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강의 끝에 A+는 없다

금년 1학기부터 적용되는 재수강 학점 상한제도, 그 논란을 되짚어보다

 이번 학기(2015년 1학기)부터 재수강을 하게 될 경우 A+를 받을 수 없게 됐다. 지난 7월 14일 ‘서울대학교 학업성적 처리 규정’이 변경된 탓이다. 변경 이전에는 재수강한 교과목에서도 학점 상한 없이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학칙의 변경으로 2015년 1학기부터 수강한 과목을 재수강할 경우 최고 A0까지의 성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 이전에 수강했던 과목을 재수강할 경우에는 각 과목당 1회에 한해 성적 상한이 없으며 2회(3수강)부터는 역시 최고 A0까지만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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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본부 행정관 Ⓒ최서현 사진기자

건너기 힘들어진 ‘재수강’ 본부 학사과는 이러한 학점 상한의 설정을 “지난 국정감사에서 지적받은 ‘학점 인플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학점 인플레’란 학생들의 성적이 적정 수준 이상으로 부풀려져 있는 현상을 의미한다. 실제로 2013년 국정감사에서 최근 5년간(2013년 기준) A학점을 취득한 재학생 비율이 50%에 육박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본부는 성적을 올리기 위한 무분별한 재수강이 학점 인플레의 한 가지 원인이라고 본 것이다.

 재수강에 대한 제한을 강화하는 조치는 이미 다른 학교에서도 진행된 바 있다. 전남대는 2013년도 2학기부터 재수강시 취득 가능한 학점을 A(A0)로 제한했다. 고려대는 2014년도 1학기부터 재수강시 A(A0), 삼수강시 B+까지의 성적을 취득할 수 있게 했다. 중앙대는 이미 2010년에 재수강시 취득 가능한 성적을 A(A0)로 제한했다. 이외에도 많은 학교들이 재수강 학점 상한을 실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수강 42년사(史)  재수강에 대한 제한은 1970년대 학사과정 엄정화의 맥락 속에서 시작됐다. 1972년 교양과목의 상대평가제, 학사경고·제명제 등이 도입되며 학사관리가 엄격화 됐다. 이후 1973년 3월에는 재수강이 원천 금지됐다. 금지된 재수강은 1984년에 다시 가능해졌다. 이때 재수강은 D+이하의 과목에 대해서만 가능했으며, 재수강시 받을 수 있는 최고 학점 B0였다.

 재수강에 대한 제한 규정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완전히 사라졌다가 2000년대에 다시 등장했다. 우선 2000년도 1학기부터 성적표에 과목의 재수강 여부가 표시되기 시작했다. 이후 2002년 1월에는 학업성적처리규정에 ‘재수강하고자 하는 과목의 성적 등급이 일정 수준 이상인 경우 재수강을 제한할 수 있다’는 규정이 신설됐다. 실질적인 제한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학생들은 재수강 제한에 대한 근거규정이 만들어졌다며 반발했다. 그리고 2003년 11월 본부에서 ‘B-이상 과목을 재수강하는 것을 금지하고, 삼수강하는 과목의 경우 수강신청의 우선순위를 최하위로 조정한다’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교육환경개선협의회(교개협)에서 학생회 측이 강하게 반대해 결국 시행되지 못했다.

 본부는 2005년 9월에 ‘B-이상은 금지하고, 한 학기에 한 과목만 허용한다’는 개편안을 다시 제시했다. 이에 제48대 총학생회는 설문조사 등의 방법으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였고, 본부 측 개편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이후 본부와 학생회의 협의는 제49대 총학생회 선거와 시기가 맞물리면서 중단됐다. 2005년 12월, 본부는 돌연 ‘2006년 1학기부터 수강하는 강의에서 B-이상을 받을 경우 재수강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의 재수강제도 개편안을 공지했다. 이에 ‘단과대학학생회장연석회의’(연석회의)가 2006년 1월 교개협에서 본부 측에 반대의사를 전달하였고, 이후에도 개편안 철회를 위한 교육투쟁이 진행됐지만 학생들의 의사는 반영되지 못했다.

반쪽짜리 의견수렴… ‘소통’은 구색 맞추기 작년 재수강 제도의 개편은 2005년 이후 근 9년 만에 이루어졌지만, 그 모양새는 2005년과 사뭇 유사했다. 먼저 2013년 말, 본부 학사과는 2013년 국정감사에서 지적받은 학점 인플레현상을 개선하고자 재수강시 취득 가능한 학점의 상한을 설정하는 방안을 구상했다. 학사과의 개편안은 이후 학사위원회에 보고됐고, 학사위원회는 ‘학생들의 의견을 들은 뒤 학칙을 개정할 것’을 의결했다.

 학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학사과는 2014년 2월 연석회의에 연락을 취했고, 학사과의 과장급 실무자와 연석회의 집행부 사이에 면담이 이뤄졌다. 이후 수립된 제56대 ‘디테일’ 총학생회와 본부 사이에서는 재수강 문제에 대한 논의 자체가 없었다. 이 와중에 6월, 본부는 재수강 제도 개편에 대한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학생회는 이를 확인한 뒤, 본부 측에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내부적인 논의가 필요하며 곧바로 변경된 재수강 제도를 시행할 수 없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본부의 학업성적처리규정 개정을 위한 절차는 계속 진행되었고, 본부는 7월에 개편된 학칙을 공포했다.

 의견수렴 과정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본부 학사과는 “2013년 후반부터 2014년 초까지 재수강 제도 개편에 대한 아웃라인을 확정했고, 그 이후에는 본격적인 학칙개정을 위한 과정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본부는 연석회의와 2014년 2월에 실시한 면담에서 ‘학생과의 합의’가 이뤄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당시 연석회의 집행부원이었던 김예나(국문 10)씨는 “2월의 논의에서는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본부는 당시 공문이나 사전적인 설명 없이 연석회의에 연락을 취했으며, 대담에 참석했던 3명의 집행부원끼리도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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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대 총학의 부총학생회장이었던 김예나씨. 본부가 당시 보내왔던 학업성적 처리규정 개정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최서현 사진기자

 본부의 일방적인 태도는 2014년 6월 제56대 ‘디테일’ 총학생회와의 논의에서도 드러났다. 총학은 본부가 6월 16일 재수강 제도 개편안을 공개하자 6월 22일 ‘총학생회운영위원회’(총운위)에서 관련 논의를 시작했다. 총학생회는 본부에 재수강과 학점 인플레 사이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자료를 요청했다. 본부 학사과는 자료를 전달해줄 것을 약속했지만, 담당자의 출장과 업무과중 등을 이유로 번번이 제출을 미뤘다. 애초에 재수강에 대한 학점상한의 설정에 대한 찬반은 총운위에서도 분분했으며, 각 단과대학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연히 재수강 학점상한제에 대한 논의는 각 단과대학 및 총운위에서 지지부진해졌다.

 자료제출을 미뤄오던 학사과가 2주 만에 총학생회에 보낸 자료는 처음 요청했던 자료가 아니라 7월 중으로 공포할 학칙 개정안이었다. 그리고 그 개정안은 이미 각종 심의절차를 통과한 상태였다. 본부는 총학생회의 반발과 상관없이 학칙개정을 위한 내부과정을 계속해서 이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번 재수강제도 개편에서 본부가 했던 의견수렴 노력은 두 차례의 형식적인 ‘소통’ 뿐이었다.

학생사회, 지지부진한 논의 끝에 미온적 대응  재수강 문제가 학생사회에서 공론화되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2014년 2월에 있었던 본부-연석회의 면담 이후부터 본부가 6월에 개정안을 발표할 때까지 이 문제는 학생사회에서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었다. 본부의 6월 발표 이후 총학생회가 재수강 제도 개편안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표명하지 못한 것은 이로 인한 결과였다. 총학생회는 본부의 일방적인 태도에 대응해 학사과 항의방문 및 교무처장과의 면담을 추진했으나 본부의 인사교체 등으로 인해 실제로 이행하지는 못했다. 당시 부총학생회장을 맡았던 김예나씨는 “재학생들에게 당장 불이익이 가해지지 않으며, 학점 인플레를 막는다는 본부의 입장에 반대 논리를 형성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며 총학생회의 대응이 미진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재수강 학점 상한에 대한 찬성과 반대 변경된 재수강 제도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본지가 학부생 111명을 편의추출하여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변경 사항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약 39%였으며, ‘동의한다’는 응답이 약 48%로 동의한다는 입장이 약간 많았다. 또 학점 상한 기준에 대해서는 ‘현재수준이 적절하다’는 응답이 약 45%로 가장 많았으며, ‘제한이 완화돼야 한다’는 입장은 약 30%, ‘제한이 강화돼야 한다’는 입장은 약 20%였다.

 찬성하는 학생들은 무분별한 재수강으로 인한 학점인플레, 초수강자에게 공정하지 않은 경쟁 등을 근거로 들었다. 정치학과에 재학 중인 A씨는 “재수강 조건이 강화되는 대학가의 전반적인 흐름 속에서, 우리 학교의 학점 인플레는 취업 시 학점에 대한 공신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재수강으로 인한 학점 인플레의 악영향을 지적했다. 또 그는 “초수강자는 재수강자에 비해서 성적 경쟁에서 불리하기 때문에, 재수강에 대한 제한 없이는 계속 재수강자가 양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하는 학생들은 그 이유로 재수강으로 얻은 성적이 개인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결과물이라는 점, 재수강에 대한 제한이 지나친 학점 경쟁과 학점 인플레를 막는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점을 제시한다. 화학생물공학부에 재학 중인 B씨는 “같은 학번 동기 중에 특정 과정을 2015년 이전에 들은 학생과 군 휴학 등으로 2015년 이후에 듣는 학생 사이에 형평성 문제가 있다”며 이번 개편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연택(기계항공 11)씨는 “재수강을 위해선 한 학기라는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받을 수 있는 학점이 제한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대학입시에서 재수생의 성적을 제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학점 인플레는 사회적 차원의 문제”라며 학점상한제도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지적했다.

대학교육의 상업화…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김상연 사회대 학생회장(사회 12)는 “학점을 올리려는 학생들을 ‘학점을 세탁한다’며 곱지 않게 보는 시각은 취업하지 못하는 책임을 학생 개인에게 돌리는 발상“이라며 ”학생들에게 학점 부풀리기를 요구하는 사회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취업이 어려워지고 기업이 학점을 주요 선발 기준 중 하나로 삼으면서 학생들은 자연히 이와 같은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상연 회장은 또한 “재수강 학점 상한제는 품질보증서의 신뢰도를 높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재수강을 규제해 서울대학교의 학점을 보다 신뢰할 수 있는 스펙으로 만든다는 의미에서다. 김상연 회장은 “이러한 과정 속에 학생들의 수업권에 대한 고려는 생략돼있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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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대학생회장 김상연씨. 재수강 학점 상한제에 관련해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김대현 사진기자

 한편 김 회장은 “재수강 학점 상한제 외에도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많다”며 대학가의 학사관리 엄격화 경향성을 비판했다.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수강해야하는 과목 수가 늘어나고 수강신청에 대한 제약이 많아질수록 학생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수업의 폭은 좁아진다. 김 회장은 회계과목을 의무로 수강해야하는 중앙대를 예로 들며 “학생들의 자율적인 학습권은 침해받고,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이 점차 규격화되고 있다”며 “이러한 변화는 대학 기업화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신정철 교수(교육학과)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재수강 문제를 설명했다. 신 교수는 “재수강 학점 상한제는 교육적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술적인 문제다”라고 말했다. 그는 “학점은 부산물일 뿐”이라며 “수업 내용을 잘 이해한 학생들이 많다면 좋은 학점을 받는 학생들도 많은 게 자연스럽다”고 이야기했다. 학생들의 성적을 일정한 비율에 따라 나누고, 경우에 따라 학점 상한까지 설정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신 교수는 재수강 학점 상한제를 ‘기술적인 문제’라고 지적한 것에 대해 “그것이 인력채용을 편리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즉 기업 입장에서는 학점 우열이 명백하게 가려져야 인재채용이 편리해지는데, 이러한 기업의 필요성을 학생 성적평가에 적용시킨 것이 학점상한제도라는 입장이다. 또한 신 교수는 학생들이 과도한 학점 경쟁을 하고, 재수강을 성적 올리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교수 임용에 있어서 대학원 학점이 중요한 선발 기준이 된다면, 대학원생들도 재수강에 열을 올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신 교수는 이것이 대학교육을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이끄는 원인일 뿐 아니라, 기업에게도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사회는 지식 중심의 사회로, 점차 전문화된 지식이 중요해진다. 따라서 일반적인 능력이 높은 사람을 뽑는 채용 시스템은 채용 자체에 있어서는 효율적일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기업에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의 채용기준이 바뀌는 게 바람직한 교육과 사회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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