 어떤 일을 겪었을 때 내 탓이라고 우울해하기보다, 어떻게 해결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희 당신이 겪고 있는 문제가 개인의 탓이 아니다.

다경 ‘어쩔 수 없는’ 구조에 놓여 있다는 생각도 빠지기 쉬운 오류인 것 같은데, 충분히 바꿀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무너지는 순간은 없나.

다경 그렇게 두지 않으려 한다. 그런 낌새가 보이면 계속 만나자고 한다. 우울할 때가 아예 없지는 않은 것 같은데.

다희 힘들 때 있죠.

다경 응. 그래도 계속 희망 차.

다희 사람들이 있어서 가능한 거지. 혼자였으면 절대 못 해.

다경 이곳에 늘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이 있고.

다희 가만히 있으면 언니들이 한 명씩 들어오고, 퇴근하고도 오니까.

  인터뷰가 막바지를 향할 무렵 누군가 이것 좀 먹어보라며 방금 만든 따끈한 가지튀김을 권했다. “어쩐지 기름 냄새가 나더라니”라는 다희 씨의 말을 들으며, 양 볼 가득 튀김을 우물거리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페미니스트라는 낙인과 수많은 백래시 속에서 이들을 지켜온 건 이런 것일 테다. 비 오는 날 한 여성이 다른 이들과 나눠 먹으려고 만든 가지튀김. 굳이 좁은 책상을 붙여 앉아 내일 있을 행사에 관해 논의하는 시간. 집회 뒤에 있을 따끈한 국물과 미처 말하지 못했던 속풀이의 자리. 하나의 공동체를 살림하는 방법은 이토록 다양하다.

  2016년 성폭력 고발 해시태그 운동이 전개될 당시, 한 엑스(구 트위터) 사용자는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는 오늘날 다양한 페미니즘 시위의 구호로 사용된다. 여기 두려움을 넘어서, 여성폭력이 만연한 세상에 맞서 서로의 용기가 되겠다고 선언한 이들이 있다. 이들은 빛의 혁명 이전부터, 여성을 죽이는 세상에 맞서 길을 개척해 왔다. 페미니스트라는 말에 따라올 낙인을 알기에 때때로 주저하면서도, 씩씩하게 기자회견문을 읽고 바닥에 드러누워 자신과 비슷하고도 다른 여성들을 구해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걸어온 길 위의 수많은 여성이 화면 너머 당신에게 말한다. 그러니 우리 서로의 용기가 되자고. 대선이 끝난 후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지 않는 세상을 향한 서페대연의 발걸음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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