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 총장이 선출된 지난 제26대 총장선거를 두고 말이 많았다. 먼저 3만 명에 달하는 서울대 학부생 및 대학원생들은 총장 선출에 전혀 관여할 수 없었다. 총장추천위원회(총추위)에 학생의석은 주어지지 않았고 대학행정자치연구회(대자연)에서 주최한 모의총장선거 결과도 발표되지 않았다.
또한 이사회가 학내 구성원의 총의를 무시했다는 비난이 일었다. 당시 총추위에서 이사회에 추천한 총장 후보자 3인 중 성 총장의 추천 순위는 강태진 교수와 함께 공동 2위였다. 그러나 이사회는 총추위의 의사를 뒤엎고 성 총장을 최종 후보자로 선출했다. 이를 계기로 이사회에 과도한 권한을 부여한 법인화법 자체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총장 선출 과정에 대해 학내 구성원이 반발하자 이사회는 ‘총장선출제도 평가 및 개선 소위원회’(소위원회)를 구성해 총장 선출 절차를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소위원회 산하 연구진을 구성해 학내 여론을 수렴하기로 했다. 소위원회는 9월 22일과 10월 20일, 총 두차례의 내부 회의를 통해 방침을 논의했다. 2차 회의가 있었던 20일 연구진이 구성됐고, 6개월간의 연구 기간 동안 독립적으로 자율적 연구를 하기로 결정했다.
여전히 배제된 학생 참여
그러나 새로 꾸려진 소위원회에도 학생이 직접 참여할 방법은 없다. 소위원회는 현직 이사 중 학외 이사 4명, 학내 이사 3명으로 구성된 조직이다. 2번의 회의 모두 비공개로 진행됐으며, 학생 참관이나 회의록 공개도이뤄지지 않았다. 소위원회가 이사진만으로 구성된 만큼, 학내 여론 수렴을 위해 연구진이 조직됐지만 역시 이곳에도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연구진은 총 11명으로, 이사회 2명, 본부 1명, 평의원회 2명, 교협 2명, 직원 1명, 총동창회 1명, 총추위 위원 2명이 위촉됐다. 총동창회에게까지 주어진 연구진 자리가 학생에게는 전혀허용되지 않은 것이다.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와 대학원생총협의회(총협)에서는 연구진 회의 참관을 요구했으나 이마저도 “아직 연구 초기라 결정된 것이 없다”는 이유로 반려됐다. 이철수 기획처장은 이에 대해 “연구팀이라는 특성상 학생들과도 관련이 있는 문제라고 해서 연구 경험이 없는 학생을 연구진으로 받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학생이 직접 참여할 수 없다면 학생의 추천을 받은 위원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학생들의 추천을 받으면 학생이 아닌 사람을 추천하는 것이 아니고 결국 그 집단 내의 사람을 추천한다”며 난색을 표했다. 이철수 기획처장은 학생 참여는 어려운 문제라서 연구진에서는 유보했으며, 연구라는 속성을 헤아려 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대학행정자치연구위원회(대자연) 위원장 양기원(서양사 08) 씨는 이에 대해 “연구 전문성을 행정 부분에만 축소시켜서 보는 것이 아닌가 싶다”며 “교육 서비스나 장학 행정처럼 학교의 다양한 문제 중 학생이 관심을 가지고 체감하는 것이 더 많은 부분도 있다”라고 반박했다. 총협 김재원(법학전문대학원 12) 의장은 “총추위에 참여했던 집단에서 연구진을 선발하다 보니 학생은 자연스럽게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며 “학내에서 학생이 거버넌스에 참여할 주체로 여겨지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양기원 씨는 교육공무원임용령을 근거로 학생 참여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해당 법령은 대학 총장 선출에서 학생을 비롯한 학내 구성원이 위원으로 참가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김재원 씨는 학생의 권익 신장은 물론이고 고등교육의 발전을 위해서도 학생이 거버넌스 내부로 들어와야 하며 연구진 참여는 이를 위한 과정이라고 밝혔다. 대자연과 총협은 위와 같은 내용을 골자로 의견서를 발표할 계획이다. 연구진 및 향후 있을 평의원회와 총장 선출과정에서 학생 참여의 근거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최종 결정권을 쥔 것은 이사회
한편 이와 같은 제도 개선 노력이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연구진에서 연구 결과가 나오면 이는 소위원회를 거쳐 이사회에 전달된다. 최종적인 결정권은 이사회에 있으며 연구진은 그 산하기구에 불과하다. 총장 선출 과정에서 학내 의견 수렴을 중시한다는것은 곧 이사회의 권한을 축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진의 연구결과 반영을 의무화할 제도적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이사회가 이를 얼마나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이다.
교협 회장을 맡고 있는 이정재 교수(농생대)는 연구진 위촉에 대해 “이사회가 소통을 하려는 것이니 좋은 징조라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연구 결과를) 참고 자료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 우려를 표했다. 정귀환 서울대노조 위원장은 “연구진은 독립된 기구가 돼야 하는데 이사회 소속 소위원회라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귀환 위원장은 이사회의 자의적인 결정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공청회 등 결정 과정에 특별한 절차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평의원회 정근식 의장(사회학과)은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현재 정관에 따르면 이사회가 최고 의결기구라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다. 평의원회 측은 일단 현 제도 하에서는 이것이 최선이니 연구진에 참여해 협력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정 의장은 “현재 우리 학교의 법률 및 정관은 이사회가 누구에게도 통제 받지 않는 구조”라며 이사회도 교직원을 대표하는 평의원회에 의해 견제와 조율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평의원회는 이와 관련해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평의원회는 개정안에서 평의원회의 이사 추천권을 확대하는 등 이사회에 대한 견제 기능을 강화하고자 한다.

서울대 평의원회 정근식 의장은 이사회를 통제할 제도나 기구가 없는 것이 서울대 거버넌스의 미흡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최서현 촬영기자
학내 구성원의 총의가 제대로 반영돼야
지난 총장 선출 과정을 반성하기 위해 결성한 소위원회와 산하 연구진이 도리어 총장 선출 과정과 유사한 양상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학생 참여는 배제됐으며 최종 결정권은 이사회가 쥐고 있다. 이미 이사회에서는 지난 총장 선출 과정에서 총추위를 통해 수렴된 학내 구성원의 의사를 뒤집은 전례가 있다.
한편 지난 10월 23일에 있었던 서울대 국정감사에서 성낙인 총장은 총추위에 학생 대표가 참여할 수 있도록 정관을 개정할 것을 약속했다. 소위원회와 산하 연구진이 제 역할을 해서 성 총장의 약속이 지켜지고 향후 총장 선출에 학내 구성원의 총의가 제대로 반영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