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들에게 감사합니다.

집에 들어오면 언제나 발부터 씻는다.손도, 얼굴도 아닌 발부터 씻게 된 건 5년 전이다.당시 한 트위터리안의 글귀를 본 것이 계기가 됐다.어린 시절 밖에서 돌아온 그에게 엄만 발을 먼저 씻으라고 했단다.이유를 묻자 엄마는 ‘발이 온종일 맨 밑에서 가장 수고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가장 먼저 발을 씻어주는 것.이것은 발의 노고에 대한 ‘존중’이자 ‘감사’를 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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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들어오면 언제나 발부터 씻는다. 손도, 얼굴도 아닌 발부터 씻게 된 건 5년 전이다. 당시 한 트위터리안의 글귀를 본 것이 계기가 됐다. 어린 시절 밖에서 돌아온 그에게 엄만 발을 먼저 씻으라고 했단다. 이유를 묻자 엄마는 ‘발이 온종일 맨 밑에서 가장 수고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가장 먼저 발을 씻어주는 것. 이것은 발의 노고에 대한 ‘존중’이자 ‘감사’를 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그 순서가 바뀌는 일 없이 발부터 씻겨줬다.

  그런데 우리 사회엔 발들에 대한 ‘존중’과 ‘감사’가 과거에도, 현재에도 없다. 60년대 비좁은 다락에서 뿌연 먼지를 마셔가며 하루 온종일 일했던 어린 여공들. 생지옥 같은 노동을 버틴 그 ‘산업 역군들’에게 돌아온 건 존중과 감사가 아닌 잠 쫓는 주사와 저임금뿐이었다. 열악한 노동 환경에 각혈이라도 하는 날엔 쫓겨나는 것은 물론 임금으론 감당할 수 없는 병원비가 발들을 기다렸다.

  50년이 지나도 만연한 우리 발들에 대한 무시는 장병들에 대한 처우에서 극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어쩌면 누구보다도 존중과 감사를 받아야 할 그들의 시급은 700원이 채 되지 않는다. 2만 불 시대라면서 정작 존중 받아야 할 그들은 천 불 시대를 살아가게 한다. 적은 급여는 단지 작은 숫자에 불과하지 않다. 우리 사회가 그들의 노고를 얼마나 가볍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증표다. 

  노동자에 대한 무시는 말할 것도 없다. 얼마 전 압구정의 한 아파트 경비 노동자가 분신했다. 그를 죽음으로 내몬 건 주민들의 인격모독과 비인간적 대우 그리고 열악한 노동 환경이었다. 한 주민은 자신의 5층 집 베란다에서 경비 노동자를 향해 떡을 던지며 먹으라고 했다고 한다. 밤낮으로 주민의 안전을 지킨 그의 노고는 그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가.

  우리는 맨발로 달려왔다. 그 결과 반세기만에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달려오는데 가장 수고한 발에게는 돌아가는 건 없었다. 있다면 5층에서 먹으라고 던져준 떡과 그에 대한 모멸감에 분신한 것, 그리고 이 때문에 그의 동료들이 해고된 것뿐이다.

  존중과 감사함 없는 세상은 언젠가 멈추고 만다. 여전히 자갈밭, 가시밭을 지나, 파이를 키워야 한다고 너덜너덜해진 신발조차 팔아버린다면 걷지 못할 지경에 이를 것이다. 2014년 우린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뤘다. 이젠 잠시 멈춰 발을 씻기고 연고를 발라줄 때다. 질 좋고 튼튼한 신발 한 켤레도 사주자. 당장 나부터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게 ‘존중’을 표하고, ‘감사’를 표하는 데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오늘부터라도 얼굴, 손보다 먼저 발을 씻기자. 

  나름대로 편집장 임기동안 우리 기자들에 대한 존중과 감사함을 표하고 싶었다. 일정 학기 이상 활동한 기자에게 감사패를 선물하자는 제안도 그런 맥락이었다. 어쩌면 시대에 뒤처진 허례허식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울대저널이 당신의 노고를 알고, 기억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외에도 활동비를 지급할 순 없지만 가능한 범위 내에서 여러 형태로 감사함을 표하고자 했다.

  이번 호를 끝으로 편집장 임기를 마치게 된다. 서울대저널 활동을 하며 이전엔 보지 못했던 수많은 발들의 노고를 볼 수 있었다. 더 많은 발들에게 감사할 수 있게 됐다. 마지막으로 우리 기자들, 책을 만들어준 인쇄·편집 노동자 분들, 그리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모두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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