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론은 2015년 한국정치의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야당이 국회에서 적극적으로 개헌을 주장하고 있으며, 여당에서도 개헌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의 개헌 움직임이 달갑지 않은 눈치지만, 국회 내에서 개헌을 의논할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구성은 막을 수 없을 듯하다. 과연 지금의 개헌논의는 어느 수준에 다다랐으며, 개헌을 위한 바람직한 절차는 무엇일까? <서울대저널>이 여야 국회의원, 정당인, 헌법학자, 정치학자에게 개헌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의 간담회 사진. 권력구조 중심의 개헌 논의가 국회에서 시작되고 있다. Ⓒ연합뉴스
개헌논의의 핵심,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 1948년 7월, 제헌국회에서 헌법을 제정한 이후로 한국 헌법은 9차례나 바뀌어 왔다. 헌법은 한 사회의 기본법으로,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의 변화를 개헌을 통해 반영해야한다. 하지만 그간 대부분의 헌법개정은 권력자의 요구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다. 한편 1987년의 헌법개정은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인 열망이 반영된 결과물로서 이전의 개헌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1987년 개정된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는 조항은 그 당시에 개헌을 통해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어떻게 담아냈는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1987년 헌법은 약 27년 동안 유지돼왔다. 하지만 그동안 개헌에 대한 논의가 부재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논의는 대부분 유력 정치인들 사이의 타협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 구체적으로 1990년 3당 합당 당시 노태우·김종필·김영삼의 내각제 비밀합의나 1997년 대선에서DJP(김대중·김종필)연합이 내각책임제 개헌을 계획하는 등의 현상이 이에 해당한다. 또 노무현 정권 때는 개헌론이 대통령이나 국회의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했다.
현 정권의 개헌논의는 작년 10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중국 방문 중에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논의의) 봇물을 막을 길이 없을 것”이라고 발언한 뒤 본격화됐다. 김 대표의 발언으로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 내에서도 개헌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은 블랙홀’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개헌론의 불씨는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았다. 야당은 국회 내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개헌을 논의하자고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으며, 여당도 이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국회의 개헌론은 대부분 현행 헌법에서 대통령이 가지는 ‘제왕적인 권력’을 분산해야한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에 두고 있다. ‘개헌 전도사’로 불리며 여당 내에서 개헌론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 독점으로 정치갈등이 증폭 됐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국가원수과 행정부 수반으로서 국가 운영에 절대적인 권한을 갖는 가운데, 야당이 국정운영에 참여할 여지는 적다. 이 의원은 “19대 대선에서 48%를 득표한 문재인 후보 측에서는 장관 하나 낼 수 없다”며 권력에서 제외된 야당이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 소속인 새정치민주연합 신경민 의원 역시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에 1987년에 이룩한 민주주의, 삼권분립 정신이 훼손되고 있다”고 밝혔다.
현 19대 국회에서 국회의장 직속으로 구성된 ‘헌법개정 자문위원회’ 역시 활동보고서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헌법개정자문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서 “대통령의 권한이 독점되지 않도록 (중략) 권력간 ‘견제와 균형’이 명실상부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재오 의원은 “이미 국회 내에서 개헌에 대한 일정 수준의 합의점이 존재한다. 논의의 진전을 막는 것은 국회가 아닌 대통령”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 대통령제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권력을 사유화하고자 한다”며 “국회의 개헌논의를 막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 역시 ‘제왕적 대통령제’의 구조적 폐해”라고 지적했다.

▴’개헌 전도사’ 이재오 의원. Ⓒ이재오 의원실
현재의 개헌론에는 한계점 존재해 그러나 과연 대통령의 ‘제왕적인 권력’이 정치 갈등의 핵심일까? 대통령의 권력이 과도하게 많다거나, 대통령이 권력을 사유화하고자 한다는 지적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중대사를 대통령에게 책임 지우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에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언론의 첫 번째 관심사 중 하나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구조적 폐해가 한국 정치의 문제점이라는 시각도 사실은 대통령에 대한 이러한 관심을 바탕으로 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헌법개정 자문위원회’에 참여한 바 있는 강원택 교수(정치·외교학부)는 “지금 박근혜 정권을 ‘제왕적’이라고 부르긴 힘들 것이다. 오히려 현 정권이 레임덕에 빠졌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현 대통령제를 제왕적 대통령제로 규정하는 시각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제왕적 대통령의 대표적인 폐단으로 지적되는 ‘친인척 비리’, ‘권력기관의 사유화’등에 대해서도 “오히려 대통령이 정책 추진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된 데에 원인이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장기적인 시각에서는 안정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권력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임기 5년간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정이 안정되도록 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강 교수는 5년 단임제에 대해서도 “장기적인 정책을 집행하기에는 짧다. 그나마 임기 초와 임기 말 1년을 제외하면 대통령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간은 3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만일 총선에서 여당이 패해 ‘여소야대’(집권당이 아니라 야당이 국회 다수당을 점하는 상황) 정국이 된다면 대통령의 정책추진 능력은 더욱 저하된다”는 점도 지적했다.
강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대안으로 언급되는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대통령이 가지는 외교와 국방에 대한 권력이 국회의 내치에 대한 권력과 칼로 무 자르듯 나뉘지는 않을 것”이라며 “바이마르 공화국의 전례를 따르지 않도록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은 ‘분권형 대통령제’를 시행함에 따라 대통령과 의회의 권력 충돌이 큰 문제가 됐었던 적이 있다.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으로 헌법 전문가인 건국대 한상희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권력의 집중이 문제이긴 하지만 헌법에서 비롯된 문제는 아니”라며 현재의 개헌론을 비판했다. 그는 “현행 헌법대로만 운영돼도, 대통령의 권한은 충분히 분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초대 헌법 체제에서도 이승만 대통령이 국회를 좌지우지하고 사법체계를 흔드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점을 예로 들며, 권력 독점은 헌법 자구의 수정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한 교수가 문제 삼은 ‘권력 집중’은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이 아니라, 대통령과 여당이 권력을 차지하고 제1야당이 여기에 기생하며 공존하는 ‘권력의 독과점 체제’를 의미한다. 한 교수는 “이러한 권력 독과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헌법 개정보다는 선거법과 정당법 개정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거법과 정당법의 개정을 통해서 거대정당들에게 안정적이었던 ‘권력의 독과점 체제’를 해소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먼저 정치과정의 민주화를 이뤄야 비로소 헌법 개정을 논할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된다”며 “정치과정의 민주화가 없는 헌법 개정은 기성 권력을 강화하는 조치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대로 빨리 고쳐야 하나? 총 130조에 이르는 현행 헌법 조항 중에 국회와 정부(대통령과 행정부)에 대한 조항은 57개조에 이른다. 그만큼 헌법에서 권력구조에 대한 내용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현재의 개헌 논의는 국회의 시각에 갇혀 대통령 권한을 국회에 분산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있다. 이에 대해 강원택 교수는 “지금은 어떤 형태의 권력구조로 개헌할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없는 상황”이라며 “국회가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현재의 논의에서는 현역 국회의원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반영되기 쉽다”고 말했다. 개헌논의가 전 사회적으로 확산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선거가 없는 2015년을 개헌의 ‘골든타임’이라고 부르고 있다. 실제로 2016년에는 20대 총선이, 2017년에는 20대 대선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개헌을 위한 논의가 안정적으로 진행되는 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국회에는 이미 개헌안 발의와 의결까지 가능한 분위기가 되어 있다”며 2015년 안에 충분히 개헌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국회 내 ‘개헌추진 국회의원모임’에 소속된 여야 의원의 수는 155명(2014년 11월 기준)으로 헌법 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국회 내에서도 이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이 존재한다. 새정치민주연합 신경민 의원은 “올해 안에 개헌논의를 시작할 수는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실제 개헌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녹색당 하승수 공동운영위원장은 개헌의 현실적인 성사 가능성 여부를 넘어서 논의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하 위원장은 “2015년에 개헌을 하겠다는 것은 두 거대정당이 권력을 나눠먹는 개헌안을 졸속으로 의결하겠다는 얘기”라며 “올해부터 토론을 시작하되 2016년 총선을 통해 새롭게 구성되는 국회에서 개헌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현 국회가 과연 개헌에 대한 국민적 의사를 대표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볼 수 있다.
하승수 위원장은 “헌법개정안 초안을 만들 때 반드시 시민참여 절차가 필요하다”며 “시민참여 없는 졸속 추진을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그는 “시민참여 방식으로 개헌을 추진한 아일랜드나 아이슬란드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는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국가 파산사태에 직면했고 이를 개헌을 통한 국정 쇄신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이들 나라의 개헌 작업은 기존의 국회가 아니라 선거인 명부에서 제비뽑기로 선출된 시민의원에 의해 주도됐다.
헌법에 시민의사는 어떻게 반영할 수 있나 아일랜드 시민의회의 경우, 100명의 인원 중 3분의 2는 일반시민, 3분의 1은 현직 정치가들로 구성해 새로운 요구와 기존의 질서를 절충하였다. 헌법에 어떤 조항을 신설하고 어떤 조항을 폐기할지는 모두 이 시민의회에서 결정했다. 하 위원장은 이에 대해 “시민들이 ‘내가 바라는 변화는 무엇인지’, ‘헌법에 담겼으면 하는 내용은 무엇인지’를 얘기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쳐 헌법 초안을 만들어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에 대해서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현행 헌법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행 헌법에서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혹은 대통령의 발의로 헌법 개정안이 제안될 수 있다. 그리고 제안된 개정안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통해 의결되며, 의결된 개정안은 최종적으로 국민투표에서 과반수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확정된다. 이 의원은 “헌법 개정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헌법조문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고쳐달라는 게 아니라, 답답한 정치에 대개혁의 계기를 마련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적절한 절차에 대한 질문에 이 의원은 “국회 개헌특위에서 각 시민단체들이 제기한 개헌안이 검토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국회중심의 헌법개정은 분명 ‘헌법에 규정된 개헌절차’에는 합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모든 시민들이 헌법 개정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토론에 임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시민단체가 헌법 개정안을 제안하고 이에 대해 국회에서 토론하는 것이 시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일까? 건국대 한상희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국회의장 직속인 헌법개정자문위원회의 회의 내용에 대해서 TV중계도, 언론보도도 없었던 게 현실”이라며 “국회의 개헌논의는 ‘그들만의 생각’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민주화 이후 사반세기가 지났다. 많은 이들이 1987년 헌법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위한 이정표가 되기에 부족하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 개헌을 통해 한국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새로운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많다. 개헌 과정에서 이뤄지는 토론의 경험은 어쩌면 민주화를 쟁취해낸 국민적 경험만큼이나 강렬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상희 교수는 “헌법은 책 안의 법(law in book)이 아니라 행동 안의 법(law in action)”이라고 얘기했다. 더 폭넓은 차원에서의 헌법 개정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