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다큐멘터리는 <한겨레21>기획으로 <서울대저널>과 ‘대학독립언론네트워크’가 함께 취재하고, <서울대저널>이 제작한 영상입니다.관련 기사는 <한겨레21>1023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내레이션]
2014년 7월 14일 아침. 한겨레21취재팀과 서울대저널을 비롯한 대학독립언론네트워크는 밀양으로 향했다. 우리는 6월 11일에 있었던 행정대집행 이후 밀양을 살피고 싶었다.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밀양 곳곳엔 송전탑이 보였다. 우리는 위양마을, 평밭마을, 골안마을, 용회마을. 이렇게 4마을로 나눠졌다. 각 팀은 배정된 마을에 내려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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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날 저녁 7시.
상동면 고정마을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주최하는 미사가 열렸다. 밀양 곳곳에서 자리를 지키던 할매·할배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신부·수녀·수사님 200여명과 학생들도 참석했다. 각지에서 온 연대자들은 주민들에게 큰 힘이 된다.
6·11행정대집행이 끝나고 한국전력은 “큰 충돌 없이 움막을 철거할 수 있었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남우/평밭마을]
죽은 개를 끌어내듯이 죽은 소를 끌어내듯이 전쟁에서 죽은 사망자를 끌어내듯이 할머니들을 그렇게 끌어냈습니다.
지난 11일을 끝으로 마지막 남은 움막과 농성장이 모두 철거됐다. 처절하게 싸웠지만 철거를 막진 못했다. 그러나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의지까지 무너뜨릴 수 없었다. 그들은 새로운 농성장을 세웠다. 할매·할배들은 ‘밀양 시즌2’로 다시 시작한다.
[타이틀] 밀양을 살다 : 대학독립언론네트워크/한겨레21 : 밀양 할매·할배와 함께한 4박 5일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위양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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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양 못을 둘러싼 위양마을은 주민과 연대자간의 끈끈한 정이 샘솟는 마을이다. 마을 회관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랑방이 위치해있다. 이곳엔 매일 연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위양엔 연대자들이 특히 많이 찾는 사람이 있다. 손희경 할머니, 일명 덕촌할매다.
할매는 동래 할매댁 밭을 대신 맸다. 우리는 손에 호미를 들고 덕촌할매 뒤를 따랐다. 밭을 다 맨 뒤에는 할매와 함께 돌을 주웠다. 돌을 사랑방으로 가져가 ‘돈’대신 ‘돌’로 화투를 쳤다.
덕촌할매는 마을에 진심을 보여주는 연대자에게 공주·왕자란 애칭을 붙여준다.
[손희경/위양마을]
아가씨라 하라는대 이름을 부르라는대
[위양마을 주민]
아니 한 것도 없는데 공주라 붙여준다고
[손희경/위양마을]
그렇지만 너무 딸 같아서 어째
학생 기자 1명은 왕자가 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살림을 돕고 얘기를 많이 했지만 덕촌 할매의 왕자가 되긴 힘들었던 모양이다.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 평밭마을]
[내레이션]
평밭마을은 화악산 중턱에서 희망의 산악전을 이어가고 있는 마을이다. 남학생 기자들은 1평 크기 컨테이너 안에 짐을 풀었다.
사랑방은 127번, 129번 송전탑 부지에서 3분 거리에 있다. 공사장 앞에는 항상 경찰이 주둔하고 있다. 이 경찰들은 식사시간이 되면 사랑방 앞을 지나간다. 마을에 있는 식당에 가는 것이다. 작년4월, 이남우 어르신은 댁의 일부를 한 세입자에게 임대했다. 이 사람은 임대받은 장소에서 식당을 운영한다. 여기서 경찰에게 식사를 판매한다.
[이남우/평밭마을]
(경찰들이 왔다 갔다 하니까)
멍든 마음의 상처에 또 칼질을 하잖아요.
그걸 보면 볼수록 우리는 쌓였던 분노가 스트레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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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컨테이너는 아직도 공사 중이다. 우리도 주민들과 함께 새 농성장 마련에 힘을 보탰다.
주민들은 꾸준히 사랑방을 지킨다. 이렇게 모여, 아직 많은 주민이 합의보지 않고 싸움을 결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사라/평밭마을]
이걸 어떻게 돈으로 바꿔.
그냥만 살게 해달라잖아. 그냥만.
우린 낮엔 사랑방 보강 공사를 돕거나 주민들과 대화를 하고, 밤엔 회의를 했다. 씻을만한 공간이 없어 비를 맞으며 샤워했다.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골안마을]
[내레이션]
매일 6시30분에 주민들은 골안동사 옆길에 모인다. 송전탑 공사를 위해 골목을 지나가는 한국전력 차량을 막기 위해서다. 차를 막으면 한국전력 측은 경찰에게 연락을 한다. 그럼 잠시 뒤 경찰들이 몰려온다.
[경찰 관계자]
경고를 합니다. 이 길은 누구든지 다닐 수 있는 도로입니다.
[안영수/골안마을 주민]
아닙니다. 우리 주민이 자체적으로 닦은 길입니다.
[경찰 관계자]
도로이기 때문에 차량이 통행할 수 있는 걸 막는 것은 위법입니다.
법적으로 처벌될 수 있고 하니까 지금 이 시간부로 통행을 할 수 있게끔 다 비켜주세요.
[박정식/골안마을 주민]
우리가 이러이러한 사람은 다 보내줘요. 한전 공사하는 사람만 안 보내주는 거지.
[골안마을 주민]
잡아가라.
옛날에는 순사라 하면 겁이 났는데…
이제는 순사도 겁이 안 나고. 겁이 안 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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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에도 투쟁은 계속 된다. 송전탑 완공을 원하지 않는 간절함이 사시사철 그들을 한 데로 모은다.
경찰과의 대치는 2시간가량 지속된다. 상황이 정리되면 함께 골안 경로당에 모여 아침을 먹고 각자 농사를 지으러 간다.
우리는 콩과 팥을 구분하는 방법을 배웠다. 콩을 심어야하는데 잡초를 심어버려 농사를 망칠 뻔 했으나, 다행히 주민분이 금방 알아채고 알려줬다. 콩밭을 처음 매보는 우리에겐 가벼운 호미가 곡괭이처럼 느껴졌다.
밭일은 주민들에게 행복을 준다. 그런데 올해는 송전탑 공사를 위해 하늘을 맴도는 헬기 때문에 농사일도 녹록치가 않다.
[안영수/골안마을 주민]
여왕(벌)이 자꾸 죽어요. 이상하게. 태어난 지 얼마 안됐는데 또 죽고. 얼마 안 됐는데 또 죽고 그거 때문에 지장이 좀 많았죠.
골안마을 위쪽에 사시는 박정식 씨는 매실 밭을 가꾼다. 우리는 그분을 매실 밭 아저씨라 불렀다. 박정식 씨는 우리에게 종종 직접 기른 농산물을 줬다. 16일 저녁에는 주민들과 함께 매실 밭 아저씨 정원에 모여 담소를 나눴다. 애정으로 꾸며진 텃밭 앞에서 먹은 뻥튀기와 바나나는 그 어느 때보다 맛있었다.
[내레이션]
골안 마을은 괴곡 마을 위쪽을 통칭한다. 괴곡 마을 아래쪽은 양리 마을이라 부른다. 두 마을은 행정구역상 한 마을이지만 서로 거리가 멀어 왕래가 어렵다. 한국전력이 주민들에게 합의를 요구하면서 두 마을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안영수/골안마을 주민]
양리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생각을 아주 잘못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송전탑은 우리 골안마을 뒤로 지나갑니다. 그럼 우리가 송전탑에 가까우니까 피해가 더 많죠.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죠. 자기들은 철탑으로부터 1.5km 내지 2km 떨어져있습니다.
[박정식/골안마을]
마을 사람인데 보면 반가워야 되잖아. 마을 사람이면 서로 보면 ‘아이구’ 이래야 하는데 보면 ‘아이 저 개새끼 같은 놈들 말이야’ 그런 생각이 무지 들어. 이게 얼마나 큰 병이냐.
[내레이션]
양리 마을 주민은 우리가 마을에 있는 걸 꺼렸다. 마을 내부에선 갈등이 없는데 괜히 외부인이 와서 갈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양리마을 주민]
일부 반대하는 입장은 거의 없고. 어차피 (공사는) 하니까. (괜히 와서) 분열을 일으키지 말고.
이 정도 이야길 했는데 (너희가) 내 말을 무시하고 또 (마을에 있길) 한다 하면 나도 너희를 용납을 안 해. (너네가) 오늘 간다하니 천만 다행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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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계획과 다르게 송전탑은 일직선으로 세워지지 않고 돌아가 골안마을 옆에 세워졌다. 주민들에 따르면, 밀양 시장 사촌의 땅이 거기 있다는 이유였다. 송전탑으로 인해 파괴된 공동체 괴곡리. 철탑만큼이나 거대하게 놓인 상처의 골은 누가 치유할 수 있을까.
[밀양시 단장면 태룡리 용회마을]
[내레이션]
어마어마한 크기로 사람을 압도하는 송전탑만 제외한다면, 용회마을은 여느 시골마을과 다를 게 없다. 우리는 투쟁의 중심에 있던 고준길·구미현 부부 댁 손님방에 머물렀다. 실내부터 정원까지 직접 손으로 가꿔가며 집을 꾸민 그들에게 ‘바로 뒤쪽에 송전탑이 생긴다’는 소식은 충격이었다. 그래서 끊임없는 투쟁을 했다. 그런데도 6월 11일에 처참히 무너졌다. 그들은 6월 11일의 아픔을 그대로 기억했다.
[구미연/용회마을]
거꾸로 끌려 나갔어요. 다리가 저 위에 올라가고. 머리가 이 밑으로 간 채로. 옷이 다 훌러덩 내려간 상태로. 저공비행을 하는데 얼마나 저공비행을 했는지. 흙과 낙엽과 돌들이 우리 전부 샤워했어요. 완전히 샤워요. 이 안에 전부 다 들어갔어요. 바람에. 콧구멍 귀 입. 진짜 여기에 흙칠한 거처럼. (경찰버스) 40대가 시동을 안 껐을 때 소리를 생각해보세요. 땅에서는 경찰버스 40대가 왕왕거리죠. 하늘에선 헬기가 저공비행을 하죠. 연어가 놀래가지고 펄떡펄떡 뛰니까 그대로 배가 터져가지고 전부 떠올랐어요. 폐사한 거예요.
[내레이션]
공권력에 의해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핵심적 공간은 ‘사랑방’이다.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는 시즌2를 준비하며 마을마다 컨테이너 박스를 지급했다. 다른 마을은 컨테이너 박스에 살림을 차렸지만, 용회마을은 원래 마을에 있던 쉼터를 개조해 사랑방을 만들었다.
우리는 잠에서 깨면 사랑방에 갔고 밤이 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원래 당번 3~4명이 식사를 차리지만 머무는 동안은 우리가 주민들 대신 밥을 차렸다.
주민들은 각자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밥을 먹으러 모인다. 이들은 사랑방에서 많이 만나고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합의하는 사람이 줄어들 거라 생각한다.
[내레이션]
마을 주민과 외부 연대자 간의 연대도 사랑방에서 이뤄졌다. 마을에 잠시 들르는 연대자도 있지만, 한번 왔다가 발길을 떼지 못하고 계속 머무는 사람도 있었다.
[남어진/고등학교 자퇴]
그니까 학교를 10월에 나와서요. 제가 12월까지… 지금까지 밀양에 계속 있잖아요. 밀양에 와서 있다 보니까. 이게 상황이 내가 갈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경찰들이 왜. 할머니들… 카메라가 없을 때 할머니들에게 하는 행동이랑. 이런 카메라나 심지어 핸드폰 카메라라도 있을 때 하는 행동이랑 (할머니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요. 그럼 할머니들이 덜 다치게 되는 거고. 뭐 그런 것들 때문에도 쉽게 떠나갈 수 없고 해서.
[내레이션]
7월 18일 점심. <한겨레21> 기자 2명과 대학독립언론네트워크 기자 21명은 4박 5일 일정을 마치고 용회마을에 모였다. 7월 14일부터 18일까지 우리는 농활을 도우며 취재를 했고, 밤을 새워가며 토론도 했다. 이제 5일간 동고동락했던 마을 사람들을 뒤로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
밀양에서는 아직 200여 가구가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싸우고 있다. ‘밀양 송전탑 시즌2’는 남은 이들의 굳건한 의지로 지속될 희망의 투쟁이다.
PD/최서현 (seohyun3t@snu.ac.kr)
내레이션/원종진 (jjwon26@snu.ac.kr)
녹음·후편집/최영권 (veritasbbo@snu.ac.kr)
대학독립언론네트워크
– 성균관대 고급찌라시 (개마고원, 낙원상가, 메로나, 밍기뉴, 와장창)
– 국민대 국민저널 (유지영, 김혜미, 김선영, 신동진)
– 대학언론협동조합 (정상석)
– 성신여대 성신퍼블리카 (서혜미)
– 연세대 연세통 (박성환, 황윤정, 서수민)
– 중앙대 잠망경 (율이, 김펄프)
제작지원/한겨레21
제작/서울대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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