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오연천 전임 총장이 서울대 전(全)교직원을 대상으로 500만원씩의 성과급(총 96억여 원)을 지급했다. 이와 관련해 총장 선출 직후 학내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서울대학교발전기금’(발전기금)도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지출한 96억 원 중 일부가 발전기금에서 지출됐기 때문이다. 본부는 ‘연구활동 지원’ 명목으로 발전기금을 사용한 것이라며 사용 명분의 타당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발전기금이 총장의 쌈짓돈처럼 사용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오연천 전 총장(왼쪽)은 임기종료 직전 법인회계와 발전기금의 돈으로 전(全)교직원에게 성과급을 지급하여 논란을 빚었다. / ⓒ서울대학교 홈페이지
발전기금에 대한 핵심 비판은 발전기금이 존속해야 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과 운영 방식이 불투명하다는 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공론화할 목적으로 작년 제56대 ‘디테일’ 총학생회는 ‘발전기금 Break’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도 했다.
발전기금은 왜 별개로 존재하나
발전기금을 향한 비판은 ‘서울대와 별개의 공익법인으로 존재해야할 이유’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다. 발전기금은 서울대가 국립대이던 시절에 생겨났다. 국립대 재정이 국가재정과 통합되어 운영되기 때문에 개별 국립대가 기부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발전기금을 조성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 서울대는 지난 2012년 법인화가 이뤄짐에 따라 정부재정과 별도로 재정을 운영하고 있다. 발전기금이 존속해야할 법적 근거가 사라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발전기금 회계를 서울대법인회계(법인회계)로 통합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발전기금 오병열 기획팀장은 “현실적으로 발전기금과 법인회계의 통합에는 큰 어려움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통합을 위해선 먼저 발전기금을 해산시켜야 하는데, 이 경우 발전기금의 잔여재산이 사라지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공익법인법)에 따르면 해산한 공익법인의 남은 재산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귀속된다. 오 팀장은 “조성해놓은 재산이 사라지면 통합하는 의미가 없게 된다. 이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설명했다.
발전기금의 재산 구성에 대한 의문
오병열 기획팀장의 말대로 현재 발전기금 구성 상 해산 시 상당한 규모의 잔여재산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원금 사용에 제약이 있는 ‘기본재산’이 발전기금 순자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공익법인법>에 따르면 공익법인의 재산은 원금사용에 제한이 있는 ‘기본재산’과 제약이 없는 ‘보통재산’으로 구분된다). 2013년 기준 발전기금의 순자산 3627억여 원 중 기본재산은 약 2431억으로, 전체의 67% 가량을 차지했다. 이는 2011년(약 2110억)과 2012년(약 2225억)에 비해 증가한 수치다.
기본재산은 원금은 보존된 채 이로부터 발생한 이자(과실금)만을 각종 사업에 사용할 수 있다. 이를 고려했을 때 기본재산 비중이 크다는 사실은 발전기금 수혜자 입장에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이다. 총학생회 산하 ‘대학행정자치연구위원회’(대자연) 양기원(서양사 08) 위원장은 “학생 입장에선 발전기금으로부터 당장 지원받는 돈이 많을수록 보다 많은 혜택과 등록금 인하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할 여지가 있다” 고 말했다. 똑같은 1억 원이라도 보통재산으로 편입될 시엔 1억 원 전체가 직접 지원될 수 있는 반면 기본재산으로 분류될 경우 그 이자 수익(금리 3%일 경우 300만원)만 사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발전기금이 기부금을 기본재산 형태로 쌓아두는 이유가 본래의 목적 대신 자산 불리기에 치중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더구나 기본재산이 법인회계와 발전기금회계 통합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상황이라면 기본재산에 대한 의혹은 짙어질 수밖에 없다.
높은 기본재산 비중에 대해 기획과 최충림 행정관은 “이를 결정하는 것은 기부자들의 몫이다. 기본재산의 규모는 발전기금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부자가 자신의 기부원금이 보존되길 원하면 기부금이 ‘기본재산’에 편입된다는 설명이다. 또한 오병열 기획팀장은 “1억 원 이상을 원금보존 형식으로 기부할 경우 기부자가 기금을 형성해 지속적인 지원이 가능하다”며 거액을 기부하는 기부자일수록 원금보존을 선호하는 경향을 설명했다.
그러나 ‘대학교육연구소’(대교연) 임희성 연구원은 “이러한 주장은 적립금 축적 논란에 휩싸인 사립대들이 제시하는 논리와 똑같다”면서 “서울대와 발전기금은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원금보존의 규모는 얼마이며, 직접 사용가능한 금액은 어느 정도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전기금, 어떻게 쓰이나
발전기금 세출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항목은 ‘목적사업비’다. 목적사업비는 발전기금 정관에 근거한 일련의 목적사업을 위한 지출항목이다. ‘단과대학과 대학원, 부속 기관의 교육 및 연구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었다’는 발전기금의 조성 취지와 직접 연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목적사업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되는지와 관련해선 논란의 여지가 존재한다. 목적사업에 따라 지원되는 사업들은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일례로, 2014년 목적사업 하의 ‘학술활동보조비’ 항목으로 발전기금 예산이 배정된 사업들만 77개다. 반면 공시되는 관련 회계자료(‘대학알리미’, ‘서울대학교 통계연보’, ‘공익법인 결산서류 등 공개시스템’ 등)에는 관련된 세부지출내역이 공개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최충림 행정관은 “기부금은 기부자가 지정한 용도에 따라 목적사업비로 지출되며, 세부사업에 대한 예산 분배는 수혜대상 기관의 요청을 고려해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기부금이 실제로 기부자의 의도에 맞게 사용됐는지 확인할 길조차 없다는 데에 있다. 양기원 위원장은 “발전기금과 관련해 가장 큰 문제는 어디까지가 기부자의 의도에 따른 것이고 어디까지가 발전기금의 재량인지 모른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간 발전기금의 사용 정황은 발전기금을 총장의 ‘쌈짓돈’이라 부르기에 충분했다. 발전기금 관련 의혹들이 완전히 해소될 수 없었던 이유다. 성과급 지급 논란은 오연천 전 총장 이전에도 있어왔다. ‘발전기금 Break’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2014년 교수 성과급 명목으로 지급된 돈은 총 371억 여 원이었으며, 이 중 절반 정도인 185억 원 가량이 발전기금에서 지출됐다. 본부 및 발전기금 이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했는지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한편 2012년 감사원은 <2012 대학백서>에서 ‘발전기금을 교직원에게 급여성 성격의 수당이나 격려금 등으로 지급하는 재원으로 사용하면 그만큼 발전기금을 목적사업에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기금을 조성한 취지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본부 측 관계자는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발전기금은 총장재량에 따라 쓸 수 있는 재원이라 문제가 없다”는 해명을 내놓았다(‘217억 적자낸 서울대…100억 ‘보너스 잔치’’, <한국경제> 2014년 7월 24일자). 발전기금에 대한 본부의 인식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대교연 측에서는 ‘설득과 합리성이 결여된 서울대의 행태에 대해서 비난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요지의 논평을 내기도 했다.
‘수익 악화’와 관련한 논란
기부금수입은 발전기금 세입에서 약 40%를 차지하는 핵심 수입원이다. 또한 ‘수익사업전입금수입’과 ‘재산운용수입’은 기금 자체를 운영하고 재산을 불리기 위한 것으로 총 세입의 10%미만 수준이다. 전자는 자체사업(TEPS, 웨딩홀 사업 등)에서 나온 수익을 포함하며 후자엔 예금이자수입 등이 해당된다.

▲기부금은 발전기금의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다. 사진은 정재민 교수가 기부 협약서 서명 후 성낙인 총장과 사진촬영을 하는 모습. / ⓒ서울대학교발전기금 홈페이지
그런데 최근 발전기금이 수익현황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 2014년 본부가 발전기금의 법인회계 전입금을 0원으로 책정한 이유를 ‘수익악화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부터다. 최 행정관은 “최근 법이 바뀌면서 기부자에 대한 공제혜택이 많이 줄었다. 기부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저금리 추세로 인해 재산운용을 통한 이자수익도 감소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본부 측 논리는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있다. 각종 공시자료에 따르면 발전기금 자산 및 기부금수입은 지속적으로 증가추세이다. 재단 운영환경이 어려워졌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교연은 “발전기금 고유목적사업비용이 2012년 543억에서 2013년 631억으로 크게 늘었지만, 순자산 증가가 61억(2012년에는 83억 증가)이나 돼 전체적으로 재정은 증가하는 추세”라고 주장했다.
논란의 핵심, 발전기금의 불투명성
발전기금과 관련된 논란의 핵심은 운영방식이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임희성 연구원은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발전기금 운영내역이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되며, 실제로 서울대 발전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느냐”라고 지적했다. 발전기금은 사실상 서울대 법인과 분리될 수 없는 기구이며, 그 비중도 작지 않기 때문에 발전기금 운영내역이 공개되지 않는다면 서울대 재정 운영 전체가 불투명하게 운영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대자연 양기원 위원장은 “단과대 사업 한 가지를 위한 돈이 법인회계와 발전기금이라는 별개의 주머니에서 지출되기에 예산의 사용실태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작년 9월 ‘발전기금 Brea k ’가 발전기금의 불투명성을 비판했을 때 본부의 한 관계자는 “학생들이 요구한다면 사용처를 못 밝힐 이유도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있었던 2014년 1월 등심위에서 학생들이 발전기금 회계자료를 요구 했을 때 발전기금은 ‘노력하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한 뒤 실질적으로 자료를 제공한 적은 없었다. 학생 측은 2015년
등심위가 시작된 후에야 관련 자료들을 받을 수 있었으며, 그마저도 결산 및 수익사업회계 등이 제외된 불완전한 자료들이었다.
발전기금의 투명한 운영을 담보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우선 발전기금 이사회는 총장을 비롯한 서울대 인사들이 주를 이루며, 발전기금을 모니터링할 감사는 이사회에서 선임된다. 발전기금의 재원을 사용하는 주체가 발전기금 이사회의 주도권을 쥐고서, 감시·견제수단마저 제대로 갖춰놓지 않은 것이다.
풀리지 않은 의문들에 대해 발전기금 오병열 기획팀장은 “발전기금이 서울대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라 생각하는 게 가장 큰 오해인 것 같다”면서 “학생들과의 소통이 아직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기부금 집행방식 등 관련 내용들을 적극적으로 홍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운영의 투명성이 충분한 수준에 이르러야만, 발전기금에 대한 각종 의혹들은 그에 맞춰 건설적인 비판으로 바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